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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비서 63화

무료소설 신의비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5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신의비서 63화

제5장 신수신의 (2)

 

 

현대에서야 이런 건 서점에서 흔히 구할 수가 있지만 지금 시대에서는 쉽게 알 수도 없고 구하기도 힘들었다.

 

무엇보다 인체를 세세히 연구한 흔적이 보였다.

 

“제가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그것 때문입니다. 여기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병자와 시체가 생깁니다. 덕분에 의술을 더욱이 깊이 있게 연구하고 발전을 시킬 수가 있었습니다.”

 

이자림이 하는 말을 조윤은 단번에 이해했다. 의술은 병을 치료하는 학문이다. 그러자면 인체에 대해서 잘 알아야 했다.

 

하지만 사람의 생명을 함부로 다룰 수는 없기에 인체를 연구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현대에서도 인체실험은 불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이곳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누구든 제 목숨은 소중한 법이다. 그러나 전쟁터라면 다르다.

 

이자림의 말대로 다치는 사람도 많고, 죽어나는 사람도 많다.

 

아닌 말로 시체 몇 구가 없어진다 해도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여기 이건 잘못된 거예요.”

 

“어디 말입니까?”

 

조윤의 지적에 이자림이 인상을 살짝 쓰면서 다가왔다.

 

각고의 노력을 통해 완성해가고 있는 걸 잘못되었다고 하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조윤의 설명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조윤이 말한 것은 해부도였다. 그가 그린 건 전부 이곳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한 것들이었다. 그래서 다른 데서는 찾아볼 수 없는 세세함이 있었으나 주관이 많이 섞여 있었다.

 

그에 비해 조윤은 현대에서 거의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 인체해부도를 수도 없이 보면서 공부를 했었다.

 

이자림은 조윤의 지식에 다시 한 번 놀랐다.

 

한편으로는 어떻게 이렇게까지 자세히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조차도 이 해부도를 그리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모른다. 직접 파헤친 시체의 수가 셀 수도 없을 정도였다.

 

한데 이제 약관도 되지 않은 조윤이 더 세세하게 알고 있다.

 

도대체 그러한 것을 어디에서 배웠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결국 이자림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러한 것은 어디에서 배운 겁니까?”

 

한창 설명을 하던 조윤은 속으로 아차 싶었다. 너무 열중해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적당히 모르는 척해야 한다는 걸 잊어 버렸다.

 

“한 가지만 약속해주십시오.”

 

“말하십시오.”

 

“앞으로 제가 뭘 이야기하든 방금과 같은 질문은 하지 말아주세요.”

 

“흠, 대답하기 곤란한 겁니까?”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조윤이 뭔가 숨기고 있다는 것은 진즉부터 짐작을 하고 있었다.

 

스스로 밝히지 않겠다는데 굳이 물을 필요는 없었다. 그러지 않아도 조윤은 지금처럼 알고 있는 지식을 조금씩 풀고 있었다.

 

이자림은 그거면 됐다. 그에게 필요한 건 의료지식뿐이었다.

 

* * *

 

“으아아악!”

 

“살려줘!”

 

“으…….”

 

곳곳에서 신음 소리와 비명이 터져 나왔다.

 

밖에서는 정교와 이도가 응급처치를 하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고, 천막으로 만든 수술실 안에서는 조윤과 이자림이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었다.

 

최근 인근의 흉족들이 기승을 부리는 바람에 잦은 충돌이 일었고, 그 때문에 부상자와 사상자가 적지 않았다.

 

이에 조윤과 이자림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지금도 이틀 동안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한 채 계속 환자들을 수술하고 있었다.

 

“지혈겸자로 이쪽 좀 잡아주세요.”

 

조윤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면서 이자림에게 말했다.

 

겸자란 날이 없는 가위를 뜻한다. 그걸로 혈관을 잡으면 지혈이 되기 때문에 그런 용도로 쓰이는 도구를 지혈겸자라고 한다.

 

출혈이 심해서 이미 늦은 감이 없지 않았으나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지금 수술을 하고 있는 사람은 평소에 친분이 있던 병사였다. 성격이 밝아서 누구나 좋아했었고, 아이도 두 명이나 있었다.

 

“스승님.”

 

“네? 왜 그러세요? 빨리 이쪽을…….”

 

조윤이 의아해하면서 이자림을 보자 그가 고개를 저었다.

 

이미 죽은 것이다.

 

잠시 멍하니 서 있던 조윤은 들고 있던 수술도구를 내려놓았다.

 

그동안 적지 않은 사람들의 죽음을 보아왔지만 여전히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허망했다.

 

“다음 환자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자림이 조윤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그랬다. 아직 치료해야 할 환자들이 많았다. 이러고 있을 틈이 없었다.

 

조윤은 크게 심호흡을 하며 찰싹 소리가 날 정도로 자신의 뺨을 때렸다. 그러자 정신이 좀 드는 것 같았다.

 

“들여보내세요.”

 

“알겠습니다.”

 

사흘 동안 조윤은 환자들과 싸움을 했다.

 

수술, 수술, 또 수술이 이어졌다.

 

누구는 배를 찔렸고, 누구는 팔이 잘려서 왔다. 머리가 깨져서 온 사람도 있었고, 다리가 부러져서 온 사람도 있었다.

 

조윤은 그들 모두를 살리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부족했고, 장비가 부족했고, 기술이 부족했다.

 

현대였다면, 현대였다면 어쨌을까? 그런 생각이 몇 번이나 들었다.

 

아마 별다른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수십 명의 의료진에 최첨단 장비가 있지 않은 이상은 똑같을 수밖에 없었다.

 

“좀 쉬셔야 합니다.”

 

이자림이 조림차를 건네면서 말했다. 조림차는 이자림이 개발한 머리가 맑아지는 차였다.

 

원래는 이름이 없었으나 이자림이 자신의 이름과 조윤의 이름을 한 글자씩 따서 붙였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기라와 마찬가지로 그도 젬병이었다. 또한 유치했다.

 

차를 마시자 정신이 좀 맑아지는 것 같았다.

 

칠 일 동안 한숨도 못 잤다. 현대라면 지쳐서 쓰러졌을 테지만, 조윤은 무공을 익혔다.

 

체력적으로 한계가 와도 내공을 운용해서 버틸 수가 있었다. 그러나 정신적인 피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이번에도 많이 죽었죠?”

 

“스승님은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그걸 모르겠어요. 제가 최선을 다해서 저들이 살은 건지, 아니면 살아날 운명이라서 살아난 건지. 죽은 사람들도 결국에는 죽을 운명이었던 게 아닐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전에 저 혼자 있을 때는 이렇게까지 많이 살리지 못했습니다. 정교와 이도가 제자가 되어 도움을 주었으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스승님이 오시고 난 이후에는 훨씬 많은 사람들이 살아났습니다. 지금도 보십시오. 저라면 손도 쓰지 못했을 사람들을 스승님은 살리셨습니다.”

 

“하지만 또 죽겠죠.”

 

“그래도 치료하고 살리는 것이 의원의 숙명입니다.”

 

조윤은 쓰게 웃었다. 환자를 치료하고 환자를 살린다. 그것이 의사의 숙명이라는 말이 이상하게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좀 쉬십시오.”

 

“아니요. 아직 경상을 당한 환자들이 있잖아요.”

 

“그들은 제가 보겠습니다.”

 

“자림 아저씨도 며칠 동안 쉬지 못했잖아요. 함께해요. 그럼 더 빨리 끝날 거예요.”

 

“흐음.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십시오.”

 

결국 하루가 더 지나서야 치료가 모두 끝났다.

 

숙소로 돌아온 조윤은 그대로 곯아떨어져서 하루 밤낮을 잤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는 깜깜한 밤이었다.

 

잠을 푹 잤는데도 몸이 찌뿌듯했다. 그동안 규칙적인 생활을 해오다가 갑자기 무리를 하니 피로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조윤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운기조식을 했다. 그러다 문득 기라가 준 조기신단이 생각났다.

 

밖을 보니 마침 만월이었다.

 

근처에 있는 호수로 간 조윤은 옷을 벗어서 옆에 뒀다.

 

가을 초입이라 물이 차가웠으나 꾹 참고 들어가서 조기신단을 먹었다. 그리고 운기조식을 하자 단전에서 뜨거운 기운이 점점 강해졌다.

 

‘조기신단의 약효인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단전의 기운을 천천히 일주천 시켰다. 그러자 놀랍게도 기운이 점점 늘어나더니 이내 몸에서 감당을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혈맥이 터져서 죽는다.

 

조윤은 이를 악물고 필사적으로 기운을 돌렸다.

 

하지만 조기신단 때문에 생긴 기운은 조금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조윤은 몸 밖으로 기운을 내보냈다. 그러자 조윤의 몸 주위의 물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동시에 수증기가 일면서 마치 짙은 안개가 낀 것처럼 되었다.

 

그렇게 한창 집중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거리가 먼 것 같건만 발자국 소리가 아주 또렷하게 들려왔다.

 

지금 누군가가 건드린다면 집중력이 흐트러져서 주화입마에 빠지게 된다. 그럼 기운이 폭주를 할 테고, 결국 혈맥이 터져서 죽는다.

 

조윤은 조급증이 이는 것을 누르면서 몸을 가득 채우고 있는 기운을 단전으로 되돌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방법이 없었다. 살든 죽든 끝을 봐야 했다.

 

점점 가까워지던 발자국 소리가 호숫가에서 멈췄다. 그리고 옷을 벗는 소리가 나더니 그 사람이 물로 들어왔다. 참방거리는 소리가 조금씩 가까워졌다.

 

조윤은 마지막 남은 기운을 단전에 모두 받아들이고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파아아아앙!

 

물보라가 확 치솟는 와중에 조윤은 가까이에 있던 사람의 목을 잡고 밀어붙였다. 그러자 몸이 겹쳐지면서 뭔가 물컹한 느낌이 들었다.

 

조윤은 반쯤 물에 잠긴 상태에서 여차하면 주먹으로 내려칠 자세를 취하고 상대를 봤다. 그의 몸 아래에는 늘씬한 몸매의 여자가 놀란 눈을 하고 깔려 있었다.

 

* * *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상대가 여자일 줄은 몰랐다. 뭐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잠시 멍하니 있다가 여자의 가슴이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조윤은 고개를 돌리면서 사과를 했다.

 

“미, 미안해요.”

 

“호, 혹시 조윤?”

 

“네?”

 

상대가 이름을 부르자 조윤이 얼결에 고개를 돌리다가 여자의 나체가 눈에 들어오자 그대로 굳어 버렸다.

 

“뭐, 뭘 보는 거야?”

 

“아, 미안합니다.”

 

“너, 너 왜 여기에 있는 거야?”

 

“누구이기에 나를 아는 겁니까?”

 

“어?”

 

말을 하던 여자가 급히 입을 다물었다. 조윤은 순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곳은 서역도호부 근처였다. 인근에 민가가 없었다. 당연히 여자가 이 밤에 홀로 여기까지 올 일도 없었다.

 

더구나 자신을 알고 있었다. 이에 다시 고개를 돌려 여자를 봤다. 그러자 여자가 흠칫 놀라면서 뒤로 물러나다가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괜찮아요?”

 

조윤이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여자는 그 손을 잡을 상황이 아니었다. 손을 잡고 일어나면 치부까지 다 보인다.

 

“돼, 됐어.”

 

신경질적으로 말하는 여자의 얼굴을 유심히 보던 조윤은 그제야 누군지 감이 왔다.

 

“정교?”

 

“이제야 안 거야? 알았으면 빨리 고개 돌려.”

 

“아, 미안.”

 

“또 돌아보면 죽일 거야.”

 

정교가 첨벙거리면서 밖으로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 같이 곱상한 얼굴에 평소 행동도 좀 여자 같은 구석이 있었지만 설마 진짜 여자일 줄은 몰랐다.

 

무엇보다 군대는 여자가 올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들어온 걸까?

 

혹시 이자림도 그가 여자라는 것을 알고 있을까?

 

“됐어.”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몸을 돌려보니 정교가 옷을 다 입고 머리의 물기를 털어내고 있었다.

 

“뭐해? 안 나오고?”

 

“응.”

 

조윤은 물 밖으로 나가서 옷을 챙겨 입었다. 그러자 정교가 가까이 다가왔다. 머리를 길게 늘어트려서 그런지 확실히 여자다웠다. 그걸 그동안은 왜 몰랐는지 스스로가 바보 같았다.

 

“어떻게 된 거야?”

 

“그건 내가 물을 말이야. 안개가 자욱해서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저기에서 뭘 하고 있었던 거야?”

 

“무공수련.”

 

“물속에서?”

 

“응.”

 

“무슨 무공이기에 이런 밤에 여기까지 와서 하는 건데? 혹시 안 좋은 무고 아니야? 사람 피를 빨아먹는다든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정상적인 무공이니까. 그보다 여자인데 어떻게 서역도호부에 있는 거야?”

 

“아버지가 도호거든.”

 

“뭐?”

 

서역도호부의 도호는 딱 한 명이었다. 그렇다는 건 정교가 방상의 딸이라는 뜻이었다.

 

“그게 정말이야?”

 

“다 들킨 마당에 뭘 속이겠어. 사실 내 이름은 정교가 아니고 방소교야.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나 혼자 지내는 게 걱정이 되었나 봐. 서역도호부로 와서 지내라고 하시더라. 하지만 거기는 군대라서 남자들만 있잖아. 여자 홀로 있으면 위험할 것 같아서 남장을 하고 지낸 거야.”

 

“혹시 이 의원님도 알고 있어?”

 

“응. 그래서 지금까지 숨길 수가 있었는걸.”

 

“그랬구나. 그럼 이도 형도 알고 있고?”

 

“아니. 그 사람은 워낙에 둔해서 몰라. 아버지 말고는 자림 숙부하고 너만 알고 있는 거니까 다른 사람들에게는 계속 비밀로 해줘.”

 

“그래. 그렇게 할게. 할 이야기 다 했으면 이만 들어가자.”

 

“어? 아니, 먼저 가. 나는 머리 좀 말리고 갈게.”

 

조윤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아까 본 방소교의 알몸이 쉽게 잊히지가 않아 자꾸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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