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록 22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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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3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정록 224화
224화
고오오오오오!
묵혼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날아갔다.
호연도광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악귀처럼 이를 드러내고 눈을 부릅뜨며 인상을 쓴 그는 미친 듯이 쌍장을 내질렀다.
“어림없다, 이놈!”
핏빛 장력이 겹겹이 쌓이면서 묵혼의 진로를 막았다.
그러나 묵혼은 속도만 조금 느려졌을 뿐, 느린 속도나마 쉬지 않고 호연도광을 향해 날아갔다.
호연도광의 핏빛 눈동자가 흔들렸다. 절망에 찬 기괴한 목소리가 그의 목울대에서 울려나왔다.
“아, 아니야! 이럴 수는 없어! 혈천마황의 기운은 천하의 누구도 막지 못해!”
찰나!
북궁천이 묵혼과 이어진 기운에 혼마저 불어넣었다.
“가라, 검이여! 이것은 나의 의지니라!”
웅웅웅웅!
콰과과과과!
묵혼이 발악하는 혈천마황기를 뚫고 호연도광을 향해 날아갔다.
“아, 안 되애애애애!”
퍽!
묵혼은 호연도광의 심장을 꿰뚫고 삼 장을 더 날아갔다. 그런데 땅으로 떨어지지 않고 검 자체가 살아 있는 것처럼 부드럽게 방향을 틀어서 북궁천의 손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전설에서나 듣던 완벽한 이기어검!
망연자실한 호연도광의 눈빛이 폭풍 앞의 돛처럼 흔들렸다.
북궁천은 묵혼은 받아 쥐고 냉소를 지으며 호연도광을 노려보았다.
“지옥에 가거든 네가 얼마나 미친놈이었는지 되돌아봐라, 호연도광.”
“크르르륵, 크륵. 아직…… 끝나지…….”
호연도광은 가래 끓는 목소리로 흘리며 입을 달싹거리더니 뒤로 천천히 넘어갔다.
10장. 가자, 진아야!
정파인들 중 북궁천과 호연도광의 싸움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알려진 것만으로도 북궁천을 마제라 하며 배척하려는 사람은 더 이상 없었다.
영허진인을 암습한 목부청을 죽이고 현현마종 척발산을 도망치게 만든 사람. 호연도광을 죽인 사람.
그게 북궁천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북천마제 대신 북천무제라는 호칭을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유원당과 임강령은 북궁천에게 북궁 대협이라 칭했다. 슬며시 웃으면서.
북궁천은 안면 있는 사람들과 간단히 인사만 나누고 벽성장으로 돌아갔다.
적광이 돌아온 것은 그날 자시 무렵이었다.
곳곳에 상처를 입은 그는 기련검마와의 승부가 어떻게 됐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눈빛을 싸늘하게 빛내며 대답했다.
“솔직히 그는 주군 말씀대로 나보다 강했다. 하지만 싸움을 대하는 마음에서 나를 따라오지 못했어. 그 바람에 삼백초를 겨루고도 승부를 내지 못했다. 대신 일 년 후에 다시 만나기로 했지. 그때는 반드시 그를 이길 거다.”
이튿날.
북궁천은 남들이 뭐라 하든 떠날 준비를 하느라 분주했다.
삼대세력이 정파연합을 도와 천사교를 물리쳤다는 소문이 돌면서 그동안 지지부진하던 그들의 재산 매각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가격도 싸게 내놓은 터라 이제는 서로 사려고 난리였다.
그 바람에 하루도 안 돼 모든 일이 마무리되었다.
삼대세력 무사들 중 북궁천을 따라 북천궁으로 가겠다는 사람은 절반 정도인 오백 명이었다.
남는 사람에게도 충분한 은자를 나누어 주어서 불만을 표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정파연합은 금천장을 본래 주인인 금가린에게 돌려주기로 했는데, 북궁천은 그의 곁에 이조량을 계속 붙여 두기로 했다. 그리고 남기로 한 삼대세력 고수들 중 괜찮은 자 몇 명으로 하여금 금가린을 돕게 했다.
북천궁까지 따라가는 것에 대해 마음이 반반이었던 이조량은 순순히 북궁천의 뜻을 따랐다.
천사교가 무너진 지 이틀째.
북궁천은 아침이 되자 떠날 준비를 서둘렀다.
주요 인사들이 모두 벽성장에 모였다.
북궁천은 환한 표정으로 진아를 들어 올렸다.
“이제 집으로 가자, 진아야!”
그러자 진아가 말했다.
“아부으으 북구처어언. 어마아아 허원여여. 너느 북구지이이. 지으로 가?”
“푸하하하! 그래, 맞다! 자, 가자, 진아야! 네 엄마가 기다리겠다!”
* * *
햇살이 워낙 뜨거워서 머리 위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어는 여름 날 정오 무렵.
철군성 정문위사장인 교철은 먼지를 일으키며 몰려오는 자들을 보고 눈을 부릅떴다.
“저, 저게 뭐냐?”
“그, 글쎄요? 웬 놈들이 겁도 없이 몰려오는 거죠?”
“보통 기세가 아닌데요?”
“걷는 태도나 기문병기 든 놈이 많은 걸 보니 마도 놈들이 분명합니다, 위사장님!”
수하들이 안절부절못하며 한마디씩 했다.
대충 눈으로 세어 봐도 사오백은 될 것 같다.
정파라면 절대 저런 식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감히 누가 철군성을 앞에 두고 저따위 팔자걸음을 걷는단 말인가?
교철은 다급히 수하를 향해 소리쳤다.
“빨리 가서 알려라! 마도 놈들이 쳐들어온다고 해!”
“어디 놈들이라고 하죠?”
“나도 몰라! 그냥 마도 놈들이 온다고 해! 어서! 너는 빨리 고루(鼓樓)로 가서 적의 공격을 알리고!”
둥둥둥둥둥!
북이 빠르게 울렸다.
철군성이 시끌벅적해지며 무사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왔다.
“무슨 일이지?”
“적의 공격을 알리는 북소리입니다, 당주!”
“어떤 놈들이 감히 본 성을 공격한단 말이냐? 모두 무기를 들고 집합!”
공손설도 북소리를 듣고 놀라서 급히 시비를 보내 사정을 알아보았다.
곧 시비가 돌아와서 보고했다.
“아가씨! 마도 놈들이 쳐들어온대요!”
“뭐? 어디 문파에서?”
“그건 모르겠어요. 천 명도 넘나 봐요!”
공손설은 급히 헌원려려의 방으로 뛰어갔다.
그러잖아도 요즘 헌원려려의 몸이 좋지 않아서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요즘은 항상 누워서 지냈고, 일어나 앉아 있는 시간이 채 반나절도 되지 않았다.
원 의원님도 표정이 침중한 걸 보니 상황이 좋지 않은 듯했다.
그런데 적까지 쳐들어오다니!
철군성의 무력을 믿긴 하지만, 오빠와 삼백이 넘는 정예가 빠진 터였다. 마냥 안심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언니!”
헌원려려는 누운 채로 공손설을 맞이했다.
“왜 그리 허둥대?”
“적이 쳐들어온대요.”
헌원려려도 처음에는 놀랐지만 곧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산서에서 철군성을 어떻게 할 적이 있긴 있어?”
“그야…… 듣고 보니 그러긴 그러네요. 그래도 워낙 많은 무사들이 빠져나가서 간덩이 부은 작자들은 욕심을 낼지도 모르잖아요.”
“너무 걱정 마. 성주님께서 잘 처리하실 거야.”
헌원려려는 나직이 말하며 힘없이 눈을 감았다. 눈꺼풀이 잘게 떨리고 악다문 턱에 힘이 들어갔다.
공손설이 깜짝 놀라서 급히 그녀에게 바짝 붙어 앉았다.
“또 아파요? 언니!”
“나, 나는 괘, 괜찮아. 설아는 무슨 일인지 알아봐…….”
“알았어요. 언니는 쉬세요. 제가 의원님에게 말씀 전하라 하고 밖에 나가서 무슨 일인지 자세히 알아볼게요.”
철군성 무사들은 우르르 정문으로 나가서 일렬로 늘어섰다. 빠르게 늘어난 숫자가 순식간에 사백 명을 넘어섰다.
이제 적과 비슷한 숫자.
자신에 찬 무사들은 눈에 힘을 주고 다가오는 자들을 노려보았다.
위사의 보고대로 마도에 몸을 담고 있는 자들이 분명했다.
험악한 인상, 건들거리는 걸음걸이, 절도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움직임이었다. 그런데 어느 문파의 놈들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다가오는 자들이 가까워질수록 긴장감이 흘렀다. 거리가 어느새 이십 장밖에 남지 않았다.
무사들 중 다수가 슬며시 무기를 잡았다.
그때 안쪽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비켜라! 성주님께서 나오셨다!”
가운데가 촤악 갈라지더니 십여 명이 앞으로 나섰다. 공손무극을 비롯해서 철군성의 장로와 삼전 삼단의 고위간부들이었다.
뒷짐을 진 채 위맹한 모습으로 나서던 공손무극이 어느 순간 멈칫했다.
“응?”
그때였다. 몰려오던 무리 중, 가운데에 서서 걸어오던 자가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이 드신 분이 뭐하러 여기까지 마중 나오신 겁니까?”
공손무극은 어이가 없어서 풀썩 헛웃음을 지었다.
“허, 허. 북천의 주인이 왔는데 마중 나오는 게 무슨 흉이겠는가?”
그랬다. 몰려온 자들은 북궁천이 이끄는 사람들이었다.
북궁천은 늘어선 철군성 무사들을 둘러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마 저희와 싸우려고 나오신 건 아니겠죠?”
“그럴 리가 있나?”
공손무극은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다른 말이 나오기 전에 몸을 반쯤 돌리며 북궁천을 재촉했다.
“자, 자.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세!”
운화원 입구에 서 있다가 북궁천을 맞이한 공손설은 사정을 알고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평소라면 배꼽을 잡고 웃었을 일인데 헌원려려 때문에 웃을 수가 없었다.
“오빠가 오셨던 거였어요?”
“그래. 사실 이 기회에 철군성을 어떻게 해 볼까 했는데, 때맞춰서 성주가 나오셨지 뭐냐. 근데 려려는 괜찮지?”
공손설의 표정이 흔들렸다.
비록 찰나간의 변화였지만 헌원려려에게 모든 신경을 쏟고 있던 북궁천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냐?”
“그게요…….”
“어디 아파?”
“조금요.”
북궁천이 공손설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너, 내가 려려 잘 돌보라고 했지?”
“그게 아니라, 전부터 아팠나 봐요.”
“뭐?”
“원 의원님 말씀으로는 일 년도 넘었대요.”
“어, 어디가 아픈데?”
“일단 들어가서 말해요. 더 자세한 것은 의원님이 설명해 주실 거예요.”
그때 북궁천 뒤에서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단무영의 가슴에 안겨 있던 진아가 내는 소리였다.
공손설은 그제야 고개를 옆으로 돌려서 북궁천의 뒤를 바라보았다.
아기가 보였다.
공손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무나 예뻐서 눈을 깜박일 수도 없었다.
“저 아이가 진아예요?”
“그래. 단숙, 진아를 이리 줘.”
“제가 받을게요.”
공손설이 후다닥 나서서 진아를 받았다.
진아는 공손설을 빤히 바라보고는 해맑게 웃었다.
“아아아…… 정말 예쁘다. 네가 진아니?”
“너으으 북구지이이.”
공손설의 큰 눈이 동그래졌다.
“어마?”
적 대신 북궁천이 나타난 걸 보고도 웃지 못했던 그녀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북궁천은 애가 탔다. 공손설과 아기가 노는 걸 보고만 있기에는 속이 타서 기다릴 수가 없었다.
“뭐 해? 려려가 아프다며? 빨리 안으로 들어가자.”
“예, 오빠.”
이정한과 동호량, 초강은 운화원 안으로 들어오는 북궁천을 보고 반가움보다 미안함에 고개를 푹 숙였다.
“대형, 죄송합니다!”
“저희들이 변변치 못해서 그만…….”
그게 왜 그들 잘못이랴.
“너희 잘못 없다. 그렇게 따지면 다 늦게 돌아온 내 잘못이지.”
북궁천은 그들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고 헌원려려의 방으로 향했다.
헌원려려는 겨우 눈을 뜨고는 아기를 안고 들어오는 공손설을 바라보았다.
“언니, 오빠가 진아를 데려왔어요. 정말 예뻐요. 어쩜 이렇게 예쁠 수가 있어요? 꼭 천상에 사는 금동 같아요.”
공손설은 헌원려려 앞에 서서 쉴 새 없이 쫑알거렸다.
그러다 헌원려려가 손을 내밀자 아쉬운 표정으로 진아를 내밀었다.
“그만 떠들고 비켜 봐, 인마.”
북궁천이 나직하게 다그치자 공손설은 그제야 옆으로 물러섰다.
“고마워요.”
헌원려려가 눈을 들어서 북궁천을 응시했다. 눈에 눈물이 한 바가지는 고여 있었다.
북궁천은 그녀의 얼굴에서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병에 걸려도 큰 병에 걸린 듯 안색이 창백하다 못해 백짓장처럼 하얬다. 자세한 내용은 의원에게 들으라더니 보통 병이 아닌 것 같다.
그래도 그는 최대한 내색하지 않고 물었다.
“아프다면서? 혹시 이 꼬맹이가 소홀히 해서 아픈 거 아냐?”
“아니에요. 얼마나 잘해 줬는데요.”
“근데 왜 아파?”
“전부터 조금 안 좋았어요.”
“그런데 왜 말 안 했어?”
“저만 아프면 됐지, 다른 사람까지 마음고생할 필요는 없잖아요.”
“바보같이…….”
그때였다. 헌원려려가 다시 눈을 감고 이를 악물었다.
“으으으음…….”
나직이 흘러나오는 신음. 백짓장 같은 얼굴이 가늘게 떨린다.
대경한 북궁천이 급히 그녀에게 달라붙었다.
“려려!”
급히 헌원려려의 맥문을 쥔 그는 급히 그녀에게 진기를 불어 넣으면서, 동시에 천조혈심기로 그녀의 상태를 알아보았다.
때마침 원부선이 들어왔다.
공손설이 그에게 뛰어가서 헌원려려의 상태를 알렸다.
“의원님, 언니가 오늘따라 유난히 더 아파요.”
원부선은 북궁천 뒤에 서서 움직이지 못했다.
그가 비록 의원이라 해도 무공에 아주 문외한은 아니었다.
그는 북궁천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운에 압도되어서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허어, 성주님보다 내공이 더 강한 것 같구나. 바로 이 젊은이가 북천마제 북궁천이라는 사람인가 보군.’
잠시 후. 헌원려려의 몸에서 손을 뗀 북궁천이 고개를 돌려 원부선을 바라보았다.
“려려의 상태를 솔직히 말해 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