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비서 4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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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6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의비서 46화
제8장 화설린 (2)
조윤은 좀 더 포탈랍궁에 머물면서 당황학의 상태가 호전되면 움직이려고 했다. 한데 당황학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다. 그렇잖아도 오늘 떠나려고 했었는데 탐라가 어제 와서 조윤이 커다란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자, 완전히 마음을 굳힌 것이다. 결국 아침 일찍 탐라에게 인사를 하고 그곳을 나왔다.
“다음 목적지가 마지막이구나. 그곳에 들른 후에는 당문으로 돌아가자꾸나.”
“거기가 어딘데요?”
“북해란다.”
“북해요?”
“그래. 사시사철 겨울만 있는 곳이다. 대막과는 정반대지.”
“꼭 가야 하나요?”
조윤은 당황학의 건강이 걱정되었다. 그렇게 추운 곳이면 안 가는 것이 좋았다. 환자에게 찬바람은 독과 같았다.
“가야 한다. 애초에 계획한 대로 여정을 끝마쳐야 한다. 게다가 반드시 가야 할 이유가 있다.”
“그게 뭔데요?”
당황학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에 슬쩍 표정을 살피니 늘 그렇듯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문득 짚이는 것이 있었다.
‘혹시 여자인가?’
조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느낌은 그런 것 같은데 당황학에게 여자가 있다는 것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 이에 다시 당황학을 보자 그가 인자하게 미소를 지었다.
서장에서 북해까지 가는 길은 꽤 멀었다. 더구나 날씨가 점점 추워지니 당황학의 건강이 더욱이 안 좋아졌다. 기침이 잦았고, 나중에는 오래 걷지도 못했다. 그 때문에 한동안 쉬었다가 가려고 했으나 당황학이 반대를 했다.
고민을 하던 조윤은 작은 수레를 하나 사서 거기에 당황학을 태우고 끌고 다녔다. 처음에는 그게 굉장히 고되었으나 나중에는 단련이 되면서 차츰 익숙해졌다. 그러자 하체의 힘이 더욱이 강해졌고, 내공을 장시간 동안 쓰는 방법도 알게 되었다.
“오늘은 여기에서 묵어야 할 것 같아요. 강이 아직 완전히 얼지 않아서 건널 수가 없대요.”
조윤의 말에 당황학이 고개를 끄덕였다. 북해에 들어서고 나서는 굉장히 추웠으나 요 며칠간은 약간 따뜻했었다. 그 때문에 아직 강이 얼지 않아서 건널 수가 없었다.
객잔 안은 사람들로 붐볐다. 그들 모두가 강이 얼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
조윤은 당황학을 부축해서 중앙에 불을 피워놓은 곳으로 갔다. 그러나 그 근처는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실례인 것은 알지만 할아버님의 건강이 좋지 않아서 그러니 자리를 좀 양보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럼 사례는 충분히 하겠습니다.”
조윤이 그렇게 말하자 장사꾼으로 보이는 중년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쪽으로 오너라. 사례는 필요 없다. 보아하니 아직 어린 것 같은데 할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이 크군.”
“자리를 양보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주인아저씨! 돈은 제가 낼 테니 좋은 술이 있으면 이분께 한 병 주세요.”
이렇게 추운 날은 독한 술이 최고였다. 조윤도 그걸 알기에 중년인에게 술을 대접하려는 것이다.
“호오, 나이는 어려도 제법 패기가 있구나.”
“보기에 좋은걸.”
사람들이 조윤을 칭찬하며 당황학과 앉을 수 있게 조금씩 옆으로 비켜 줬다. 조윤은 그들에게도 술을 한 잔씩 돌리며 거듭 인사를 했다.
그렇게 자리를 잡고 앉자 조윤은 당황학의 맥을 잡아 봤다. 기력이 많이 쇠약해진 상태라 더 이상의 여행은 무리였다. 그런데도 당황학은 계속 고집을 부렸었다.
물론 왜 그런지는 조윤도 알고 있었다. 당황학은 이제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것을 알기에 북해에 가서 마지막으로 할 일을 하려는 것이다.
애초에 이번 여정의 끝은 북해였다. 그러나 조윤은 북해가 아니라 당문까지 이어지기를 바랐다. 당황학이 타지에서 죽게 놔둘 수는 없었다. 그 때문에 밤낮으로 기라독해를 연구하며 방법을 찾았고, 약간의 성과도 있었다.
다만 방법이 좋지 않았다. 당황학의 건강이 너무나 나빠지자 결국 독을 써서 버티게 한 것이다. 당황학이 힘든 걸 알면서도 조금이라도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럼 둘째 공자가 옳다는 뜻이오?”
“누가 그렇다는 건가? 단지 누구에게나 각자의 사정이 있다는 것이지.”
사람들 틈에서 누군가가 크게 소리치자 모두가 그쪽을 봤다. 한데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언성을 높였다.
“나는 인정할 수 없소. 생각해 보시오. 지금 북해가 이리된 것이 누구 때문이오?”
“허, 사람 참. 목소리 좀 낮추게나.”
“내가 못할 말을 하는 것도 아니지 않소.”
큰소리를 치고 있는 건 젊은 사내였다. 보아하니 끓어오르는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를 달래면서 이야기를 하는 사내는 그보다 나이가 많았는데, 연륜이 있어서 그런지 동조를 하면서도 자제심을 잃지 않았다.
“뭐 때문에 저러는 거죠?”
조윤이 옆 사람에게 묻자 그가 한숨을 푹 내쉬면서 이야기를 했다.
“북해신궁 때문에 저러는 거란다.”
“북해신궁이 왜요?”
“북해신궁은 지금 첫째 공자와 둘째 공자가 궁주의 자리를 두고 다투고 있단다.”
“궁주가 없나요?”
“너는 이곳 사람이 아닌가 보구나.”
“네, 중원에서 왔어요.”
“그래서 몰랐던 거로군. 궁주님은 지병 때문에 모든 일을 첫째 공자와 둘째 공자에게 맡겨놓고 일체 간섭을 않고 있다. 몇 년째 그러다 보니 서로 뜻이 맞지 않아 대립하는 일이 잦아졌고, 결국 지금에 와서는 철천지원수처럼 되었지.”
의외의 정보를 접하게 된 조윤이 당황학을 봤다. 그러자 당황학이 이야기를 들려준 사내에게 물었다.
“혹시 마강이라는 사람을 아시오?”
“어찌 모르겠소. 한때 북해의 최고수라고 알려졌던 분이 아니오?”
“맞소. 북해신검(北海神劍)이라고 불렸던 사람이오.”
“하지만 그것도 옛말이라오.”
“무슨 일이 있었소?”
“그의 제자 중에 염장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가 이제는 북해최고수라오.”
“마강은 어찌 되었소?”
“염장이 폐인으로 만들어서 북해신궁에서 내쫓았다오. 말은 정당한 비무라고 하는데 실상 의혹이 많다오. 하지만 당사자인 마강이 아무 말 않고 있고, 염장도 당연하다는 듯이 여기고 있으니 누가 뭐라 하겠소?”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당황학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북해까지 와서 만나려고 했던 사람이 바로 마강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알기로 마강은 그리 쉽게 당할 사람이 아니었다. 달리 북해의 최고수라고 불렸던 것이 아니었다. 필시 뭔가 곡절이 있을 터였다.
* * *
조윤은 당황학에게 줄 약을 달이다가 누군가가 기침을 하자 그를 힐끗 봤다. 사람 좋게 생긴 중년 남자였다. 그냥 모른 척하려고 했으나 기침을 너무 심하게 해서 그럴 수가 없었다.
“기침이 심하시네요.”
“그러게 말이다. 작년부터 이러더니 쉽게 멈추지를 않는구나.”
그는 조윤을 크게 경계하지 않았다. 나이도 어렸고, 객잔에 들어왔을 때 자리를 양보 받으면서 보인 호탕함 때문이기도 했다.
“제가 잠시 진맥을 해봐도 될까요?”
“네가 의술을 안단 말이냐?”
“조금은요.”
“나는 네게 줄 돈이 없단다.”
“아니요. 돈은 안 주셔도 돼요.”
“그래도 되겠냐?”
“실력은 없지만 그래도 아저씨는 공짜로 진맥을 받을 수 있으니까 좋은 거고, 저는 덕분에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거니까 서로 상부상조하는 거죠.”
“하하하. 들어보니 그렇구나. 그럼 어디 한번 진맥을 해보아라.”
그가 크게 웃으면서 승낙을 하자 조윤은 가까이 다가가서 맥을 잡았다. 그러더니 곧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뗐다.
“폐병은 아니에요. 다만 차가운 곳에 너무 오래 있어서 한기(寒氣)가 폐로 스며들었어요. 따뜻한 남쪽으로 가면 금방 낫겠지만 그게 안 될 테니, 아침저녁으로 따뜻한 물을 마시세요. 그리고 항상 코와 입을 가리고 다니시고요. 그것만 지키셔도 기침이 많이 줄어들 거예요.”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구나. 한데 정말 그것만 해도 되는 거냐? 예전에 의원에게 갔더니 약을 지어 먹으라고 하더구나. 그래서 몇 첩 지어서 먹었는데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
“아마 그 의원이 지어준 약은 원기를 돋워주고 폐를 보호해주는 한편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열양지탕(熱陽之湯)이었을 거예요. 근본적인 원인이 치료가 되지 않았는데 약을 먹어봐야 소용이 없어요. 아까도 말했듯이 아저씨는 한기를 너무 들이마시며 살았어요. 그 때문에 폐가 상해서 기침이 나오는 거예요. 열양지탕으로 몸을 따뜻하게 할 수는 있겠지만 잠시뿐이라서 차가운 기운을 계속 마시는 한, 기침은 없어지지 않을 거예요. 그러다 병세가 심해지면 피를 토하고 죽을 수도 있어요.”
조윤이 알아듣기 쉽게 이야기하자 사내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기침이 나는 것 말고는 불편한 것이 없어서 지금까지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건만 들어보니 빨리 치료를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럼 정말 따뜻한 물을 먹고 코와 입만 가리고 다녀도 치료가 되는 거냐?”
“아니요. 그건 병의 진행을 늦추는 것뿐이에요. 영약을 먹거나 무공을 익힌다면 모를까, 몸의 기능이 갑자기 좋아지지는 않아요. 하지만 그러려면 돈도 많이 드니까 차라리 따뜻한 곳으로 가서 생활하는 것이 좋아요. 그럼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병이 사라질 거예요.”
“하하하. 어린 친구가 말을 잘하는군. 어디 나도 한번 봐주게. 최근 빙판길에서 넘어진 적이 있는데 그 후로 이렇게 허리가 아프군.”
옆에서 듣고 있던 중년인이 끼어들며 말했다. 조윤은 진맥을 하고 그를 바르게 눕힌 후에 다리를 들어 보게 했다. 그리고 통증이 있는지를 묻자 그가 고개를 저었다. 이에 그를 엎드리게 하고 몇 군데를 눌러보니 척추가 어긋난 상태에서 계속 방치를 한 것이 원인이었다.
“넘어지고 나서 바로 치료를 했었어야 하는데 그러지를 않아서 척추가 어긋났어요. 지금 바로잡을 테니까 아파도 좀 참으세요.”
“그걸 네가 할 수 있단 말이냐?”
“네.”
조윤은 자신 있게 대답하고 손에 내공을 실었다. 그리고 빠르게 허리와 엉덩이의 혈을 누르면서 어긋난 척추를 바로잡았다.
“끄악!”
사내가 비명을 지르자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그러나 조윤은 상관하지 않고 계속 척추를 잡아 갔다. 그런 후에 잔뜩 혹사당해서 긴장하고 있던 척추 주위의 근육을 풀어주고, 침을 놨다.
“어떠세요?”
“응?”
자리에서 일어나 이리저리 움직여보던 사내는 크게 놀라며 조윤을 봤다.
“허리가 전혀 아프지 않아. 허, 이리 신기할 수가.”
“그래도 한동안은 무리하면 안 돼요.”
“어린 친구가 의술이 대단하구나. 이름이 뭐냐?”
“조윤이요.”
조윤이 그렇게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두 명을 치료해 주자 사람들이 너도 나도 봐 달라며 모여들었다. 결국 객잔 안은 조윤의 진료소가 되어 버렸고, 전혀 아프지 않은 사람들까지 전부 진맥을 해줘야 했다.
그 와중에 객잔의 문이 열리면서 찬바람이 확 들어왔다. 이에 조윤이 그쪽을 보니 죽립을 쓴 세 사람이 서 있었다. 죽립에 달린 천 때문에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았으나 옷차림과 체구로 보건대 가운데 있는 사람은 여자였고, 양쪽에 있는 두 사람은 사내였다. 세 사람 모두 허리에 검과 도를 차고 있는 것으로 봐서 무림인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