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비서 62화
무료소설 신의비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4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의비서 62화
제5장 신수신의 (1)
천하오대신의는 황궁어의 우선, 신수신의 이자림, 남독신의 기라, 약선신의 반양, 의선 태삼목, 이렇게 다섯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당시에 당자기는 흑묘를 치료할 방법을 강구하는 와중에 천하오대신의에 대해 알려주면서 이자림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했었다. 도움을 받기 위해 서찰을 보냈으나 정처 없이 떠돌기 때문에 연락이 닿기 힘들다고 말이다.
한데 이렇게 만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그때 연락을 드린 건 제가 아는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서였어요.”
“그랬더냐?”
“네. 하지만 서찰을 받았는지 확인할 수가 없어서 결국 신의문으로 갔어요.”
“그때는 이곳에서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어서 갈 수가 없었다. 게다가 서찰도 나중에야 받았다. 날짜를 계산해보니 너무 늦은 것 같아서 내가 가도 소용이 없을 것 같더구나. 그래서 답신을 보냈는데 받지 못했느냐?”
“네. 스승님은 그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서 함께 신의문으로 갔고, 저도 무공을 배우느라 당문을 떠나 있었어요.”
“그가 신의문으로 갔다고?”
“네.”
“그럼 한동안은 거기에서 나오지 않겠구나.”
“어? 어떻게 아셨어요?”
“신의문의 의술은 천하제일이다. 의원이라면 누구든 그들의 의술을 한 번만 보면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생기지.”
“맞아요. 그래서 스승님도 거기에서 공부를 하겠다며 한동안 머물겠다고 했어요.”
“태삼목의 의술을 배울 기회가 되면 좋으련만 그건 어렵겠지.”
“태삼목이라면 혹시 의선을 말하는 건가요?”
“맞다.”
“그 사람의 의술이 그렇게 대단한가요?”
“황궁어의 우선은 내상치료에 뛰어나지. 남독신의 기라는 독을 이용한 치료에 뛰어나고, 약선신의 반양은 약을 잘 쓴다. 나는 외상을 잘 치료하고. 이렇게 각자가 한 방면에만 뛰어나지만 의선 태삼목만은 다르다. 우선만큼이나 내상을 잘 치료하고, 기라만큼 독을 잘 쓰며, 반양만큼 약도 잘 쓴다. 또한 나와 견줄 정도로 외상도 잘 치료하지. 그래서 의선이라 불리는 거고, 누구나 인정을 하는 거다.”
조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태삼목이 의선이라 불리는 것이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현대는 모든 것이 세분화되어 있고, 또한 전문화되어 있다. 그래서 자신의 분야에 대해서는 깊이 알지만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것만 알뿐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에 비해 이곳의 의원들은 다방면으로 능했으나 깊이가 없었다. 의술의 세분화가 안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천하오대신의는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었다.
현대로 치자면 각자의 분야에서 알아주는 전문의인 셈이다. 그러나 태삼목은 모든 분야를 아울러 통달했다. 그건 현대에서도 찾아보기가 힘든 예였다.
“아까 네 의술을 보니 당자기보다 뛰어나더구나. 그의 밑에서 배움을 끝낸 것 같지는 않은데, 어찌 된 일이냐?”
“여러 가지 기연이 좀 있었어요.”
이자림이 말해보라는 듯이 쳐다보자 조윤은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현대에서 이십 년을 넘게 살면서 의학을 배웠다고 하면 미친놈 취급을 당하건 말하기 싫어서 그렇다고 생각을 할 것이다.
“제게 처음 의술을 가르쳐준 사람은 신의문 사람이었어요. 성함은 모르지만 의술이 굉장히 뛰어났었죠. 그 사람에게 잠깐 배우다가 지금의 스승님을 만나게 되었어요. 이후에 무공을 익히느라 남만에 가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기라 아저씨를 만났어요.”
“옳거니. 그랬구나. 그에게 배웠으면, 아니, 그건 아니지. 그는 독을 이용한 치료에 뛰어나지 너처럼 외상치료에 뛰어난 건 아니다.”
아까 어지간히 눈여겨봤었나 보다. 조윤은 난처함에 어색하게 웃으면서 이것저것 마구 떠들어 댔다.
“꼭 그렇지는 않아요. 신의문 사람에게도 외상에 대한 것은 배웠었고 스승님에게도 배웠었는걸요. 그리고 기라 아저씨에게서도 배운 게 많아요. 기라독해라는 귀한 책도 받았고요.”
그러고 보니 조기신단도 받았었다. 지금까지 그걸 깜빡 잊고 있었다. 만월이 뜨는 밤에 차가운 물에 몸을 담그고 먹으라고 했던가?
조윤이 그걸 생각하고 있는데 이자림이 눈을 빛내면서 바짝 다가왔다.
“뭘 받았다고?”
“네? 아, 기라독해요. 기라 아저씨가 평생에 걸쳐 연구한 독술에 관해 정리가 되어 있어요.”
“그걸 좀 보여줄 수 있겠느냐?”
“그, 그거야…….”
그리 어렵지 않다고 이야기를 하려는 순간 이자림이 갑자기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 * *
“염치없는 부탁인 걸 알지만 꼭 보고 싶구나.”
“아!”
그제야 조윤은 자신이 잠시 착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라가 누구던가?
천하오대신의 중 한 명이었다. 그런 그가 평생의 연구를 적어놓은 책이었다. 그 가치가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그렇기에 이자림이 이리 부탁을 하는 것이다.
조윤은 재빨리 이자림을 일으켜 세웠다.
“이러지 마세요. 원하시면 보여드릴게요. 필사를 하고 싶으시면 그렇게 하셔도 돼요. 대신에 반드시 돌려주셔야 해요.”
“어째서 그리 쉽게 이야기를 하는 거냐? 혹시 나한테 바라는 것이 있는 거냐?”
“아니요. 기라독해는 치료서예요. 의원님처럼 의술이 뛰어난 사람이 보면 더욱이 실력이 높아질 테고, 그럼 더 많은 사람들이 그 혜택을 받겠죠. 그거면 돼요.”
“허…….”
이자림이 크게 감탄을 한 눈으로 조윤을 쳐다봤다.
의원에게 있어서 그런 책은 천금을 준다 해도 바꿀 수가 없는 것이다.
하물며 오늘 처음 본 사람에게 어찌 그걸 내준단 말인가?
제 욕심에 꼭꼭 감춰도 아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건만 자신을 생각하기에 앞서 사람을 생각한다.
의원으로서의 명예보다는 환자에게 이로울 것을 먼저 생각한다.
어린 나이에 그러한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조윤은 그렇게 말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방으로 가서 기라독해를 가지고 와서 이자림에게 건넸다.
이자림은 꼼짝도 않고 무려 한 시진 가까이 기라독해를 탐독했다.
보는 동안 수시로 얼굴에 감탄과 놀람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어떤 때는 심각하니 뭔가를 생각하는 것 같다가 또 어떤 때는 미간을 좁히며 인상을 쓰기도 했다. 그러다 이내 마지막 한 장까지 전부 읽고는 책을 덮었다.
“하아……. 대단하구나. 대단해. 남독신의는 오대신의 중에서 가장 실력이 모자랐었다. 독으로 병을 치료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한데 이 책을 보니 그렇지도 않구나. 그의 연구와 열정이 느껴진다. 그는 이미 나를 넘어섰다. 독술치료에 관해서는 의선조차도 넘어섰을지도 모르겠구나.”
조윤은 기라가 다른 누구도 아닌 이자림에게 칭찬을 받자 기분이 좋았다.
기라가 그렇게 오랜 세월 방에 틀어박혀서 독술치료를 연구한 이유가 뭐던가?
바로 같은 오대신의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서였다.
“기라 아저씨가 여기에 있었다면 굉장히 기뻐했을 거예요.”
“너는 기라와 무슨 관계냐? 혹시 그의 제자인거냐?”
“아니요. 제자는 아니고요.”
“나를 속일 생각은 하지 마라. 아무런 관계가 아닌데 이리 귀한 책을 줄 리가 없다.”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조윤은 난처함에 머리를 긁적이다가 기라와 만나게 된 인연을 전부 이야기했다.
그걸 가만히 듣고 있던 이자림은 기라가 제자를 자청했다는 말을 듣고 박장대소(拍掌大笑)를 했다.
“하하하하. 그랬더냐? 그라면 그러고도 남지. 워낙에 기행을 일삼는 사람이라 어디로 튈지 알 수가 없지.”
“하하. 그러게요.”
“한데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구나. 도대체 뭐를 이야기했기에 기라가 제자가 되겠다고 한 것이냐?”
“네? 아, 그게 그러니까…….”
조윤은 세균에 대한 것을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잠시 망설여졌다. 그러나 이미 기라한테 이야기를 했는데 이자림에게 말 못할 이유가 없다 싶었다.
이에 세균에 대한 것을 대략 기본적인 것만 말해줬다. 그걸 듣고 이자림의 눈이 화등잔 만해졌다.
“새로운 이론이구나. 세균이라고?”
“네.”
“음…… 네 말대로라면 외상치료에도 그 세균이라는 굉장히 중요하게 작용을 한다는 말인데.”
“맞습니다. 상처에 염증이 생기거나 곪는 것, 심한 경우 썩어 들어가기도 하는데, 그 모든 것의 일차적인 원인은 세균감염입니다. 그래서 수술을 할 때, 그러니까 상처를 치료할 때는 치료도구를 깨끗한 물에 삶아서 세균을 없애야 하고 손도 깨끗이 씻어야 합니다.”
계속 되는 조윤의 설명에 이자림은 점점 빠져들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내용이었으나 설득력이 강했다.
세균에 대해 이해를 할수록 그동안 풀리지 않던 문제들이 착착 맞춰지며 해답이 나왔다. 그렇게 이자림이 대충 이해를 한 것을 보고 조윤은 입을 다물었다.
“대단하구나. 대단해. 도대체 이러한 이론을 어떻게 알게 된 것이냐?”
“그, 그게, 그냥 알게 되었어요.”
“그 말이 사실이라면 너는 천재다. 천재야. 그렇지. 그러니까 그 자존심 강한 기라가 너를 스승으로 모신다고 한 거겠지.”
연신 감탄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이자림이 갑자기 눈을 빛냈다. 그러더니 의심을 잔뜩 품은 모습으로 물었다.
“그것 말고도 또 있는 거냐?”
“네? 아니요. 없어요.”
조윤이 당황하며 아니라고 했으나 그게 실수였다.
누구라도 그런 모습을 보면 뭔가가 더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이자림이 갑자기 폭탄선언을 했다.
“나도 너를 스승으로 모시겠다.”
“네?”
조윤은 눈만 껌뻑거리며 뭐라고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 * *
한창 훈련 중에 방상이 찾는다고 말을 전해 받고 가 보니 생각지도 않게 이자림이 함께 있었다.
“충!”
조윤이 군례를 하자 방상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됐다. 거기 앉아라.”
“네.”
자리에 앉으면서 힐끔 이자림을 봤다. 그러나 그는 관심 없다는 듯이 차만 홀짝였다.
“이 노사에게 들었다. 의술이 뛰어나다고?”
“아닙니다. 그저 조금 배웠습니다.”
“네 덕에 살아난 병사들이 몇이나 있다더구나.”
“이 의원님의 실력 때문이지 저 때문이 아닙니다.”
“내가 이미 알아봤다. 겸손은 적당히 해야 미덕이 된다.”
“네.”
조윤은 속으로 방상이 이런 이야기를 왜 하는지 궁금했다. 이자림이 계속 나 몰라라 하는 태도로 있는 건 이미 서로 간에 이야기를 끝냈다는 뜻인데, 그게 뭔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이 노사가 너를 내달라고 한다.”
“네?”
“네 병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더니 그것도 해결을 해주겠다고 하는구나. 그렇잖아도 의원이 부족하던 차였고 실력이 그리 뛰어나다니 나로서는 반대를 할 이유가 없다.”
“제게 선택권이 있나요?”
“없다. 단지 사형으로서 한 번쯤은 물어봐야 할 것 같아서 불렀을 뿐이다.”
순전히 생색을 내기 위해서라는 뜻이었다. 조윤은 어이가 없었으나 시키면 따라야 하는 곳이 군대였다.
“알았으면 당장에 짐 싸서 옮겨가라.”
“네.”
숙소로 돌아와서 조장인 석몽에게 사정을 이야기하자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조윤은 짐을 싸서 이자림이 있는 곳으로 갔다.
“어서 오너라.”
“네.”
거기에는 이자림 말고도 두 사람이 더 있었다. 이자림의 제자인 정교와 이도였다.
정교는 일전에 옆에서 치료를 도와줘서 알고 있었다.
이도도 그때 있었으나 제대로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는 둥글둥글한 인상에 그리 특징적인 것이 없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 어디에 있어도 눈에 뜨이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조윤이 그들과 인사를 하려고 하는데 이자림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쪽은 조윤이다. 나이가 어리다고 낮춰 보지 말거라. 너희가 배울 것이 많을 거다.”
“네.”
“알겠습니다.”
정교와 이도가 마지못해 대답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고 이자림이 저리 감싸고도니 벌써부터 불안했다.
“따라오너라.”
이자림은 조윤을 데리고 자신의 방으로 갔다. 그리고 차를 권하더니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네가 너를 스승으로 모시겠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다.”
“감당할 수 없습니다.”
“기라는 가르치고 나는 못 가르치겠다는 거냐?”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기라 아저씨에게 알려준 건 세균에 대한 것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제가 배운 것이 더 많습니다.”
“그럼 나도 네게 의술을 가르쳐주겠다. 그러니 너도 알고 있는 것을 내게 가르쳐주어라.”
이자림은 의술에 대한 열망이 강했다. 기라독해를 보고 싶어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인 것만 봐도 알 수가 있었다.
어떻게 보면 그런 면에서는 기라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았다.
결국 조윤은 한숨을 내쉬면서 승낙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졸지에 천하오대신의 중 두 명을 제자로 두게 생겼다. 남들이 이 사실을 알면 뭐라고 할까?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조윤의 말을 듣고 이자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옷을 바로 하고 무릎을 꿇더니 절을 세 번 했다.
“제자 이자림이 인사드립니다.”
“이러지 마십시오.”
“아닙니다. 제자가 스승에게 어찌 예를 갖추지 않겠습니까?”
“이러면 제가 불편합니다. 남들이 보는 눈도 있고요.”
“그럼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평소대로 하고 둘만 있을 때만 예의를 갖추겠습니다.”
“하아…….”
조윤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천하오대신의들은 전부 이런 걸까?
어떻게 하는 행동이 이리 같은지 모르겠다. 이건 마치 기라가 한 명 더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알겠습니다. 그러니 어서 일어나십시오.”
이자림은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방 한쪽에 쌓아뒀던 종이 뭉치를 들고 왔다.
“이걸 봐 주십시오.”
“뭐죠?”
조윤이 받아서 읽어보니 의술에 대해 적어 놓은 것이었다.
주로 외상에 관한 거였는데, 놀랍게도 사람의 해부도까지 그러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