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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비서 26화

무료소설 신의비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2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신의비서 26화

제1장 당문 (1)

 

 

조윤은 잠시나마 방심했던 걸 크게 후회했다. 달콤한 분위기에 취해 산적들이 접근하는 걸 전혀 몰랐다.

 

다행히 얼결에 소리를 질러 산적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으나 어떻게 이 상황을 벗어나야 할지 막막했다. 어깨를 짓눌러 오는 두려움에 당장에라도 도망을 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과는 달리 침착하게 말이 흘러나왔다.

 

“그분을 함부로 대하지 마십시오.”

 

“함부로 대하면 어쩌겠다는 거냐?”

 

산적 중 한 명이 한껏 비웃음을 내보이며 물었다. 조윤은 여전히 겁이 났으나 전혀 내색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분은 당문의 아가씨입니다. 함부로 대했다가는 크게 후회하게 될 겁니다.”

 

“당문?”

 

순간 산적의 얼굴에서 비웃음이 사라졌다. 당문의 이름은 그만큼 컸다. 사천에서 당문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건 일개 산적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저 여자가 당문의 아가씨라고?”

 

“맞습니다. 가주인 당수백 님의 따님입니다.”

 

가주의 딸이라면 방계가 아닌 직계였다. 당문은 유독 은원이 확실한 가문이었다. 그들의 원한을 샀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독에 당한 자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목숨을 보전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산적들도 그리 녹록하지는 않았다.

 

“하, 우릴 바보로 아는 거냐? 저 여자가 정말 당문의 아가씨라면 어째서 호위가 한 명도 없는 거지?”

 

“삼 일 전에 단목세가가 습격을 당했습니다. 그곳에 있다가 급히 몸을 피하느라 호위들이 미처 따라오지 못했습니다. 지금쯤 당문에서 그 사실을 알았을 테니 아가씨를 찾기 위해 고수들을 파견했을 겁니다.”

 

조윤의 이야기를 듣고 산적들이 머뭇거리며 서로를 봤다. 두 사람의 행색을 보면 믿기가 어려웠으나 당문이라고 하니 아무래도 꺼려졌다. 더구나 단목세가가 습격을 받았다는 건 그들도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

 

잠시 망설이던 산적들은 일제히 한 사람을 쳐다봤다.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깡마른 체구의 사내였는데, 보아하니 그가 이들의 두목인 것 같았다.

 

“뭘 어쩌자고? 왜 날 봐?”

 

“어떻게 할까?”

 

“그냥 해 버리고 죽여 버리면 모르지 않을까?”

 

“내 생각도 그런데.”

 

산적들은 그 사내에게 허락을 구하듯이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사내가 귀찮다는 듯이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조윤을 봤다.

 

“어이, 네 말을 뭐로 증명할 거냐? 저 여자가 당문의 아가씨라는 걸 증명해 봐라. 그럼 믿어 주마.”

 

잠시 방법을 생각하던 조윤은 예전에 당예상이 비녀처럼 생긴 암기를 머리에 꽂고 있던 것이 생각났다. 이에 당효령의 머리를 보니 역시나 똑같이 생긴 비녀를 꽂고 있었다.

 

“아가씨, 그 비녀를 잠시 빌려 주시겠어요?”

 

당효령은 곧 조윤이 뭐를 하려는지 알아차리고 비녀를 빼서 건네줬다.

 

“조심해. 극독이 묻어 있으니까.”

 

“네.”

 

조윤은 비녀를 내밀며 사내에게 설명했다.

 

“들은 적이 있는지 모르겠군요. 이건 구천현녀(九天玄女)라는 암기입니다. 당문의 아가씨들은 혹시 생길 험악한 일을 대비해서 항상 지니고 다니죠.”

 

“그게 암기라고?”

 

“직접 보는 것이 나을 겁니다.”

 

조윤이 그렇게 말하면서 비녀를 겨누자 산적들이 기겁을 하면서 후다닥 몸을 피했다. 당문의 독과 암기에 대해서는 귀가 따갑게 들어왔던 터라 겁이 났다.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비녀에서 아홉 개의 침이 날아가 수풀의 나뭇잎을 뚫고 나무에 꽂혔다. 그러자 놀랍게도 나뭇잎이 순식간에 까맣게 타 버렸고, 그걸 본 산적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조윤도 막상 침을 날리기는 했지만 독이 이렇게까지 지독할 줄은 몰랐다. 이 정도의 독성이면 사람은 닿는 순간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조윤은 산적들을 향해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했다.

 

“이걸 당신들에게 쏘지 않은 건 거래를 하기 위해서예요.”

 

“거래라고?”

 

“그렇습니다. 아가씨의 신분을 안 이상 이대로 물러나야 할 텐데 그러기에는 찜찜함이 남겠죠. 그렇다고 일을 저질렀다가는 뒷감당이 두려울 테고요. 그러니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당신들은 돈이 필요하고, 마침 우리는 호위무사가 필요하던 참입니다.”

 

“네 말은 우리더러 저 아가씨의 호위를 하라는 거냐?”

 

“네. 당신들을 모두 고용하겠습니다. 당문까지만 호위해 주세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 산적들은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서로 눈치만 보며 망설였다. 그러다 두목으로 보이는 깡마른 사내를 중심으로 모여들어 한참을 숙덕거렸다.

 

“호위를 해 줬다가 나중에 우리를 죽이지 않는다고 어떻게 보장할 테냐?”

 

“절대로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네 말을 어떻게 믿느냐고?”

 

“내가 약속하겠다.”

 

그때까지 조용히 있던 당효령이 나서자 산적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 향했다. 그녀는 처음에는 겁을 먹었으나 조윤이 침착하게 산적들과 대화를 시도하자 용기를 얻었고, 이에 때를 맞춰 나선 것이다.

 

“마찬가지 아니요? 아가씨의 말을 어떻게 믿으라는 거요?”

 

“함부로 말하지 마라! 나 당효령의 이름으로 약속하겠다는 건, 가문의 명예를 걸고 약속하겠다는 뜻이다!”

 

당효령의 기백에 산적들이 주춤하며 서로를 봤다. 과연,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을 많이 부려 본 터라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상대를 찍어 누르려고 했다.

 

“좋소. 그럼 믿겠소. 돈은 일인당 금자 두 개씩이고, 당문에 도착하면 바로 주시오.”

 

“그렇게 하겠다.”

 

그제야 완전히 여유를 찾은 당효령이 생긋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생각지도 않게 산적들을 고용하게 된 조윤은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위기를 지혜롭게 넘긴 스스로가 대견하게 느껴졌다.

 

모닥불 주위에 모여 앉아 산적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니 그렇게 나쁜 사람들은 아닌 것 같았다. 예전에는 농민이었으나 먹고살기가 힘들어서 어쩔 수 없이 산적이 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사람을 죽여 본 적도 없단다.

 

조윤은 그들과 조금 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단목세가에 대한 걸 물었다. 그러자 산적들이 자신들이 들은 내용을 풀어 놓았다.

 

“듣기로는 공손세가에서 단목세가를 공격했다더군.”

 

“나도 그렇게 들었어. 인근의 방파들과 손을 잡고 습격했다던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다 죽였다더라.”

 

“잔인한 놈들.”

 

“그게 정말입니까?”

 

조윤이 놀라서 되물었다. 그러자 산적들의 두목인 마한이 모닥불을 작대기로 한 번 들쑤시면서 말했다.

 

“가주도 죽고 부인하고 아들도 죽었다는 것 같다. 오백 명이 들이닥쳐 난리를 쳤다는데 살아남았을 리가 없지.”

 

오백 명이라고?

 

단목세가의 무사는 얼추 이백 명이었다. 그리고 정예인 낙성검대는 겨우 열다섯 명밖에 되지 않았다. 한데 오백 명이 공격했다면 마한의 말대로 상대가 안 된다. 정말 다 죽었을지도 모른다.

 

“괜찮을 거야. 아직 확인된 것이 아니잖아.”

 

당효령이 위로의 말을 건넸으나 조윤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백모연과 대호, 육예 등 그가 알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모두 무사할까?’

 

하연이를 잃었던 것처럼 그들 역시 잃게 될까 두려웠다. 다시 살고자 마음먹고 지키고자 했건만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조윤! 조윤!”

 

“헉!”

 

“괜찮아?”

 

생각에 빠져 있다가 정신을 차리니 당효령이 보였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아까 했던 이야기를 다시 했다.

 

“아직 확인된 건 아무것도 없어. 지레짐작하지 마. 알았어?”

 

“네.”

 

그녀의 말대로 아직 확인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 섣불리 결정지을 필요는 없었다.

 

‘살아 있다고 믿자. 다들 살아 있을 거야.’

 

조윤은 그런 생각을 하며 작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 * *

 

이틀을 가자 배를 탈 수 있는 나루터가 나왔다. 거기서 배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멀리서 흙먼지가 일며 말을 타고 달려오는 일단의 무리들이 보였다. 때마침 배가 오고 있었으나 저들이 먼저 도착할 것 같았다.

 

“좋지 않군.”

 

마한이 그들을 보며 인상을 썼다. 느낌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기에 있다!”

 

“잡아!”

 

생각대로였다. 말에서 내린 자들이 우르르 몰려오며 칼을 뽑아 들었다.

 

“제길! 막아라! 아가씨는 어서 배에 올라타시오.”

 

마한이 그렇게 소리치면서 무기를 꺼내 들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러자 겁을 먹고 주춤거리고 있던 부하들이 얼결에 같이 뛰었다.

 

마한과 그 부하들은 모두 일곱 명이었고, 적들은 열두 명이었다. 수적으로도 불리하건만 산적들은 칼을 잘 쓸 줄 몰랐다. 순식간에 세 명이 당하자 겁을 먹은 부하들이 물러나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 여유조차 없이 앞에서 밀고 들어오니 얼결에 마구 무기를 휘둘러 댔다.

 

칼과 칼이 부딪치고, 살이 베여 나가며, 비명 소리와 고함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사공! 빨리 출발합시다!”

 

“아직 사람들이 다 타지 않았습니다.”

 

“지금 그게 문제요!”

 

나루터에서 칼부림이 나자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아우성을 치면서 빨리 떠나자고 사공을 재촉했다. 사공도 더 이상 지체했다가는 일을 당하지 싶어 빠르게 배를 출발시켰다.

 

조윤과 당효령은 배에 올라 마한과 산적 들이 피를 흘리며 싸우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계약을 맺기는 했으나 저렇게 목숨을 버려 가며 싸울 줄은 몰랐다.

 

“가자!”

 

배가 떠나는 것을 보고 마한이 소리쳤다. 남은 부하는 두 명이었다. 배를 타기 위해 물로 뛰어들다가 또 한 명이 죽었다.

 

“빨리요!”

 

조윤이 배의 후미로 와서 손을 내밀었다. 온 힘을 다해 자맥질을 해서 오던 마한이 그 손을 잡았다.

 

“푸하! 죽는 줄 알았네.”

 

“헉헉! 제길!”

 

적들은 배가 없어 화를 내며 욕만 할 뿐, 나루터에서 더 이상 쫓아오지 못했다.

 

“괜찮아요?”

 

“괜찮아. 이 정도로 죽지는 않아.”

 

“여섯 명이나 죽었수다.”

 

한 명 남은 부하가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함께 죽을 의리는 없었으나 함께 살며 호형호제하던 사람들이었다. 마음이 아팠다.

 

“사람이 줄었다고 해서 돈을 덜 줄 생각은 마시오. 여섯 명 분, 우리 둘에게 줘야 합니다.”

 

“그러겠다.”

 

당효령의 대답을 들은 마한이 부하의 어깨를 툭 쳤다. 일인당 금자가 두 개씩이었으니까 여섯 명이면 열두 냥이었다. 그걸 반씩 나누고 자신의 몫을 더하면 무려 여덟 냥이었다. 그 정도의 돈이면 굳이 더 이상 산적질을 하지 않아도 된다.

 

“반씩 나눌 테니까 힘내자.”

 

“알았수다.”

 

돈 욕심에 사내는 애써 웃었다. 조윤은 그 모습이 안타까웠으나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이후 한 차례 더 적들과 부딪쳤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스무 명 가까이 되는 적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공격해 왔다.

 

마한이 부하와 함께 좁은 나루터 다리 위에서 분투를 했으나 중과부적(衆寡不敵)이었다. 남은 부하마저 죽고 마한은 팔을 크게 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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