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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비서 34화

무료소설 신의비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6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신의비서 34화

제4장 아미파 (1)

 

 

“어디로 가는 거예요?”

 

“아미파로 간다.”

 

말없이 한참을 걷던 조윤이 불쑥 묻자 당황학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예전과 달리 조윤을 보는 시선이 부드러웠다. 마치 할아버지가 손자를 보는 것 같았으나 당황학은 자신이 그러고 있다는 걸 전혀 몰랐다.

 

“아미파요?”

 

“그래.”

 

“거긴 여자들만 있다고 하던데요.”

 

“누가 그러더냐?”

 

“어머니가 아미파 출신이셨어요. 이화 누이도 그렇고요.”

 

“흠. 예전에는 확실히 여승들만 있었지. 그러나 지금은 남자제자들도 꽤 될 게다.”

 

“아, 맞다. 마을에 도착하면 사부님과 이화 누이에게 서찰을 보내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생각해보니 단목세가에 간 이화가 돌아오면 자신을 찾을 텐데, 그걸 알면서도 그냥 왔다. 서찰을 써놓든가 최소한 말이라도 전해놓았어야 했다. 게다가 당자기에게 답신을 하지 않았다.

 

“그래라. 하나 큰 마을이 아니면 서찰을 전해줄 사람을 찾기 힘들 거다.”

 

“큰 마을까지는 한참 가야 하나요?”

 

“며칠 가야 할 게다.”

 

“네.”

 

며칠 정도는 금방 갈 거라 생각했건만 그렇지가 않았다. 당문이 있는 성도에서 청성산까지는 관도가 잘 닦여 있어 그나마 가는 길이 편했었다. 여행이 익숙하지 않은데도 고생스럽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청성산에서 아미산으로 가는 길은 황량한 벌판을 지나고 강을 건너야 했다. 이에 마을이 없어 노숙을 할 때가 많았다.

 

늘 편하게 생활하다가 길에서 자려니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먹는 것도 부실했고, 볼일을 보고 뒤처리를 하는 것도 불편했으며, 무엇보다 제때에 씻을 수가 없어서 짜증이 났다.

 

그런데도 당황학은 틈만 나면 무공을 수련시켰고, 덕분에 큰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두 번째 비기인 비연섬(飛燕閃)을 어느 정도 해낼 수가 있었다.

 

비연섬은 땅을 박차고 순식간에 날아올라 상대의 목을 베는 일격필살(一擊必殺)의 초식이었다. 첫 번째 비기인 비연참은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며 강맹한 공격을 한다. 그러나 비연섬은 거의 수평으로 날아가 상대를 베기 때문에 강맹함보다는 빠르기가 필요했다.

 

“오늘은 여기에서 묵자꾸나.”

 

“네.”

 

당황학이 마을 외곽의 객잔에 방을 잡자 조윤은 당장에 당자기와 이화에게 보낼 서찰부터 쓰려고 했다. 그러나 뭐라고 써야 할지 막막했다. 이에 애꿎은 먹만 박박 갈다가 당황학에게 여행 일정을 물었다.

 

“사부님, 아미파에 갔다가 당문으로 돌아가나요?”

 

“아니다. 새외로 갈 거다.”

 

“그럼 언제쯤 당문으로 돌아가요?”

 

“때가 되면 갈 게다.”

 

“그때가 언제인제요?”

 

“글쎄다. 네가 하기 나름 아니더냐? 하나 지금처럼 꾀를 부린다면 열다섯 살이 되어 성인이 된다고 해도 돌아가지 못할 거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열다섯 살이 되어야 돌아갈 것 같았다. 지금 나이가 열두 살이니까 앞으로 삼 년이나 더 돌아다녀야 했다. 당문을 나올 때는 길어봐야 몇 달이라고 생각했건만, 완전히 착각이었다.

 

조윤은 우선 지금의 상황과 앞으로의 여정을 적고, 차후 다시 서신을 하겠다며 마무리를 했다. 그리고 점소이를 불러 당문에 서찰을 보내게 성도로 가는 사람들이 있나 알아봐 달라고 했다.

 

이 시대에는 아직 우편 제도가 정착되지 않았다. 그래서 서찰을 보내려면 그쪽으로 가는 여행객이나 상인들에게 돈을 주고 부탁을 하거나 노비를 보내야 했다.

 

다행히 성도는 사천의 성도이기 때문에 그리로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더구나 당문에 전해주는 거라 하니 사람들이 기꺼이 전해주겠다며 나섰다.

 

조윤은 그렇게 서찰을 보내고 하루를 푹 쉰 후에 당황학을 따라 다시 아미파로 향했다.

 

며칠 동안 딱 온 만큼 더 고생을 하자 멀리 아미산이 보였다. 아미산은 절강의 보타산, 산서의 오대산, 안휘의 구화산과 함께 불교의 사대성지로 불린다.

 

산을 오르는데 저녁 예불을 알리는 타종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그게 아미팔경 중 하나인 성적만경이었다. 알려진 바로는 산 위에서 치는 종소리가 골짜기를 타고 백 리 밖에까지 울려 퍼진다고 한다.

 

* * *

 

“저기가 아미파로구나.”

 

당황학의 말에 앞을 보니 아미파라고 적힌 편액이 걸린 정문이 보였다. 청성파와 달리 낡고 소박한 느낌이었다.

 

아미파의 시초는 비구니들이 수행을 하던 복호사라는 사찰이었다. 불교에 뜻을 두고 출가를 하였으나 힘없고 약한 여인들이라 뜻하지 않은 일을 당할 때가 많았다. 이에 하나둘씩 모여서 무공을 익히다 보니 어느새 사천무림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세력이 커졌다.

 

최근에는 아미파의 장로 중 한 명인 정절사태가 악명 높은 음흉오살(陰凶五殺)을 무릎 꿇려 단죄하고, 색마(色魔) 조종동을 삼 년 동안 추적한 끝에 목을 베어 명성이 더욱이 쟁쟁하였다.

 

문을 두드리자 잠시 후 젊은 비구니가 나왔다.

 

“아미타불. 이 늦은 시간에 어인 일이신지요?”

 

“본인은 당문에서 온 당황학이라고 하오. 정절사태를 만나고 싶소만.”

 

“용무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가서 내가 왔다고 전해주시오.”

 

“잠시 기다리십시오.”

 

그렇게 말한 젊은 비구니는 당황학과 조윤을 문 앞에 그대로 세워둔 채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비구니와 함께 왔다.

 

“빈니는 아명이라고 합니다. 당문에서 오셨다고 하던데, 무슨 일로 오셨는지요?”

 

아 자 돌림은 아미파의 일대제자였다. 계속 용무를 묻는 것은 지금 시각이 너무 늦었고, 아무래도 비구니들이 생활하는 곳이다 보니 남자를 함부로 들일 수가 없어서였다. 그나마 당문에서 정절사태를 찾아왔다고 하니까 일대제자가 나온 것이다.

 

“늦은 시간에 찾아와 실례라는 것은 알고 있소. 하나 아이와 함께 산을 오르다 보니 일찍 출발했음에도 시간이 이리 걸렸구려. 본인은 정절사태의 오랜 지기(知己)인 당황학이라고 하오. 그동안 당문에서 두문불출했으나 죽기 전에 얼굴이나 한번 보고자 찾아왔다오.”

 

“하면 혹시 무영비검 당 대협이십니까?”

 

“맞소.”

 

“이런, 무례를 범했군요. 십 년 전에 대협을 한 번 뵌 적이 있는데 세월이 너무 흘러 미처 알아보지를 못했습니다.”

 

“흠, 십 년 전이라고 하면 마검살객(魔劒殺客)이라고 불리던 광요를 쫓을 때로군.”

 

“맞습니다. 당시에 저는 무림초출이라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만약 대협께서 도와주지 않으셨더라면 정말 큰일을 당할 뻔했었지요.”

 

“그러고 보니 생각이 나는군. 그때의 그 비구니가 그대였었나?”

 

“그렇습니다. 아,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어서 들어오시지요. 너는 가서 정절 사백님께 당 대협이 오셨다고 전해라.”

 

“네.”

 

젊은 비구니를 먼저 보낸 아명은 당황학과 조윤을 안으로 안내했다. 넓은 경내를 거쳐 몇 개의 문을 지나자 곧 작은 암자가 나왔다.

 

“들어가시지요. 저는 차를 내오겠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니 나이가 지긋한 여승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었다. 아미삼절 중 한 명인 정절사태가 바로 그녀였다. 정절사태는 인자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두 사람을 반겼다.

 

“어서 오십시오, 당 대협.”

 

“오랜만이구려.”

 

“아직 정정하시군요. 옛날 그대로세요.”

 

“그대도 건강해 보이는군.”

 

당황학이 받아치는 말에 정절사태가 웃음을 흘렸다. 두 사람은 청성파의 영허진인과 함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각자의 문파와 세가를 책임지고 같은 시대를 살던 사람들이라 서로 교류가 적지 않았다.

 

“옆에 있는 아이는 누구입니까?”

 

“최근에 들인 제자요.”

 

“처음 뵙겠습니다. 단목조윤이라고 합니다.”

 

“총명해 보이는구나. 이리 가까이 오너라.”

 

조윤이 가까이 다가가자 정절사태가 유심히 얼굴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만인을 구제할 상이군요.”

 

“만인을 구제한다? 하면 영웅의 상이오?”

 

“영웅과는 조금 다릅니다. 흔히들 영웅은 난세에 난다고 하지요. 그 때문에 싫든 좋든 피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습니다. 백 명을 죽여 만인을 살리는 것, 그것이 바로 영웅입니다. 하지만 이 아이의 상에는 만인을 구제하되 살(殺)이 끼어 있지 않습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모든 사람에게 아낌없이 자비를 베푸는 보현보살과 같습니다. 하니 당문보다는 오히려 아미나 청성에 어울리는 아이입니다.”

 

정절사태는 예전부터 관상을 잘 봤다. 당황학을 처음 봤을 때도 대뜸 천하를 떠돌아다닐 운명이지만 그걸 가까운 지인이 잡아줄 거라 했었다.

 

당시에 당황학은 그 말을 가볍게 여겼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당황학은 검의 끝을 보고자 많은 사람들과 비무를 하며 오랜 세월 천하를 떠돌았었다. 그리고 그를 당문에 붙잡아 둔 것이 바로 당수백이었다. 정절사태가 했던 말이 모두 맞아떨어진 것이다.

 

“당 대협, 이 아이에게 살행(殺行)을 시키지 마십시오. 그럼 크게 후회하게 될 겁니다.”

 

“살행이라니, 당치 않소. 누가 들으면 내가 살인귀인 줄 알겠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혹시나 해서 말한 것이니 기분 나빠 하지 마십시오.”

 

“그저 덕담을 들었다 치겠소.”

 

“성격은 여전하시군요.”

 

정절사태가 웃으면서 말하고는 옆자리를 두드리며 조윤에게 말했다.

 

“이리 앉아라.”

 

“네.”

 

“당 대협도 그리 서 있지 말고 앉으시지요.”

 

“이제야 자리를 권하는군.”

 

“오랜만에 저를 찾아온 것은 이 아이 때문이지요?”

 

“그렇소.”

 

“혹여 청성파에도 들렀나요?”

 

“바로 오는 길이오.”

 

“영허와는 가끔 소식을 주고받고 있으나 본 지는 오래되었습니다. 그는 어떻던가요?”

 

“가식 떨며 지기 싫어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소. 수행이 부족한 게지.”

 

“그 성격이 어디 가나요?”

 

두 사람은 웃으면서 한참이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어디의 문파가 어떻고 세가가 어떻다느니 하는 강호의 정세에 대한 내용이라 조윤은 재미가 없었다.

 

더구나 산을 타느라 많이 피곤했던 터라 자신도 모르게 꾸벅꾸벅 졸았다. 그걸 보고 정절사태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제가 반가운 마음에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나 보군요.”

 

“괜찮소.”

 

“아이가 졸고 있습니다.”

 

“알고 있소.”

 

“못다 한 이야기는 내일 또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럼 할 말만 하리다. 내가 그대를 찾아온 것은 조윤에게 아미파의 무공을 경험시키기 위해서요.”

 

“옛날 생각이 나는군요. 그때도 이리 찾아와서 비무를 청하였었지요.”

 

“그런 걸 다 기억하고 있었군.”

 

“어찌 잊겠습니까? 비무는 또래의 아이들로 하면 되겠습니까?”

 

“그래 주면 고맙겠소.”

 

“당 대협의 제자라 기대가 되는군요. 먼 길 오셨으니 내일은 푹 쉬시고 모레 하도록 하지요.”

 

“그럽시다.”

 

당황학은 졸고 있는 조윤을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그 모습을 보니 조윤을 상당히 아끼는 것 같아 일이 생기더라도 살행을 하게 놔두지는 않을 거라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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