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록 2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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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0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정록 215화
215화
금화전을 뒤흔드는 일갈!
호연도광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그의 두 눈에서 괴이하도록 붉은 광채가 번뜩인 것은 바로 그때였다.
‘오냐, 이놈! 네놈이 정녕 내 손에 죽고 싶다면 죽여 주마!’
호연도광은 자신의 몸 안에서 꿈틀거리는 혈천마황기(血天魔皇氣)를 끌어 올렸다.
그가 이십 년의 노력으로 얻은 혈천마황기는 그 자신조차 함부로 끌어 올리기가 겁날 정도로 강력했다.
자칫하면 자신의 정신조차 그 기운에 잡아먹힐지 모를 정도로.
다만 단점이라면 그 기운을 끌어 올리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었다.
그의 몸에서 기이한 마기가 스멀거린 순간, 북궁천이 들고 있던 검을 호연도광에게 던졌다.
“가라!”
벼락이 호연도광을 향해 뻗어 갔다.
호연도광은 검에 가공할 기세가 실려 있음을 느끼고 눈을 치켜떴다.
날아드는 검 주위로 대기가 회오리친다. 검 자체가 살아서 꿈틀거리는 것만 같다.
어디로 피한다 해도 쫓아올 것 같은 느낌!
설마 마제가 전설로 전해지는 이기어검을 익혔단 말인가?
으스러지게 움켜쥔 주먹이 잘게 떨렸다. 핏줄이 툭툭 불거졌다.
그때 천사팔혼 중 육혼이 날아드는 검의 앞을 막아서며 칼을 휘둘렀다.
쩌정! 퍽!
“크억!”
칼을 부순 검은 그의 몸을 꿰뚫은 채 몸뚱이와 함께 호연도광을 향해 날아갔다.
이를 다 드러내며 얼굴을 일그러뜨린 호연도광이 시뻘겋게 변한 우수를 들어서 내쳤다.
쾅!
검에 꿰뚫린 자가 피를 뿜으며 나가떨어졌다.
호연도광도 얼굴이 일그러진 채 주춤거리며 한 걸음 물러났다. 그나마 육혼이 몸을 던져서 막은 덕에 그 이상의 큰 충격은 받지 않은 듯했다.
한편, 공력을 실어서 검을 던진 북궁천은 장추람 등을 향해 소리쳤다.
“아기는 단숙이 구해 갔다! 모두 이곳을 빠져나가!”
적광은 냉호를 도와서 기련검마를, 장추람은 부상을 입은 나종백을 상대하며 접전을 벌이던 중이었다.
철교신은 뒤따라 들어온 경비무사를 몰아붙였고.
천사교도들이 몰려오는 상황. 그들에게 포위되면 빠져나가기가 그만큼 어려워질 터.
장추람 등은 북궁천의 명령이 떨어지자 상대하던 자들을 거세게 몰아붙여서 거리를 벌리고는 전각 밖으로 몸을 날렸다.
“주군, 받으십시오!”
장추람이 몸을 날리며 묵혼을 던졌다.
북궁천은 묵혼을 받자마자 뽑아 들고 소이정을 바라보았다.
“괜찮나?”
어깨와 등이 갈라지고 온몸이 피로 물들긴 했지만, 다행히 중상은 아닌 듯했다.
“씨발, 이 정도로는 죽지 않아!”
고개를 돌린 북궁천은 분노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호연도광을 노려보았다.
호연도광은 천사팔혼 중 셋과 천사교도를 방패로 삼고 언제든 도주할 수 있는 위치에 서 있었다.
왠지 전과 달라진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더 이상 머무를 시간이 없었다.
천사교도들이 몰려오기 전에 빠져나가서 단무영을 돕는 게 우선인 것이다.
“호·연·도·광! 너는 이제부터 내가 다시 돌아오는 것을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바위조차 얼려서 으스러뜨릴 것 같은 목소리.
호연도광의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조금 전의 충격으로 인해서 끌어 올렸던 혈천마황기가 흩어진 그는 나설 생각도 못 한 채 이만 악물었다.
‘정말 말도 안 되게 강한 놈이군!’
기련검마 위지완과 혈왕 나종백 역시 소름이 돋았다.
천하를 오시하던 그들조차 서로의 눈치만 볼 뿐 쉽게 나서지 못했다.
천사팔혼과 갈홍은 자신들조차 가볍게 여길 수 없는 고수였다. 그런 자들이 대항조차 못 해 보고 죽은 것은 충격을 넘어 공포였다.
“뭐 하느냐! 놈을 죽여라!”
호연도광이 으르렁거리며 소리쳤다.
금화전 안으로 들어온 천사교도 십여 명이 북궁천을 향해 달려들었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 자들. 그들은 오직 천사의 세상을 위하여 몸을 던졌다.
그 순간, 북궁천이 소이정의 허리를 잡고는 패왕일보를 펼치며 바닥을 굴렀다.
쿠웅!
금화전이 통째로 흔들리고, 달려들던 자들 대여섯 명이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펄쩍 뛰며 꺼꾸러졌다.
동시에 소이정을 안은 북궁천이 죽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더니, 쓰러진 자들의 위를 날아서 밖으로 사라졌다.
호연도광은 어이가 없었다.
싸움이 벌어지고 마제 일행이 도주하기까지 스물을 세기도 전에 끝나 버렸다.
그 짧은 순간에 아기를 빼앗기고 흑마이령과 천사팔혼 다섯이 죽거나 다쳤다.
평생 한 번도 겪어 본 적이 없는 상황.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 꿈만 같았다.
하지만 그는 바닥을 뒹구는 머리를 보고 눈빛을 새파랗게 번뜩이며 이를 악물었다.
비록 북궁천은 놓쳤지만, 유원당과 임강령이 죽었다는 사실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어떻게 보면 북궁천보다 유원당이 더 중요할지 모른다.
북궁천은 몇 명의 고수가 합공하면 상대할 수 있지만, 유원당을 상대하려면 전체가 하나처럼 뭉쳐야 하는 것이다.
‘그래, 유원당이 죽은 이상 충분히 이길 수 있어…….’
흐트러진 정신을 가다듬은 그는 위지완과 나종백을 향해 말했다.
“놈들은 쉽게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오. 나가서 교도들을 도와주시오!”
* * *
워낙 짧은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 바람에 금화전 근처에 있는 무사들만이 금화전 내부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그중 금화전 안으로 들어간 자가 이십여 명. 밖에 남은 자는 삼십여 명에 불과했다.
먼저 밖으로 나간 삼룡과 적광이 전력을 다해서 공격하며 길을 뚫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절대경지에 오르거나 그에 근접한 고수들이다.
그들의 도검과 창이 뻗어 가고 휘둘러질 때마다 광풍폭우와 같은 기세가 쏟아졌다.
외줄기 폭풍이 들판을 휩쓸고 지나가며 벼이삭을 쓰러뜨리는 듯했다.
단숨에 포위망을 뚫은 그들은 지붕을 타고 빠르게 내달렸다.
삐이이이익!
“침입자가 도망간다! 막아라!”
적의 침입을 알리는 호각 소리와 외침이 금천장을 뒤흔들었다.
금천장은 단숨에 가로지를 수 없을 만큼 넓었고, 수많은 고수들이 있었다.
호각 소리를 들은 자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와 삼룡과 적광 앞을 가로막았다.
개중에는 뒤늦게 가세한 천사교의 장로와 호법도 있었고, 혈문과 마종보의 고수들도 있었다.
담장을 삼십여 장 앞두고 앞이 가로막힌 장추람 등은 전력을 다해서 탈출로를 뚫었다.
장추람과 적광은 별다른 부상이 없었다.
그러나 냉호는 기련검마와 싸우며 내상을 입은 상태고, 철교신은 등에 상처를 입었는지 피가 청의를 검게 변색시키며 흐르고 있었다.
“조금만 더 힘을 내!”
장추람이 소리쳤다.
냉호가 받아치며 도를 맹렬하게 휘둘렀다.
“걱정 말고 빠져나가!”
“얼마든지 덤벼라, 씨발놈들아!”
피까지 본 철교신은 미친 듯이 창을 휘두르며 욕을 퍼부었다.
광풍 같은 기세!
그 기세가 얼마나 살벌한지 내로라하는 고수들조차 가까이 접근하지 못했다.
바로 그때, 북궁천이 장추람 등을 따라잡았다.
“받아라, 교신!”
북궁천은 소이정을 철교신에게 넘기고 앞으로 나섰다.
“내가 앞장설 테니 따라와!”
뒤늦게 북궁천을 알아본 자들이 대경해서 소리쳤다.
“헉! 마, 마제다!”
“제기랄!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막는 자는 죽는다!”
북궁천이 일갈을 내지르고는 앞으로 튀어나갔다.
묵혼에서 뻗어 나간 검강이 대여섯 명을 한꺼번에 휩쓸었다.
“피해!”
공포에 질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콰과과광!
공력이 약한 자는 마른 보릿대처럼 잘려서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으아악!”
“크어억!”
“허억!”
절정경지에 오른 고수들조차 거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맙소사!”
“저게 인간의 능력이란 말인가?”
나름대로 강호에서 한가락 한다는 자들조차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비켜라! 우리가 놈을 상대하겠다!”
장로와 호법을 비롯한 고수 넷이 몸을 날리며 북궁천을 공격했다.
북궁천은 멈추지 않고 묵혼을 뻗으며 건곤패력장을 내쳤다.
쩌저저적! 콰과광!
광풍이 불고 벼락이 떨어졌다.
정면으로 그를 막아섰던 장로 둘은 얼굴이 해쓱해진 채 튕겨 나가서 지붕 아래로 내려섰다.
측면에서 달려들던 자들은 장추람과 적풍에 의해서 막혔다.
북궁천은 재차 몸을 날리며 묵혼을 뻗었다.
고오오오오!
숨통을 틀어막는 가공할 기세가 해일처럼 밀려갔다.
쾅!
패왕일보를 내딛자 지붕이 통째로 무너질 것처럼 들썩이고 기와가 폭발하듯이 터져 나갔다.
콰과과과과!
부서진 기와는 그것 자체로 위협적이었다.
마치 수천 개의 암기가 쏘아진 듯했다.
지붕에 올라와 있던 자들은 파랗게 질린 얼굴로 정신없이 몸을 날려 피했다.
북궁천은 승천무풍행을 펼치며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이놈! 어딜 가려고 하느냐!”
앞쪽에서 한 사람이 날아들었다.
그를 본 북궁천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날아든 자는 방철산이었다.
“비켜!”
묵혼이 수직으로 허공을 그었다.
쭉 뻗어 나간 검강 한 줄기가 하늘에서 벼락처럼 내리꽂혔다.
나름대로 무공에 자신을 가졌던 방철산의 회색 눈이 경악으로 물결쳤다.
그는 도에 전 공력을 쏟아붓고 북궁천의 뇌정무적세를 막았다.
콰아앙!
굉음이 터져 나오며 이 층 건물의 지붕이 와르르 무너졌다.
삼 장이나 튕겨 나간 방철산은 건너편 지붕 위에 내려서서 기와를 깨며 주르륵 밀려났다.
반면 북궁천은 허공에서 두어 바퀴 돌은 후 지붕에 내려서자마자 다시 허공으로 솟구쳤다.
겨우 중심을 잡은 방철산은 다시 달려들 생각도 못 한 채 도를 쥐고 노려보기만 했다.
천하의 회안마존 눈빛이 잘게 떨렸다.
‘뭐 이런 놈이……!’
마제에 대해서 숱하게 들었다. 그런데 직접 부딪쳐 본 마제는 사람 새끼가 아니었다.
그에게는 북궁천에게 시간이 없다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북궁천은 방철산이 공격을 포기하자 삼 장 떨어진 곳을 스쳐서 그대로 지나갔다.
이제 담장이 칠팔 장밖에 남지 않은 상태.
북궁천 일행의 앞을 막을 만한 고수도 없었다.
지붕을 박찬 그들은 곧장 담장 위를 날아서 넘어갔다.
한편, 금화전에 남은 숙야돈은 바닥에 떨어진 유원당과 임강령의 머리를 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유원당과 임강령의 머리가 싸움의 여파로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그런데 임강령의 머리 목 끝 부분의 가죽이 살짝 벗겨져 있었다.
사람의 가죽이 뒹굴었다고 벗겨질 리는 없는 일.
‘서, 설마……?’
숙야돈의 안색이 창백하다 못해 파리해졌다.
자신이 확인했다. 정말 가짜라면 목숨을 내놓아도 모자랄 만큼 큰 실수였다.
숨을 멈춘 그는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두 정신이 없었다. 교주도 생각에 잠겨서 잠깐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그는 발걸음을 옮겨서 머리가 떨어진 곳으로 갔다. 발이 바닥에 붙은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달달 떨려서 중풍이라도 걸린 듯했다.
겨우 머리가 있는 곳에 도착한 그는 허리를 숙이고 손끝을 파르르 떨며 머리를 돌려 보았다.
비록 손톱만큼이긴 하나 목 부위의 벗겨진 면이 확실하게 보였다.
가죽 안쪽으로 드러나는 또 다른 살.
머리는 가짜가 분명했다.
인피면구를 쓴 가짜.
그렇다면 유원당의 머리도 가짜일 확률이 높다는 뜻.
온몸이 후들후들 떨렸다.
‘그 개새끼가……!’
그때 호연도광이 눈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숙야돈.”
‘헉!’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눈앞이 하얗게 보였다.
안간힘을 다해 정신을 차린 그가 겨우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경련을 하듯이 떨려 나왔다.
“예…… 교주.”
“놈들 머리를 장대에 꽂아서 정문에 매달아 놓아라.”
“아, 알겠사옵니다.”
혼신의 힘을 다해서 대답한 그는 탁자 위의 보따리를 집어서 바닥에 놓고 남들이 보지 못하도록 몸으로 가린 채 머리를 쌌다.
‘빌어먹을! 정말 미치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