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비서 42화
무료소설 신의비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0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의비서 42화
제6장 대막 (3)
붉은 매단은 총인원이 무려 삼백 명이 넘었다.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는 그곳의 부두목인 마타였다. 주로 밤에 활동하기 때문에 피의 초승달이라는 별호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이오. 붉은 매단이 이곳을 지배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소. 우리는 금천보의 상인들이오. 대막의 수도로 장사를 하러 가는 길이니 넓은 마음으로 길을 내주시기 바라오.”
“성의를 보고 결정하겠다.”
협상의 여지를 보이자 마타와 대화를 나누던 단명이 장상삼에게 갔다. 그러자 장상삼이 내키지 않는 얼굴로 주머니를 건넸다. 그걸 받아서 마타에게 전하자 그는 무표정하니 안을 확인하고는 코웃음 쳤다.
“성의가 부족하군. 하지만 금천보의 상단이라고 하니 그냥 넘어가겠다.”
“고맙소.”
“다만 몇 사람은 우리를 상대해줘야겠다.”
“그건…….”
단명이 난처한 얼굴로 장상삼을 봤다. 싸우는 것은 호위무사들이 할 일이었으나 결정은 그가 해야 했다.
장상삼은 승낙하라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단명은 자신을 따라온 무사들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사막을 지나다 보면 이렇게 마적단을 만나는 일이 잦았다. 그 때문에 상인들은 마적단에게 줄 돈을 미리 조금씩 준비해서 다닌다.
상인들 입장에서는 약간의 돈으로 무사히 장사를 하러 갈 수 있으니 좋았고, 마적들 입장에서는 피해 없이 돈이 생기니 이득이었다.
다만 가끔 저렇게 몸이 근질거려서 한판 붙으려는 마적들이 있는데, 그럴 경우 이겨도 곤란하고 져도 문제였다. 저들은 승부욕이 강해서 이기면 계속 비무를 해야 했다. 그렇다고 지면 그냥 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크게 다치거나 불구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마적들은 손속이 잔인했고, 사정을 두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겁먹지 마라. 여흥이니까, 다섯 명만 하도록 하지. 승패에 상관없이 다섯 명만 서로 붙고 나면 돌아가겠다.”
“약속할 수 있겠소?”
“붉은 매단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겠다.”
단명의 질문에 마타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비록 마적이지만 저들은 맹세를 중요시한다. 이름을 걸고 약속했으니 믿어도 될 것 같았다.
“좋소. 그럼 하겠소.”
그렇게 결정되자 양쪽에서 다섯 명이 나와서 싸울 준비를 했다. 마차 너머에서 그걸 지켜보던 당황학이 조윤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잘 보아 둬라. 대막의 무공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때론 이렇게 보는 것도 큰 공부가 된다.”
“네.”
비무가 시작되었다. 호위무사는 도를 맹렬하게 휘두르며 마적을 압박해 갔다. 마적이 쓰는 무기는 도신이 얇은 초승달 모양의 도였다. 흔히들 그런 무기를 샴쉬르, 또는 시미터라고 한다. 찌르기에는 적합하지 않으나 베는 데 효율적이고 상대의 무기를 흘리기에도 좋았다.
딱 세 번 공방이 오고 가자 호위무사가 팔을 베이면서 무기를 놓쳤다. 그러나 이미 승부가 났음에도 마적은 계속 달려들어 옆구리를 걷어차고 넘어진 호위무사의 팔에 칼을 꽂아 넣었다.
“크아아아악!”
호위무사가 비명을 질렀다. 그걸 보고 호위무사들이 달려 나가려고 하자 단명이 말렸다.
“기다려! 모두 자리를 지켜라.”
“이미 승부가 났지 않습니까?”
“저들은 상대가 졌다고 말하거나 죽기 전까지는 승부가 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내가 미리 말해 줬지 않느냐?”
단명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난입을 했다가는 저들 모두를 상대해야 한다. 그럼 보나마나 전멸이었다.
호위무사는 고통 때문에 졌다는 말을 하지 못했고 결국 죽임을 당했다. 그걸 지켜보던 단명과 호위무사들이 분노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조윤 역시 화가 났으나 당황학은 침착했다.
“봐라. 약하면 저렇게 된다. 만약 저들에게 압도적인 힘이 있었다면 동료가 죽도록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면 애초에 대처를 잘했어야 했지. 그래서 무공만 강해서는 안 된다. 어떤 상황에서든 냉정하고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저 사람들을 도울 방법이 없을까요?”
“지금은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마적들을 상대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나 그럼 상인들이나 일꾼들이 죽을 수도 있다. 그걸 알기에 저들도 굳이 비무에 응한 것이 아니더냐?”
조윤은 마음이 착잡했다. 지금의 상황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당황학의 말이 맞는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사람이 눈앞에서 죽는 것을 보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두 번째 비무는 호위무사가 이겼다. 동료의 죽음에 분노해서 처음부터 전력을 다했고, 이에 계속 승세를 잡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마적은 끝까지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고, 결국 호위무사는 약간 망설이다가 그를 죽였다.
이후 세 번째부터는 목숨을 건 혈전이었다. 어느 한쪽도 양보가 없었다. 그건 이미 비무가 아니었다. 상대를 죽이기 위한 싸움이었다.
* * *
다섯 번의 비무가 모두 끝났다. 마적단은 두 명이 죽고 세 명이 크게 다쳤다. 그리고 호위무사들은 네 명이 죽고, 한 명이 중상을 입었다.
조윤은 그대로 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뛰쳐나가 호위무사의 상태를 살폈다. 가슴과 얼굴의 타박상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다리를 깊게 베인 것은 바로 치료를 하지 않으면 출혈과다로 죽는다.
“뭘 하려는 거냐?”
단명이 다가와서 물었다. 그러자 조윤이 허리띠를 끌러 다친 다리 윗부분을 꽉 묶으면서 대답했다.
“의술을 조금 할 줄 알아요. 여기 이쪽을 잡아주세요.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어요.”
“뭐? 네가 의술을 할 줄 안다는 거냐?”
“네. 움직이지 않게 좀 잡고 있어요.”
말을 하는 동안에도 조윤은 메고 있던 보따리 안에서 구급 장비를 꺼내 바쁘게 손을 놀렸다. 그걸 보고 단명은 조윤이 나이는 어리지만 의술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알았다.
저리 어리면 살이 조금만 찢어진 것을 봐도 끔찍하게 여기며 고개를 돌린다. 그런데 조윤은 얼굴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만큼 이런 일에 익숙하고 치료에 능하다는 뜻이었다.
‘이대로는 어려워.’
조윤은 이마로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며 이를 악물었다. 끊어진 혈관과 힘줄을 이어줘야 하는데, 그러려면 병원에서 하던 것처럼 많은 장비와 인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로지 침과 구급약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조윤은 지혈을 우선적으로 하고 금창약을 뿌린 후에 봉합할 수 있는 것들만 하면서 마무리를 했다.
이 시대의 무인들은 현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인한 체력을 지니고 있었고, 그 때문에 예전에 크게 다쳤던 공소도 대충 치료를 했었는데 살아났었다. 이번에도 그러기를 바라야 했다.
그때 마적들이 있는 곳에서 처참한 비명 소리가 크게 울렸다. 조윤이 놀라서 고개를 돌려보니 마타가 아까 비무를 하다가 다친 부하 한 명을 베어 넘기고 있었다. 그러더니 그 옆에 있던 부하도 죽이려고 했다.
“멈춰요!”
조윤은 저도 모르게 소리치면서 그리로 달려갔다. 그러자 마타가 인상을 쓰면서 조윤을 노려봤다.
“뭐냐?”
“이 사람은 당신의 부하잖아요! 왜 죽이는 거예요?”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당신이 싸우라고 해서 싸우다가 다쳤잖아요!”
“그래서 죽이는 거다. 사막의 용사는 죽을망정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 다친 자는 짐만 될 뿐이다.”
“말도 안 돼요.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어요? 졌으면 그걸 경험 삼아 다음에 더 잘하면 되는 거잖아요. 당신 때문에 이렇게 된 거니 오히려 잘했다고 칭찬을 해줘도 모자랄 판국에 죽이다니요. 그리고 다친 사람이 짐이라니, 치료를 하면 되잖아요. 질 때마다 부하들을 죽이면 누가 당신 말을 따르겠어요.”
마타는 어이가 없었다. 웬 어린놈이 고개를 뻣뻣이 들고 자신을 나무란다. 짜증이 나서 확 죽여 버리려는데, 겁도 없이 홱 돌아서더니 자신이 죽이려던 부하를 치료하는 것이 아닌가?
“죽고 싶으냐?”
“사막의 용사는 반항도 하지 않는 어린아이를 죽이나 보죠?”
조윤이 강하게 받아치자 마타는 말문이 막혔다. 그사이에 조윤은 부지런히 손을 놀리며 치료를 했다. 침을 꽂고 지혈을 한 후에 바늘과 실로 상처를 봉합했다. 그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아 모두들 멍하니 넋을 잃고 쳐다봤다.
“여기 좀 잡아줘요.”
“뭐?”
“여기 피가 줄줄 새잖아요. 지혈을 해야 하니까 빨리 묶어 줘요.”
조윤이 옆에 있는 마적에게 소리치면서 지시를 내리자 그가 얼결에 시키는 대로 따랐다. 옆에서 도와주니 두 사람의 치료가 금방 끝났다.
“크게 다쳤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에요. 한동안 몸조리 잘하면 금방 나을 거예요.”
조윤은 손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말하다가 마타와 눈이 마주치자 속으로 ‘아차!’ 싶었다. 그제야 제정신이 들면서 자신이 주제넘는 짓을 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 그게…… 미안합니다.”
조윤은 꾸벅 인사를 하고는 당황학이 있는 곳으로 도망치듯이 쪼르르 달려갔다. 그걸 보고 황당해하던 마타가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마적들은 자신들의 두목이 왜 저렇게 웃는지 이유는 몰랐으나 하도 기분 좋게 웃으니 얼결에 따라 웃었다.
“어린놈아! 네 이름이 뭐냐?”
“조윤입니다!”
“나는 붉은 매단의 부두목인 마타다.”
스스로 이름을 밝힌 마타는 부하들을 이끌고 멀리 사라졌다. 그러자 그때까지 조용히 있던 상인들과 호위무사들이 조윤에게 다가왔다.
“큰일 날 뻔했구나.”
“어린 것 같은데 그런 의술은 어디서 배운 거냐?”
“그대로 저 아이 덕분에 놈들이 그냥 갔으니 다행이지.”
그들이 맹세를 잘 지킨다지만 또 모르는 일이었다. 비무에서 졌다고 부하를 죽일 정도이니 약속을 깨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아니면 당장은 약속을 지켜도 나중에 다시 찾아와서 복수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마타는 웃으면서 갔다. 하니 다시 올 것 같지가 않았다. 사람들은 그게 다 조윤 덕이라며 고마워했다.
그날 저녁 당황학은 낮에 했던 행동이 얼마나 무모했었는지 한 시진 가까이 잔소리를 했다. 조윤은 스스로 잘못한 걸 알기에 아무 말도 않고 듣기만 했다.
“알아들었느냐?”
“네.”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해라.”
“네.”
“충분히 알아들은 것 같으니 그럼 이제 쉬어라.”
“네.”
조윤은 작게 대답하고 자리로 가서 누웠다. 사막은 낮과 밤의 온도 차가 굉장히 컸다. 이에 밤에는 반드시 불을 피우고 그 옆에서 자야 했다.
조윤은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스르륵 잠이 들었다. 그런 조윤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당황학이 이불을 잘 덮어줬다.
마치 손자를 보는 듯, 시선에 따뜻한 정이 가득했으나 본인은 그걸 전혀 모르고 있었다. 방금 한 행동도 그랬다.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서른 명이 넘는 제자들이 다 죽고 겨우 일곱 명만 살아남은 건 다 이유가 있었다.
당황학은 제자들을 모질게 대하며 혹독하게 수련시켰다. 한시도 가만히 놔두지를 않았다. 대련을 할 때면 실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몰아붙였다.
이에 정신이 피폐해져서 미친 사람도 있었고, 수련을 하다가 죽은 사람도 있었다. 또는 억지로 시킨 비무를 하다가 죽기도 했다.
그때마다 당황학은 피를 토할 정도로 괴로웠으나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 정도도 못 버틴다면 어차피 강호에서도 살아남기가 힘들다. 당황학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며 이후에 오는 제자들도 똑같이 대했다.
그러다 십 년 가까이 당수백이 제자를 보내지 않자 홀로 사색을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그간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조금씩 흔들리며 후회되었다. 그러던 차에 조윤을 가르치게 되자 예전과 똑같이 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이제 조윤이 마지막이었다. 앞으로 길어봐야 일이 년이었다. 어쩌면 그보다 더 짧을 수도 있었다. 살 만큼 살았고 스스로에 대해서 잘 알기에 당황학은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