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비서 57화
무료소설 신의비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6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의비서 57화
제3장 죽음 (1)
화규백은 북해신궁으로 돌아오자마자 무사들을 정문 앞에 배치시켰다. 그것으로도 부족해서 자고 있던 고위무사들까지 전부 불러내 마강과 염장이 올 것을 대비했다. 그러나 그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올 것 같이 말해놓고는 왜 오지 않는 걸까?
불안함과 초조함에 서성이고 있는데, 화중천의 방 앞에서 소란이 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화규백이 다급히 그리로 달려가니 방을 지키던 무사들은 전부 쓰러져 있고 염장과 우노, 마수가 떡하니 서 있었다. 마강이 안 보이는 것으로 봐서 이미 방 안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어떻게 들어온 거냐?”
“비밀통로가 있더군.”
염장의 말에 화규백이 미간을 살짝 좁히면서 인상을 썼다. 화설린이 알려준 것이 분명했다. 예전에 한 번 비밀통로가 있다는 말을 듣기는 했으나 가볍게 넘기는 바람에 정확한 위치는 모르고 있었다.
뒤이어 북해신궁의 무사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그들은 화규백과 염장의 눈치를 보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주춤거렸다. 그 와중에 둘째인 화진모가 왔다.
“형님.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신궁이 왜 이렇게 어수선한 겁니까?”
“너는 알 필요 없다.”
“알 필요가 없다니요? 그게 말이 됩니까?”
화규백은 따지려는 화진모를 무시하고 염장을 향해 말했다.
“들어가겠다.”
“얼마든지.”
염장은 의외로 선뜻 옆으로 비켜섰다. 화규백은 그런 염장의 행동을 보고 뭔가 불안함이 느껴졌으나 애써 무시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영문도 모른 채 투덜거리던 화진모도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예상대로 마강과 화설린, 그리고 당황학을 부축하고 있는 조윤이 있었다.
“왔느냐?”
화중천은 뒤에 베개를 대고 반쯤 앉아서 피곤한 얼굴로 화규백과 화중천을 향해 말했다. 앞에 마강이 있는데도 전혀 긴장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아버님.”
“마강이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기에 듣고 있었다.”
“왜 저자를 가만히 놔두는 겁니까? 당장 죽여야지요!”
화진모가 흥분해서 소리치자 화중천이 낮게 혀를 찼다.
화진모는 저게 문제였다. 첫째인 화규백에 비해 뛰어난 점이 많았으나 생각이 짧았다.
“조용히 하거라. 네가 소리를 지르니까 머리가 울리는구나.”
“네? 네. 죄송합니다.”
화진모를 조용히 시킨 화중천이 다시 화규백을 봤다. 그 시선에는 약간의 경멸이 담겨 있었다. 그걸 눈치챈 화규백은 속으로 뜨끔 했다.
‘독을 쓴 것이 들켰나?’
그럴 가능성이 컸다. 그렇지 않다면 화중천이 저런 눈으로 쳐다볼 리가 없었다.
“마강. 방금 한 이야기를 다시 한 번 해봐라.”
“그러겠소. 염장과 겨룰 때 나는 독에 중독되어 있었소. 당시에는 염장이 한 짓이라 생각했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게 아닌 것 같더군. 우선 염장은 무공밖에 모르는 바보요. 사부인 나를 이렇게 폐인으로 만들 정도로 무공에 미친놈이오. 그런 놈이 독을 쓸 리가 없소. 더구나 내가 중독된 독은 당신이 중독된 독과 같은 거였소. 그러니 만약 염장이 내게 독을 썼다면 당신에게도 독을 썼다는 뜻이 되오. 한데 말했듯이 염장은 무공밖에 모르오. 나나 당신을 굳이 죽일 이유가 없소. 하지만 규백이나 진모라면 다르지.”
“아, 아닙니다. 저는 독 같은 건 쓰지 않았습니다.”
화진모가 화들짝 놀라며 극구 부인했다. 그 모습이 오히려 더 의심을 받을 수도 있다는 걸 그는 모르는 듯했다. 그때 화규백이 침착하게 반문을 했다.
“당신의 말은 오로지 추측일 뿐, 증거가 없습니다. 더구나 당신과 우리는 적입니다. 적의 말을 믿을 정도로 아버님과 우리를 우습게 여기는 겁니까?”
“판단은 네가 아니라 궁주가 하는 거다.”
화중천은 잠시 눈을 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방 안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화규백은 양쪽 어깨를 짓누르는 초조함과 불안함을 떨쳐내기 위해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아직 그에게는 숨겨둔 최후의 수가 있었다. 그러니 아직까지는 괜찮았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심호흡을 했다.
“규백이 내게 독을 썼다 해도 상관이 없다. 사내라면 야망을 위해서 그런 방법을 쓸 수도 있는 게지.”
“아.”
화중천의 말에 화규백은 크게 안심을 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을 듣고는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하지만 들키니 말았어야 했다. 몰랐으면 상관이 없지만 알게 되었으니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아버님. 저들의 말을 믿는 겁니까?”
“믿지 않는다.”
“그런데 왜 그러시는 겁니까?”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화규백은 거기에서 말문이 막혔다.
화중천은 한 번 의심하기 시작하면 절대로 그냥 넘기지 않았다. 철저하게 감시를 하다가 결국에는 목을 쳤다. 그러니 무슨 말을 하든 화중천의 의심을 떨쳐낼 수가 없었고, 그건 이후로도 마찬가지였다.
‘어쩔 수 없군.’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최후의 수를 쓰는 수밖에 없었다.
* * *
“아버님이 저자의 말을 믿고 저를 의심하신다니 할 말이 없군요.”
“내게 의심의 여지를 준 네 잘못이 크다.”
“하하. 그렇죠. 아버님은 항상 그런 식이셨죠.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말해라.”
“아버님의 후계자는 저입니까, 아니면 진모입니까?”
직설적인 물음에 화중천은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대신에 화규백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나는 아직 후계를 생각한 적이 없다.”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아버님은 죽는 순간까지도 후계 따위는 생각하지 않으시겠죠. 지금의 권력이 온전히 아버님 것이어야 하니까요.”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냐?”
“이제 욕심을 그만 부리시라고 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게 힘드실 테니 제가 도와드리죠.”
화규백이 그렇게 말하면서 칼을 뽑았다. 그러자 화설린이 그를 보면서 소리쳤다.
“오라버니!”
“너는 나서지 마라.”
“쯧, 네가 나를 죽이겠다는 거냐?”
“그럴 생각이지만 빙백신검이 있는 곳을 알려주시면 목숨만은 살려드리겠습니다.”
“할 수 있겠느냐?”
“못할 게 뭐가 있습니까? 아버님 아들인데.”
“못난 놈.”
화중천은 잠시 화규백을 노려보다가 아무도 없는 허공에 대고 소리쳤다.
“나오너라!”
“헉!”
허공에서 뚝 떨어져 내리는 네 사람을 보고 방 안에 있던 사람들 모두 크게 놀랐다. 그들이 몸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강은 그들의 정체를 알고 있기에 더욱이 그랬다.
“흑사신인가?”
오로지 궁주의 명령만 듣는다는 네 명의 고수들.
평소에는 절대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정말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는 존재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각자가 지닌 무공이 워낙에 대단해서 일천 명의 무사들이 덤벼도 막아낼 수가 있다고 전해진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어라.”
“그건 제가 아버님께 할 말입니다. 지금이라도 저를 후계자로 인정하고 빙백신검이 있는 곳을 말해주십시오.”
“네가 정녕 죽고 싶은 게로구나. 녀석의 팔다리를 잘라라.”
화중천이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화규백의 팔다리를 잘라야 할 흑사신들이 화중천의 몸에 검을 꽂아 넣었다.
“커헉!”
아무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고 너무나 급작스러웠다. 궁주의 명령만 듣는 저들이 왜 배신을 했단 말인가?
“이게…… 무슨…….”
화중천이 피를 토해내며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흑사신들을 보다가 화규백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화규백이 비릿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러게 말했잖습니까?”
“너…….”
“아버님!”
화설린이 놀라서 화중천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그걸 보고 마강이 붙잡고 말렸다.
“안 된다!”
“놔주세요. 아버님이…….”
“진정해! 저들이 너까지 죽일지도 모른다.”
“놔주세요! 놔주세요!”
화설린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결국 보다 못한 마강이 그녀의 마혈과 수혈을 짚어서 기절을 시켰다.
그때 밖에서 방을 지키고 있던 염장과 우노, 마수가 안으로 들어왔다. 화설린이 울부짖는 목소리를 듣고 문제가 생긴 것을 안 것이다.
“이게 무슨…….”
화중천이 검에 찔려 있는 모습을 보고 세 사람은 크게 놀라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그러게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가는 길에 궁금하실 테니 저들이 왜 제 명령을 듣는지 이야기를 해드리지요. 저들이 따르는 것은 궁주가 아니라 빙백신검을 가진 자입니다. 안타깝게도 아버님이 쓰러져 있는 동안 제가 빙백신검을 찾아냈습니다. 그럼에도 조윤에게 시켜 아버님을 치료하게 한 건 마지막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정식으로 아버님께 인정을 받아서 궁주가 되고 싶었는데 일이 이렇게 되었군요. 어쨌든 기회를 한 번 드렸으니 자식 된 도리는 그로써 다한 겁니다. 이제는 죽으십시오.”
화규백의 말이 끝나자 흑사신들이 화중천의 몸에 꽂아 넣었던 검을 동시에 뽑아냈고, 순간 피가 확 튀면서 사방으로 흩날렸다.
“가라!”
마강이 소리치면서 당황학과 조윤을 밀어냈다. 그리고 짚고 있던 지팡이를 휘두르며 화규백에게 달려들었다.
따당!
마강의 지팡이는 화규백의 눈앞에서 아슬아슬하게 멈췄다. 흑사신 중 한 명이 그의 무기를 막아낸 것이다. 찰나에 다른 세 명이 마강을 공격했으나 그건 염장과 우노, 그리고 마수가 막아냈다.
그들이 서로 엉키며 어지럽게 싸우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문밖에서 대기 중이던 무사들이 방 안으로 들어오려고 했다. 그걸 보고 조윤이 백아를 뽑아들었다.
한데 생각지도 않게 화진모가 그들을 제지했다. 물론 조윤을 돕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가 도망을 치기 위해서였다.
“비켜라! 어서 비켜!”
화진모가 그러면서 길을 트자 조윤은 당황학을 부축한 채로 그 뒤를 따라 포위를 벗어났다. 뒤따라 마수가 화설린을 업고 나왔다.
“조윤. 아가씨를 부탁한다.”
“네? 함께 안 가고요?”
“나는 사부님과 우노를 도와야 한다.”
“하지만…….”
조윤은 말리고 싶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만약 당황학이 그런 상황에 빠져 있다면 자신 역시 죽을 것을 알면서도 되돌아갔을 것이다.
마수는 씁쓸한 얼굴로 화설린을 보다가 휙 몸을 돌려 달려갔다.
조윤은 그런 마수의 모습을 가만히 서서 지켜보다가 화설린을 등에 업었다. 그리고 당황학과 함께 화설린의 방으로 갔다. 거기에 있는 비밀통로를 이용해서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였다.
“음…….”
“아, 정신이 들어요?”
화설린이 눈을 뜨자 조윤이 물었다. 그녀는 잠시 멍한 눈으로 조윤을 보다가 벌떡 일어나며 화중천에 대해서 물었다.
“아버님은?”
“돌아가셨어요.”
조윤의 대답에 화설린은 눈물을 흘렸다. 조윤은 그녀의 등을 다독이며 위로를 했다. 조금 더 진정될 때까지 기다리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빨리 여기를 빠져나가야 해요.”
“규백 오라버니 때문이지?”
“네. 궁주님이 죽고 나서 싸움이 났어요. 어쩌면 지금쯤 다 죽었을지도 몰라요.”
화설린의 얼굴이 더욱이 비통해졌다. 화규백이 그럴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었기 때문에 충격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곧 마음을 다잡고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냥 나가면 안 돼.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
화설린은 그렇게 말하면서 조윤이 채 말릴 사이도 없이 방을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숨을 헐떡이면서 다시 돌아왔다. 그런 그녀의 품에는 하얀 천으로 둘둘 말린 검이 들려 있었다.
“그게 뭐예요?”
“아무것도 아니야. 어서 가자.”
“네.”
비밀통로를 통해서 밖으로 나온 조윤은 거기에 놔뒀던 수레에 당황학을 태웠다.
“죄송해요. 사부님.”
“뭐가 말이냐?”
“마강 아저씨를 돕지 못한 거요.”
“그가 스스로 택한 길이다. 더구나 너나 나나 그를 도울 길이 없었다. 오히려 짐이나 되지 않으면 다행인 상황이었잖느냐? 그걸 알기에 그도 굳이 도와달라고 하지 않은 거다. 마음에 담아두지 말거라.”
당황학의 말을 들으면서 조윤은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북해에 와서는 가치관이 자꾸 흔들렸다. 뭐가 옳고 그른지 판단을 할 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혼란스러웠고 마음이 어지러웠다.
조윤은 말없이 수레를 끌었다. 당황학도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고, 화설린도 조용히 걷기만 했다.
그렇게 얼어붙은 강에 도착했을 때였다. 멀리서 북해신궁의 무사들이 빠르게 쫓아오는 것이 보였다.
“조윤.”
“네.”
“저들은 나를 쫓아온 거야. 그러니까 너는 이대로 강을 건너.”
“화 소저는요?”
“규백 오라버니가 보낸 자들이니까 나를 죽이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너는 달라. 어서 도망가.”
“하지만…….”
조윤이 함께 가자고 말하려는데 화설린이 갑자기 덥석 끌어안았다. 그리고 귓가에 대고 나직이 속삭였다.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무슨 뜻일까?
그러나 조윤이 묻기도 전에 화설린은 강가를 따라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