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비서 5화
무료소설 신의비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6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의비서 5화
제2장 적응 (3)
그저 작은 상처는 인두로 지지고, 큰 상처는 지혈제를 뿌려 봉합한 후에 금창약을 바르고 상처가 벌어지지 않게 조여서 붕대를 감아놓은 것이 다였다.
그마저도 지혈제와 금창약은 공소가 가지고 있던 것이었다. 무림인들은 만약을 위해 그러한 치료약을 항시 들고 다닌다. 아마 그게 없었더라면 치료가 훨씬 힘들었을 것이다.
“출혈이 심해서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체력이 좋네요. 배를 찔린 곳은 상처가 심하니 조심해야 해요. 당분간 움직이지 말고 휴식을 취하세요. 움직이면 상처가 터질 수도 있어요.”
조윤이 상처를 살피면서 중얼거리는 말을 듣고 공소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는 어린데 말투에서 관록이 느껴졌다.
“의술은 어디서 배운 거냐?”
“그보다 무사님이 누구인지부터 알려주세요. 나쁜 사람이면 이대로 관청에 넘길 거예요.”
“하!”
공소는 그제야 자신이 왜 묶여 있는지 이해가 되었다. 혹여 해코지를 할까 봐 묶어 놓은 것이다.
“나를 은혜도 모르는 나쁜 놈으로 보는 거냐?”
“무사님이 누군지 모르니까요. 뭐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고요. 그런데도 치료를 해줬으니 고마워해야죠.”
“허 참! 그래, 어쨌든 고맙구나. 내 이름은 공소라고 한다. 혹시 북천(北川)에 있는 단목세가(端木世家)에 대해서 들어 봤느냐?”
단목세가는 북천현의 세력가로서 제법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조윤은 천민이고 이제 열 살이었다. 더구나 이곳 목리현은 사천 남방의 끝자락이었고 북천현은 사천의 북방 지역이었다. 거리가 워낙에 멀어서 아는 것이 없었다.
“아니요.”
“그럼 당문(唐門)은 아느냐?”
당문은 사천의 가장 큰 세력이었다. 이는 무림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알아요.”
“단목세가는 당문에 속해 있는 가문이란다. 나는 거기의 무사이고. 이만하면 믿을 수 있겠느냐?”
“거짓말일지도 모르잖아요.”
조윤의 말에 공소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어쨌건 목숨을 구해줬는데 윽박지르며 겁을 줄 수도 없는 노릇이라 답답했다.
“하면, 어쩌자는 거냐?”
“그냥 그렇다는 거지요. 눈빛을 보니 나쁜 사람 같지는 않네요. 하지만 이건 알아두세요. 만약 우리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이두 아저씨가 바로 관청으로 달려갈 거예요.”
“그래, 알았다.”
조윤은 그제야 공소를 묶었던 밧줄을 풀어줬다. 어차피 공소는 상처 때문에 한동안은 뜻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풀어줘도 조심만 하면 큰 문제는 없었으나 혹시 또 몰라 만약을 대비하기 위해서 묶어놓았을 뿐이다.
“대호야, 가서 죽 가지고 와.”
조윤의 말에 대호가 부엌으로 가서 죽이 든 사발을 들고 왔다. 깨어나면 먹이려고 미리 쒀 놓은 죽이었다. 조윤이 그걸 받아 들고 공소에게 내밀었다.
“드세요.”
“흠. 고맙다.”
“고맙긴요. 그거 아저씨 돈으로 산 거예요.”
공소는 그제야 자신의 품을 뒤져봤다. 지혈제며 금창약은 물론이고 돈이 들어 있던 주머니도 없었다.
“나머지는 치료비로 썼어요.”
조윤이 그의 표정을 보고 재빨리 덧붙였다. 그러자 공소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상관없다. 그리 큰돈은 아니니.”
“사실 무사님을 치료하는 데 돈이 제법 많이 들었어요. 보다시피 저희는 가난해서 끼니를 챙기기도 힘들어요.”
“알았다.”
“그럼 쉬세요.”
조윤은 그를 남겨두고 대호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혹여 남은 돈을 돌려달라고 할까 봐 불안해서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홀로 남겨진 공소는 그걸 눈치채고 실소를 흘렸다. 나이는 어린데 여간내기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 * *
공소는 몸이 조금 호전될 때까지 조윤의 집에서 머물기로 했다. 윗사람에게 지시받은 일이 있었으나 부상당한 몸으로는 수행할 수가 없었다.
사흘이 지나자 조윤이 상처를 살피고 붕대를 갈아줬다. 생각한 것 이상으로 상처가 빨리 아물고 있었다. 현대에서는 볼 수 없는 경이로운 회복력에 조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회복 속도가 정말 빠르네요.”
“무인이니 아무래도 일반인들과는 다를 거다.”
조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꾸준히 운동을 하며 몸을 관리해 온 사람들은 큰 수술을 하고 나서도 회복이 빨랐다. 반면에 생활을 엉망으로 하며 몸 관리를 안 했던 사람들은 쉽게 나을 병도 치료가 어렵고 회복이 더뎠다.
조윤이 알기로 이 시대의 무사들은 밥 먹고 수련만 하는 사람들이었다. 무공 실력이 곧 목숨과 직결되기 때문이었다.
공소는 일곱 명을 순식간에 처리할 정도의 실력자이니 그동안 적지 않은 노력을 했을 것이다. 언뜻 이렇게 빠른 회복력이 이해가 되었다.
“단목세가의 무사님이라고 하셨죠?”
“그래.”
“혹시 글도 아시나요?”
“흠. 공부가 깊지는 않으나 읽고 쓸 정도는 된다.”
“부탁이 있습니다.”
조윤이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하자 공소는 뭐를 부탁하려는지 짐작되었다.
“글을 가르쳐 달라는 거냐?”
“네.”
“천민이 글을 익혀 뭐 하려는 거냐?”
이 시대에는 평민조차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물며 천민이야 말할 필요도 없었다.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어 배우기도 힘들지만 설사 배운다고 해도 쓸 일이 없었다.
“배움에 있어 신분의 귀천이 무슨 상관입니까? 모르니 배우는 것이고 필요하니 배우는 것이지요.”
“그래서 묻는 것 아니냐?”
“의술을 공부할까 합니다.”
“책으로 말이냐?”
“아닙니다. 책으로 어떻게 의술을 익히겠습니까? 다만 나중을 대비하고자 함입니다.”
“알았다. 그럼 가르쳐 주마. 마침 나도 가만히 누워만 있자니 지루하던 차였다.”
공소가 흔쾌히 승낙을 하자 조윤은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보고 공소가 미간을 살짝 좁히며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불쑥 물었다.
“네 이름이 조윤이라고 했지?”
“네, 맞습니다.”
“성은 뭐냐?”
“없습니다.”
원래는 남궁이라는 성이 있었지만 조윤은 늘 그래 왔듯이 밝히지 않았다. 천민은 성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공소는 다시 묻지 않았다.
“알았다. 그저 궁금해서 물었을 뿐이다. 하면 언제부터 배우겠느냐?”
“지금부터요.”
“하하하. 어지간히 배우고 싶었던 모양이구나.”
공소가 웃으면서 그때부터 글을 가르쳐 주기 시작했다. 조윤은 이미 한자를 거의 다 알고 있었다. 다만 시대가 달라 현대에서 배운 것과 같은지 확신이 없었을 뿐이다.
다행히 현대와 이 시대의 한자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때문에 배우는 속도가 상당히 빨랐고, 이에 공소는 적지 않게 놀랐다. 획을 자주 틀리지만 배우는 속도에 비하면 그건 흠도 되지 않았다.
“혹시 글을 알고 있었던 거냐?”
공소가 물었으나 조윤은 웃기만 했다.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난처했기 때문이다. 그렇잖아도 공소는 천민인 조윤이 의술을 알고 있다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고 있었다. 한데 글까지 알고 있다고 하면 더욱이 이상하게 여기며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물을 것이 분명했다.
* * *
공소가 조윤의 집에서 지낸 지 한 달 정도가 지났다. 그동안 공소는 조윤을 보며 몇 번이나 감탄을 했다.
조윤은 동생들에게 항상 규칙적인 생활과 청결을 강조하며 철저히 지키게 했다. 그 때문에 아이들은 옷은 남루할망정 지저분하지 않았고, 건강했다. 여아가 조금 허약한 듯했으나 날 때부터 그런 것 같았다.
또한 조윤은 아이들에게 수시로 예의범절을 가르쳤다. 한 달여 만에 글을 모두 깨우친 후로는 글도 가르치기 시작했다.
명문가에서야 흔하고 당연한 일이지만 천민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천민은 지저분하고 무식했다. 아이들을 교육시킨다는 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지적 수준이 낮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도 힘든 고단한 삶을 살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조윤에게서는 나이답지 않은 연륜이 느껴졌다. 이제 열 살이건만 대화를 하다 보면 마치 동년배인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았다.
그 외에 바른 말투나 몸에 밴 예절 등이 결코 평범하게 보이지 않았다. 며칠을 더 지켜보던 공소는 대호를 살살 꾀어서 궁금하던 것을 알아냈다.
“그게 정말이냐?”
“네. 형이 말하면 안 된다고 했지만 무사님한테만 특별히 이야기해주는 거예요.”
‘이럴 수가. 성이 남궁이었단 말인가? 단목이 아니라? 하면 남궁세가의 핏줄인가?’
사실 공소는 사람을 찾고 있었다. 한데 조윤이 웃는 모습을 보니 자신이 아는 사람과 많이 닮았고, 도저히 천민으로 볼 수 없는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나이 또한 같아서 은연중에 자신이 찾던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성이 단목이 아니라 남궁이라고 한다. 남궁세가(南宮世家)는 저 멀리 안휘(安徽)에 위치해 있었다. 명문세가로 이름이 높고 의로운 일을 많이 행해 천하에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무엇보다 공소가 찾는 아이에게는 형제가 없었다.
“음…….”
“그럼 이제부터 저한테 무공을 가르쳐 주는 거죠?”
“걱정 마라. 약속은 지킬 터이니.”
아무리 꾀어도 넘어오지 않자 공소는 평소 대호가 시간이 날 때마다 마당에서 목검을 휘두르던 것이 생각났다. 이에 무공을 가르쳐 주는 조건으로 입을 열게 만든 것이다. 역시 애는 애였다.
어쨌든 약속을 한 일이니 지켜야 했다. 그는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사내가 아니었다.
“가만 있자. 그러고 보니 너는 형을 닮지 않았구나.”
“네?”
대호가 신 나 하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공소가 혼잣말하듯이 중얼거렸다. 실제로 조윤과 대호는 생김새가 많이 달랐다.
조윤은 선이 얇고 귀여운 얼굴이었지만 대호는 뭉툭하니 사내다워서 힘 좀 쓸 것 같은 생김새였다. 육예는 그런 두 사람과는 또 달랐다.
‘같은 형제가 아닌가?’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가모(家母)의 성이 원래 남궁이 아니었던가?
한데 단목세가로 시집을 오면서 자연스레 성이 바뀌었고, 그 바람에 공소도 그렇게 기억을 하고 있었다.
‘이런 바보 같으니라고.’
공소는 확신했다. 조윤은 자신이 찾던 아이가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