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비서 3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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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5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의비서 38화
제5장 남독신의 (2)
당황학은 조윤과 그랬던 것처럼 절벽 아래로 떨어질 뻔했으나 이보가 재빨리 잡아 주자 벽을 차고 가볍게 위로 올라왔다.
“보통 놈이 아니로군.”
단순히 무공만 겨룬다면 당황학이 훨씬 위였다. 그러나 기라는 독술이 굉장히 뛰어났다. 더구나 집 안 곳곳에 독이 가득했다. 평범한 방법으로는 그를 끌어낼 수가 없었다.
“괜찮으세요?”
“괜찮다.”
말은 그렇게 했으나 사실 괜찮지 않았다. 미약하기는 하나 독에 중독된 상태였다. 이에 당황학은 내공을 끌어올려 몸 안의 독을 손끝으로 모은 후에 천천히 밀어냈다. 그러자 시커먼 독이 방울져서 뚝뚝 떨어지면서 바닥이 까맣게 타들어갔다.
“사부님!”
처음 보는 기이한 현상에 조윤이 놀라서 소리쳤다. 그러자 당황학이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이 정도는 문제없다.”
“독에 중독되신 거 아닌가요?”
“방금 다 몰아냈다.”
“그래도…….”
“그보다는 놈을 어떻게 끌어낼지 생각을 좀 해봐야겠구나.”
“쉽지 않을 거요. 그의 독술은 그 누구도 당해낼 수 없소.”
이보의 말대로 기라의 독술은 정말 뛰어났다. 당황학은 당문에서 웬만한 독은 다 겪어 봤고,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한데도 너무나 맥없이 당했다. 밖에서라면 모를까 저 안에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은 누구예요? 왜 곡주님이 데리고 오라는 거죠?”
“혹시 남독신의라는 별호를 들어본 적이 있느냐?”
“아, 그럼 설마 그 사람이 천하오대신의 중 한 명인가요?”
“맞다. 그는 기라라고 한다. 그는 독곡에서 독술이 가장 뛰어나지. 독술로 병을 치료할 정도니까.”
“그런데 왜 저러고 있어요?”
“명성 때문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몇 해 전에 천하오대신의가 한자리에 모인 적이 있다. 그때 기라는 자신이 가장 처진다는 것을 알았고, 그 이후 집에 틀어박혀 저러고 있다.”
“독술을 더 연구하고 있는 건가요?”
“그런 것 같다.”
“그럼 좋은 일 아닌가요?”
“그렇기는 하지만 말했다시피 그는 독곡에서 독술이 가장 뛰어나다. 그런데 저렇게 독술만 연구하고 아무것도 하지를 않으니 문제인 거지.”
“그렇군요.”
그제야 조윤은 곡주인 만담이 왜 기라를 집에서 끌어내려는지 이해가 되었다.
“곡주님이 그를 설득하기 위해서 갖은 방법을 다 썼었다. 하지만 그는 저 안에서 꼼짝도 않고 있다. 나중에는 하도 귀찮게 하니까 기라가 약속을 하나 했다. 자신을 집 밖으로 나오게 하면 더 이상 연구만 하고 있지는 않기로 말이다.”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조윤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당황학이 불쑥 끼어들며 물었다.
“놈에게 가족은 없나?”
“없소.”
“제자는?”
“없소. 그는 늘 혼자였소.”
“음…… 결국 다시 들어가서 끄집어내는 수밖에 없는 건가?”
“제가 이야기 좀 해볼까요?”
조윤이 슬쩍 말을 꺼내자 당황학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네가 말이냐?”
“네.”
“무슨 말을 하려는 게냐?”
“그 사람은 지금 다른 오대신의들을 이길 수 있는 독술을 연구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렇겠지.”
“그럼 그게 충족되면 나오지 않을까요?”
“그걸 네가 할 수 있다는 거냐?”
“의술은 저도 조금 배웠거든요.”
“음…….”
믿음이 가질 않았다. 당황학뿐만 아니라 이보가 보기에도 그랬다. 조윤은 이제 열두 살이었다. 의술을 알아봐야 얼마나 알겠는가?
조윤은 미소를 지으면서 최대한 문에 접근했다. 더 가까이 가면 독에 중독되기 때문에 그 이상은 갈 수가 없었다.
“저는 조윤이라고 해요!”
안에 대고 소리를 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조윤은 그가 듣고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 계속 이야기했다.
“제가 의술을 조금 할 줄 아는데 아저씨가 하는 연구에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음…….”
일반적인 의술에 대해서 이야기해 봐야 먹히지 않는다. 이 시대의 의술이 아니라 현대 의학에 대한 것, 그중에서도 한 번 듣고 혹할 만한 걸 이야기해야 했다. 이에 잠시 생각을 하던 조윤은 위세척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독에 중독되면 일반 의원들은 약으로 치료를 해요. 독술에 능하다면 이독제독의 방법을 쓰기도 하죠. 하지만 음식에 든 독에 중독되었을 경우에는 위를 세척하는 것이 좋아요. 어떻게 하느냐면…….”
현대 의학에서 하는 위세척에 대해 한참이나 이야기를 했으나 안에서는 반응이 없었다.
‘조금 약했나?’
그런 생각에 조윤은 이번에는 세균에 대해 설명을 했다. 그러자 몇 마디 하지도 않았는데, 안에서 굵직한 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걸 세균이라고 했느냐?”
‘걸렸구나.’
조윤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 * *
“네. 맞아요.”
“조금 흥미롭구나. 너는 그것을 누구에게서 배웠느냐?”
“네? 아, 그게 누구한테 배운 건 아니고요.”
“아니면?”
“그러니까, 음…… 어쩌다가 알아내게 된 거예요.”
“믿을 수 없구나. 목소리를 들어보니 아직 어린 것 같은데 그런 걸 너 혼자 알아냈다는 거냐?”
“그렇게 어리진 않아요.”
“됐다. 그 세균에 대한 이야기나 계속해 봐라.”
“아저씨가 밖으로 나오면 할게요.”
“흥! 어림없다.”
“그래요? 그럼 말고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기라는 생각보다 고집이 있는 것 같았다. 이에 조윤은 미끼를 하나 더 던지기로 했다.
“세균에 대한 이야기는 할 수 없지만 머리를 열어서 수술했던 건 알려줄 수 있어요.”
“머리를 연다고?”
“네. 머리에 어혈이 생겼는데 자리가 미묘해서 손을 쓸 수가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머리를 열어서 치료했었어요.”
“터무니없는 말이다.”
“정말 그런지 들어볼래요?”
대답이 없었으나 조윤은 상관하지 않고 예전에 단목태성을 치료했던 것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당황학이 크게 놀라며 조윤을 봤다.
그는 독술은 물론이고 의술에도 어느 정도 지식을 가지고 있었으나 머리를 열어서 치료를 한다는 건 난생처음 듣는 치료 방식이었다. 더군다나 중간부터는 조윤이 하는 말을 거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건 이보도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독술에 조예가 깊었지만 조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아듣지 못했다. 그 때문에 조윤이 이야기를 지어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계속 들어보니 막힘이 없고 전부 그럴듯했고, 무엇보다 기라가 간간이 질문을 하고 있었다. 만약 조윤이 이야기를 지어내고 있다면 기라가 그렇게 반응할 리가 없었다.
“그렇게 된 거예요.”
한참 동안 이야기를 하던 조윤은 이번에도 결정적인 순간에 끊었다. 그러자 안에서 재촉하는 기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느냐? 어혈을 제거했느냐?”
“아저씨가 밖으로 나오면 알려줄게요.”
“음…… 어린놈이 제법 머리를 쓰는구나. 하나 내가 고작 그런 이야기에 움직일 것 같으냐?”
“그건 아저씨가 판단할 일이죠.”
“나를 움직이기에는 부족하다.”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이야기할게요. 만얀 이번에도 아저씨가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면 저는 이만 포기하고 돌아갈 거예요.”
“어디 해보려무나.”
“이번에 알려 드릴 건 그리 길지 않아요. 우선 아저씨한테 물을 게 있어요. 이보 아저씨한테 들으니까 천하오대신의를 모두 만났었다면서요?”
“그랬지.”
“그럼 그 사람들의 실력도 어느 정도 알겠네요.”
“그래서 내가 이러고 있는 것 아니냐?”
“그럼 다시 물을게요. 오대신의 중에 전염병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있나요?”
기라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껏 그런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본 신의들은 의술이 굉장히 뛰어났다. 아닌 말로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전염병을 막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그만큼 전염병은 치료가 어려워서 천재지변(天災地變)으로 여겨진다.
“하면 너는 전염병을 막을 수 있단 말이냐?”
“물론이에요.”
“믿을 수 없다.”
“전염병은 하나가 아니에요. 종류도 다양하고 감염되는 경로도 다 달라요. 하지만 원인을 알면 충분히 치료가 가능하고, 사전에 방비할 수도 있어요.”
“그런 말은 누구나 할 수가 있다.”
“믿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죠. 잠시 동안 즐거웠어요.”
조윤은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에 미련 없이 돌아서려고 했다. 그러자 기라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잠깐!”
“왜요?”
“내가 나가지는 않겠지만 네가 들어오는 것은 허락하마.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구나.”
뜻밖의 제의에 조윤은 당황학을 봤다. 그러자 당황학이 이보를 봤다. 기라에 대해서는 그가 더 잘 안다.
이보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라가 괴팍하기는 하지만 이유 없이 어린아이에게 해를 가하지는 않았다.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도 독성이 너무 강해서 무리예요.”
“의술이 그리 뛰어난 척하더니 이 정도 독성도 어찌하지 못한단 말이냐?”
“의술과 독술은 달라요. 사람을 잘 치료한다고 해서 안 죽는 건 아니잖아요.”
“하하하. 일리가 있구나. 좋다. 이걸 먹고 들어와라.”
문밖으로 툭 던져진 것은 손가락 한 마디만 한 둥근 환약(丸藥)이었다. 바닥에 떨어진 거라 주워 먹기가 그랬으나 조윤은 날름 삼켰다. 그리고 천천히 집 안으로 들어가자 아까와 달리 중독된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환약 하나로 이런 효과를 내다니, 정말 놀랄 일이었다. 현대 의학은 이런 부분에서 따라올 수가 없었다.
집 안은 온통 약재였다. 바닥이고 벽이고 할 것 없이 약재가 가득했다.
“이리로 오너라.”
방에서 목소리가 들려오자 조윤은 그리로 갔다. 안에도 역시나 약재가 잔뜩 쌓여 있었고, 수십여 권의 책들이 어지럽게 펼쳐져 있었다. 기라는 그 한가운데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는데 체구가 작고 한 성질 할 것 같은 인상이었다.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단목조윤이라고 합니다.”
“예의 차릴 것 없다. 앉아라.”
“네.”
조윤이 자리에 앉자 기라가 가만히 쳐다보다가 낮게 혀를 찼다. 목소리는 어리나 의술에 대해 많이 알고 있기에 적어도 열다섯 살은 넘었을 거라 생각했었다. 한데 너무 어렸다.
“몇 살이냐?”
“열두 살입니다.”
“어리구나. 의술은 누구에게서 배운 거냐?”
“이름은 모르나 신의문에서 온 사람에게 조금 배웠습니다. 지금은 당문의 의원인 당자기란 분에게 배우고 있습니다.”
“당자기라고?”
“네.”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이었다. 신의문이야 의술로 유명하고 천하오대신의 중 두 명이 그곳 출신이니 납득이 갔지만 당문은 아니었다. 당문은 독곡과 마찬가지로 의술이 아닌 독술로 유명한 곳이었다.
“당자기란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구나.”
“그리 유명하신 분이 아니라 잘 모르실 겁니다.”
“아까 내게 이야기했던 것들은 누구에게 배운 것이냐?”
“배운 것도 있지만 스스로 알아낸 것이 더 많습니다.”
현대에서 배웠다는 걸 설명할 길이 없으니 그렇게라도 거짓말을 해야 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