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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록 208화

무료소설 마정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7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정록 208화

 

208화

 

 

 

 

 

 

 

주서광이 변명하려 했지만 숙야돈은 시간을 주지 않았다.

 

“두 번째는 그걸 알고도 고의로 숨긴 것은 아닌지에 대해 조사하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외부와의 거래에 대한 소문이 사실인지 알아보라 하셨습니다.”

 

주서광은 입을 꾹 다물고 숙야돈을 노려보았다.

 

작정하고 온 놈이다.

 

백 마디 말로 변명한들 한 마디도 귀에 담지 않을 것이다.

 

숙야돈도 주서광의 마음을 눈치채고 비릿한 조소를 지었다.

 

“저야 총령을 믿지만 명령이 떨어진 이상 어쩌겠습니까?”

 

교주의 명이 떨어졌다면 거부할 수 없다.

 

거부하는 순간 교주에 대한 반역죄가 되니까.

 

“이곳에서 조사하면 되지 않겠나? 굳이 교화전까지 갈 필요가 있는가?”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만, 교주님의 명령으로 정식 조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제 맘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형식적으로라도 절차는 따라야 하니 이해해 주시지요. 설마 별일이야 있겠습니까?”

 

자신에게 악의가 있다면 많은 무사들을 동원했을 것이다. 하다못해 밖에 몰래 배치하든가.

 

그런데 숙야돈이 대동한 호위무사는 둘뿐. 밖에 배치한 무사도 없다.

 

하긴 소이정이 잘못을 저질렀다지만 그 일로 총령인 자신을 어떻게 할 수 있으랴?

 

끽해야 근신 정도겠지.

 

세 번째 내용이 마음에 걸리긴 하나, 그 역시 방철산이 고자질한 것일 터. 그에 대해선 자신도 할 말이 있다.

 

그렇게 판단한 주서광은 일단 숙야돈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사정이 그렇다면 할 수 없지. 가세.”

 

 

 

교화전에선 두 가지 일을 했다.

 

하나는 천사교에 반하는 자를 세뇌시켜서 천사교도로 만드는 것.

 

또 하나는 천사교의 교리를 어긴 중죄인에 대해 조사하는 것.

 

주서광은 자신이 교화전에서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게 짜증났지만 교주의 명령인 만큼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가자 무표정한 천사교도 서너 명이 허리를 굽혔다.

 

주서광은 슬쩍 고개만 끄덕이고 숙야돈을 따라갔다.

 

숙야돈은 조사실이 있는 지하로 그를 안내했다.

 

“아무래도 수하들이 들으면 좋지 않은 소문이 퍼질지 모르니 불편하셔도 지하로 가시지요.”

 

주서광도 반대하지 않았다. 자신에 대한 말이 외부로 새어 나가는 것은 그도 바라지 않으니까.

 

지하의 조사실로 들어가자 숙야돈이 호위무사를 시켜서 차를 가져오게 했다.

 

“차 한 잔 하시면서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지요.”

 

주서광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풀어졌다.

 

죄인에게 차는 언감생심. 말투도 형식적인 조사를 하겠다는 투처럼 들렸다.

 

“알겠네.”

 

담담히 말한 주서광이 차를 반쯤 비웠을 때 숙야돈이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를 드시고 계십시오. 증거물로 제출된 서류를 가져오겠습니다. 그걸 보시고 몇 가지 물을 것이니 총령의 생각을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지.”

 

숙야돈이 나가자 주서광은 차를 마시며 생각에 잠겼다.

 

‘보나 마나 방철산이 서류를 교주께 보여 드리고 나를 모함했겠지. 두고 봐라, 이 늙은이.’

 

자신에게도 방철산이 지닌 서류에 뒤지지 않는 증거물이 있다.

 

숙야돈에게 그것을 보여 주고 교주께 전하게 하면 방철산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자신보다 더 많은 사욕을 챙겼으니까.

 

‘흥, 감찰을 핑계로 몰래 계집질까지 한 늙은이가 어디서 감히!’

 

허락되지 않은 여인과의 교접은 교리에 어긋난다.

 

그걸 생각하면 방철산은 자신보다 훨씬 심각한 죄를 지은 셈이었다.

 

그가 반격할 생각을 하며 조소를 짓고 있는데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숙야돈이 돌아오는 듯했다.

 

그 직후, 강한 쇳소리가 들렸다.

 

덜컹!

 

지하로 내려오는 입구의 철문이 닫히는 소리 같았다.

 

‘음?’

 

이상한 느낌이 든 그는 거의 다 비운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때였다.

 

“차는 잘 들었나? 마지막 차가 될지 모르는데 한 잔 더 하고 싶으면 말하게.”

 

순간, 주서광이 벌떡 일어나서 수염이 휘날릴 정도로 홱 돌아섰다.

 

방철산이 호법 두 사람과 함께 조사실 입구에 서 있었다.

 

짙은 조소를 지은 채.

 

“원주께서 왜 여기에……?”

 

“자네에 대한 조사는 내가 맡기로 했지.”

 

“그게 무슨……?”

 

막 반문하려던 주서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갑자기 배 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피어났다.

 

그는 한때 천하제일을 논하던 자객. 그 기운이 어떤 종류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배를 움켜쥔 주서광은 일그러진 눈으로 방철산을 노려보았다.

 

“네, 네놈이 설마……?”

 

방철산의 입가에 살소가 번졌다.

 

“차에 아주 귀한 재료를 넣었지. 자네 같은 전문가를 속이려면 어지간한 독으로는 안 될 것 같아서 말이야. 후후후후.”

 

“이 빌어먹을 늙은이가!”

 

“흥, 주서광. 오늘이 네놈의 마지막 날이니라. 마지막 가는 길에 차라도 준 것을 고맙게 여겨라.”

 

 

 

 

 

 

 

4장. 여명산을 넘어서

 

 

 

 

 

임표는 호양곽의 안내를 받아서 만화물상점을 찾아갔다.

 

고문으로 인해 한쪽 발을 쓰지 못하는 지송문도 담운의 등에 업혀서 함께 갔다.

 

임표가 남아서 쉬라고 했지만 지송문이 함께 가겠다고 우겨서 따라간 것이다.

 

진 노인은 임표가 내민 인피면구를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 인피면구의 얼굴을 바꿔 달라고?”

 

“그렇소.”

 

진 노인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인피면구의 본모습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소.”

 

“쉽지 않을 뿐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만.”

 

“그야 그렇지요. 하지만 많은 시간이 필요하오. 그리고 인피면구를 만들 줄 아는 전문가만이 손을 댈 수 있소이다.”

 

“그자는 어디에 있소? 장소만 알려 주면 우리가 데려오겠소.”

 

“글쎄, 항상 돌아다니는 사람인지라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소.”

 

그때 목발을 짚고 있던 지송문이 진 노인의 손을 노려보며 말했다.

 

“어쩌면 생각보다 쉽게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담운이 지송문을 돌아다보았다.

 

“무슨 뜻이냐?”

 

“저 노인장의 손. 저 손은 보통 손이 아닙니다, 형님. 아주 미세한 감각을 다루는 자만이 저런 손을 지니고 있지요. 그리고 이렇게 뛰어난 품질의 인피면구는 쉽게 유통되는 것이 아닙니다.”

 

“네 말은……?”

 

“그렇습니다. 제가 봐선 저 노인장이 인피면구를 만든 것 같습니다.”

 

지송문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진 노인을 직시했다.

 

진 노인은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지송문의 말을 부정했다.

 

“허허허, 이 늙은이가 무슨 재주로 이런 인피면구를 만든단 말이오?”

 

그러자 지송문이 손을 들어서 한쪽 벽을 가리켰다. 벽에는 얼굴만 새겨진 목상 다섯 개가 세워져 있었다.

 

“저기에 있는 목상, 노인장이 새긴 것 아니오?”

 

“그거야 그렇소만…….”

 

“목상에 뭔가를 접착했던 흔적이 있는데, 혹시 인피면구를 붙여 봤던 것 아니오?”

 

순간, 노인의 주름진 눈꺼풀이 출렁였다.

 

“그건…… 이 늙은이는 들어온 인피면구가 괜찮은 것인지 시험해 보려고 그랬을 뿐이오.”

 

“인피면구를 누가 가져왔소? 설마 그런 물건을 누가 가져왔는지도 모르진 않겠지요?”

 

“알긴 아오만, 함부로 이름을 알려 줄 순 없소.”

 

“우리는 마음이 매우 급한 사람들이오. 주군의 명령을 이행하지 못하면 목숨을 내놓아야 하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소? 만약 노인장이 거짓말을 한다면, 나는 노인장의 손목을 자를 것이오.”

 

지송문이 냉랭히 몰아붙이자, 진 노인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 늙은이의 손목을 어디다 쓴다고…….”

 

“그러니 사실대로 말하시오. 저 인피면구, 노인장이 만들지 않았소?”

 

진 노인은 좌우를 둘러보았다.

 

그에게는 만약의 상황에 대비한 대비책이 있었다. 그러나 앞에 있는 자들은 그런 정도의 대비책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진짜 고수들이었다.

 

“으음, 좋소. 사실대로 말하리다. 저 인피면구를 전부 내가 만든 것은 아니오. 내가 만든 것은 그중 세 개뿐이외다.”

 

중요한 것은 개수가 아니었다.

 

“그럼 노인장이 형태를 바꿀 수도 있겠군.”

 

“원한다면 한번 해 보겠소. 그런데 어떤 얼굴로 바꾸려고 그러는 거요?”

 

임표가 두 장의 종이를 내밀었다.

 

종이에는 두 사람의 얼굴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었다.

 

지송문이 진 노인의 반대쪽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최대한 비슷하게 바꿔 보시오. 모자란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도울 테니까.”

 

 

 

* * *

 

 

 

정파연합은 사 로로 나누어져서 이동했다.

 

유원당이 천무회와 강호 군웅을 이끌고 일로를, 

 

제갈상이 무림맹과 이로를, 

 

위효릉이 삼성궁과 삼로를, 

 

공손후가 철군성과 백검맹을 이끌고 사로를 책임졌다.

 

그들은 가로로 넓게 퍼져서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이동했다. 

 

사 로로 이동하기에 서로 간의 간격이 너무 벌어지거나 속도에서 지나친 차이가 나면 자칫 천사교의 공격에 당할지 몰랐다.

 

그 덕에 북궁천 일행은 여유 있게 따라갈 수 있었다.

 

 

 

그렇게 자시가 될 무렵. 금천장에서도 일천이 넘는 무사가 쏟아져 나왔다.

 

정파연합의 움직임을 시시각각 전해 받은 숙야돈은 그들을 금천장으로부터 이십여 리 떨어진 여명산 산줄기에 배치시켰다.

 

동서로 길게 뻗은 여명산의 몇 군데 고개는 금천장으로 통하는 요충지였다. 수십 리를 우회할 생각이 아니라면 정파연합은 그곳을 통과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면 험악한 여명산을 직접적으로 넘어오든가.

 

그들이 천사교를 얕보고 그물 안으로 들어오기만 한다면, 먼저 독이 묻은 화살과 암기로 막대한 피해를 입힐 수 있었다.

 

반면 위험을 알아채고 멈춘다면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고.

 

 

 

천사교의 움직임이 일각 단위로 유원당에게 전해졌다.

 

유원당은 전진 속도를 늦추고 적의 움직임에 대해서 보다 정확한 정보를 취합했다.

 

상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들. 밤에 싸우는 것은 이겨도 피해가 컸다.

 

서둘러서 싸울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삼성궁이 주력인 삼로가 다른 곳보다 좀 더 앞서 나갔다.

 

삼성궁 무사들이 구양환의 죽음에 분노해서 감정이 앞선 면도 없지 않았지만, 그보다는 위효릉의 욕심이 컸다.

 

그는 자신이 유원당에게 뒤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알량한 작전으로 몇 번 승리했다고 해서 기고만장한 유원당이 싫었다.

 

그래서 이 기회에 자신이 유원당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만인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병법을 배워도 너보다 많이 배운 나다. 소심한 그런 작전으로는 천사교를 무너뜨릴 수 없어. 흥! 이번에야말로 진짜 병법이 어떤 것인지 보여 주마!’

 

천사교는 영서의 싸움에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그런데 이 좋은 상황에서 미적거리다니!

 

승리의 기회를 잡았을 때는 단숨에 쳐들어가서 정신 차리지 못하게 몰아붙여야 하거늘!

 

그는 정탐을 나갔던 잠은각 대원이 돌아오자, 천군호와 선우명을 비롯한 삼성궁 수뇌부에 자신의 생각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지금은 머뭇거리며 눈치 볼 때가 아닙니다. 최소한 적진의 일각을 무너뜨려 놓아야 앞으로의 싸움이 편해질 겁니다.”

 

삼성궁 수뇌부 대부분은 안 그래도 돌아가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군웅들이 왠지 삼성궁을 터부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특히 선우명은 어떤 식으로든 자존심을 만회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건가?”

 

“좀 전에 돌아온 잠은각 대원의 보고에 의하면 우리 앞쪽에 있는 적의 숫자는 삼사백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그들이 두려워서 머뭇거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정말인가?”

 

“그렇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처럼 좋은 기회를 그냥 보내면 언제 적을 물리칠 수 있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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