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비서 19화
무료소설 신의비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3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의비서 19화
제8장 선택 (1)
공손미부는 말을 타고 달리면서 품에 안고 있는 단목순명을 봤다. 상황이 어떤지도 모르고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단목순명의 모습에 정을 통했던 사내의 모습이 겹쳐졌다. 그러자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이제 조금 후면 그를 볼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드러났으니 더 이상은 단목세가에 있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공손세가로 갈 수도 없으니 그와 함께 떠나는 것이 최선이었다.
사실 공손미부는 오래전부터 그러기를 원했었다. 그래서 오히려 일이 이렇게 된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대로를 따라 계속 달리자 대나무 숲이 나왔다. 말에서 내린 공손미부는 단목순명과 함께 숲 안쪽으로 들어갔다.
때마침 앞에서 그가 다가왔다.
“어찌 된 일이오? 오늘은 만나기로 한 날이 아니지 않소?”
“모든 게 다 드러났어요. 함께 도망쳐요.”
“그게 무슨 말이오?”
사내가 당황하며 되물었다. 그러자 공손미부가 간략하게 사정을 설명했다.
“하아……. 그랬구려. 미안하오. 전부 내 탓이오.”
“아니에요. 차라리 잘되었어요. 우리 이대로 도망쳐요.”
“그러기에는 이미 늦었소.”
“네?”
순간 공손미부의 눈이 커다래졌고 사내가 검을 뽑아 휘둘렀다. 피가 튀며 공손미부가 뒤로 밀려났다.
“당신이 왜…….”
사내가 다시 검을 휘두르려고 할 때였다. 공손미부를 바짝 따라오던 단목몽오가 크게 외치면서 날아왔다.
“멈춰라!”
쐐에에엑! 콰앙!
뭔가에 부딪쳐 검이 튕겨 나갔다. 무형검기(無形劍氣)였다. 사내는 방금 검을 놓친 충격으로 손이 덜덜 떨렸다. 이대로는 싸울 수도 없었고, 싸울 수 있는 상대도 아니었다. 검기를 쓰는 사람을 이길 정도로 그의 무공은 뛰어나지 않았다.
사내는 몸을 돌려 도망쳤다.
“쫓아라!”
단목몽오는 뒤따라온 낙성검대의 대원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공손미부의 상처를 살폈다. 가슴을 베여서 급히 손을 쓰지 않으면 위험했다.
“잠시 실례하겠소.”
단목몽오는 일단 점혈을 해서 피의 흐름을 늦췄다. 그리고 상처를 보기 위해 상의를 찢자 가슴이 드러났다. 다른 때 같았으면 훨씬 조심스러웠을 것이나 지금 그녀는 죄인이나 다름없었다.
지혈제를 뿌리고 상처를 싸매는 동안 공손미부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녀는 사내가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 * *
어두운 방.
밖에서 누군가가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지자 침상에서 잠을 자던 단목태성이 번쩍 눈을 떴다.
“가주님, 곽우입니다.”
“들어오라.”
곽우는 조용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단목태성이 누워 있는 침대 앞에 섰다.
“그가 있더냐?”
“없었습니다. 급히 떠난 것 같은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음……. 그가 이렇게 악독하게 굴 줄은 몰랐구나.”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아직 멀리 가지는 못했을 겁니다. 사람을 풀면 찾을 수 있습니다.”
“찾아서 어쩌겠느냐? 너를 보낸 것은 단지 그의 소행인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다.”
“이후 다시 그 같은 짓을 할지도 모릅니다.”
“그는, 내 형님이다. 나보고 형님을 죽이라는 말이냐?”
“가주님께서는 이미 많은 것을 양보하셨습니다.”
“내 입장에서 보면 그렇겠지. 형님의 입장에서 보면 가주의 자리를 빼앗긴 것이 아니더냐?”
“가주님.”
사실 단목태성에게는 형이 한 명 있었다. 그러나 그는 모든 면에서 단목태성보다 못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의 지지를 얻지 못했고, 심지어 부모들조차도 그가 아니라 단목태성에게 세가를 맡기고자 했었다.
결국 단목태성이 가주가 되었고, 그날 그는 아무도 몰래 사라졌다. 이후 모습을 보인 건 십 년도 넘어서였다. 곽우가 공손미부의 뒤를 캐다가 우연히 그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단목태성은 늘 형에게 미안해했었다. 형이 가져야 할 것을 자신이 모두 가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손미부와 형이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선뜻 나서지 못했었다.
“됐다. 그 일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물러가라.”
“명을 받듭니다.”
곽우는 안타까운 얼굴로 방에서 나왔다. 단목태성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이대로 그를 놓쳤다가는 훗날 크게 당할 수도 있었다. 그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내였다.
* * *
세가가 어수선했다. 총회 때의 일이 일파만파 퍼지면서 곧 공손세가와 전쟁을 할 거란 소문이 돌았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세가의 무사들이 바짝 긴장한 채 다녔고, 외부에 나가있던 이들이 전부 돌아오고 있었다. 그 와중에 도망쳤던 공손미부가 단 하루 만에 잡혀 오자 공손세가와 금방이라도 한판 붙을 듯이 긴장감이 흘렀다.
조윤은 그런 분위기와는 상관없이 이두와 공소를 만나 회포를 풀고 있었다.
“저는 아저씨가 죽은 줄로만 알았어요.”
“이제는 말을 놓으셔야 합니다.”
이두가 공손히 대답하자 조윤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동안 보살핌을 받은 은혜가 있는데 어떻게 그러겠어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대할 겁니다.”
“그러지 마십시오. 저같이 천한 사람에게 그리 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거기에서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궁금해요. 여기는 어떻게 왔는지도요.”
조윤이 화제를 돌리자 이두는 그때의 일이 생각나는지 표정이 어두워졌다.
“당시에는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 등을 베여서 피를 많이 흘렸습니다. 눈을 떠보니 여기 공소 무사님이 저를 구했더군요.”
“이제야 하는 이야기지만 솔직히 버리고 가고 싶었네.”
공소의 농담에 이두가 히죽 웃었다. 그만큼 두 사람은 예전과 달리 격의가 없을 만큼 친했다.
“공소 아저씨, 대호와 육예는 무사한가요?”
“무사합니다.”
“그럼 함께 온 겁니까?”
“아닙니다. 위험할 것 같아 제가 아는 사람에게 잠시 부탁을 해 놓았습니다. 둘째 가모님은 세가 내에 세력이 없습니다. 대공자를 보호하기에도 급급할 텐데 약점이 될 수도 있는 아이들을 데리고 올 수는 없었습니다. 만약 일이 이렇게 잘 풀리지 않았다면 그대로 아이들을 다른 곳으로 보낼 생각이었습니다.”
“대호와 육예를 인질로 잡고 저를 협박할까 봐 걱정한 거로군요.”
“그렇습니다. 둘째 가모님도 그 점을 염려하셨습니다.”
“그럼 이제는 볼 수가 있겠군요.”
“지금은 세가가 어수선하니 차후에 안정되면 제가 데리고 오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생각해 보니 그랬다. 곧 공손세가와 싸우게 될 텐데 대호와 육예가 여기에 있으면 위험할 수도 있었다.
“알겠어요. 그럼 그렇게 해요.”
“믿을 만한 사람에게 맡겨 두었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대호와 육예를 구해 줘서 고마워요.”
“아닙니다. 대호는 내 제자이기도 하니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공소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대호에게 무공을 가르치기로 한 건 어디까지나 조윤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였다. 그저 몇 수 가르쳐 주고 끝내려고 했는데 조금 가르쳐 보니 의외로 재능이 있었다. 이에 정식 제자로 삼고 적극적으로 가르치는 중이었다.
“공손세가는 어떤 곳인가요?”
“뭐가 궁금하신 겁니까? 혹시 단목세가가 그들에게 질 걸 염려하는 겁니까?”
“그런 걱정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마 적당한 선에서 끝날 겁니다.”
“적당한 선이요?”
조윤이 되묻자 공소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는 무림인이라서 이런 일이 어떻게 해결되는지 여러 번 봐 왔었다.
“그렇습니다. 원래 무림에서는 일이 생겼을 경우 비무로 해결합니다. 굳이 서로 죽고 죽이며 원한을 쌓을 필요가 없지요. 해서 비무를 통해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고 끝냅니다. 하지만 원한이 깊을 경우는 사생결단을 내는데 그런 걸 전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묻는 겁니다. 아버님이 공손세가와의 전쟁에 대비하라고 지시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건 말 그대로 대비입니다. 이쪽에서 공격을 하지 않는 한 공손세가는 먼저 공격을 하지 못할 겁니다. 공손세가에는 명분이 없습니다. 셋째 가모가 공손세가 사람이라지만 출가외인입니다. 더구나 그런 부도덕한 짓을 저질렀는데 감싸줬다가는 명예가 땅에 떨어질 겁니다. 설사 전쟁을 한다고 해도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어떻게든 적당한 선에서 이번 일을 무마시키려고 할 겁니다. 그렇지 않고 전쟁을 한다고 해도 당문에서 중재하겠죠. 당문의 입장에서는 집안싸움이니 말릴 수밖에 없습니다.”
들어 보니 일리가 있었다. 조윤은 괜한 걱정을 한 것 같아 머리를 긁적였다.
* * *
다시 총회가 열렸다. 부상을 당한 공손미부가 끌려 나왔으나 그녀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때 대전으로 곽우가 들어서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공손융보가 왔습니다.”
잠시 웅성거림이 일었지만 날카로운 인상의 노인이 두 명의 사내들과 함께 대전으로 들어서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해졌다.
공손융보와 그의 아들인 공손익수, 그리고 호위로 따라온 주보였다. 공손융보는 멍하니 의자에 앉아 있는 공손미부를 보고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하나 곧 본체만체하고 단목태성에게 다가갔다.
“오랜만에 보는군. 쾌차했다는 소식은 들었네.”
“이곳에 무슨 일입니까?”
“딸아이가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하더군. 말을 돌려서 하질 못하니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네. 원하는 것이 뭔가?”
공손융보가 먼저 숙이고 나올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에 모두들 그와 단목태성을 번갈아 보며 숨을 죽였다.
“나는 미부를 살려둘 생각이 없습니다.”
단목태성의 대답을 듣고 공손익수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러자 공손융보가 그를 진정시키며 단목태성을 향해 다시 물었다.
“정녕 그래야 하는가?”
“내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는 겁니까?”
“딸아이를 살려주게. 그럼 이후 십 년 동안 단목세가가 하는 일에 일체 간섭하지 않겠네. 또한 당문에 이야기해서 성도(成都)의 상권을 모두 넘기겠네.”
“아버님!”
공손익수가 놀라서 공손융보를 불렀다. 아무리 공손미부를 살리기 위해서라지만 내놓는 것이 너무 과했다. 현재 성도의 상권은 당문에서 반을 관리하고 있었고, 나머지 반을 단목세가와 공손세가에서 나눠서 관리하고 있었다. 그걸 넘겨주겠다는 건 성도에서 완전히 발을 빼겠다는 뜻이었다.
그럼 당연히 공손세가의 입지가 좁아지고, 세가의 재정도 힘들어진다. 성도의 상권에서 나오는 수익은 공손세가가 거둬들이는 총수익의 삼 할에 해당했다.
단목태성 역시 공손융보가 이렇게 큰 것을 내놓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동시에 ‘왜?’라는 의문이 들었다.
공손융보는 차라리 공손미부를 죽였으면 죽였지 이렇게 큰 손해를 감수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 이유를 잠시 생각하던 단목태성은 곧 짚이는 것이 있었다. 딸을 지극히 아끼는 모습을 보여주면 아무도 그가 뒤에서 이번 일을 시켰다고는 생각하지 못할 것이고, 그럼 결국 공손미부 혼자서 한 일이 되어버린다.
“이번 일은 그렇게 덮을 수가 없습니다.”
“다시 생각해보게.”
공손융보가 재차 말했으나 단목태성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공손융보가 허리에 차고 있던 도(刀)를 순식간에 뽑아서 공손미부를 향해 휘둘렀다.
그가 갑자기 그렇게 손을 쓸 줄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이에 모두들 반응이 조금 늦었으나 비도를 날려 공손융보의 칼을 막아낸 사람이 있었다.
땅!
“크윽!”
공손융보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 소리가 났다. 비도에 실린 힘이 굉장해서 하마터면 칼을 놓칠 뻔했다. 더구나 비도는 그의 가슴으로 날아왔었다. 만약 제때에 쳐내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심장에 꽂혔을 것이다.
“누구냐?”
공손익수와 주보가 칼을 뽑아 들고 비도가 날아온 방향을 봤다. 그리고 자신들도 모르게 똑같이 외쳤다.
“이 공자!”
비도를 날린 건 당문의 차남인 당자휘였다. 그는 올해 열다섯 살로, 갓 성인이 되었다. 또한 생긴 것이 곱상해서 여자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그의 옆에 서 있는 비쩍 마른 체구의 중년인은 당순량이었다. 그는 당문의 최정예인 당가십이비(唐家十二匕) 중 일인(一人)이었고, 비도술에 있어서는 타의추종을 불허한다는 고수였다. 방금 공손융보를 향해 비도를 날린 것도 그였다.
“다행히 제가 늦진 않았군요.”
“이곳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공손융보가 놀란 기색을 감추면서 묻자 당자휘가 웃으면서 그를 봤다. 당자휘는 나이는 어렸으나 그 심중을 알 수가 없을 때가 많았다. 나긋나긋하니 웃는 모습 뒤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어낼 수가 없었다.
당문의 장자인 당신우와는 그런 면에서 굉장히 달랐다. 당신우는 천생이 무인이었다. 우직하고 강직해서 숨김이 없고 화통했다.
그 두 사람을 놓고 당문에서도 파벌이 나뉘어져 있었다. 단목태성은 당신우를 지지했고, 공손융보는 당자휘를 밀어줬다. 하니 당자휘가 이 자리에 나타난 것은 결코 우연이라고 볼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