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비서 5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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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5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의비서 56화
제2장 혼란 (3)
“그렇게 된 거예요.”
“흠. 네 의술이 그렇게 뛰어날 줄은 몰랐구나. 어쩐지 신궁으로 간다고 했을 때 꺼려지더라니.”
마강이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설마 조윤이 정말로 화중천을 치료할 줄은 몰랐다.
이로써 그가 계획했던 일은 전부 허사가 되어버렸다. 그게 안타까워 허탈한 마음이 들었으니, 이 또한 하늘의 뜻이라 여겨졌다.
“마강 아저씨와 사부님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궁주님을 치료하지 않아야 하지만 화 소저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어요. 무엇보다 치료를 할 수가 있는데 환자를 모른 척할 수도 없었고요.”
“이해한다. 너를 탓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구나. 네가 모르는 것이 많으니 우선 그 이야기부터 해주마.”
그렇게 말한 마강은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할지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에 입을 열었다.
“내가 랑족을 끌어들여서 북해신궁을 치려고 했던 것은 이유가 있단다. 궁주인 화중천이 포악하고 잔인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조윤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듣게 되자 멍하니 마강을 쳐다봤다.
그러자 마강이 옛일을 회상하는 듯, 시선을 멀리 두며 이야기를 계속 했다.
“화중천은 형제 셋을 죽이고 북해신궁의 궁주가 되었다. 그 때문인지 정신이 온전치 않았지. 신궁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갈취하고 죽였다.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반하는 자는 절대로 살려두지 않았다. 항상 그에게 직언을 하며 충고를 했었기에 나 역시 그에게는 껄끄러운 존재였지. 하지만 당시에는 북해최고수로 인정을 받고 있었고, 그 때문에 나를 따르는 자들이 많아서 쉽게 손을 쓰지 못했지. 그래서 랑족을 끌어들여 북해신궁에 해를 가하려 한다는 얼토당토않은 누명을 씌워서 나를 죽이려고 했다. 그 사실을 알고 화중천에게 따지러 갔더니 그가 그러더구나. 북해신궁의 평화를 위해서 죽어달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뭐가 북해신궁의 평화란 말이냐? 그저 눈에 거슬리니까 죽이려는 것뿐이다. 나는 그런 화중천에게 화가 났다. 그래서 그가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는 생각에 그 길로 랑족을 만나 북해신궁을 치기로 했다. 한데 생각지도 않게 화중천이 독에 중독이 된 것이다.”
“마강 아저씨가 한 일이 아닌가요?”
“다들 그렇게 알고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내가 아무리 그를 미워하기로서니 그런 옹졸한 방법은 쓰지 않는다. 그래서 처음에는 오히려 그가 자작극을 하는 건 아니지 의심을 했었다.”
“그럼 범인이 따로 있나요?”
“그래.”
“누구죠?”
“누구일 것 같으냐?”
마강이 되묻자 조윤은 누가 그랬을지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궁주인 화중천이 죽으면 이득을 볼 사람이 누구일까? 마강에게 누명을 씌울 수 있으니 아마 절호의 기회였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을 하자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설마…….”
“그래. 화규백이다.”
* * *
조윤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화중천의 병을 치료해준다고 했을 때 정말 가능하냐고 몇 번이나 되묻던 화규백의 얼굴이 생각났다.
그는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화중천이 낫기를 바라고 있었다.
한데 그것이 전부 거짓이라니 쉽게 믿기지가 않았다.
“제가 궁주님을 치료한다고 했을 때 그는 진심으로 걱정을 했었어요.”
“내가 염장에게 당하고 나서 왜 화진모를 부추겨서 화규백과 맞서게 했는지 아느냐? 화규백은 아비인 화중천을 꼭 빼다 박았다. 유약한 척, 인자한 척하지만 속은 시커먼 놈이지. 그의 진면목을 아는 건 나와 염장뿐이다.”
“믿어지지가 않아요.”
“그럴 거다. 나 역시도 그의 진면목을 알고는 크게 놀랐었으니까.”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왜 궁주님을 치료하게 놔둔 거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지.”
“원하는 거요?”
“북해신궁에는 대대로 궁주에게 전해지는 검이 있다. 빙정(氷精)의 기운을 품고 있어서 차가운 냉기가 뿜어져 나오는 검이지.”
“빙백신검(氷白神劍)이로군.”
지금까지 조용히 듣고만 있던 당황학이 끼어들자 마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북해신궁의 신병이기(神兵利器)이자 궁주만이 다룰 수가 있는 검이지. 그렇기에 궁주의 상징이기도 하다네. 그 검이 있는 곳은 화중천만이 알고 있네. 그런데 갑자기 쓰러지는 바람에 후계를 정하지 못했고, 빙백신검이 있는 곳도 알려주지 못했지. 그 때문에 화규백은 빙백신검을 얻지 못했네.”
그제야 조윤은 모든 정황을 알 수가 있었다. 권력 때문에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려고 한다니,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세계는 원시적이고 포악했다. 또한 잔인했다. 그렇기에 어쩌면 흔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일지도 몰랐다.
“화규백이 너를 이곳으로 끌어들인 것을 보니 화중천을 죽이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구나.”
“아니에요. 저는 화 소저가 이야기를 해줘서 왔어요.”
“화규백이 그렇게 행동하도록 정보를 흘렸을 거다. 빙백신검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면 화중천을 다시 죽이려고 할 테고, 그럼 네가 껄끄럽겠지. 어쩌면 화중천을 죽인 후에 너에게 누명을 씌울 수도 있다. 너와 내가 손을 잡았다고 하면 다들 믿을 테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부딪치는 수밖에 없다.”
조윤이 묻자 마강이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그리고 지팡이에 의지해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동굴 밖으로 나갔다.
“우리도 함께 가자꾸나. 마지막 가는 길은 지켜봐주는 것이 예의겠지.”
당황학이 그렇게 말하면서 손을 내밀었다. 부축해달라는 뜻이었다.
조윤은 당황학을 부축해서 함께 동굴 밖으로 나갔다.
화규백과 염장은 지금껏 동굴 안에만 있던 마강이 나오자 의아한 얼굴로 쳐다봤다. 그리고 그건 우노와 마수도 마찬가지였다.
“사부님.”
“왜 나오신 겁니까?”
우노와 마수가 마강을 부축하려고 했다. 그러자 마강이 두 사람을 손을 밀어냈다.
“됐다.”
마강은 지팡이를 짚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우노와 마수가 걱정이 되어 뒤따르려고 하자 그마저도 제지를 했다.
“그대로 있거라.”
“사부님.”
“함께 가겠습니다.”
“됐다.”
마강은 고집스럽게 홀로 화규백과 염장의 앞에 섰다. 그리고 큰 목소리로 염장을 불렀다.
“염장!”
“죽으려고 나온 겁니까?”
염장이 천천히 마주 걸어 나오면서 중얼거렸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마강이 다시 크게 소리쳤다.
“벽을 넘었느냐?”
무슨 뜻일까?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난데없이 벽을 넘었냐고 묻다니, 다들 의아함에 두 사람을 주시했다.
한데 방금까지만 해도 자신감 넘치던 염장이 제자리에 서서 움직이지를 않았다.
“벽을 넘었느냐고 물었다!”
“그걸 왜 묻는 겁니까?”
“네 사부이기에 묻는 거다. 대답해라.”
염장은 대답하지 못했다. 벽을 넘었냐는 것은 검강을 쓸 수 있는지를 묻는 말이었다.
사부인 마강을 불구로 만들고 염장은 밤낮으로 노력을 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검강을 쓰지 못했다. 당황학이 검강을 쓰는 것을 보고 뭔가 깨달음의 실마리가 잡힐 듯했지만 성과가 없었다.
“못난 놈. 길 안내나 해라. 궁주를 만나러 가겠다.”
길 안내를 하라는 말은 북해신궁에 도착할 때까지 보호를 하라는 뜻이었다.
“제가 이제 와서 순순히 사부님의 말을 들을 거라 생각하는 겁니까?”
“아니더냐?”
“저는 사부님을 죽이러 왔습니다.”
“벽을 넘고 싶지 않으냐?”
그 한마디에 염장의 얼굴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맞다. 지금 북해에서 검강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마강뿐이었다. 그의 도움을 받는다면 벽을 넘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왜? 라는 의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팔다리를 자른 것으로도 모자라 죽이려고까지 하는 제자한테 왜 도움을 주려고 하는가?
“제게 이러시는 이유가 뭡니까?”
“네 사부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더 이상 제 사부가 아닙니다.”
“하면 아까는 왜 사부라고 불렀느냐? 그날 나를 죽이지 않은 것도 지금 이때를 위해서가 아니더냐?”
염장은 아니라고 할 수가 없었다. 비무에 이기고 팔다리만 자른 후에 살려 보낸 것은 마강이 독에 중독되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무공이 높아질수록 진보가 더디다. 검기는 쉽게 다룰 수 있지만 검강을 쓰기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이 걸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평생 동안 못할 수도 있었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단순히 노력만으로, 또는 재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뛰어난 사부의 가르침과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 거기에 더해 자신의 재능과 노력이 있어야 했다. 그래야 그나마 좀 빠르게 벽을 넘어설 수가 있었다.
그걸 알기에 염장은 후환이 될 거라 생각하면서도 마강을 살려 보냈었다.
“궁주와의 일이 마무리되는 대로 내가 얻은 모든 것을 전해주마.”
“그걸 어떻게 믿습니까? 차라리 우노와 마수에게 전하시지요.”
“그게 가능했다면 진즉 그렇게 했을 게다. 긴말 말고 안내나 해라.”
“음…….”
미간을 좁히며 잠시 인상을 쓰던 염장이 크게 한숨을 내쉬며 옆으로 비켜섰다. 따르겠다는 뜻이었다.
마강은 한 입으로 두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한다면 하는 사람이었고, 약속을 천금과 같이 여겼다. 하니 심득을 전해주겠다는 말도 빈말이 아니라 여겨졌다.
“무슨 짓이오? 그를 죽여야 하지 않소?”
화규백이 놀라서 염장에게 소리쳤다. 그러자 염장이 어깨를 한 번 으쓱하면서 말했다.
“보지 않았소? 도망치겠다는 것도 아니고 신궁으로 가겠다는데 굳이 말릴 이유가 있소?”
“궁주님의 명을 거역할 셈이오?”
“내가 직접 받은 명령은 없소이다.”
사실이 그랬다. 염장은 화규백이 전하는 말을 듣고 따랐을 뿐이다.
“염장!”
“그리 화를 내도 어쩔 수 없소. 이미 결정을 내렸으니까.”
“됐소. 모두 저자를 죽여라!”
화규백이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리자 염장이 칼을 뽑아들며 그들을 막아섰다.
“누구든 죽고 싶다면 나서도 좋다.”
염장은 현재 북해최고수라 불리고 있었다. 백여 명 가까이 무사들이 그의 기백에 눌려 선뜻 나서지 못했다. 그걸 보고 화규백이 인상을 확 쓰면서 염장을 노려봤다. 하지만 염장은 태연하게 그 시선을 받아넘겼다.
“방금 한 일을 크게 후회하게 될 거요.”
화규백이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