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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록 204화

무료소설 마정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7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정록 204화

 

204화

 

 

 

 

 

 

 

쩌정!

 

귀청을 찢는 굉음!

 

강력한 검력에 막혀서 시도형의 몸이 한쪽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북궁천은 시도형을 밀어낸 것에서 멈추지 않고,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디며 재차 검을 떨쳤다.

 

시도형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물러서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눈앞을 가득 메운 거대한 검영!

 

오금이 저려서 몸이 굳어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으아아!”

 

그는 악을 쓰듯이 외치며 혼신의 힘을 다해 도를 휘둘렀다.

 

시퍼런 강기가 도신에서 어른거리며 그물처럼 펼쳐졌다.

 

그 순간, 시커먼 벼락이 그물을 가르고 그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콰과광!

 

“크어억!”

 

거센 충격을 이기지 못한 시도형의 몸뚱이가 뒤로 튕겨지더니 떼굴떼굴 굴렀다.

 

네 바퀴나 구른 후 겨우 멈춘 그는 두 손으로 땅을 짚고 고개를 쳐들었다.

 

공포에 질린 눈빛. 온몸이 떨렸다.

 

“그, 그대는 누구……?”

 

북궁천은 더 공격하지 않고 묵혼을 거두어 들였다.

 

두 사람은 한동안 골방 신세를 져야 할 터. 어차피 죽일 수 없다면 더 손을 쓸 필요도 없었다.

 

“북궁천.”

 

“마, 마제?”

 

대경한 시도형이 입에서 피를 뿜으며 푸들푸들 웃었다.

 

“크, 크, 크. 과, 과연 대단…….”

 

“운 좋은 줄 알아. 내 아들만 아니었으면 지금쯤 지옥으로 달려가고 있었을 거다.”

 

혈의쌍사는 천사교에서 초청한 자다.

 

죽이면 호연도광이 또 무슨 대가를 요구할지 모르는 일. 진아가 그에게 있는 이상 손해나는 일은 최대한 자제해야 했다.

 

‘저런 자들이 얼마나 몰려올지 모르겠군.’

 

북궁천은 몸을 돌려서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번에는 조팽도 말리지 못했다.

 

말릴 수도 없었고.

 

공포에 질려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으니까.

 

‘지, 지미. 마누라가 때려죽인다 해도 내일은 그만둬야겠어.’

 

마누라는 그가 공돈이 생기는 정문위사 자리에 있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더 있다가는 며칠 못 살 것 같았다.

 

그때였다.

 

“멈춰라!”

 

북궁천이 걸어가는 앞에서 대여섯 명이 빠르게 달려오더니 성난 표정으로 길을 막았다.

 

그들 중 수염이 텁수룩한 자가 눈을 치켜뜨고 다그치듯이 물었다.

 

“누군데 감히 이곳에서 싸우는 것이냐?”

 

북궁천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소란이 벌어진다 해도 그에게는 나쁠 것이 없었다. 그 핑계를 대고 몇 놈 더 두들겨 패면 답답하던 기분이 조금은 풀어질 것 같았다.

 

“교주를 만나러 왔다. 안내해.”

 

정문이 있는 동쪽 경비 책임자, 법당주 만가기는 북궁천의 거만한 말투에 눈살을 찌푸렸다.

 

“대답하지 않으면 통과시킬 수 없다.”

 

“그래? 그럼 내가 알아서 찾아가지.”

 

만가기는 상대의 태도에 어이가 없었다.

 

감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뭐 이런 미친놈이……!”

 

그가 옆구리의 칼을 움켜쥐자, 조팽이 다급히 소리쳤다.

 

“비켜요, 당주! 북천마제입니다!”

 

만가기는 발에 뭐라도 묻은 것처럼 후다닥 두어 걸음 물러섰다.

 

북궁천은 여전히 똑같은 보폭으로 걸음을 옮겼고.

 

“안내하기 싫으면 비켜서.”

 

 

 

* * *

 

 

 

결국 만가기가 금화전까지 안내했다.

 

그 덕에 금화전까지 가는 동안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았다.

 

수염이 텁수룩한 만가기는 가끔 힐끔거려서 마제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조까, 하마터면 죽을 뻔했네. 성질이 더러워서 여차하면 목을 따 버린다고 하던데.’

 

조금 전 일만 생각하면 가슴이 벌렁거렸다.

 

나중에서야 쓰러져 있는 두 사람이 혈의쌍사라는 걸 알고 얼마나 놀랐던가.

 

아마 조팽이 조금만 늦게 소리쳤으면 목이 떨어졌을지도 몰랐다.

 

‘그 새끼, 다음 달에도 정문을 맡겨야겠군.’

 

 

 

금화전을 경비하고 있던 자들은 찾아온 손님이 마제라는 걸 알고 즉시 안에 기별을 넣었다.

 

“천사의 지존이시여! 마제 북궁천이 찾아왔습니다.”

 

호연도광은 호탕한 목소리로 출입을 허락했다.

 

“들여보내라.”

 

곧 커다란 전각문이 열렸다.

 

북궁천이 걸음을 옮기려는데 호위무사가 손을 내밀었다.

 

“무기는 이곳에 맡겨 놓으시오.”

 

순순히 검을 풀어 준 북궁천은 뒷짐 진 오만한 자세로 걸음을 옮겨서 안으로 들어갔다.

 

드넓은 금화전 안으로 들어가자 호연도광이 정면에 보였다.

 

그의 앞 좌측에는 작은 체구에 뾰족한 도관을 쓴 숙야돈이 서 있었고, 우측에선 처음 보는 중노인이 비스듬히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에 봤던 두 흑의중년인은 호연도광의 좌우에, 천사팔혼은 양옆 벽 쪽에 석상처럼 시립해서 들어서는 북궁천을 노려보았다.

 

북궁천은 턱을 치켜들고 당당하게 걸어갔다.

 

어느 누구도 그의 행동에 토를 달지 못했다.

 

호연도광의 전면, 삼 장 떨어진 곳에 도착했을 때 호연도광이 손을 들었다.

 

“거기까지. 네 손은 너무 사납거든?”

 

순순히 걸음을 멈춘 북궁천은 좌우를 둘러보았다.

 

먼저 중노인과 눈이 마주쳤다.

 

반백의 머리, 감정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표정. 나이는 쉰이 넘은 것 같은데, 가늘면서도 긴 눈에선 칼날처럼 날카로우면서도 강한 힘이 느껴졌다.

 

‘누군지 몰라도 대단한 기운을 갈무리하고 있는 자군.’

 

뒤이어 숙야돈과 눈이 마주쳤다.

 

숙야돈의 표정이 묘하게 이지러졌다.

 

혹시라도 북궁천이 북혈회에 대해서 말하기라도 한다면 곤란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북궁천이 먼저 전음을 보냈다.

 

<나중에 이야기 좀 하지?>

 

숙야돈은 가슴이 뜨끔했다.

 

북궁천이 놀리고 있다는 걸 그가 왜 모를까?

 

<알았으니 교주님 앞에서 엉뚱한 소리 하지 말게.>

 

<걱정 마. 나도 사교령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으니까.>

 

숙야돈으로선 다행히 아닐 수 없었다. 그런 한편으로는 북궁천에게 속았다는 생각이 들자 입맛이 썼다.

 

‘빌어먹을 놈.’

 

그사이 북궁천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서 호연도광의 좌우에 서 있는 흑의중년인들을 바라보았다.

 

“저들의 능력으로는 나를 막기 힘들 텐데, 아직 마땅한 사람을 구하지 못했나 보군.”

 

흑의중년인의 석상 같은 표정에 금이 갔다. 하지만 북궁천의 강함을 몸으로 겪어 본 그들은 감정을 드러내지 못했다.

 

호연도광은 북궁천의 말에 웃음을 지었다.

 

“후후후, 흑마이령이 모자란 게 아니라 네가 특별한 거다. 너만 아니라면 누구든 이들의 합공을 벗어나기 힘들 거야.”

 

“나를 높게 쳐줘서 고맙군.”

 

“본좌는 사실을 말한 것뿐이야. 그건 그렇고, 무슨 일로 찾아왔느냐?”

 

“진아를 잠깐 보고 싶어서.”

 

호연도광의 입가에 떠오른 웃음이 짙어졌다.

 

“미안하지만 아직은 안 된다. 너는 약속을 아직 지키지 않았잖느냐?”

 

“삼성궁의 궁주 구양환과 절검당주 안추승을 죽였으면 얼굴 정도는 봐도 되지 않을까?”

 

그 말을 듣고도 호연도광은 놀라지 않았다.

 

“그러잖아도 조금 전에 보고를 받았다. 누가 죽였나 했더니 너였군. 적진 중앙에 들어가서 구양환을 죽이다니. 정말 대단해.”

 

숙야돈이 보고를 올린 듯했다.

 

“들었다니 말하기가 쉽군. 나는 절대 진아를 뺏기 위해서 공격하지 않을 거다. 어차피 상의해야 할 이야기도 남았으니까.”

 

“흠, 그래?”

 

호연도광은 턱을 쓰다듬었다. 머리에 쓴 황금빛 도관에 달린 구슬이 출렁거리며 휘황한 빛이 파도쳤다.

 

그렇게 다섯을 셀 시간이 흘렀을 때 호연도광이 왼손을 들었다.

 

“종척. 가서 아기를 데려와라.”

 

왼쪽에 서 있던 흑의중년인이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몸을 돌려서 뒷문으로 나갔다.

 

그제야 북궁천의 눈이 중노인을 향했다.

 

“처음 보는 분 같은데, 누구신지?”

 

중노인은 분노가 깃든 눈빛으로 북궁천을 노려보았다.

 

“노부는 위지 성에 완이라는 이름을 쓰느니라.”

 

북궁천의 두 눈에서 가벼운 놀람의 빛이 번뜩였다.

 

기련검마(祁連劍魔) 위지완. 기련산의 제왕이라는 그가 천사교에 와있을 줄이야.

 

“놀랍군. 귀하가 이곳에 있다니.”

 

“듣자하니 네가 진원보에서 내 사제를 죽였다고 들었다.”

 

“귀하의 사제? 내 손에 죽은 사람이 워낙 많아서 누군지 모르겠군.”

 

위지완의 눈빛이 살모사처럼 차가워졌다.

 

“나등위를 모른단 말이냐?”

 

“글쎄, 그런 이름은 모른다니까?”

 

“이 건방진 놈이……!”

 

“건방지다? 기련산에서 이름 좀 얻으니까 나 같은 사람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모양이지?”

 

“네놈이 감히!”

 

인내심이 한계에 달한 위지완이 눈을 치켜뜨며 주욱 앞으로 나섰다.

 

북궁천이 바라던 바였다. 위지완의 감정을 고의로 건드린 것도 그러길 바랐기 때문.

 

“얼마든지 덤벼 봐!”

 

일순간!

 

두 사람이 동시에 손을 뻗고, 일 장 공간에서 강력한 진기의 폭풍이 일었다.

 

쿠구구궁.

 

금화전을 뒤흔드는 둔중한 굉음과 함께 위지완이 뒤로 밀려났다.

 

북궁천도 밀려나긴 했지만 위지완에 비하면 절반의 거리밖에 안 되었다.

 

자존심이 상한 위지완이 검병을 잡았다.

 

“오냐, 이놈! 내 오늘 네놈의 건방진 코를 잘라 주마!”

 

그때 호연도광이 손을 들어서 위지완을 말렸다.

 

“아아, 위지 형. 참으시오. 그 친구는 지금 자식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오.”

 

위지완은 분노의 불길을 토해 내면서도 검을 뽑지 못했다.

 

그로선 호연도광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호연도광이 말려 준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고.

 

북천을 피로 쓸어버린 마의 제왕. 북천마제에 대한 소문은 허언이 아니었다. 호연도광이 말리지 않았다면 창피한 꼴을 당했을지 몰랐다.

 

‘빌어먹을. 어린놈이 이렇게 강하다니.’

 

이를 으드득 간 그는 검병을 놓고 짐짓 참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뒤로 물러났다.

 

“교주의 앞이라 오늘은 참는다만, 다음에 만나면 네놈의 목을 쳐서 사제의 복수를 하고 말겠다.”

 

북궁천은 나중보다 지금 싸우는 게 나았다.

 

“그럴 것 없이 지금 결정을 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하지만 그의 의도는 또다시 호연도광에 의해 막혔다.

 

“싸우겠다면 말리지 않으마. 대신 아기는 볼 생각 마라. 그래도 좋다면 마음대로 해.”

 

북궁천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담담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리며 투덜거렸다.

 

“아기가 늦게 나오니까 이런 일이 벌어지지. 근데 왜 이렇게 안 와?”

 

 

 

잠시 후.

 

종척이라 불린 흑의중년인이 아기를 안고 와서 호연도광에게 건넸다.

 

“하부지…….”

 

까르르르르.

 

아기가 호연도광의 수염을 만지며 해맑게 웃었다.

 

북궁천은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기분 속에서도 아기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저절로 떠올랐다.

 

<진아야, 내가 네 아빠란다.>

 

그가 보낸 전음에 아기가 힐끔 고개를 돌려서 두리번거렸다.

 

<이 아빠의 이름은 북궁천, 엄마의 이름은 헌원려려, 네 이름은 북궁진이란다.>

 

두리번거리던 아기가 눈을 깜박이며 말했다.

 

“아빠아아 북구처언? 음마아아아 허언려어어? 부구지이인?”

 

진아가 말을 한다. 자신의 이름을 부른다.

 

북궁천은 진아의 목소리를 듣고 눈가장자리가 찡하니 울렸다.

 

<그래, 아빠가 북궁천이다. 엄마가 헌원려려고. 그리고 네 이름이 북궁진이다!>

 

전음을 보내는 그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말을 할 때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런데 호연도광이 기이한 미소를 짓더니 공력을 끌어 올려서 음파를 차단해 버렸다.

 

그때 두리번거리던 아기가 북궁천을 빤히 바라보며 입을 달싹거렸다.

 

―북구처언? 허언려어어?

 

분명 말하는 것 같은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북궁천은 호연도광이 음파를 차단했다는 걸 알고 눈을 부릅떴다.

 

“무슨 짓이냐?”

 

“그 정도면 되지 않았나? 감정이 격해져 봐야 좋을 것 없을 텐데?”

 

북궁천은 처음으로 그에게 사정했다.

 

“잠시만, 잠시만 이야기를 하게 해다오.”

 

호연도광의 입가에 떠오른 기이한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눈은 조금도 웃고 있지 않았지만. 

 

“나중에 또 다른 소식을 가져오면, 그때는 더 많은 시간을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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