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비서 40화
무료소설 신의비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7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의비서 40화
제6장 대막 (1)
아침에 눈을 뜬 조윤은 깜짝 놀랐다. 세수를 하라고 기라가 물을 받아 왔기 때문이다. 이후에는 건강식이라며 손수 아침을 준비했고, 한시도 옆에서 떨어지지 않으며 시중을 들었다. 그러다 비무를 할 시간이 되자 거기까지 쫓아와서 만담의 허파를 뒤집는 소리를 했다.
“스승님께서는 비무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원하신다면 제가 무공은 물론이고 독술도 전부 전해 드리겠습니다.”
“뭐가 어쩌고 어째? 내가 그동안 그렇게 제자를 받으라고 해도 안 듣더니, 당문에 독곡의 비전을 전하겠다는 거냐?”
“안 될 게 뭐가 있습니까? 그깟 무공이나 독술은 스승님의 지식에 비하면 아주 보잘것없습니다.”
“뭐가 어찌 되었건 안 된다. 독곡의 규율을 잊은 건 아니겠지?”
독곡의 무공과 독술은 외부인에게 전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그걸 어기면 평생 독저굴(毒貯窟)에 갇혀서 지내야 한다.
“그럼 독곡에서 배운 것만 빼고 전하겠습니다.”
“뭐야?”
“내가 깨우친 심득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니 그것만 전하겠습니다.”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냐?”
참다못한 만담이 화를 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러자 조윤과 비무를 하기 위해서 모여 있던 아이들이 움찔 몸을 떨었다. 독곡에서는 고르고 고른 기재들이었으나 만담의 기세가 하도 대단해서 겁을 먹은 것이다.
“기라 아저씨, 저한테 굳이 무공이나 독술을 가르쳐 주지 않아도 괜찮아요. 저는 지금 사부님에게 배우고 있는 것도 습득하지 못해서 이렇게 비무를 하고 있는 걸요.”
“그럼 더욱이 배워야죠. 저한테 배우면 이런 비무는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래도 정히 비무를 하시겠다면 제가 직접 상대를 해 드리겠습니다. 그게 스승님께 더 도움이 될 겁니다.”
“그건…….”
조윤이 뭐라고 대답을 못하자 지켜보던 만담이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하아……. 됐다, 됐어. 그래, 네가 다 알아서 해라.”
“말 안 해도 그렇게 할 겁니다.”
“망할. 당 형,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비무는 저놈이 대신하는 걸로 합시다.”
“상관없소. 어차피 독술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주려고 했던 것이니까.”
“사부님.”
조윤은 난처한 얼굴로 당황학을 봤다. 그러자 당황학이 괜찮다는 듯이 말했다.
“기왕지사 이리된 것, 제대로 배우고 오너라.”
“하지만…….”
“이리로 오십시오, 스승님.”
조윤은 기라에게 끌려가다시피 그곳을 나왔다. 당황학의 뜻대로 비무를 했어야 하건만 그러지 못해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게도 생각이 있습니다.”
“네, 그러시겠지요.”
한숨이 푹푹 나왔으나 뭐라 할 수가 없었다. 이게 다 스스로 무덤을 파서 그런 것 아니던가? 왜 그때 나서서는.
기라는 자신의 집으로 조윤을 데려오자 자리에 앉히고 두툼한 책을 한 권 내밀었다.
“그동안 제가 정리한 독술서입니다.”
“기라독해(綺羅讀解)?”
자신의 이름을 따다 붙이다니 유치하단 생각이 들었으나 천하오대신의 중 한 명인 남독신의가 만든 비급이었다. 뭐를 적어 놓았을지 궁금증이 일었다.
“그렇습니다. 독술에 대한 모든 것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이지요.”
조윤은 기라의 설명을 들으면서 비급을 펼쳤다. 첫 장은 독의 종류, 둘째 장은 그 독을 배합해서 새로운 독을 만드는 법, 셋째 장은 그렇게 만든 독을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대해서 나와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는 독을 활용한 치료법이 적혀 있었다.
그걸 쭉 한 번 읽어본 조윤은 크게 감탄했다.
“독을 이렇게까지 폭넓게 사용할 수 있는 줄은 몰랐어요. 특히 치료법으로 쓰이는 것이 놀라워요.”
“사실 병을 치료하는 대부분의 약재가 독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독으로 신체에 자극을 줘서 본래 가지고 있던 회복 능력에 박차를 가하는 거죠. 흔히 쓰는 침이나 뜸도 같은 원리입니다.”
“그건 저도 알고 있어요. 제가 놀란 건 독을 치료에 쓸 때의 배합이에요. 배합이 맞지 않아 독을 많이 쓰거나 적게 쓰면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해가 되죠. 그런데 여기에는 그 배합을 어떻게, 어떤 비율로 해야 할지 정확하게 적혀 있잖아요.”
“하지만 이건 전부 경험에 의한 결과일 뿐입니다. 스승님처럼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해명은 없습니다.”
“그래도 훌륭한 저술이에요.”
“칭찬을 받으니 쑥스럽군요. 그 책은 스승님께서 가지십시오.”
“네? 하지만 이건…….”
“저는 이미 머릿속에 다 있는 거라 필요 없습니다. 게다가 그 책은 아직 미완성입니다. 나머지 부족한 부분은 스승님께서 채워 주십시오.”
“너무 귀한 거라 받아도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괜찮습니다. 저는 더 귀한 걸 얻었으니까요.”
조윤은 기라의 진심이 전해지자 마음 한구석이 찡하니 저려 왔다. 이에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여 고마움을 표하자 기라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그깟 책이 뭐 대단하다고 그러십니까? 그저 버리지나 않으시면 다행입니다. 하하. 그보다 잠시 제가 맥을 잡아 봐도 되겠습니까?”
“맥을요?”
“그렇습니다.”
원래 맥은 믿는 사람에게도 함부로 내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상대가 무공을 익혔을 경우 기운을 밀어 넣어 안을 엉망으로 만들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윤은 망설임 없이 손을 내밀었고, 이에 기라는 웃으면서 조윤의 맥을 잡았다.
“혹시 예전에 영약을 먹은 적이 있습니까?”
“네. 당문에서 만든 당의환을 먹었어요.”
“흠. 십 년 정도의 내공을 늘리는 영약이었던 것 같은데 팔 년 정도밖에 안 되는군요. 됐습니다.”
당의환은 이미 완전하게 조윤의 기운과 하나가 되었다. 한데도 맥을 잡은 것만으로 그런 것을 알아내다니, 과연 천하오대신의라 불릴 만했다.
“그런데 맥은 왜 잡은 거예요?”
“아닙니다. 그저 알아볼 것이 있어서 그랬을 뿐입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렇게 말하면서 기라는 미소를 지었다. 이에 조윤은 뭔가 불안했으나 알아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 * *
다음 날도 기라는 아침 일찍 찾아와서 조윤의 시중을 들었다. 그러면서 한 시진 넘게 기라독해를 쉽게 풀어서 이야기해줬다. 조윤은 독으로 병을 고치는 방법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열의를 보이며 경청했다.
이후 점심때까지 비무를 했는데, 조윤의 완벽한 패배였다. 독곡과 당문은 똑같이 독을 다뤘지만 쓰는 방식은 조금 달랐다. 당문은 편법(鞭法)이나 암기술에 용독술을 섞어서 썼다. 채찍을 휘두르며 독을 뿌리거나, 암기에 독을 묻혀서 쓰는 방식이었다.
그에 비해 독곡은 무공 자체가 독공(毒功)이었다. 가장 흔한 것이 독장(毒掌)이었는데, 손을 극독에 담가서 독 기운을 빨아들여 연공하기 때문에 스치기만 해도 독에 중독되거나 심한 경우 살이 썩어 들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기라는 당문에서 하듯이 용독술에도 능했고, 독공도 익혀서 상대하기가 굉장히 까다로웠다. 가까이 다가가기만 하면 독을 뿌렸고, 그걸 피해 검을 휘두르려고 하면 독장으로 대응했다.
“독술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지하군요.”
“독술을 쓰는 사람과는 처음 싸워 봐요.”
“비무를 안 하기를 잘했습니다. 만약 비무를 했다면 삼 초식도 받아내지 못했을 겁니다.”
그럴 것 같았다. 상대와 겨룰 때는 자신의 거리를 확보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건만, 조윤은 단 한 번도 검을 휘두를 수 있는 거리를 만들지 못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기라는 그렇게 말하고 할 일이 있다면서 방으로 가버렸다. 조윤은 처소로 돌아와 당황학에게 기라와 비무 했던 걸 이야기하고 파훼법을 물었다. 그러자 당황학이 잠시 생각을 한 후에 대답을 해줬다.
“네가 검기를 다루게 되면 멀리서도 공격을 할 수 있으니 독공을 익힌 사람들을 그리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가 않으니 무조건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상대가 독을 뿌리면 가장 먼저 호흡부터 멈춰야 한다. 그리고 내공을 돌려 중독이 되었는지 파악해야 한다. 독 중에는 피부를 통해 스며드는 것도 있다. 무형지독(無形之毒)은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없어서 독에 중독되고 나서야 알게 된다. 다만 그런 독은 독성이 강하지 않다.”
조윤이 집중해서 경청하자 당황학이 말을 계속했다.
“우선 뿌리는 독은 검풍으로 흩어버릴 수가 있다. 문제는 독장인데, 독공을 익힌 자들은 초식이 정교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가 썼던 초식을 기억하고 있느냐?”
“대충은요.”
“해봐라.”
조윤이 기억을 더듬어서 흉내 내자 당황학이 한숨을 내쉬었다.
“됐다. 더 보지 않아도 알겠구나. 그는 초식에도 능한 자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길 생각은 버려라. 그와 너는 무공 차이가 너무 난다. 하니 독에 당하지 않을 것만 염두에 두어라.”
기라를 상대로는 그마저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검풍만 해도 그랬다. 독을 흩어버릴 정도로 바람을 일으키려면 지금 조윤의 수준으로는 비연팔식의 첫 번째 비기인 비연참 말고는 없었다.
하지만 비연참은 거리를 두고 쓰는 초식이었고 동작도 컸다. 독을 흩어내기 위해서 쓰면 틈을 내주게 된다. 그렇다고 기라를 노리고 갔다가는 다가가기도 전에 독에 중독되고 만다.
“비연폭을 쓰거라.”
“아, 맞다.”
당황학의 말에 조윤은 그제야 비연팔식의 세 번째 비기인 비연폭이 생각났다. 비연폭은 한순간에 세 번 검을 휘두르는 초식이었다. 그 빠르기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서 상대는 동시에 세 번의 공격을 받은 것처럼 느낀다. 또한 그만큼 검압도 대단해서 독을 흩어내는 것은 물론이고, 기라까지 공격을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조윤은 간신히 한 번, 그것도 어설프게 흉내를 내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비연폭은 아직 완벽하게 하지 못해요.”
“지금부터 연습을 하면 조금은 되겠지.”
비연폭은 비연참이나 비연섬과는 달랐다. 단기간에 어떻게 할 수 있는 초식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나마 기라에게 맞서려면 그거밖에 없었다. 이에 조윤은 밤늦게까지 검을 휘두르며 연습을 했으나 좀처럼 되지가 않았다.
보름 동안 조윤은 기라에게 기라독해를 배우고 남는 시간에는 대련을 했다. 덕분에 독술에 대한 지식은 늘었으나 여전히 기회를 잡지 못해 단 한 번도 검을 휘둘러보지 못했다.
“오늘은 좀 다를 거예요.”
조윤이 검을 뽑으면서 이야기하자 기라가 웃었다. 매일 지면서도 어떻게든 방법을 찾으려는 노력이 가상했으나 져줄 마음은 없었다.
“오십시오.”
조윤이 먼저 선공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기라가 때맞춰 독을 뿌리자 재빨리 옆으로 피했다. 동시에 땅을 박차고 다시 거리를 좁혀 갔으나 이번에도 독 때문에 물러나야 했다.
그동안 조윤은 계속 이런 식으로 들어갔다가 물러나기를 반복했었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어젯밤 처음으로 비연폭을 반쯤 성공시켰기 때문이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한 번에 두 번 검을 휘두를 수가 있었다.
한 번은 독을 흩어내는 데 쓰고, 또 한 번은 기라를 노린다. 비연폭을 완벽히 터득했다면 더 자신이 있었을 것이나 아쉽게도 그러지를 못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고 여기에 있을 수는 없었다. 당황학이 내일이면 이곳을 떠나자고 했다. 하니 비무는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기라의 좌측으로 크게 돌던 조윤은 허공으로 날아올라 비연참을 썼다. 그러자 내려치는 검의 압력에 의해 독이 확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