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비서 91화
무료소설 신의비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3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의비서 91화
제6장 부탁 (2)
밖으로 나온 조윤은 분위기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당수백이 인상을 잔뜩 쓰고 있고 주위의 환자들이 모두들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그러나 싶어 어리둥절해하다가 문득 짚이는 것이 있었다.
‘아차! 흑묘와 나눈 이야기를 모두 들었구나.’
수술실이라고 해봤자 천 하나를 사이에 둔 것뿐이었다. 더구나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무공을 익힌 사람들이었다. 안에서 나누는 이야기를 못 들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수술이 무사히 끝나자 긴장이 풀리는 바람에 그런 이야기를 나눈 것인데 이렇게 모두가 듣고 있을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가주님. 그게, 흑묘가 나쁜 뜻으로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닙니다.”
“나도 알고 있다.”
말은 그렇게 하고 있으나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욕을 먹은 거나 다름없으니 그럴 만도 했다.
“제가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용서해주십시오.”
“전부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무슨 용서를 하라는 건가? 그보다 신우는 어떠냐?”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이제는 경과를 지켜봐야 합니다.”
“팔을 붙였단 말이냐?”
“네.”
“허!”
당수백이 대단하다는 듯이 크게 감탄을 했다. 당효주를 치료할 때도 그랬지만 그 뛰어난 의술은 사람을 놀라게 할 만했다. 잘린 팔을 붙이다니, 지금껏 그런 건 들어본 적조차 없었다.
“수고했다.”
당수백은 그 말을 하면서 조윤의 어깨를 다독였다. 이전에는 단지 당효주 때문에 조윤을 붙잡아두려고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진심으로 그 재능이 탐이 났다.
* * *
공손세가가 무너졌다. 공손융보가 당신우의 팔을 자르고 당수백에게 죽임을 당하자 폭음과 함께 중앙에 있는 건물이 터졌다. 그 여파로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인근에서 싸우던 사람들까지 전부 죽거나 다쳤다.
더 이상 승산이 없음을 알고 미리 준비를 해둔 폭약을 터트린 것이다. 이는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마교의 인물들이 안 보이기에 다들 건물 안에 뭔가 함정을 마련해놓고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한데 함께 죽자고 폭약을 터트릴 줄은 몰랐다.
동귀어진이라니.
폭약은 관청에서 대단히 까다롭게 관리를 한다. 걸리면 무조건 역모로 몰아 구족을 멸한다. 그런 폭약을 그 커다란 건물을 날려버릴 정도로 많이 구해놓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쨌든 전쟁은 정의맹의 승리로 끝이 났다. 당수백이 당신우 때문에 정신없어 하는 동안 아미파의 정인사태와 청성파의 도간진인이 뒷정리를 했다. 그리고 공손세가의 빈 건물을 깨끗하게 치우고 부상자들을 거기서 쉬게 했다.
부상자들이 이렇게까지 많이 살아남은 경우는 처음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조윤과 단목세가 사람들 덕분에 목숨을 건진 사람들이 많았다. 그 때문에 약재도 더 필요했다.
조윤은 우선 공손세가에 있는 약재를 가져다 썼다. 그러다 당수백의 명으로 무사들이 인근에 있는 약방의 약재를 대거 가져왔다. 나중에는 그것으로도 부족해서 가까운 위치에 있는 청성파에까지 도움을 청했다.
그러는 동안 인근의 의원들과 각 문파에서 보낸 의원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나름 의술에 자신이 있는 자들은 어깨에 힘을 주고 행세를 하려고 했었다. 이참에 한몫 단단히 챙기려는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환자들의 상태를 보고 적지 않게 놀랐다. 자신들이라면 절대로 살리지 못했을 사람들이 멀쩡하게 살아있었다.
더구나 당문 소가주의 잘린 팔까지 붙였다고 한다. 도대체 누가 있어 그런 신기를 펼쳤나 궁금해 하다가 조윤을 보고는 또 한 번 크게 놀랐다.
나이가 아직 약관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의술이 그리 뛰어나단 말인가?
뒤늦게 조윤이 소청신의라는 것을 알고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의술이 좀 뛰어나다고 잘난 척을 하려던 의원들은 감히 이름조차 대지 못했다. 한몫 챙기려던 의원들도 고개를 숙이기에 바빴다. 조윤이 밤잠까지 줄여가며 대가 없이 성심성의껏 치료하는 모습을 보니 깨닫는 바가 있었던 것이다.
보름 정도가 지나자 가벼운 증상의 환자들은 전부 돌아갔다. 중환자들은 대부분 고비를 넘긴 상태였고, 의원들이 잔뜩 와있어서 조윤도 좀 한가해졌다.
이에 조림차를 마시면서 쉬고 있는데 낯익은 몇몇 의원들이 다가왔다.
“여기에 있었군요. 하하.”
“무슨 일입니까?”
조윤이 묻자 처음 보는 중년사내가 대뜸 반말을 하며 앞으로 나섰다.
“생각보다 어리군.”
“못 보던 분이시군요.”
“나는 진위라고 한다. 신의문에서 이십 년간 의술을 배웠지. 험.”
말하는 투를 들어 보니 어째 자랑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조윤은 상관하지 않고 포권을 했다.
“반갑습니다. 저는 조윤이라고 합니다.”
“듣자니 의술이 뛰어나다고 하더군.”
“내세울 정도는 아닙니다.”
“사부가 누구인가?”
“당문의 의원이셨던 당자기란 분입니다.”
“당자기? 당자기라……. 그런 사람은 들어 보지 못했군. 한데 당문에도 의원이 있었던가?”
“그렇습니다.”
“하긴 그대도 당문의 의원이었지.”
진위는 은근히 조윤을 낮춰 말하고 있었다. 그걸 조윤도 알고 있었으나 별말 하지 않았다. 어디에든 이런 사람이 있었다.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을 보면 시기와 질투를 하며 어떻게든 깎아내려는 사람 말이다.
화를 낼 거라 생각했는데 조윤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진위는 살짝 인상을 썼다.
“궁금한 것이 있네만.”
“물어보십시오.”
“자네가 당문에서 구음절맥을 치료했다고 하던데, 그게 정말인가?”
“그렇습니다.”
“믿을 수가 없군. 지금까지 구음절맥을 치료한 의원은 아무도 없었네.”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치료했다고? 혹여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닌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치료를 했는지 말해보게나.”
의원에게 처방을 묻는 건 굉장한 실례였다. 타문파의 비전을 알려달라고 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조윤은 숨기지 않고 다 이야기를 했다.
“막힌 혈관을 찾아서 이었습니다.”
“뭐? 혈관을 이었다고?”
“네.”
생전 처음 듣는 말에 진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혈관을 잇다니,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그건 신의문에 있을 때도 들어본 적이 없는 치료방식이었다.
“혈관을 어떻게 잇는단 말이냐?”
“당연히 칼로 잘라서 잇죠.”
“하하하하.”
갑자기 진위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가 생각하기에 조윤이 말한 치료방법은 정말 얼토당토않은 거였다.
“혹시 당문의 소가주 팔을 붙인 것도 그렇게 한 거냐?”
“비슷합니다.”
“이제 보니 사기꾼이로군. 의술을 조금 할 줄 안다고 사람들을 속이고 다니다니 그게 무슨 짓이냐?”
“네?”
“치료가 되지 않았는데 치료를 했다고 환자를 속인 것 아니냐?”
“그렇지 않습니다.”
“아니면 네 말을 어떻게 믿나?”
“저는 굳이 믿어 달라고 한 적 없습니다.”
“오호라,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군.”
진위는 의기양양하게 눈을 부라리면서 조윤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자 함께 온 의원들이 걱정이 된다는 듯이 그를 말렸다.
“진 의원님,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맞습니다. 상대는 당문입니다. 누가 당문을 속이려 들겠습니까?”
“모르는 소리! 그러니까 속는 거다. 그분들도 감히 누가 자신들을 속일까 싶어서 안심을 하고 있는 거겠지. 네 녀석의 실력이 진짜라면 어디 증명을 해봐라. 구음절맥을 치료한다고 환약을 먹였을지 어떻게 아느냐? 앵속을 썼을지도 모르지. 네가 치료했다는 소가주님의 팔을 봤다. 그저 꿰매서 붙여놓았을 뿐이던데 그래서 치료가 되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조윤은 뭐 이런 사람이 있나 싶었다. 앵속은 양귀비를 뜻한다. 다시 말해 진위는 마약을 써서 병이 호전된 것처럼 당효주를 속인 것이 아니냐고 따지고 있었다. 그리고 당신우의 팔은 그저 꿰매만 놓은 것이라고 말이다.
어이가 없어서 뭐라고 한마디 하려는데 때마침 그 자리로 오던 당자휘가 차갑게 말을 내뱉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군.”
“넌 누구냐?”
“헛! 당문의 이공자시군요.”
“어떻게 여기에 오셨습니까?”
진위는 당자휘가 누군지 몰랐다. 그러나 같이 있는 의원들은 그를 본적이 있었다. 그들이 마치 들으라는 듯이 이야기를 하자 진위가 화들짝 놀라면서 인사를 했다.
“이제 보니 이공자였군요. 몰라봤습니다. 저는 신의문에서 이십 년 동안 공부를 한 진위라고 합니다.”
진위는 유독 신의문에서 이십 년 동안 있었던 것을 강조했다. 그렇게 자신을 당자휘에게 인식시키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당자휘는 그런 것은 흥미 없다는 듯이 다른 이야기를 했다.
“그보다 아까 하던 이야기를 계속해 봐.”
“네?”
“조윤이 내 동생에게 앵속을 썼을 거라고 했잖아.”
딱 봐도 나이가 어린 당자휘가 계속 반말을 하자 신경에 거슬렸으나 그런 것을 내색할 정도로 진위는 어수룩하지 않았다. 그는 윗사람에게는 철저하게 굽히고 아랫사람에게는 으스대는 그런 인간이었다.
“그게, 그러니까…… 이 사람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해서…….”
“형님 팔도 그냥 꿰매 놓은 거라고 했지?”
“네? 네. 그렇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랬습니다만…….”
“네 말대로 그럴 수도 있겠군.”
어떻게 대답을 할지 몰라 말을 질질 끌던 진위는 당자휘가 수긍을 하듯이 말하자 얼굴이 밝아졌다.
“그렇습죠. 혈관을 잘라서 잇는다니, 제가 신의문에 이십 년 동안 있었지만 그런 치료방법이 있는 건 들어본 적조차 없습니다. 신의문이 어떤 곳인지는 이공자님도 아시리라 봅니다.”
“알지. 조윤, 너는 그걸 어떻게 증명할 거냐?”
조윤은 당자휘가 왜 갑자기 그런 것을 묻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설마 그도 안 믿는 건가?’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자신이 한 수술은 이 시대에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방법들이었다. 의원들이 저러니 의술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은 어떻겠는가?
“효주와 소가주님의 상태를 지켜보면 알 것 아닙니까?”
“아니지. 그동안 네가 도망을 칠 수도 있지.”
“맞습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 진실을 밝히고 내쫓아야 합니다.”
“그럼 그대에게 묻지. 조윤이 거짓으로 치료했다는 것을 밝힐 방법이 있는가?”
“그건…….”
진위가 선뜻 대답을 못하자 옆에 있던 의원 한 명이 끼어들며 말했다.
“방법이 있습니다.”
“뭔가?”
“구침지회를 해서 실력을 알아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구침지회? 그게 뭐지?”
“닭에게 침을 꽂는 겁니다. 총 아홉 개를 꽂되 침이 완전히 보이지 않을 정도로 꽂아야 합니다. 그래도 닭이 살아있다면 누구나 인정을 할 겁니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물론입니다. 일반 의원들은 세 개도 꽂지 못합니다.”
“그거 재미있겠군. 하지만 조윤만 하면 재미가 없을 테니 당신도 함께 하지.”
“저, 저 말입니까?”
진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그러자 당자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조윤의 실력을 의심한다는 건 그만큼의 실력이 있다는 뜻 아닌가?”
“그, 그거야…….”
“아니면 미천한 실력으로 조윤을 의심했다는 건가?”
순간 당자휘가 기세를 뿜어내자 진위가 움찔하면서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진위도 무공을 할 줄 알지만 당자휘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기가 눌려 그는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아, 알겠습니다. 하겠습니다.”
“보는 사람들이 많으면 좋겠지. 내일 이 시각에 시합을 할 테니 단단히 준비를 해라. 누구든 지게 되면 실력이 없다는 뜻이고, 나를 속였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절대로 가만두지 않겠다.”
“물론입니다.”
진위는 당장에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자 재빨리 대답을 했다. 그는 이대로 도망을 칠 생각이었다. 하지만 당자휘는 그런 진위의 마음을 꿰뚫어보고 일침을 가했다.
“만약 도망가거나 하면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고통을 맛보게 해주겠다.”
“네, 네!”
진위가 바짝 얼어서 대답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