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비서 6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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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8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의비서 61화
제4장 방상 (3)
“으아아악!”
“막아!”
“그쪽이 아니잖아!”
“끄아아아!”
다급한 외침과 함께 비명 소리가 크게 울렸다.
살이 잘려나가고 뼈가 꺾이면서 피가 튀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웃고 떠들던 동료들이 맥없이 쓰러지고 있었다.
주위로 시선을 돌리니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그 와중에 조윤은 적을 향해 직도를 휘둘렀다.
상대의 목이 쩍 갈라지면서 피가 솟았다. 눈을 한 번 깜빡이는 찰나에 한 사람이 죽은 것이다.
세 사람이 앞에서 달려들었다. 방패 역할을 해야 할 동료는 모두 죽었다. 같은 공격수였던 진척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았고, 그나마 조장인 석몽이 등을 지켜주고 있었다.
땅!
조윤은 팔에 달아놓은 작은 방패로 상대의 공격을 막았다. 그리고 다리를 차서 넘어트리고 목을 베었다.
뒤이어 덤벼드는 적을 어깨로 받고 옆구리를 찔렀다.
그런 후에 옆으로 돌려세워 그쪽에서 덤벼드는 병사들의 방패로 삼았다. 그러자 칼을 휘둘러오던 병사들이 동료 때문에 주춤거렸다.
그거면 충분했다. 조윤이 몸을 바짝 낮추고 그들 틈으로 파고들었다.
파가가가각!
네 명이 한순간에 쓰러졌다. 두 명은 목을 베였고, 한 명은 다리를 찍혔으며, 남은 한 명은 옆구리가 뚫렸다. 뒤따라 온 석몽이 마무리를 했다.
“제길! 조윤! 이제 빠져나가자!”
석몽이 소리쳤으나 조윤은 듣지 못했다. 적들을 향해 무의식적으로 움직이며 칼을 휘둘러갔다.
예전과 똑같은 상태였다.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의식은 하고 있으나 그뿐이었다. 마치 가위에 눌린 것처럼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때 석몽이 다가오자 조윤이 직도를 휘둘러 목을 베려고 했다.
날카롭고 빠른 공격이었으나 그보다 먼저 석몽의 주먹이 조윤의 얼굴을 때렸다.
“정신 차려!”
그제야 속박에서 벗어난 듯 조윤은 몸을 움직일 수가 있었다.
“어?”
“이제 정신이 드냐? 다들 죽었어! 여기에서 빠져나가야 돼.”
“네? 네.”
뭐가 어떻게 된 걸까?
조윤은 석몽을 따라가면서 한 시진 전의 일을 떠올렸다.
신병훈련을 끝낸 즐거움에 들떠 있던 것이 불과 삼 일 전이었다.
첫 출진을 한다는 연락을 받고 모두 걱정과 불안,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드디어 밖으로 나가 드넓은 황야에서 적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신병들은 배운 대로만 하면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도호인 방상이 직접 이끌고, 실력이 출중한 고참들이 함께 있었다.
하지만 상대가 좋지 않았다. 하필 잔악하고 용맹하기로 이름 높은 흉족과 마주하게 되었다.
더구나 이쪽은 고작 팔십여 명에 신병들까지 끼어 있건만 그들은 이백 명이 넘었다.
방상은 전면전을 할 것 같이 맞붙었다가 도망을 치면서 뒤따라오는 자들을 차례차례 쓰러트렸다.
흉족들은 앞뒤 안 가리고 덤벼드는 성향이 강해서 그러한 전법이 제대로 먹혔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그들 중에 정예가 있어서 삼십 명 정도가 순식간에 당한 것이다.
그때부터 겁을 먹은 병사들이 통제에서 벗어났다. 신병들이 있어서 더욱이 그랬다.
결국 그들에게 쫓겨 뿔뿔이 흩어졌고 조윤은 석몽과 함께 남게 되었다. 그러자 조윤은 서른 명 가까이 되는 적들을 혼자서 쓰러트렸다.
그걸 지켜보던 석몽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당문 출신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저렇게 실력이 뛰어날 줄은 몰랐다. 그 많은 사람들을 쓰러트리는 데 걸린 시간은 그야말로 촌각이었다.
“괜찮으냐?”
“네. 괜찮아요.”
“아까는 어떻게 된 거냐? 제정신이 아니던데, 혹시 살인을 처음 한 거냐?”
“아니요.”
“어쨌든 또 그러면 나도 도와줄 수가 없다.”
“네.”
석몽이 앞장서서 방향을 찾았다. 그는 신병이지만 이곳 출신이라서 근방의 지리를 잘 알았다.
조금 이동하자 곳곳에 쓰러져 있는 흉족들이 보였다.
그중에는 서역도호부의 병사들도 있었다. 보아하니 쫓기는 와중에 여기에서 한차례 접전이 있었던 같았다.
“으…….”
“누가 살아있어요.”
조윤이 신음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달려갔다. 거기에는 다리와 옆구리를 베여서 피를 줄줄 흘리고 있는 흉족이 있었다.
“괜찮…….”
조윤이 말을 걸려 다가가려는 순간이었다. 석몽이 칼을 뽑아 그의 가슴을 찔렀다.
“컥!”
“무슨 짓이에요?”
“뭐?”
“살아 있었어요.”
“뭐가? 놈은 흉족이다.”
“그건 그렇지만…….”
“어설픈 동정심은 버려. 여기는 전장이야. 이 녀석이 우리 동료들을 몇이나 죽였을 것 같으냐? 살려 보내면 또다시 너나 나는 물론이고 동료들을 죽이려고 할 거다.”
맞는 말이었다. 그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마음으로는 납득을 하지 못했다.
서역도호부에 도착하니 공터에 부상자들이 널브러져 신음을 하고 있었다.
돌아다니면서 그들의 상태를 봐주는 사람은 세 명이었으나 실상 실력을 갖춘 의원은 한 명뿐이었다.
조윤은 팔을 걷어붙이고 치료를 돕기 시작했다.
그걸 힐끔 거리면서 보던 의원이 참지 못하고 다가왔다.
“나는 자림이라고 한다. 혹시 의술을 아는 거냐?”
“조윤이라고 해요. 조금 배웠어요.”
말을 하면서도 조윤은 손을 쉬지 않았다. 잘려나간 상처에 금창약을 뿌리고, 빠르게 꿰매서 봉합을 한 후에 붕대를 감았다.
이건 조금 배운 솜씨가 아니었다. 적어도 십 년 이상을, 그것도 이런 상처만 전문적으로 치료를 해본 솜씨였다.
“허, 조금이 아니로군. 실력이 좋구나. 정교야.”
“네. 스승님.”
이자림이 부르자 여자처럼 곱상하게 생긴 젊은 사내가 달려왔다.
“이 사람을 옆에서 도와주어라.”
“네? 하지만 저는…….”
정교가 내키지 않아하면서 변명을 대려고 했다. 그러나 이자림은 그런 정교를 싹 무시하면서 조윤을 향해 말했다.
“내 제자일세. 이름은 정교고, 한 삼 년 정도 배웠지. 손이 부족할 테니 부리게나.”
“네. 고마워요. 여기 이쪽 좀 눌러줘요.”
정교는 여전히 내키지 않았다. 딱 보니 나이가 어린 것 같은데 의술을 알아봐야 얼마나 알까 싶었다.
하지만 사부인 이자림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따라야만 했다.
한데 시키는 것을 하면서 가만히 지켜보니 실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이자림보다도 뛰어났다.
정교는 그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어떻게 이런 실력을 갖췄단 말인가?
“후우…… 이제야 끝났구먼.”
이자림이 허리와 어깨를 두드리면서 중얼거렸다.
어느새 주위가 깜깜해져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제자인 정교와 이도가 와서 인사를 했다. 이자림은 그걸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조윤에게 다가갔다.
“수고했네. 자네 덕분에 몇 명이나 더 살릴 수가 있었네.”
“아닙니다.”
“겸손해하지 않아도 되네. 일단 급한 치료는 끝났으니 어떤가? 함께 차라도 한잔 하는 것이.”
“아, 죄송합니다. 생각해보니 아직 보고를 하지 않았어요. 제가 신병이거든요.”
“어쩐지 얼굴이 낯설다 했더니 신병이었군. 보고라면 아까 함께 온 친구가 하러 갔네. 그러니 걱정 말고 가세나.”
이자림은 조윤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휘적휘적 먼저 걸어갔다.
난처해진 조윤은 어쩔 수 없이 그를 뒤따라갔다. 그러자 정교와 이도가 곱지 않은 눈으로 쳐다봤다.
몇 년씩이나 따라다니면서 배운 자신들에게는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조차도 한 적이 없으면서 차까지 함께 마시자니, 시샘이 나고 질투가 일었다.
“앉게.”
이자림을 따라 방으로 들어가자 한쪽에는 약재가 가득 있고, 탁자와 의자에는 의술 관련서적들이 쌓여 있었다. 그리고 바닥에는 뭔가를 잔뜩 적어놓은 종이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조윤은 앉을 자리가 없어서 의자에 있는 책을 옆으로 치우고 거기에 앉았다.
그러면서 생각해보니 예전에 봤던 기라의 방이 이랬었다. 그는 의술에 미쳐서 하루 종일 약재며 치료방법 등을 연구했었다.
“마시게.”
“네. 고맙습니다.”
이자림이 주는 차를 한 모금 마시자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걸 알아챈 이자림이 웃으면서 말했다.
“머리를 맑게 해주는 약차일세. 이름은 아직 생각을 해놓은 게 없군.”
“약재로 만든 건가요?”
“문득 생각이 나서 만들어봤는데 의외로 효능이 좋더군. 그보다 의술이 뛰어나던데, 어디에서 그렇게 배웠나?”
“스승님에게 배웠습니다.”
“실력이 뛰어난가 보군.”
“당문의 의원이십니다.”
“응? 당문의 의원이라면, 설마 당자기를 말하는 거냐?”
“네. 맞습니다.”
“허, 네가 그의 제자란 말이냐?”
“스승님을 아십니까?”
“알다마다. 그와는 친분이 좀 있지. 그러고 보니 몇 년 전에 도움이 필요하니까 와달라는 연락을 받았었는데. 가지를 못했군. 그때는 이곳을 떠날 수가 없었다.”
“아, 혹시 천하오대신의 중 한 분이신가요?”
“맞다. 사람들은 나를 신수신의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