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록 18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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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43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정록 180화
180화
소이정은 손목이 끊어질 것 같은 통증에 망혼비를 놓쳤다.
뒤이어 북궁천의 주먹이 소이정의 온몸을 빠르게 두들겼다.
퍼버버벅!
“크허헉, 케엑!”
기괴한 비명을 내지른 소이정은 더 이상 대항하지 못하고 몸이 축 늘어졌다. 마혈을 짚였는지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가 없었다.
“씨, 씨발…… 뭐 이런…… 개 같은…….”
북궁천은 바닥에 널브러진 소이장을 차가운 눈으로 내려다보며 망혼비를 향해 손을 저었다.
이 장 밖에 떨어져 있던 망혼비가 그의 손으로 빨려들었다. 푸르스름한 광채가 어둠 속에서 빛났다.
“이걸로 네 살을 저며 보면 비수에 묻은 독이 얼마나 독한지 알 수 있겠군.”
소이정은 부르르 떨며 입을 꾹 닫았다.
하는 행동을 보니 정말 그렇게 하고도 남을 놈 같았다.
‘더럽게 걸렸군.’
결국 원망은 외조부에게 돌아갔다.
‘이런 놈을 나에게 맡기다니. 외조부도 이제 늙어서 제정신이 아니야.’
그 때 북궁천이 물었다.
“사교령이 보냈나?”
아니다. 하지만 잽싸게 머리를 굴린 소이정은 어물거리며 대답했다.
“그, 그렇다.”
“누가 뒤따라 다니는 걸 싫어한다고 했는데, 그 양반이 내 말을 제대로 못 들었나 보군. 저승에 가거든 사교령을 원망해라.”
눈살을 찌푸린 북궁천이 망혼비에 공력을 일으켰다.
시퍼런 독광이 더욱 요사스럽게 번들거렸다.
설마 바로 죽이려 할 줄이야!
화들짝 놀란 소이정은 급히 말을 돌렸다.
“자, 잠깐! 그게 아니라…….”
“그럼 뭐지?”
“사실은 총령께서 보내셨다.”
사교령이 보내지 않았다는 것은 북궁천도 짐작하고 있던 일이었다. 이런 자가 있었다면 진즉 붙였을 테니까.
“총령이?”
“그분께서는 너에게 관심이 많으시다. 그래서 나에게 알아보라고 하신 거지. 그분께 잘 말씀드릴 테니 날 풀어 줘라. 사실 그분이 바로 이 소이정의 외할아버지거든.”
설마 총령의 손자를 어떻게 하진 않겠지?
소이정은 그런 마음이 들자 느긋해졌다.
북궁천은 암습자가 총령의 손자라는 말에 냉소를 지었다.
“날 죽이라고 하진 않더냐?”
귀신같은 놈!
“그, 그분이 왜 너를 죽이라고 한단 말이냐?”
“내가 하는 일이 싫었겠지.”
“그게 아니다. 그분께서는 네가 가진 서류가 필요할 뿐이다.”
“서류?”
“악동초에게서 뺏은 서류가 있을 것 아니냐? 그중에는 천사교 간부와 주고받은 서류도 있을 것이다. 총령께선 그것이 필요한 해 나를 보낸 거다.”
북궁천은 주서광이 왜 그 서류를 필요로 하는지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다.
“왜 그 서류가 필요한 거지?”
“그야 필요하니까.”
“말장난하는 거 보니 지금 죽고 싶은가 보군.”
소이정이 화들짝 놀라서 발작하듯이 소리쳤다.
“아, 아니야! 난 죽기 싫어!”
살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니, 그가 살수든 아니든 천사교도라는 것만으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그는 특이하게도 일반적인 살수나 천사교도와 달랐다.
북궁천은 그런 소이정이 희한하게 보였다.
“그럼 다시 말해 봐. 그 서류가 왜 필요한 거지?”
“나도 잘은 모른다. 다만 그 서류가 있어야 누군가에게 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누군가는 방철산 장로겠지?”
소이정이 힐끔거리며 머뭇머뭇 대답했다.
“뭐, 그런 것 같긴 한데…….”
북궁천이 그런 소이정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만약 내가 서류를 준다면, 너는 나에게 뭘 해 줄 거지?”
“저, 정말 서류를 줄 거냐?”
“주지 못할 것도 없지. 나도 방철산을 무척 싫어하거든. 단,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겠지만.”
“나, 나는 돈이 없는데.”
“꼭 대가를 돈으로 치르라는 법은 없지.”
“그럼 뭘 원하는 거냐?”
북궁천은 소이정의 혈도 세 곳을 찍었다.
“삼혈착혼(三穴搾魂)이라는 수법을 들어 봤는지 모르겠군. 당장은 별 이상이 없지만, 칠 일 이내에 내가 풀어 주지 않으면 온몸의 근육이 오그라들며 살이 갈기갈기 찢기는 처참한 고통 속에서 이틀 동안 똥오줌 모조리 쏟아 내고 죽어 갈 거다.”
소이정은 말만 듣고도 몸이 떨렸다. 그 정도면 천사교의 오대독형에 비해서 악독함이 뒤지지 않았다.
‘악독한 새끼!’
“미리 말하는데, 스스로 풀려고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풀어 달라고 할 생각은 하지 마라. 허튼수작을 부리면 몸이 오그라드는 시간만 앞당겨질 뿐이니까. 못 믿겠으면 지금이라도 시험해 봐.”
소이정은 몸속 깊은 곳에서 근질거림이 느껴지자 창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거, 걱정 마라. 약속 하나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지키는 사람이니까.”
“좋아, 네가 약속을 지키면 나도 서류를 넘겨주겠다. 그만 가 봐.”
빨리 떠나고만 싶었던 소이정은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개자식, 나중에 혈도만 풀려 봐라.’
북궁천은 어둠과 동화되어 눈앞에서 사라지는 소이정을 보며 미미한 미소를 지었다.
‘운이 좋군.’
이 운이 진아를 구할 때까지 이어졌으면…….
골목길을 빠져나가는 그의 발걸음이 전보다 눈곱만큼 가벼워졌다.
* * *
북궁천이 상주를 빠져나갈 즈음, 숙야돈은 초지급으로 전해진 서찰을 들고 교주의 거처로 갔다.
“정파연합 놈들이 영서로 오고 있다 합니다, 교주.”
아장거리는 아기를 바라보고 있던 호연도광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얼마나 된다고 하더냐?”
“적의 총인원은 이천에서 이천이삼백 정도입니다만, 영서로 향하는 자들은 그중 일천이라 합니다. 나머지는 곧장 이곳으로 올 것 같습니다.”
“그래? 도착 예정 시간은?”
“자시 전후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지금 출발하면 되겠군.”
“일천오백 무사가 출발 준비를 마치고 교주님의 명이 떨어지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좋아, 출발시켜. 아주 재미있는 싸움이 될 것 같은데 내가 직접 가 보지 못하는 게 안타깝군.”
호연도광은 마치 남의 집 불구경하듯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 * *
황금색 불빛이 은은하게 깔린 방 안.
호연유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았다.
“정산, 흥이 안 나는가? 어째 표정이 어둡군.”
그가 바라보는 곳에는 상체를 벗은 청년이 서 있었다.
잘 발달된 근육과 미끈하게 빠진 몸매, 잘생긴 얼굴은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만큼 준수한 청년이었다.
청년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즐길 기분이 아니오.”
“왜? 저 계집이 마음에 들지 않나?”
호연유가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다.
두 사람의 앞에서는 사지가 묶인 나신의 여인이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덜덜 떨고 있었다.
그녀의 몸에는 붉은 선이 죽죽 그어져 있었는데, 그녀가 몸을 떨 때마다 봉긋한 가슴에 방울방울 맺힌 선혈이 하얀 살결을 타고 흘러내렸다.
“사, 살려 줘요. 돈은 안 받을게요. 제발…… 살려만 주세요, 흑흑흑흑.”
청년은 손에 들고 있던 채찍을 한쪽에 던지고 호연유를 바라보았다.
“제길, 그게 아니라…….”
호연유는 청년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검지를 그었다.
쉬익!
다섯 자나 떨어져 있는데도 여인의 봉긋한 가슴이 쩍 갈라졌다.
“아악!”
여인은 단말마 같은 비명을 내지르며 더욱 심하게 몸을 떨었다.
호연유는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청년을 바라보며 다가갔다.
“석정산, 원래 당신이 좋아하는 류의 가슴이 큰 계집이잖아? 그런데 왜 흥이 안 난다는 거지? 저렇게 큰 가슴을 가르고 피를 빨아먹으면 흥분된다고 했잖아?”
석정산은 입술을 깨물고 떨리는 눈으로 호연유를 노려보았다.
“나는…… 호 형이 천사교의 소존일 줄은 생각도 못 했소.”
“그게 뭐 어때서? 서로의 관계를 다 잊고 즐기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석정산의 바로 앞에 선 호연유가 하얗게 웃으며 손을 뻗어 석정산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그냥 즐겨. 그러면 돼. 봐, 흥분되어서 아래가 부풀어 오르고 있잖아?”
“나, 나는 더 이상 하지 않겠소.”
스윽.
호연유의 검지가 흐르는 곳에서 살이 갈라졌다.
“윽!”
석정산이 신음을 삼키며 한 걸음 물러섰다.
순간, 호연유가 빠르게 손을 뻗었다.
석정산이 대경해서 피하려 했지만 이상할 정도로 몸이 굼떴다.
퍼버벅!
찰나에 석정산의 혈도 세 곳을 짚은 호연유가 눈을 치켜뜨며 웃었다.
“후후후, 이미 늦었어. 너는 내 손을 벗어나지 못해.”
“크으으, 이 악독한 놈! 술에다 산공독을 탔구나!”
“종남 장문인의 제자라는 놈이 나와 어울려서 계집을 찢어 죽이고 있다는 소문이 나면 어떻게 될까?”
석정산의 얼굴이 회칠한 것처럼 창백해졌다.
“그, 그것만은 안 돼!”
“그럼 즐겨. 즐기란 말이야, 석정산!”
“차라리 비밀을 하나 알려 줄 테니 그동안의 정을 생각해서라도 나를 그냥 보내 주시오.”
그 말에 멈칫한 호연유의 눈초리가 치켜 올라갔다.
“비밀? 어디 말해 봐라. 마음에 들면 생각해 보지.”
석정산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섬서의 정파무인들이 오늘 밤늦게부터 변성을 비롯한 외곽을 공격할 거요.”
“그래? 그럼 종남과 화산도 당연히 나서겠군.”
“그렇……소. 이제 나를 보내 주시오.”
호연유의 입가에 방 안의 피비린내보다 더 비릿한 조소가 떠올랐다.
“흐흐흐, 그 정도 정보로는 부족해.”
호연유가 석정산의 목을 잡아채더니 여인을 향해 던졌다.
날아간 석정산의 몸이 피범벅이 된 여인 위로 떨어졌다.
“그 계집의 가슴에서 흐르는 피를 빨아 마셔. 전에 그랬던 것처럼. 그럼 너에 대해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산공독을 풀어 준 후 돌려보내 주마.”
석정산은 부들부들 떨면서 여인을 바라보았다.
온몸이 피로 물든 그녀는 그만큼이나 떨고 있었다. 눈물이 가득한 눈은 공포로 물들어 있고, 잘게 떨리는 입술은 그를 향해 쉴 새 없이 애원하고 있었다.
“살려 줘요, 살려 줘요.”
석정산은 차마 그녀의 눈을 더 보지 못하고 그녀의 가슴으로 입을 가져갔다.
“아, 악마 같은 놈들! 당신들은 사람이 아니야!”
공포가 한계에 달한 여인이 발작하듯이 악을 썼다.
그녀의 가슴을 코앞에 둔 석정산은 고개를 푹 꺾었다.
전에는 여인의 공포에 질린 목소리를 들으면 흥분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역겨움만이 온몸을 뒤덮었다.
“크흐흑, 크흐흐흑. 너는 정말 미친놈이다, 석정산. 어쩌다 이런 꼴이 되었단 말이냐!”
흐느끼듯이 자책하며 고개를 쳐든 그는 호연유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호가야, 차라리 나를 죽여라.”
콰직!
호연유가 발로 석정산의 등을 밟고 광기 가득한 눈으로 소리쳤다.
“왜? 왜 하지 않겠다는 거지? 빨아! 마셔!”
“다시는 안 할 거다! 그냥 죽여라!”
악을 쓰는 석정산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퍽!
호연유가 석정산을 발로 걷어찼다. 공력이 실린 발길질에 석정산의 몸뚱이가 일 장가량 날아가 떨어졌다.
“네놈까지 나를 실망시키다니. 잠령, 귀령!”
천장에서 잠령과 귀령이 소리 없이 내려왔다.
“예, 소존.”
“저 계집은 땅에 파묻어 버리고, 석가 놈은 뇌옥에 처넣어라. 자신들만 깨끗한 척하는 종남 놈들에게 저놈의 실체를 알려 주고 어떻게 나오는지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