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록 20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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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5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정록 200화
200화
“주, 주군…….”
“아무 소리 하지 마.”
북궁천은 지송문의 말을 막고 안추승의 꺾어진 손에서 몽둥이를 빼내고 옷자락을 길게 찢었다.
그리고 지송문의 다리에 덧댄 다음 옷자락으로 싸매서 덜렁거리는 다리를 고정시켰다.
지송문은 그동안 극렬한 고통을 참기 위해서 이를 악물었다.
간단하게 다리를 손본 북궁천은 지송문의 손을 잡아매고 있는 쇠사슬을 잡아당겨서 끊었다.
그리고 앞으로 쓰러지는 지송문을 어깨에 멨다.
“주군, 죄송…….”
“네가 미안할 것 없다. 오히려 내가 미안하지. 가자.”
나직이 뇌까린 북궁천은 지송문을 어깨에 메고 뇌옥을 나섰다.
그러고는 지하를 나선 후 지붕과 들보 사이의 창을 통해서 뇌옥을 빠져나갔다.
뇌옥을 나오자마자 담장을 넘어간 북궁천은 숲 속으로 들어갔다.
임표와 활을 든 담운이 초조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다가 급히 달려왔다.
북궁천은 임표에게 지송문을 넘겨주었다.
“즉시 상주로 데려가서 치료부터 시켜.”
“예, 주군.”
임표와 담운이 지송문을 업고 자리를 떠난 뒤, 북궁천은 담운에게 건네받은 활을 어깨에 메고 근처의 나무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우영산장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고맙다, 구양환. 마음의 부담을 덜어 줘서.’
진아를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그라 해도 마음의 부담이 없을 순 없었다.
그런데 지송문의 처참한 모습을 보자 그 부담이 반은 덜어졌다.
* * *
자신의 거처에 있던 구양환은 잠이 오지 않았다.
불안해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놈이 온다면 제일 먼저 나를 목표로 삼을지 모른다.’
아기를 빼앗긴 것이 자신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북궁천의 무서움을 누구보다 잘 아는 구양환은 천하의 북천마제가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초조감이 극에 달했다.
또한 마음이 한번 흔들리자 모든 것이 의심스럽게 보였다.
오가는 경비무사조차 의심스러웠고, 화톳불이 흔들리기만 해도 신경이 쓰였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밖으로 나간 그는 호위를 맡은 검신대 인원을 두 배로 늘렸다.
그러고도 안심이 되지 않아서 수룡위사대원을 동원해 호위벽을 이중으로 쌓았다.
“누구든 내 방으로 접근하는 사람은 철저하게 신분을 파악하도록 해라.”
“예, 궁주.”
신경질적으로 지시를 내린 구양환은 물 샐 틈 없는 경비를 확인한 후에야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갔다.
“흥, 어디 올 테면 와 봐라, 이놈. 내가 네놈 따위에게 당할 것 같으냐?”
짐짓 코웃음을 치며 자신을 다독인 그는 침상으로 다가갔다.
그 때 등잔불빛이 흔들렸다. 창문이 열려서 바람이라도 들어온 것처럼.
이마를 찌푸린 그는 창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순간!
그는 심장이 멈출 것처럼 놀라서 입을 반쯤 벌렸다.
이 장 떨어진 곳. 창가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향해 활을 겨누고 있었다.
그리고 그 활 너머에는 처음 보는 얼굴이 있었다.
그는 반사적으로 몸을 틀며 조준점에서 비켜서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한 발 먼저 화살이 시위를 떠났다.
퉁!
피할 틈도 없었다.
시위를 떠난 화살은 단순한 화살이 아니라 벼락이었다.
속도는 구양환이 예측한 것보다 세 배는 빨랐고, 그 위력은 그가 알고 있는 어떤 화살보다 강력했다.
퍽!
“헉!”
구양환의 가슴을 관통한 화살은 구양환의 뒤에 있던 아름드리 기둥마저 뚫고 반대편으로 삐죽 튀어나왔다.
구양환은 움찔하며 몸을 짧게 떨었다.
처음에는 바람이 가슴을 관통하면 지나간 듯했다. 그런데 곧바로 그 구멍을 통해서 뜨거운 불길이 확 솟구쳤다.
불꼬챙이가 가슴을 꿰뚫으면 이런 느낌이 들까?
숨이 막히고, 다리가 휘청거렸다.
온몸의 힘이 쭉 빠졌다.
“이, 이런 어이없는 일이…….”
“놀랄 것 없어.”
나직한 목소리에 구양환의 눈이 한껏 커졌다.
그 목소리를 그가 어찌 모를까?
“너, 너는……?”
“진아를 생각하면 육시를 해도 분이 풀리지 않아.”
북궁천이 나직이 뇌까리며 구양환에게 다가갔다. 구양환에게는 그의 목소리가 유부에서 들려오는 소리처럼 느껴졌다.
“나, 나는…….”
“나는 네 변명을 듣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다, 구양환.”
북궁천은 무심한 목소리로 말하며 지풍을 날려서 구양환의 아혈을 제압했다.
그러고는 구양환을 향해 뇌전궁을 들어 올렸다.
“너는 진아를 이용하지 말았어야 했다.”
뇌전궁의 활대가 구양환의 어깨에 떨어졌다.
퍽!
“진아를 숨겼으면 최대한 안전하게 지켰어야 했어.”
퍼벅!
‘끄어억!’
구양환의 양쪽 어깨가 부서지면서 두 팔이 축 처졌다.
“그런데 그러지 못하고 천사교 놈들에게 빼앗겼지.”
우직!
왼쪽 다리 무릎뼈가 부서지며 다리가 덜렁거렸다.
그런데 기괴하게도 구양환의 몸은 무너지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얼굴이 공포와 고통으로 인해서 처참하게 일그러진 채.
북궁천이 자신의 공력으로 구양환이 쓰러지는 것을 방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방 안에서 나는 소리도 철저히 차단한 상태였고.
‘죽일 거라면 제발 빨리 죽여라!’
구양환은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서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간절히 애원했다.
그럼에도 북궁천의 입에서는 처음과 다름없이 무심한 목소리가 나직하게 흘러나왔다.
“세상의 온갖 고통을 겪게 하고 나중에 목을 칠 생각이었다. 사지를 하나하나 잘라 낼 때마다 네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려 줄 생각이었어. 너로 인해 진아가 고통 받고 있는 걸 생각하면 그보다 더한 짓이라도 망설이지 않을 작정이었다.”
와직!
오른쪽 무릎뼈마저 박살 나며 구양환의 몸이 두 자가량 작아졌다.
“전이었다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렇게 했을 거다. 그런데 아무래도 내가 전처럼 독하지 못한 것 같다. 너는 내가 변한 것을 다행으로 알아라, 구양환.”
무심한 눈으로 내려다보던 북궁천이 구양환의 이마를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천조혈심기가 이마를 파고들었다.
그 직후 구양환의 몸이 천천히 뒤로 넘어가고, 구멍이 뚫린 가슴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북궁천은 숨이 끊어진 구양환을 지그시 내려다본 후 몸을 돌렸다.
‘호연도광, 너는 구양환보다 열 배는 더 참혹하게 죽을 것이다.’
* * *
천장을 가로질러서 구양환의 거처가 있는 건물을 빠져나온 북궁천은 임강령이 기거하고 있는 곳을 찾아 움직였다.
임강령은 심각한 부상을 당한 후 치료 중이라 했다. 아직 다 낫지는 않았을 터, 임표가 파악해 놓은 곳에 아직도 머물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 시각. 임강령은 자리에서 일어나 식은 차로 입술을 축이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도 마제의 수하를 잡아들였다는 소식을 들은 터였다.
금천장 공격을 하루 앞둔 지금. 그 일이 어떻게 흐를지 몰라도 전체적인 판도에 변화를 줄 것만큼은 분명했다.
‘그는 절대 그냥 물러설 사람이 아니야.’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기이한 느낌이 든 그는 고개를 돌려 방문 쪽을 바라보았다.
누군가가 방문을 등지고 서 있었다.
그를 본 순간, 임강령의 눈빛이 잘게 떨렸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몸집과 몸에서 흘러나오는 무형의 기세는 그가 알고 있는 누군가와 똑같았다.
얼굴이란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것. 검 대신 활을 메고 있지만 그것 역시 그의 판단을 흐리게 하지 못했다.
“역시 궁주가 직접 왔구먼.”
북궁천은 임강령이 단번에 자신을 알아보자 이마를 찌푸렸다.
하지만 곧 평정을 되찾고 임강령을 향해 다가갔다.
“제가 왜 왔는지 모르진 않을 겁니다.”
“수하를 구하러 왔나?”
“그렇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목적이 있지요.”
“호연도광이 정파의 고수들을 죽이라 하던가?”
북궁천은 고개를 끄덕여 대답을 대신했다.
“아이는 괜찮은가?”
북궁천의 눈빛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손가락을 하나 다쳤습니다. 손가락이 꺾어진 그 아이가 울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선합니다.”
아픔이 깃든 눈빛.
북천마제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들어 본 사람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눈빛이다.
임강령은 그 눈빛을 보고 자신의 우려가 현실로 다가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제의 눈빛을 본래대로 돌려놓을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
어느 누구도 강제로 바꿀 수 없으리라.
“호연도광은 정말 악독한 자군. 어린아이의 손가락을 꺾다니.”
“그래서 저는 그의 말을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해하십시오, 임 대협.”
“나는 원래 내 목숨을 던져서 궁주에게 간청해 볼 생각이었네. 그런데 궁주의 표정을 보니 소용없을 것 같군.”
“잘 생각했습니다. 임 대협이 죽어서 진아가 내 품으로 돌아온다면 몰라도, 그렇게 되지 않는 이상은 공연히 목숨만 버리는 셈이 될 겁니다.”
“그럼 죽을 목숨으로 천사교와 싸우는 게 낫겠군.”
“당연한 말씀입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임강령의 얼굴에 씁쓸한 표정이 떠올랐다. 죽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는 기이한 상황이었지만 그는 정말로 아쉬웠다.
“그는 궁주가 어느 정도 해 줘야 아기를 돌려준다고 하던가?”
“정파의 기세가 꺾일 만큼.”
“애매하군.”
“애매할 것도 없습니다. 몇 사람만 죽여도 전력에 타격이 있을 테니까. 그리고 저는 이미 일을 시작했습니다.”
임강령이 움찔하며 북궁천을 직시했다.
“설마 누구를 죽이기라도 했단 말인가?”
“송문을 빼내기 위해서 뇌옥에 있던 안추승을 죽였지요.”
“자네의 말투로 봐선 안추승 외에 다른 사람도 죽인 것 같군.”
“그렇습니다. 당연히 죽여야 할 자를 죽였지요.”
“누구를……?”
“구·양·환.”
맙소사!
임강령이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곧 한숨을 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끝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그래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기에 충격이 크진 않았다.
“후우우, 인과응보(因果應報)인 건가?”
“누구든, 진아를 아프게 한 자는 내가 직접 지옥으로 보내 줄 겁니다.”
“호연도광도 포함되나?”
북궁천의 눈빛이 서릿발처럼 차가워졌다.
“당연히.”
“그나마 다행이군.”
“제가 임 대협을 찾아온 것은 한 가지 말해 줄 것이 있어섭니다.”
“뭐든 말씀해 보시게. 귀를 열고 경청하겠네.”
“호연도광이 암암리에 강호의 마도고수를 다수 초청했습니다. 그들이 오늘 내일 사이에 도착할 겁니다.”
천사교가 마도고수를 끌어들이고 있다는 것은 정파연합에서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말이 북궁천의 입에서 나왔다는 게 문제였다.
자신들의 예상을 뛰어넘을 수도 있다는 뜻.
누구보다 그 차이를 잘 아는 임강령이 침중한 표정을 지었다.
“궁주가 그리 말할 정도면 보통 인물들은 아닐 것 같군.”
“그렇습니다. 임 대협이나 백리 대협에게 뒤지는 자들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고 대처해야 할 겁니다. 그리고 마종보와 혈문에서도 주력이 움직였을 겁니다. 어쩌면 수뇌부가 모두 몰려올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
임강령은 굳은 표정으로 북궁천을 바라보았다.
그 때였다.
북궁천이 가볍게 손을 움직이자 활이 그의 손에 잡혔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화살 한 발이 시위에 걸렸다.
번개가 무색할 정도로 빠르게 시위를 당긴 북궁천은 임강령 뒤쪽의 벽을 겨누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
“그 정도 들었으면 황천길이 심심하지는 않겠지.”
화들짝 놀란 임강령이 벌떡 일어나서 두 팔을 벌리고 앞을 막아섰다.
“잠깐만 기다리게!”
그 순간, 벽이 문처럼 열리더니, 온화한 표정의 중년인이 쓴웃음을 지으며 들어섰다.
“오랜만이네, 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