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비서 2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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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2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의비서 28화
제1장 당문 (3)
조윤은 그렇잖아도 안 좋던 증세가 더 심해졌다. 당효령이 옆에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밤에 잠도 자지 못했다. 한데 갑자기 그녀가 찾아오지 않자 극심한 정신 불안 증세를 보이며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살아 있는 거냐?”
인기척이 나기에 내심 당효령이기를 바랐건만 당자휘였다. 조윤은 실망감에 고개를 다시 무릎에 파묻었다.
“꼴이 그게 뭐냐? 밥은 제때 먹고 있는 거냐?”
조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만사가 다 귀찮았다. 그다지 친하지 않은 당자휘의 관심이라 더욱이 그랬다.
“효령 누이는 지금 방에 갇혀 있다. 너 때문에 어머님께 크게 혼이 났었거든. 당분간 오지 못할 거야. 누이가 그 말을 전해 달라고 해서 온 거다.”
무슨 일로 그랬는지 대충 짐작이 되었다. 단목세가가 그 지경이 되었는데 군식구나 다름없는 자신에게 딸을 줄 리가 없다. 말은 않고 있지만 파혼을 당한 거라고 봐야 했다. 당효령의 성격상 그걸 인정하지 못하고 한바탕했을 것이다.
그 마음이 고마웠으나 한편으로는 부담이 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계속 옆에 있어 주기를 바랐다. 염치가 없음에도 그녀가 필요했다.
“몸 잘 챙겨라.”
당자휘는 할 말을 다하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 단목세가에서 봤을 때와는 태도가 완전히 달랐으나 조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다음 날 생각지도 않게 당이주가 찾아왔다. 그녀는 조윤의 망가진 모습을 보고 크게 당황한 듯, 한동안 제자리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 화가 난 얼굴로 조윤의 따귀를 사정없이 때렸다.
짝!
아찔한 통증과 함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입안이 터져 비릿한 피 맛이 느껴졌다.
“일어나거라.”
조윤은 갑자기 당이주가 왜 저러는지 이유를 몰라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그러자 당이주가 서릿발 같은 기세를 내보이며 크게 소리쳤다.
“일어나라는 말이 들리지 않느냐?”
멍하니 있던 조윤은 벽을 짚고 간신히 일어났다. 순간 당이주가 다시 조윤의 뺨을 때렸다.
짝!
“어머니…….”
영문도 모른 채 두 번이나 뺨을 맞자 흐릿했던 정신이 조금 또렷해졌다. 이에 당이주를 부르자 그녀가 무서운 눈으로 쏘아보며 물었다.
“네가 누구냐?”
“네?”
“네가 누구냐고 물었다.”
“조, 조윤입니다.”
“조윤은 누구냐?”
그제야 조윤은 당이주가 어떤 대답을 원하는지 알 수가 있었다.
“단목세가의, 소가주입니다.”
“하면 뭐를 해야 하느냐?”
“모르겠습니다.”
“네 아비가 죽고, 어미가 죽고, 동생이 죽었다. 가문이 멸문지화를 당했는데 이러고 있는 이유가 뭐냐?”
“그건…….”
“죽고 싶더냐? 그들을 따라가고 싶더냐?”
조윤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왜 이러고 있는지조차 몰랐다. 모든 것이 두렵고 귀찮아서 뭘 해도 의미가 없었다.
“못난 놈.”
당이주가 이를 악물었다. 사실 그녀 역시 며칠 동안 식음을 전폐하며 제정신이 아니었다. 눈앞에서 남편과 아들이 죽는 것을 봤다. 멀쩡하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다 당자휘에게서 조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 어린것이 폐인처럼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단다.
자신은 어미였다. 조윤이 친자식은 아니었으나 지금까지 어머니라 불렸었다. 무엇보다 단목태성의 복수를 해야 했다.
당이주는 마음을 다잡았다. 깨끗하게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머리에는 예전에 조윤이 생일 선물로 준 비녀를 꽂았다. 그리고 조윤을 만나러 왔건만 생각보다 더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 모습이 안타깝고 불쌍해서 눈물이 나려고 했다.
하지만 꾹 참고 화가 난 척을 하며 크게 꾸짖었다. 따뜻하게 보듬어 줄 수도 있었으나 당이주는 그러지 않았다. 지금 조윤에게 필요한 것은 동정이 아니었다. 스스로 일어날 수 있도록 독하게 만들어야 했다.
“죽고 싶다면 지금 말해라. 네 마음이 그리 약하다면 어차피 복수는 생각도 할 수 없다. 차라리 여기에서 너를 죽이고 나도 죽을 것이다.”
“어머니…….”
조윤은 당황하며 당이주를 쳐다봤다. 자신이 죽겠다고 하면 그녀는 정말 함께 죽을 것 같았다. 눈에 독기가 서려 있었다.
“말해라. 죽고 싶으냐?”
“아닙니다.”
조윤은 힘없이 대답하며 시선을 피했다. 혼자 죽는 것은 상관없었으나 당이주까지 죽게 할 수는 없었다.
“하면 복수를 하거라.”
“저는…….”
복수라니,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능력도 되지 않고, 어찌 한다고 해도 수많은 사람들을 죽여야 했다. 조윤은 그럴 자신이 없었다.
“네가 아는 사람들이 모두 비명에 갔다. 한데 이대로 있을 거냐?”
맞다. 단목태성이 죽고, 백모연이 죽었다. 대호와 육예도 죽었고, 공소와 이두, 스승이었던 단목몽오와 단목맹찬 등 전부 죽었다.
지금까지 생각을 안 하려고 그리 노력했건만, 조윤은 치밀어 오르는 슬픔과 분노에 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헛구역질을 했다.
그제야 조윤은 자신이 지금까지 왜 이리 폐인처럼 지내고 있는지 명확히 깨달았다. 돌이켜 보면 마한에게서 단목세가가 멸문당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마음이 무너질 조짐이 보였었다. 당호명이 잔혹하게 사람들을 죽이는 것을 보고 정신 불안 증세가 나타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다 당문에 도착해서 살아남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완전히 무너져 내린 것이다.
자신은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았다. 두렵고 무서워서 버틸 수가 없었다.
조윤은 눈물을 흘리며 계속 헛구역질을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당이주의 시선에는 안타까움과 연민의 정이 가득했다. 그러나 감정을 숨기고 냉정하게 말을 뱉어냈다.
“모든 준비는 내가 할 것이다. 너는 그저 그때까지 강해지기만 하면 된다. 물론 그 역시 내가 도울 것이다. 알아들었으면 당장 씻고 오너라. 오늘부터는 여기서 함께 지낼 것이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조윤은 당이주를 봤다. 그랬다.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어차피 반쯤 놓았던 삶이니 복수든 뭐든 한번 미쳐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 * *
당문은 공손세가를 상대로 쉽게 손을 쓰지 못했다. 단목세가와 공손세가는 당문의 가신 가문들 중에서 가장 세력이 강했었다. 단목세가가 무너진 마당에 공손세가까지 무너진다면 당문의 세력이 크게 줄어든다. 그럼 기회를 노리던 세력들이 이때를 틈타 고개를 쳐들 테고, 결국 그들까지 상대를 해야 했다. 그러니 가능하다면 이번 일은 조용히 묻어야 했다.
더구나 공손세가는 인근의 군소 문파들을 전부 흡수해서 단목세가를 무너트릴 때 입었던 피해를 완전히 만회하고도 예전보다 세력이 더 커졌다. 섣불리 상대했다가는 큰 피해를 입는다.
다행히 공손세가는 내실을 다지며 더 이상 이빨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단목세가를 무너트릴 때도 당문 사람들은 건드리지 않았었다.
이에 당수백은 공손세가가 여전히 당문을 떠받들 의사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은밀하게 고수 열 명을 파견했다. 만약 공손융보가 헛된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 자리에서 죽여 버리라는 명령과 함께.
그러나 오히려 그들이 당했다. 소리 소문 없이 전부 죽었다. 공손세가에서는 그들을 상대할 만한 고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뒤에서 받쳐 주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당수백은 그들이 누구인지를 알아내고자 정보전에 힘을 쏟았다. 그러나 그들은 쉽게 드러나지 않아서 계속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아직도 알아낸 것이 없느냐?”
“경계가 철통같아서 접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십시오.”
집무실에서 당호명의 보고를 들은 당수백은 속이 답답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언제고 당문에 위기가 닥칠 것이다. 지금은 서로의 알력 다툼으로 인해 단목세가가 무너진 것으로 알고 있지만 공손세가가 당문을 집어삼키려 들면 그때는 모두가 알게 될 것이다. 가신 가문이었던 공손세가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것을.
그때 대처하면 늦는다. 누가 공손세가를 도와주고 있는지 알아내고 먼저 손을 써야 했다.
“더 시일을 끌어서는 안 된다. 어떻게든 알아내야 한다.”
“알겠습니다.”
“그럼 나가 봐라.”
당호명이 집무실을 나가자 당수백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지금의 상황을 타개할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으나 딱히 떠오르는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며칠 전에 당이주가 찾아왔던 것이 생각났다.
‘그렇군. 그런 방법이 있었군.’
“밖에 누구 있느냐?”
“네.”
마침 차를 내오던 시녀가 대답을 하며 들어왔다.
“가서 단목조윤을 불러오너라.”
“네.”
잠시 후 조윤이 왔다. 근 한 달 만에 본 조윤은 눈이 퀭하고 이전보다 더 수척해져 있었다. 뭔가에 쫓기듯 불안해하는 모습도 여전했다.
“부르셨습니까?”
“최근 무공 수련을 열심히 하고 있다지?”
당이주에게 크게 혼이 난 이후로 조윤은 하루 종일 무공 수련만 하고 있었다. 밥 먹고 볼일을 보러 뒷간에 갈 때를 제외하곤 잠시도 쉬지 않았다. 그러다 지쳐서 쓰러지는 바람에 옆에서 지켜보던 당이주가 안아서 방으로 옮긴 적도 몇 번이나 되었다.
“혹시 복수를 하려는 게냐?”
“네?”
“복수를 하고 싶은지를 묻는 거다.”
“어머님이 바라고 있습니다.”
“그럼 해라.”
“무슨 뜻입니까?”
“복수해라. 내가 도와주겠다.”
조윤은 당수백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의도를 몰라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당수백이 안타깝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며칠 전에 이주가 찾아와서 네게 무공을 가르쳐달라고 부탁을 하더구나. 내가 직접 가르칠 수는 없지만 뛰어난 스승을 소개해주겠다. 그러니 앞으로 열심히 무공을 익혀라. 차후 네가 강해지면 복수를 할 수 있도록 내가 도와주겠다. 어떠냐, 할 수 있겠느냐?”
단순히 당이주의 부탁 때문에 그러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어쨌든 무공을 가르쳐준다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하겠습니다.”
“잘 생각했다. 그리고 복수를 하고 나면 예정대로 효령과 혼례를 치르도록 해라.”
“네?”
“혹여 혼사가 깨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느냐? 나는 그리 신용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죽은 네 아비를 봐서라도 그리는 못하지.”
사실이 아니었으나 굳이 그걸 말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조윤은 당수백의 숨은 의도를 파악하기에는 아직 부족했다. 무엇보다 그럴 만한 정신적인 여유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조윤의 대답에 당수백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당수백은 공손융보가 계속 당문에 충성을 하겠다면 조윤을 넘기려고 했었다. 그러나 의중을 타진하러 간 사람들이 모두 죽자 생각이 바뀌었다.
이제는 공손세가를 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명분과 시간이었다. 공손세가가 단목세가를 멸문시켰으나 강호에서는 그걸 서로의 알력 다툼으로 보고 있었다. 그 때문에 당문이 직접 공손세가를 치는 것은 보기에 좋지 않았다.
하지만 조윤이 나선다면 달랐다. 단목세가의 후계자이니 복수를 하겠다는 명분이 선다.
우선 조윤이 힘을 기르는 동안 공손세가의 뒤를 받쳐 주는 세력을 알아내야 했다. 그리고 복수를 할 때 적극 도와줘서 공손세가가 무너지면 조윤으로 하여금 그 자리를 대신하게 할 생각이었다.
그렇게만 되면 기회를 노려 당문의 세력을 깎으려는 자들 역시 조윤이 처리할 것이다. 굳이 당효령과의 정혼을 거론한 것도 그래서였다. 데릴사위로 잡아둬야 안심을 할 수가 있었다.
혹여 공손세가의 뒤를 받쳐 주는 자들의 힘이 강해서 상대할 수가 없다면 적당히 조윤을 도와주기만 하면 된다. 당문의 평판이야 좀 떨어지겠지만 큰 피해를 입는 것보다는 나았다.
이래저래 밑지는 장사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