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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록 186화

무료소설 마정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5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정록 186화

 

186화

 

 

 

 

 

 

 

‘아기가 뭘 안다고!’

 

함정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인내가 한계에 달한 그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마침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린 방 근처는 외부에 은잠해 있는 자들이 없는 상황.

 

건물 사이에서 빠져나온 그는 지붕을 타고 최대한 가까이 이동했다. 그리고 아래쪽에서 오가던 경비무사들의 시선이 다른 곳을 향한 틈을 타서 금화전으로 몸을 날렸다.

 

단숨에 십 장의 거리를 날아간 그는 금화전 이 층 처마의 그림자 속에 숨어들어서 불이 켜진 방을 향해 귀를 기울였다.

 

창문에 비치던 그림자는 어느새 보이지 않았다. 등잔불 저편으로 자리를 옮긴 듯했다.

 

그리고 곧 방문을 여닫는 소리가 났다. 아마도 아기를 안은 자가 밖으로 나간 듯했다.

 

그는 창문을 진기로 감싸고 살짝 당겨 보았다. 걸쇠를 걸지 않았는지 의외로 창문이 쉽게 열렸다.

 

그는 실낱같은 틈으로 안을 살펴보았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잠시 망설인 그는 심호흡으로 마음을 가다듬고는, 창문을 열고 재빨리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안으로 들어가고 창문을 닫은 시간은 그야말로 눈 한 번 깜박일 시간에 불과했다.

 

경비무사들이 이상하게 여겨 고개를 돌렸다 해도 그때는 이미 창문이 닫힌 후였다.

 

그는 불이 환하게 켜진 방 안을 빠르게 둘러보았다.

 

그 순간, 사방에서 은밀한 기운이 밀려드는 게 느껴졌다.

 

숫자는 대략 열 명 이내.

 

지금까지 그가 상대했던 어떤 호위무사들보다 강한 기운이 느껴지는 자들이었다.

 

‘빌어먹을! 함정인가?’

 

북궁천은 함정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방을 빠져나가기 위해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 창문 바깥쪽도 막혀 버렸다.

 

그는 이를 악물고 묵혼을 뽑았다.

 

기왕지사 이렇게 된 것, 아기의 얼굴이라도 보고 싶었다.

 

어차피 천사지존은 자신을 죽이기 위해서 함정을 판 것이 아니니까.

 

그 때 방문이 열렸다.

 

“역시 나타났군.”

 

흥에 겨운 목소리.

 

방문을 바라보는 북궁천의 눈빛이 잘게 흔들렸다. 방문 저편에 한 사람이 서서 조소를 짓고 있었다.

 

황금빛 도관을 쓴 검은 수염의 중노인. 모습만 보고도 누군지 알 것 같았다.

 

호연도광!

 

천사교의 지배자인 천사지존이 직접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그의 품 안에 아기가 안겨 있었다.

 

하얀 얼굴, 들었던 대로 인형처럼 예쁜 아기가.

 

아기를 보는 순간 북궁천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갑자기 심장이 쿵쿵 소리를 내며 뛰었다.

 

‘내 아들!’

 

아기는 검은 눈동자가 선명한 눈을 깜박이며 북궁천을 응시하고 있었다.

 

달려가서 두 손을 내밀면 금방이라도 안길 것 같은 모습.

 

북궁천은 아이와 눈이 마주친 순간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심장박동 소리에 귀가 멍멍해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자신 앞에 진아가 있다. 진아가 세상의 그 어떤 수정구슬보다 맑은 눈으로 자신을 쳐다본다.

 

려려, 저것 좀 봐! 아기가 나를 알아보는 것 같아! 내가 지 아빠라는 걸!

 

‘진아야! 그래, 내가 네 아빠다!’

 

그런데 아기가 인상을 쓰더니 눈을 돌렸다. 복면을 쓰고 있는 북궁천이 눈빛을 파르르 떨며 빤히 쳐다보자 겁이 난 듯했다.

 

‘안 돼! 고개를 돌리지 말고 날 봐라, 진아야! 이 아빠를 봐!’

 

하지만 아기는 호연도광의 품에 쪼그리고 안겨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북궁천은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참고 힘들게 시선을 들어서 호연도광을 직시했다.

 

“그대가 천사지존인가?”

 

“맞아. 본좌가 바로 천사의 지존이니라. 북천을 지배한다는 마제가 복면을 쓰다니, 그렇게 자신의 얼굴에 자신이 없나?”

 

“내가 마제라는 걸 어떻게 확신하지?”

 

호연도광이 그 말에 기이한 미소를 지었다.

 

“어디 아닌지 알아볼까?”

 

그는 담담히 말하며 아기의 귀를 비틀었다.

 

“아아앙!”

 

아기가 울음을 터트리며 발버둥 쳤다. 얼굴이 벌게져서 금방이라도 까무러칠 것 같았다.

 

“그만해!”

 

눈을 부릅뜬 북궁천이 발작하듯이 소리쳤다.

 

호연도광은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아기의 귀에서 손을 뗐다.

 

“후후후, 본좌를 시험하려 하지 마라. 아기와 너만 고통스러워질 뿐이니까.”

 

북궁천은 첫 번째 싸움에서 자신이 졌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좋아, 좋아. 내가 마제라는 걸 인정하마.”

 

“본좌는 너를 핍박하고 싶지 않다. 어떤가? 마음을 탁 터놓고 이야기해 보는 것이.”

 

“나는 아기를 납치한 자들을 믿지 않는다.”

 

“하하하하, 우리는 구양환이 빼돌린 아기를 데려왔을 뿐이다. 납치라는 말은 맞지 않아.”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데려온 것이라면 지금 돌려주는 게 옳은 일 아닌가?”

 

“물론 돌려줘야지. 단, 우리의 수고를 생각해서 대가를 내놓아야겠지만 말이야.”

 

“네가 아기를 돌려준다면 나는 정파의 편을 들지 않고 북천으로 돌아갈 것이다. 마제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마.”

 

호연도광이 피식 웃었다.

 

“그대에게 죽은 본 교의 교도들이 몇 명인지 아느냐? 그냥 돌아간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모르진 않겠지?”

 

“그 일은 전쟁에서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다. 네 말대로 계산만 따진다면 전쟁에서 평화 협상이라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어찌 보면 억지 주장이라 할 수 있었다. 경우가 달랐으니까.

 

그런데 호연도광이 호탕하게 북궁천의 말을 인정했다.

 

“옳은 말이야! 과연 마제다워! 좋아, 그 말은 본좌도 인정하마. 본좌가 속 좁은 정파 놈들과 똑같이 놀 수는 없지.”

 

북궁천으로선 의외가 아닐 수 없었다. 철저히 따질 거라 생각했는데 너무 쉽게 인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호연도광의 말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럼 그 이야기는 없던 일로 치마. 이제 아기를 돌려주는 대가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그냥 돌아가겠다는 헛소리는 하지 말고. 그럼 본좌가 화를 낼지 모르거든?”

 

북궁천 역시 그가 쉽게 아기를 내줄 거라는 생각은 티끌만큼도 하지 않고 있었다. 좀 전에 한 이야기는 그저 떠보려고 한 것일 뿐.

 

“나에게 뭘 바라는 것이냐?”

 

“간단해. 본 교를 대신해서 몇 명만 죽여 주면 된다.”

 

“천사교 놈들을 죽이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해 주지.”

 

“후후후, 마제가 광폭한 패왕인 줄로만 알았더니, 농담도 제법 잘하는군.”

 

“농담이 아니다, 호연도광. 원하면 네 목도 잘라 줄 수 있어.”

 

“그래?”

 

호연도광은 분노 대신 미소를 지으며 아기의 손가락을 잡았다.

 

“북궁천, 본 교에서 교주를 모욕하면 어떤 벌이 주어지는 줄 아느냐?”

 

“멈춰!”

 

북궁천이 그 모습을 보고 황급히 소리쳤다.

 

호연도광이 아기의 손가락을 쥐고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아쉽군. 조금만 늦었으면 아기의 손가락 하나를 뜯어낼 수 있었는데.”

 

진심이 담긴 말이다. 북궁천은 호연도광의 눈을 보고 그 사실을 깨달았다.

 

호연도광은 정말 미친놈이었다.

 

“몇 명만 죽여 주면 된다고 했지? 말해 봐라, 누구를 죽여 달라는 거냐?”

 

“그 말을 승낙으로 알아도 되겠나?”

 

“일단 들어 보고 결정하마.”

 

“정말 아기가 고통당하는 걸 원하는가 보군.”

 

“만약 아기에게 또 한 번 고통을 주면 네 아들도 무사하지 못할 거다, 호연도광.”

 

북궁천이 으르렁거리며 분노를 씹어뱉었다.

 

하지만 호연도광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흠, 맞아. 네가 유아를 납치했다고 했지? 아직 살아 있느냐?”

 

“물론. 비록 인간 같지도 않은 쓰레기지만 값어치가 제법 나가거든?”

 

“보아하니 멀쩡하진 않을 것 같군.”

 

“몇 군데 부서지긴 했지만 숨은 붙어 있으니 걱정 마라.”

 

“잘했다. 아주 잘했어. 그런 멍청한 놈은 그렇게 당해도 싸. 본좌를 대신해서 아들을 교육시켜 주었다니, 고마워서 어쩌지?”

 

진심으로 하는 말인 듯 눈빛이나 목소리에서 분노가 일체 느껴지지 않는다.

 

북궁천은 그 모습을 보고 새삼 각오를 다졌다.

 

호연도광은 그가 지금껏 상대했던 그 어떤 자보다도 강적이었다.

 

“고마우면 순순히 교환하자. 네가 아기를 돌려주면 나도 네 아들을 돌려주고 북천으로 떠나마. 어떠냐? 그 정도면 그대도 손해는 아닐 것 같은데?”

 

“굳이 그럴 필요 없다. 그냥 아기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유아는 나중에 머리만 보내라.”

 

호연유의 생사는 조금도 관심 없다는 투.

 

남의 자식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북궁천은 그런 호연도광보다 호연유에게 더 화가 났다.

 

‘제기랄, 그 새끼는 인질로도 쓸모가 없군.’

 

보석이라 생각했던 것이 쓸모없는 돌덩이로 변한 상황. 북궁천은 어떻게든 상황을 반전시켜 보려고 안간힘을 다했다.

 

“네 요구를 들어준다 해도 아기를 돌려주지 않으면 나만 손해 아닌가?”

 

“후후후후. 믿을지 모르겠지만, 본좌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번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거짓말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죄악이라고 생각하거든?”

 

“어처구니가 없군. 그 말을 나에게 믿으란 말이냐?”

 

“역시 너는 아직 어리구나. 생각해 봐라. 본좌가 거짓말을 일삼았다면, 사람들이 본좌를 신처럼 따랐을 것 같으냐?”

 

북궁천은 그 말의 의미를 깨닫고 가슴이 서늘해졌다.

 

진실은 세상에서 가장 큰 힘 중 하나다. 하지만 진실만 말하며 살아간다는 건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사람들은 진실을 말해도 쉽게 믿지 않으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짓을 말하고 자신의 마음을 숨기는 것에 익숙해져 있으니까.

 

그러하기에 진정으로 진실만을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람들은 그를 추앙할 수밖에 없다.

 

만약 호연도광의 말이 사실이라면, 악독하기 이를 데 없는 호연도광이 신으로 군림하는 것에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호연도광이 이렇게 무서운 자였다니.’

 

어쨌든 그의 말대로라면, 요구를 들어줄 경우 아기를 돌려준다는 말 역시 사실이라는 뜻.

 

그나마 다행이긴 한데 당장 승낙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자신 역시 내뱉은 말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 승낙하면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고.

 

단 하나의 방법은 이곳을 빠져나가서 시간을 끄는 것인데 그것도 녹록치 않았다.

 

빠져나가려면 호연도광이 나서기 전에 빠져나가야 했다. 그런데 포위한 자들과 싸우는 동안 호연도광이 아기를 이용해서 위협하면 당해 낼 방법이 없었다.

 

난감한 상황에 처한 북궁천은 머릿속이 새카맣게 타들어 갔다.

 

그 때 진아가 고개를 돌려서 그를 보더니 배시시 웃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웃음.

 

북궁천은 그 웃음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을 꿈속에서조차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진아의 웃음을 지켜 줄 수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천하가 지옥 속으로 떨어지더라도!

 

‘려려, 미안하다. 나는 진아가 고통 받는 모습을 더 볼 수가 없구나.’

 

그는 결정을 내리고 호연도광을 직시했다.

 

“정 그래야만 한다면…….”

 

바로 그 때!

 

“으악!”

 

“적이다! 막아라!”

 

“웬 놈들이냐!”

 

“불이 났다!”

 

“요경전 쪽이다!”

 

“옥검전 쪽도 불이 붙었다! 어서 꺼라!”

 

여기저기서 갑작스럽게 소란이 일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금천장 밖에서도 함성이 들렸다.

 

와아아아!

 

우와아아아아아!

 

“저쪽에서 수상한 놈들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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