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비서 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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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4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의비서 25화
제10장 최선 (3)
곽우가 그들을 향해 빠르게 거리를 좁혔다. 그러나 두 사람은 기세가 꺾인 터라 반응이 늦었다. 다급하게 칼을 휘두르려는 찰나에 곽우의 검이 베고 지나갔다.
여섯 명을 순식간에 해치운 곽우는 몸을 돌려 달아났다. 사람들이 아우성치는 소리와 함께 골목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그 수가 얼추 스무 명이 넘었다. 아무리 곽우가 강하다 해도 그들 모두를 상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제길!”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했다. 세가 근처에 저렇게 많은 적들이 몰려 있다는 것은 두 가지 경우였다.
첫째는 적들의 주력이 아직도 세가를 공격하고 있고, 저들은 예비로 남겨진 자들일 경우다. 그리고 둘째는 세가가 이미 무너져서 저들이 도망친 자들을 처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어느 쪽이든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첫째의 경우라면 적들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뜻이다. 그럼 세가가 상대하기 버거울 수도 있으나 상황을 지켜볼 여지는 있었다. 하지만 둘째라면 세가로 돌아가는 것은 포기해야 했다.
다행인 건 소가주인 조윤이 밖에 나와 있을 때 일이 터졌다는 것이다. 설령 세가가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한다고 해도 조윤만 살아 있다면 어떻게든 훗날을 기약할 수가 있었다.
‘내 임무는 소가주의 호위다.’
곽우는 어깨가 무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빠르게 골목을 빠져나갔다. 그렇게 수민 자매의 집 근처에 도착하자 혹여 뒤를 쫓아오는 자들이 없는지 주위를 살폈다.
아직까지 이곳은 조용했다. 집 안으로 들어가자 조윤이 벌떡 일어났다. 그는 곽우가 오지 않을까 계속 걱정했었다.
“무사했군요.”
“어서 이곳을 떠나야 합니다.”
“상황이 많이 안 좋나요?”
“적들의 수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우선은 몸을 피한 후에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다들 괜찮을까요?”
“지금 확인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지만 세가의 무사들이 녹록하지 않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될 겁니다.”
조윤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으로서는 모두가 무사하기를 바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곽우의 말대로 상황이 진정될 때까지 우선은 어딘가에 숨어 있어야 했다.
“어디로 가죠?”
“당문으로 가야 합니다. 그들이 감히 당문까지 쫓아오지는 못할 겁니다. 하지만 적들이 예상하고 길목을 막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럼 어쩌죠?”
“우선은 현을 벗어나서 배를 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북천현은 교통이 발달하지 않아 좁은 길밖에 나 있지 않았다. 그래서 배를 타거나 넓은 관도를 이용하려면 현 밖으로 한참이나 나가야 했다.
“알았어요. 그럼 그렇게 해요.”
그렇게 결정을 하고 집 밖으로 나오는 순간, 모두가 그 자리에서 굳었다. 적어도 오십 명 이상 되는 적들이 인근을 완전히 포위하고 있었다.
곽우는 검을 뽑아 들며 이를 악물었다. 자신은 죽더라도 조윤만큼은 어떻게든 살려야 했다. 이에 주위를 빠르게 훑어보며 방법을 생각하려는데 눈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공손세가의 무사 중 한 명인 주보였다. 일전에 단목세가의 총회 때 그는 가주인 공손융보와 소가주인 공손이수를 호위해서 왔었다.
‘설마, 공손세가가 일을 벌였단 말인가?’
쉽게 믿기지가 않았다. 공손미부 사건은 당문에서 중재를 했다. 공손세가에서 손해를 좀 보기는 했으나 합당한 대가를 치른 것뿐이었다. 공손융보 역시 그걸 알고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았던가?
“공손세가에서 이리 나올 줄은 몰랐군. 당문에서 이 사실을 알고 가만히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요?”
“언제까지 당문의 눈치를 보고 살 생각인가? 이제는 당문을 넘어설 때가 되지 않았는가?”
확인할 요량으로 곽우가 크게 소리치자 주보가 비릿하게 웃으면서 대꾸했다.
역시나 공손세가가 일을 벌였다. 당문을 넘어선다고 저리 장담하는 걸 보니 준비를 단단히 한 모양이다. 이는 뒤에서 누군가가 공손세가를 받쳐 주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 자신감이 당문을 만나고 나서도 계속될 수 있을지 궁금하군.”
“말했지 않나? 이제는 당문을 넘어서야 할 때라고.”
“그 전에 나부터 상대해야 할 거요!”
곽우가 소리치면서 조윤과 당효령을 집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걸 보고 주보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도망치려고 한다! 잡아라!”
주위에 있던 사내들이 칼을 들고 집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입구를 지켜선 곽우가 사납게 검을 휘두르자 가까이 접근하지 못했다.
얼결에 집 안으로 들어온 조윤은 크게 당황했으나 곧 마음을 가라앉혔다. 당효령을 힐끗 보니 그녀는 겁을 먹어 얼굴이 창백했다.
조윤은 그녀를 안정시켜 주고 싶었으나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손을 잡고 다독였다.
손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자 당효령이 잠시 조윤을 보다가 생긋 웃었다. 여전히 지금의 상황이 두려웠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했다.
“조윤 님, 이쪽이에요.”
“응?”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수문이 벽에 난 구멍으로 기어 들어오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설명할 시간 없어요. 어서요.”
조윤은 곽우 때문에 선뜻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자 수문이 소매를 잡아끌며 재촉했다.
“빨리요.”
더 이상 망설일 수가 없었다. 곽우가 걱정되었지만 계속 우물쭈물하다가는 당효령은 물론이고 수문까지 위험해진다.
“이리로요.”
벽에 난 구멍을 통해서 밖으로 나오자 수문은 바로 옆에 있는 집으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예전에 조윤이 치료해 줬던 사람이 살고 있었다.
“이쪽입니다. 부디 무사하십시오.”
조윤은 수문을 따라 몇 번이나 인근의 집을 통해서 이동했다. 그때마다 사람들이 조윤을 향해 무사하기를 빌었다. 비록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이었으나 도움을 받은 사람들의 수가 적지 않았다. 더구나 사람 취급 받지 못했던 천민이건만, 조윤은 아무 조건 없이 치료해 줬었다. 금수가 아닌 이상 어찌 그 은혜를 잊을까?
해서 단목세가에 일이 생겨 조윤이 쫓기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사람들이 너도나도 돕고자 나선 것이다.
빈민가는 집이 따닥따닥 붙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이동하니 밖에서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곧 성문이 나왔으나 거기에도 수상쩍어 보이는 자들이 배회하고 있었다.
수문은 그리로 가지 않고 성벽을 따라가다가 수풀이 우거진 곳에서 멈춰 섰다.
“조윤 님, 무사하셨군요.”
노심초사하며 기다리고 있던 수민이 조윤을 보고 반겼다. 그녀는 진심으로 걱정한 듯 눈물을 글썽거렸다. 옆에는 며칠 전에 조윤이 병을 치료해 줬던 중년 사내가 함께 있었다.
“고마워요. 덕분에 살았어요.”
“아니에요. 그동안 조윤 님에게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 아주 작은 일인 걸요. 그리고 저 혼자 했나요, 뭐. 사람들이 다 도와줘서 된 거죠. 이거 받으세요.”
수민이 내민 것은 작은 보따리였다.
“뭐죠?”
“가면서 먹을 것하고 옷이에요. 급하게 준비하느라 좋은 것은 구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오히려 사람들 눈을 속일 수가 있을 거예요.”
맞는 말이었다. 변복하면 적들이 쉽게 알아볼 수 없었다.
“고마워요.”
“아니에요. 어서 가세요. 이리로 가면 밖으로 나갈 수 있어요.”
수풀 뒤에는 성벽을 몰래 드나들 수 있는 구멍이 나 있었다. 성문을 통해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은밀하게 이용하는 곳이었다.
“서쪽으로 삼 일 정도 가면 강이 나올 거요. 거기서 배를 타고 성도로 가시오. 혹여 도움이 필요하면 마가장으로 가시오. 초일이 보냈다고 하면 약간이나마 도움을 줄 거요.”
중년 사내의 말에 조윤이 포권하며 인사를 했다.
“고맙습니다.”
“받은 게 있으니 줄 뿐이오.”
표정이나 말투는 무뚝뚝했으나 조윤은 그 안에 담긴 고마움을 느꼈다.
“수민 누님, 곽우 아저씨한테 먼저 당문으로 가 있겠다고 전해 주세요.”
“네,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다시 한 번 인사를 나눈 후 조윤은 당효령과 함께 성벽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서쪽을 향해 드넓은 평야를 가로질러 갔다. 첫날은 거기에서 노숙을 했다. 나뭇가지를 주워 불을 피우고 당효령과 돌아가며 불침번을 섰다.
그다음 날은 산에서 지내야 했다. 보기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막상 산을 넘으려니 시간이 많이 걸려 얼마 오르지 않아 해가 저물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뒤쫓아 오는 자들이 없었다.
“오늘은 여기에서 밤을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응.”
조윤은 불을 피우고 잘 곳을 만들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동안 당효령은 앉아서 아픈 다리를 주물렀다. 지금까지 그녀는 이렇게까지 목숨을 위협당한 적도 없었고, 고생을 해본 적도 없었다. 만약 조윤마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내일 하루만 더 가면 강에 도착할 거예요.”
대답을 하는 당효령은 힘이 없었다. 그러자 조윤이 웃으면서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가씨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당문까지 보내 드릴게요.”
“효령.”
“네?”
“효령이라고 불러.”
당효령이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 말했다. 그렇잖아도 예쁜데 그런 모습을 보니 조윤은 심장이 크게 뛰었다. 모닥불 때문에 은은하니 분위기도 좋았다. 이에 용기를 내서 가만히 당효령의 손을 잡고, 입을 맞췄다.
전혀 생각지도 않은 일이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멍하니 굳어 있던 당효령은 입안으로 말캉한 혀가 들어오자 놀라서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아, 미안해요.”
조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며 사과했다.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자신도 모르게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계속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무를 좀 더 주워 올게요.”
그러나 조윤은 발을 떼지 못했다. 언제 왔는지 수풀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내들 때문이었다. 생긴 것이 험악하고 옷차림이 지저분한 걸 보니 공손세가 사람들은 아니었다.
“오호, 이것 봐라. 어느 집 아가씨인가?”
“어이, 순서는 지켜라.”
“당연하지.”
사내들이 음흉한 눈빛으로 당효령을 아래위로 훑어봤다. 그 시선이 징그러워 당효령은 몸을 흠칫 떨었다.
‘산적들인가?’
조윤의 예상대로였다. 그들은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의 주머니를 털어서 생활하는 산적들이었다.
비록 조윤이 무공을 배웠다지만 실전 경험이 전혀 없었고, 이제 열 살이었다. 당효령도 몸을 건강히 하는 정도로만 무공을 배웠다.
무엇보다 산적들은 무려 일곱 명이나 됐다. 산 넘어 산이라더니, 조윤은 답답함과 두려움에 몸이 떨려 왔다. 그러나 이대로 넋 놓고 있다가는 당하고 만다.
“조용히 가랑이만 벌려주면 죽이지는 않겠다.”
“지나가는 개한테 물렸다고 생각하라고.”
산적들은 조윤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채 당효령에게 천천히 접근했다.
조윤은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 주먹을 꽉 움켜쥐고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멈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