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록 18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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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0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정록 185화
185화
“그럴 가능성이 높군.”
“마제가 이곳을?”
모두들 경악하면서도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곳을 정말 마제가 공격했다면, 그가 아직 천사교의 간계에 넘어가지 않았다는 반증이었다.
하지만 마제의 출현이 못마땅한 사람도 있었다.
“그가 공연히 들쑤셔서 우리의 계획이 틀어지지나 않을지 모르겠군.”
“저 역시 그 점이 우려됩니다.”
구양환과 등조립은 북궁천의 행동이 정파연합의 계획을 방해할지 모른다는 투로 말했다.
어느 정도 일리 있는 말이었다. 그래도 어쨌든 지금은 방해보다 이익이 되고 있었다.
관호명이 두 사람을 보며 한마디 했다.
“천사교와 싸우는 것만으로도 그는 우리에게 득이 되는 사람입니다. 나쁜 쪽보다는 좋은 쪽으로 생각해 봅시다.”
“내 어찌 그걸 모르겠소? 다만 본 궁주는 그자로 인해서 우리 계획이 틀어질까 봐 염려되어 말한 것뿐이오.”
“지금 그 일을 따져서 무슨 소용이 있겠소? 일단 우리는 계획된 대로 움직입시다.”
백리진이 불필요한 의견 대립을 제지하고 제갈상을 바라보았다.
“제갈 군사, 계획을 말해 보게.”
제갈상이 긴장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제부터 우리는…… 미끼가 되어야 합니다.”
* * *
숙야돈은 보고를 받고 다급히 금화전으로 달려갔다.
곳곳에서 운명을 건 한판 승부가 벌어지는 중이었다. 금천장의 누구도 잠을 자지 못했다.
호연도광 역시 자신의 집무실에서 차를 마시며 중요한 정보를 그때그때 받아 보았다.
하지만 이번에 숙야돈이 가져온 정보는 어느 때보다 충격적이었다.
“유아가 납치되었다고?”
“예, 교주. 상황을 들어 보니 정파연합이 아닌 마제에게 당한 것 같습니다.”
“정녕 범인이 마제란 말이냐?”
“침입자들이 모두 복면을 써서 얼굴은 보지 못했다 합니다. 하지만 상황을 종합해 보면 마제가 분명합니다.”
“멍청한 놈! 수백 명을 데리고 있으면서 그깟 몇 놈에게 당하다니!”
“아무래도 아기와 소존을 맞바꾸겠다는 속셈인 것 같습니다.”
숙야돈의 말에 호연도광이 조소로 보이는 사이한 냉소를 지었다.
“흥! 유아와 아기를 놓고 나와 심리전을 벌여 보겠다?”
호연유의 목숨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전쟁에서의 승리다.
호연유를 미끼로 내놓은 것도 그 때문이 아니던가.
물론 그도 어떻게 해서든 아들이 살아나기를 바랐지만, 능력이 없어서 죽는다면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아들의 운명일 뿐이었다.
‘그놈도 금천장에서 많은 무사가 빠져나갔다는 걸 알 텐데, 유아를 납치하는 일에 정신을 쏟다니. 아무래도 뭔가 이상해.’
잠시 생각에 잠겼던 호연도광이 기광을 번뜩였다.
그러고는 좀 전보다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숙야돈, 놈은 본좌가 알아서 상대할 것이니라. 혹시라도 교도들이 놈과 부딪치면 유아에 대해서 일절 신경 쓰지 말고 대하라고 전해라.”
숙야돈은 이미 짐작하고 있던 반응이기에 놀라지 않았다.
“예, 교주. 하온데 소존도 소존입니다만 지금쯤 본진이 맞붙었을 겁니다. 그런데 놈으로 인해서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차질이 생겼다 해도 전세가 뒤집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정 안 되겠으면 호교이령이 움직일 테니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니 사람을 보내 상황을 반 시진 단위로 보고받아서 본좌에게 알려라.”
“예, 교주.”
“그건 그렇고, 변성은 어떻게 되었느냐?”
“지금쯤 놈들과 격전을 벌이고 있을 것이옵니다.”
* * *
변성에서의 치열한 격전은 이각 내내 이어졌다.
평균적인 무위는 섬서연합 무사들이 월등히 강했다. 고르고 고른 고수들이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천사교도 오백 무사가 더해진 터였다. 어둠 속에서 오백의 숫자 차이는 전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더구나 지원무사 중 이백에 달하는 천사교도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이었다.
천사의 세상을 만들겠다는 광기 어린 신념하에 목숨을 내던지는 그들의 공격을 받고 섬서연합 고수들은 질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적의 숫자가 배는 되는 것 같은데 어찌 된 일이오?”
종남파 장문인 송광도장이 진평천을 보며 곤혹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진평천도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마지막 보고를 받을 때만 해도 삼백여 명이라 했다. 그런데 지금 보니 그 배도 넘을 듯했다.
“진 모도 잘 모르겠소이다. 아무래도 지원군이 도착한 것 같소.”
“우리 계획이 저들의 귀에 들어갔단 말이오?”
“그것까지는 모르겠소.”
“단천이라는 시주가 발설했을 가능성은?”
북궁천의 정체를 아는 진평천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것 같진 않소.”
하지만 북궁천의 정체를 모르는 송광도장으로선 의심을 완전히 떨칠 수가 없었다.
“만약 그가 발설했다면 더 이상의 공격은 무모하오. 이쯤에서 물러나 다음 기회를 노리는 게 좋겠소.”
밀리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이 계속되면 적을 물리친다 해도 엄청난 피해를 각오해야 했다.
진평천도 그 점을 모르지 않기에 송광도장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알겠소. 그렇게 하지요.”
곧 사방에서 후퇴를 알리는 소성이 울렸다.
삐이이이익!
삐, 삐이이이익!
“후퇴해라!”
“정파의 무사들은 모두 변성을 빠져나가라!”
5장. 첫 만남
북궁천은 상주의 마도세력이 도착하기 전 복면을 쓰고 금천장 안으로 스며들었다.
대규모 인원이 빠져나간 금천장의 경비는 전과 확연히 달랐다.
전에는 곳곳에 경비무사들이 고정으로 상주했지만, 인원이 부족한 지금은 주요 건물을 제외하고는 경비무사들이 이동하며 지켰다.
그만큼 구멍이 많다는 뜻이었다.
잠시 내부 상황을 살펴본 그는 평사전으로 이동했다.
평사전은 주방과 식당이 있는 건물이다.
밤늦은 시간에 식사를 하는 사람이 없으니 그 일대는 어느 곳보다 조용했다. 게다가 중요한 물건이나 사람이 없으니 경비가 아무래도 다른 곳보다 허술했다.
물론 음식에 이상이 있으면 큰일이긴 하지만 그것은 반입할 때와 조리하기 전, 조리 후에 검사하면 되는 것이다.
평사전의 뒷마당에는 정원이 있었는데, 일절 손보지 않아서 엉망이었다.
자정이 막 지나갈 즈음, 그 평사전 뒷마당의 엉망인 정원에 한 사람이 들어섰다.
북궁천이었다.
그는 엉망인 정원이 마음에 들었다. 나뭇가지와 풀이 제멋대로 자라서 그 안에 사람이 숨으면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북궁천이 정원 속에 몸을 숨긴 지 반 각쯤 지났을 때 삼십 대 장한 하나가 뒷마당으로 들어왔다.
그는 나름대로 자연스러운 태도를 취하며 허리춤을 푸는 시늉을 했다.
그러나 왼손으로 머리를 긁으며 한시도 쉬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북궁천은 그가 계속 머리를 긁어 약속된 신호를 보내자 전음으로 불렀다.
―왼쪽 풀숲 안으로 들어오시오.
“경비무사들은 열두 명씩 세 번 교대합니다. 뇌옥은 일 층과 지하로 되어 있는데 소가주께선 지하에 계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장한은 복면을 쓴 북궁천을 힐끔거리며 일각에 걸쳐서 자신과 일행이 조사한 사항을 상세히 말해 주었다.
이야기를 다 들은 북궁천이 아기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물었다.
“마제의 아기가 이곳에 있다는 말을 들었소. 아는 대로 말해 보시오.”
마제의 아기 이야기는 방문이 붙은 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더구나 전날 저녁에는 침입자 때문에 한바탕 뒤집어져서 금천장 사람들은 마제의 아기에 대한 이야기로 하루를 보냈다.
장한도 별다른 의심 없이 자신이 아는 바를 이야기했다.
“교주의 거처인 금화전에서 며칠 전부터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아마 그 아기가 마제의 아기인 것 같습니다.”
“금화전 어느 쪽에서 들렸는지 아시오?”
“자세히는 모릅니다만, 금화전 주방으로 식자재를 옮기던 친구 말로는 건물 오른쪽의 회랑을 지나가던 중에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서 고개를 들고 위를 바라보았는데 곧 멈췄다고 합니다.”
고개를 들고 위를 바라보았다는 말은 회랑과 가까운 쪽 방에서 들렸다는 뜻이다.
아주 유용한 정보였다.
“아기의 건강이 안 좋다는 소문도 있던데…….”
“절명마의가 금화전을 수시로 들락거린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아기 때문인 것처럼 보입니다.”
북궁천은 별다른 표를 내지 않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제야 장한이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마제의 아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해서 물어본 거요. 아무래도 경비가 그만큼 더 삼엄할 테니까.”
“아, 예.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래도 오늘은 무사들이 많이 빠져나가서 감시가 덜합니다. 정말 날 한번 잘 택하셨습니다.”
날을 잘 택한 게 아니다. 자신이 그렇게 만들었다.
북궁천은 모른 척하고 말을 돌렸다.
“다행이군. 그런데 당신도 비밀통로를 알고 있소?”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거리가 얼마나 되오?”
“다른 곳으로 갈 것 없습니다. 평사전 안에서도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그거야말로 정말 다행이었다.
“좋소, 잠시 후면 시끄러워질 거요. 그때가 되면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대로 하시오.”
“예, 말씀하십시오.”
평사전의 정원을 빠져나온 북궁천은 금화전으로 이동했다. 이미 한 번 가 본 터라 찾아가는 것이 전날보다 수월했다.
그는 전날 은잠했던 장소에서 우측으로 이십여 장 떨어진 곳에 몸을 숨겼다. 그곳은 평사전에서 만난 장한이 말한 회랑과 멀지 않은 곳이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틈에 몸을 숨긴 그는 경비 상황을 살펴보았다.
금화전의 경비는 전날과 비교할 수 없이 느슨했다. 밖을 도는 경비무사의 수는 물론, 은밀한 곳에 숨어 있는 자들의 숫자 역시 전날에 비해서 반도 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그것 때문에 고민을 했다.
전날 침입자가 있었는데 경비가 느슨하다니. 아무리 무사들이 많이 빠져나갔다 해도 그 차이가 지나치다.
다른 중요한 곳이 있어서 힘을 분배했다면 또 모른다. 그런데 현재 금천장에서 교주의 거처만큼 중요한 곳이 있을까? 더구나 마제가 아기를 노리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마치 들어오라고 자신을 유혹하는 느낌!
북궁천은 당장 침입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고, 정화문에게 들었던 금화전의 구조에 대해서 하나하나 떠올려 보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북궁천이 머릿속에서 금화전을 세 번이나 부쉈다 지었다 할 때였다. 이 층의 구석진 곳, 옅은 불빛이 새어 나오던 방이 보다 환하게 밝아졌다.
그리고 곧 그림자가 창문에 드리워졌다.
밝은 불빛으로 인해 그림자가 너무나 뚜렷해서 백 장 밖에서도 분간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누군가가 아기를 안고 있는 그림자였다.
‘진아다!’
그의 눈이 창문에서 떠날 줄 몰랐다.
거기다 곧 아기의 칭얼대는 소리마저 들렸다.
북궁천은 그곳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
그렇게 열을 셀 정도의 시간이 흐를 무렵, 갑자기 노성이 흘러나왔다.
“이놈이 어디다 오줌을 싸는 거냐? 맞아야 말을 들으려나 보구나!”
찰싹, 찰싹!
“으아아앙!”
때리는 소리와 자지러지는 울음소리가 칼날이 되어 날아들더니 북궁천의 심장을 갈가리 찢어발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