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비서 8화
무료소설 신의비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1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의비서 8화
제3장 흑묘 (3)
“아! 무, 무슨 짓이에요?”
흑묘가 놀라서 양손으로 가슴을 감쌌다. 그러다 멍하니 있는 조윤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린아이가 뭘 알고 했겠어.’
“화내서 미안해요. 하지만 가슴을 그렇게 막 만지면 안 돼요.”
조윤이 얼굴을 확 붉히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 모습이 마치 방금 한 행동의 의미를 아는 것 같았으나 이제 열 살인 아이가 그럴 리 없다 여겨졌다.
‘엄마 생각이 나서 그런 건가?’
그런 생각이 들자 조윤이 측은하게 느껴졌다. 그녀 역시 고아였다. 얼굴도 모르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 있었다.
“이리 와요. 아직 갈 길이 멀어요.”
흑묘가 다시 조윤을 안아 들었다. 그러자 조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눈앞에 있는 가슴으로 향했다. 그 시선을 의식한 흑묘의 마음이 약해졌다.
“마, 막 만지지만 않는다면…… 가끔이라면, 괜찮아요.”
이게 웬 횡재인가?
잠시의 망설임 끝에 조윤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흑묘의 가슴을 부드럽게 잡았다. 허락해준 걸 마다할 정도로 그는 순수하지 않았다.
흑묘의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아직 아무도 만지지 않은 가슴이었다. 그런데 이리 순결을 빼앗기게 될 줄이야.
“이름이 뭐예요?”
조윤이 갑자기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흑묘예요.”
“흑묘?”
“네. 흑묘요.”
흑묘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그 이름이 좋았다. 백모연이 그녀에게 지어준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어디로 가요?”
“단목세가요.”
그렇게 대답한 흑묘가 길을 재촉했다. 곧 산을 벗어나면 싫든 좋든 간에 사람들 눈에 뜨인다. 그럼 첫째 가모나 셋째 가모가 보낸 자들에게 위치가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그것을 피해야 했다.
처음 며칠 동안은 그게 가능했다. 조심에 또 조심을 하며 가급적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밤을 이용해서 은밀하게 이동했다.
하지만 단목세가가 있는 북천현(北川縣)에 들어서자 더 이상 그들의 눈을 피할 수가 없었다.
‘이미 포위됐어.’
이 층 객잔에서 밥을 먹고 있던 흑묘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좌측을 힐끗 보니 험상궂게 생긴 사내 셋이 웃고 떠들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우측으로 시선을 옮기자 남자 둘과 여자 하나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 보였다. 뒤쪽의 탁자에서 조용히 술을 마시는 죽립을 푹 눌러쓴 사내도 한패가 분명했다.
‘셋째 가모로군.’
단목세가의 가주인 단목태성에게는 부인이 세 명 있었다. 정실은 당문에서 온 당이주였고, 둘째 부인은 무림여걸이었던 백모연, 그리고 셋째 부인은 공손세가에서 시집온 공손미부였다.
그중 공손미부는 아랫사람을 통해 낭인들을 사서 일을 처리할 때가 많았다. 그래야 뒤끝이 없고 일이 틀어져도 발뺌을 할 수가 있었다.
“왜 그래요?”
바로 옆자리에서 소면을 쪽쪽 빨아 먹던 조윤이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아니에요.”
흑묘가 생긋 웃으면서 조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숙여 귀에다 대고 작게 속삭였다.
“나쁜 사람들이 쫓아왔어요. 싸움이 나면 탁자 밑에 숨어서 절대로 나오지 말아요.”
조윤이 불안한 얼굴로 주위를 힐끗거렸다. 한 번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온 경험이 있어서 벌써부터 겁이 났다.
“두리번거리지 말아요. 이미 포위되었어요. 알았죠? 절대로 나와서는 안 돼요.”
“네.”
흑묘는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공격할지 머릿속에 그렸다. 그리고 둥근 통에 들어 있는 젓가락을 한 움큼 집으며 소리쳤다.
“지금이에요!”
흑묘가 벌떡 일어나며 좌측에서 웃고 떠들던 사내 세 명을 향해 젓가락을 날렸다.
“피해!”
피하기에는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더구나 그들은 무공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았다. 팔과 몸에 젓가락이 꽂히자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크아악!”
“으악!”
“젠장! 눈치챘다!”
우측에 있던 사내 하나가 다급하게 허리에 있던 칼을 뽑으려고 했다. 그러나 흑묘가 더 빨랐다. 젓가락으로 팔과 목을 연달아 찍자 그는 칼을 미처 다 뽑지도 못하고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졌다.
“으아아악!”
“아이를 먼저 죽여!”
함께 있던 사내의 외침에 여자가 박도(朴刀)를 뽑아 들고 조윤이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어딜!”
흑묘가 탁자 위를 구르면서 젓가락을 날렸다. 두 개는 박도에 막혔으나 하나는 어깨를 뚫고 들어갔다.
“아악!”
여자가 비명을 질렀다. 반대편으로 넘어갔던 흑묘가 탁자를 손으로 짚으며 몸을 회전시켰다. 그러자 흑묘의 발에 여자의 목이 걸렸다.
빠각!
여자가 맥없이 꼬꾸라지는 것을 보고 사내가 흰색 가루를 확 뿌렸다. 독이었다.
흑묘는 독이라면 따라올 곳이 없다는 사천당가에서 수련을 했다. 비록 직계가 아니라서 독을 다루는 방법은 배우지 못했지만 대처 방법은 알고 있었다. 대놓고 독을 뿌리는 이런 수준 낮은 공격에 당할 그녀가 아니었다.
재빨리 호흡을 멈춘 흑묘는 뒤로 훌쩍 물러나면서 사내를 향해 의자를 걷어찼다. 그리고 사내가 팔을 휘둘러 의자를 부수는 순간 날아올라 발로 가슴을 찍고 머리를 찼다.
파팡!
“커헉!”
연이은 발길질에 얻어맞은 사내는 억눌린 신음 소리를 내며 뒤로 나가떨어졌다.
이제 남은 건 한 명이었다.
흑묘가 두 팔을 올려 가슴 앞에서 한 번 교차시켰다가 밑으로 펼치자 어느새 한 손에 네 개씩, 양손에 총 여덟 개의 단검이 쥐어져 있었다.
그녀는 비검술(飛劒術)이 특기였다. 스물네 개의 단검을 한순간에 던질 수가 있었다. 그 절기를 받아낸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다.
흑묘는 죽립을 눌러쓰고 아직까지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남자를 향해 다가갔다. 그와의 거리는 두 걸음 반, 그가 탁자 위에 올려놓은 검은 닿을 수가 없는 거리였다.
하지만 비검술을 익힌 흑묘에게는 더없이 좋은 거리였다. 더구나 남자는 앉아 있는 상태였다. 검을 뽑아서 휘두르는 것보다 단검을 날리는 것이 더 빨랐다. 그런데도 흑묘는 이긴다는 자신감이 생기지 않았다.
‘고수!’
흑묘가 뒷발을 뒤쪽으로 조금 미끄러트리며 자세를 잡았다. 여차하면 여덟 개의 단검이 그의 몸을 뚫을 것이다. 몸을 피한다고 해도 또다시 여덟 개의 단검이 그를 덮친다.
탁자 밑에 웅크리고 있던 조윤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정말 영화나 소설책에서나 나올 것 같은 상황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긴장과 두려움 때문에 온몸이 찌릿찌릿했다.
“대단하군. 그 짧은 시간에 여섯 명을 해치우다니.”
죽립을 푹 눌러쓴 남자가 진심으로 감탄하며 말했다. 흑묘는 이제 묘령이었다. 그 나이에 저런 실력을 갖추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대로 돌아가요. 더 이상 손을 쓰기 싫어요.”
“맡은 일이 있는데 그냥 갈 수는 없지.”
흑묘가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여덟 개의 단검을 꽉 움켜쥐었다. 그러자 죽립을 눌러쓴 남자의 눈빛이 바뀌었다.
“자신의 실력을 너무 과신하지 않는 게 좋아. 무림에는 이런 말이 있지. 자신의 실력을 항상 서푼은 숨기라고.”
“위험해!”
조윤이 소리쳤다. 아까 흑묘한테 당했던 사내 하나가 슬금슬금 기회를 보다가 달려든 것이다.
흑묘가 제자리에서 몸을 회전시키며 왼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왼손에 있던 네 개의 단검이 사내의 몸에 일직선으로 박혔다. 사내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찰나에 죽립을 쓰고 있던 남자가 검을 뽑았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발검(拔劍)이었다. 흑묘가 몸을 틀며 오른손에 있던 단검을 뿌렸다.
단검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두 번 울렸다. 흑묘가 던진 단검은 모두 네 개였다. 두 개의 단검은 죽립을 눌러쓴 남자의 가슴과 목에 박혀 있었다.
“끄으…… 과연…….”
그는 검을 뽑아 휘두른 자세 그대로 쿵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흑묘!”
조윤이 흑묘에게 달려갔다. 흑묘는 어깨에서부터 등까지 크게 베여 피를 뚝뚝 흘리고 있었다.
“아…….”
상처가 깊었다. 당장에 수술을 하지 않으면 위험했다. 한데도 흑묘는 고통을 참으면서 미소를 보였다.
“걱정하지 말아요. 이 정도는…….”
“가, 가만. 병원 아니, 우선 응급처치를…….”
조윤이 당황해서 횡설수설하며 흑묘의 상처를 살피려고 했다. 그러자 흑묘가 조윤을 꽉 당겨서 안았다.
“괜찮아요. 가요. 또다시 그들이 올 거예요.”
“무슨 소리예요? 지금 치료하지 않으면…….”
“쉿! 조용히. 나를 믿죠?”
조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흑묘가 대단하다지만 그래봤자 이제 스물 안팎의 아가씨였다. 그런데 오히려 자신을 안심시키려 하고 있었다.
“걱정 말아요. 난 괜찮아요. 이 정도로는 죽지 않아요.”
“흑묘.”
조윤이 흑묘의 목을 꼭 껴안았다. 흑묘는 이를 악물고 조윤을 안고 있는 손에 힘을 줬다. 백모연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든 조윤을 그녀에게 데려가야 했다. 어떻게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