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비서 86화
무료소설 신의비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7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의비서 86화
제4장 무림대회 (3)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모르겠군요. 나는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조윤의 말에 낙소문이 인상을 살짝 썼다. 하지만 워낙에 미인이라 그마저도 예뻐 보였다.
“아니요. 당신의 실력은 이 정도가 아니었어요.”
“뭔가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군요.”
“예전에 아미파에 찾아와서 보여줬던 실력은 뭐였죠?”
“그때는 어렸을 때입니다. 지금은 몇 년이나 지났어요.”
“그러니 이상하다는 거예요. 당신이 재능이 없고, 당신의 사부님이 보통 사람이었다면 나도 의문을 갖지 않았을 거예요.”
“나는 의술은 뛰어나도 무재는 그리 대단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낙 소저나 저기에 있는 현진 도사가 저보다 훨씬 더 뛰어나죠.”
“그렇지 않아요. 어렸을 때 당신과 겨루고 느낀 건 커다란 벽이었어요. 지금까지 그 벽을 허물기 위해서, 당신을 뛰어넘기 위해 나는 노력해왔어요.”
낙소문이 그리 말하니 사람들은 의아한 시선으로 조윤을 쳐다봤다. 아무리 아미파가 명문이라지만 재능과 노력이 뒷받침을 해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었다. 낙소문은 그걸 충분히 채웠기에 저 나이에 저렇게까지 강해진 것이다. 더구나 여자의 몸으로 말이다.
그런 낙소문이 벽을 느꼈다고 한다. 도대체 조윤이 어느 정도였기에 그런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방금 본 비무가 대단하기는 했지만 그들의 상식 안에 있었다. 그랬기에 조윤이 실력을 숨긴다는 낙소문의 말이 사실처럼 느껴졌다.
“그거에 대해서는 뭐라 할 말이 없어요.”
조윤이 그렇게 말하자 낙소문의 인상이 살짝 굳었다. 사실 그녀는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그저 안부를 묻고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과는 달리 계속 엉뚱한 말이 나왔다. 이래서는 마치 시비를 거는 것 같지 않은가?
잠시 조윤을 빤히 쳐다보던 낙소문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심장이 쿵하는 느낌을 받았다. 미인의 한숨과 근심어린 표정이 갖는 위력이었다.
“내공이 생각보다 약하던데 혹시 독에 중독된 게 아직 다 낫지 않은 건가요?”
“솔직히 말하면 최근에야 완전히 치료가 되었어요.”
조윤의 대답에 낙소문의 얼굴이 차가워졌다. 미안하고 걱정이 되어서 그런 거였지만 그렇게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좋아요. 그럼. 내공을 쓰지 말고 겨루죠.”
“아니요. 그냥 제가 패배를 인정하겠습니다. 예전에는 어땠을지 몰라도 지금의 나는 낙 소저가 기대하는 만큼의 실력을 지니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낙 소저.”
조윤이 똑바로 쳐다보면서 부르자 낙소문이 멈칫하며 입을 다물었다.
“미안합니다.”
조윤은 정중히 포권을 하면서 사과를 하고 그대로 단상에서 내려왔다.
이후에도 비무는 계속 되었으나 사람들은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히려 왜 낙소문이 그렇게까지 조윤과 겨루려고 했는지 그걸 더 궁금해 했다.
그날 저녁 숙소에서 쉬려는데 낙소문이 찾아왔다. 생각지도 못한 방문이라 조윤은 조금 당황했다.
“무슨 일입니까? 혹시 여기서 다시 비무를 하자고 찾아온 건가요?”
“아니에요!”
낙소문은 강하게 부정하며 소리쳤다. 조윤은 늘 무표정하던 그녀가 그렇게 격한 반응을 보이자 의외였다.
“그, 그렇군요.”
“나는…….”
머뭇거리면서 입을 연 낙소문은 이내 용기를 냈다. 그녀가 이 늦은 시간에 찾아온 이유는 사과를 하고 고마웠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고마워요!”
“네?”
“아니 그러니까…… 고맙다고요.”
“뭐가 말입니까?”
“객잔에서 그…….”
‘아!’
그제야 조윤은 낙소문이 왜 왔는지 알아차리고는 미소를 지었다. 보기에는 굉장히 차가워 보이는데 심성은 착하고 여린 것 같았다.
“그때는 나도 미안했어요. 치료를 위해서 그랬지만 어쨌든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조윤이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숙이자 낙소문이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일단 좀 들어올래요? 차라도 한 잔 하세요.”
늦은 시간이었고 남자 혼자 지내는 방이었다. 함부로 들어갈 수가 없어 조금 망설였으나 낙소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잠시만 있다 갈게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조윤을 따라 방에 들어가니 벽에 걸려있는 여러 종류의 약재 때문에 은은하니 향이 났다. 또한 탁자에는 여러 권의 책들과 뭔가를 잔뜩 적은 종이가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거기에 앉아요.”
조윤이 자리를 권하자 낙소문이 앉아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 사이에 조윤은 차를 끓여서 내왔다.
“마셔 봐요.”
낙소문이 차를 한 모금 마시자 시원한 향이 느껴졌다. 동시에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낙소문은 차를 좋아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많은 종류의 차를 마셔봤지만 이런 건 처음이었다. 이에 참지 못하고 물었다.
“이게 차죠? 청차인 것 같은데.”
“약차에요. 제자 중 한 명이 개발한 건데 머리를 맑게 해주는 효과가 있어요.”
“이름이 뭐죠?”
“조림차요.”
조윤이 약간 쑥스러워하면서 말했다. 조림차는 신수신의 이자림이 만든 차였다. 원래는 이름이 없었으나 자신의 이름과 조윤의 이름을 한 글자씩 따서 붙인 것이다.
“음…… 정말 좋아요.”
“하하. 조금 싸서 줄 테니까 갈 때 가져가요.”
“그래도 되요?”
“물론이죠. 약재가 조금 비싸기는 하지만 당문에 많이 있으니까 괜찮아요.”
“낮에는…… 미안했어요. 조금 무례했죠?”
낙소문이 고개를 푹 숙이고 찻잔을 만지작거리면서 말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조윤은 그녀의 머리에 꽂혀있는 비녀에 시선이 갔다. 그건 조윤이 원래 당효령을 주려고 만든 거였다.
하지만 기회가 없어서 주지 못하던 차에 당황학과 비무행을 하게 되었고, 낙소문과 겨루다가 비녀가 망가지자 아무 생각 없이 줬었다. 그런데 그걸 아직도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조윤이 대답 없이 빤히 보고 있자 낙소문이 의아해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 조윤이 비녀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얼굴을 살짝 붉혔다.
“이, 이건 그냥…… 마음에 들어서…….”
“원하면 하나 더 만들어줄게요.”
“직접 만든 거였어요?”
“네. 장인을 찾아가서 부탁한 거예요. 그런 모양의 비녀는 어머니 말고는…….”
말을 하던 조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백모연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동시에 당이주도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 와서 한 번도 찾아가지를 않았었다. 조윤은 자신이 너무 무심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가문이 멸문당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그랬나요? 하하. 그보다 무공이 굉장히 늘었던데요. 저는 이제 상대도 되지 않겠어요.”
“그렇지 않아요. 그렇게 붙어서 싸울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요. 내가 알기에도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예요.”
“그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예요.”
“초식이 굉장히 단순한 건 여전하더군요.”
“지금까지 계속 같은 검법만 수련 중이에요.”
“그게 검법이었나요?”
“에?”
생각지도 않은 물음에 조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낙소문을 쳐다봤다. 그러자 그녀가 급히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그, 나, 나는 그게 권법인 줄 알았어요.”
“권법이요?”
“네.”
“왜 그렇게 생각했죠?”
“말했듯이 검법이라기에는 초식이 너무 간단해요. 그리고 낮에 비무를 할 때 그렇게 붙어서 싸우는 데도 능숙했잖아요. 검법만 배워서는 그러기 어려워요.”
“나는 권법은 육합권 말고는 배운 적이 없어요. 그것도 어렸을 때 잠깐 배운 게 다예요.”
“검과 권은 거리가 달라요.”
낙소문이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로 설명하기보다는 직접 보여주는 것이 더 이해가 쉬웠다.
“봐요. 검법의 일반적인 거리는 이 정도예요.”
검까지 뽑아서 설명을 하자 조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말 잘 듣는 사매 같은 모습이라 낙소문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하지만 조윤이 기분 나빠 할 것 같아서 꾹 참으며 이야기를 계속 했다.
“권법은 이 거리에서 못 싸워요. 이만큼 서로 붙어야 해요. 검법을 익힌 사람들이 근접전을 꺼리는 이유도 그래서예요. 특기인 검을 휘두를 수가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권법은 달라요. 오히려 검을 휘두를 수 있는 거리가 안 좋죠. 그런데 당신은 두 개 다 익숙했죠? 그런 경우 생각할 수 있는 건 두 가지가 있어요.”
“그게 뭐죠?”
“하나는 실전경험이 많은 경우고, 또 하나는 권법을 바탕으로 검법을 익힌 경우죠. 그 나이에 실전경험이 많을 리가 없으니까 나는 당신이 두 번째 경우라고 생각했어요.”
조윤은 낙소문의 말을 들으면서 망치로 한 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비연팔식은 분명 검법이었다. 권법이 아니었다.
하지만 낙소문의 말은 전부 일리가 있었다. 그럼 당황학은 왜 권법이 아닌 검법으로 전해줬던 걸까?
그런 생각이 들자 조윤은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당문은 검술을 쓰지 않는다. 권법과 경공술을 바탕으로 독과 암기를 쓴다. 그래서 검을 쓴다 해도 짧은 단검을 사용한다. 물론 장검을 아예 안 쓰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가전절기에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극히 드물었다.
한데 당황학은 당문 사람이면서 장검을 애용했다. 그럼 그 검법은 어디에서 배운 것일까?
혹여 당문의 권법을 검법으로 바꾼 것이 아닐까?
거기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북해에서 화설린에게 배웠던 쌍검비격이 떠올랐다. 쌍검비격은 마강과 당황학이 서로의 검법과 암기술을 합쳐서 만든 무공이었다.
실전경험을 쌓기 위해서 북해에 갔다지만 굳이 그걸 배울 이유는 없었다. 한데도 당황학은 조윤에게 쌍검비격을 배우게 했었다.
조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약재를 잘라내는 단도가 눈에 뜨이자 그걸 들었다.
‘어쩌면 될지도 모른다.’
마음을 가다듬은 조윤은 가볍게 비연팔식을 펼쳐봤다. 그러자 놀랍게도 백아를 휘두를 때보다 훨씬 부드러운 움직임이 나왔다.
이번에는 단도를 놓고 권과 장으로 해봤다. 검을 들었을 때와는 달리 어색했다.
‘단검술이었군.’
조윤이 내린 결론이었다. 그제야 조윤은 당황학의 뜻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당황학은 조윤에게 단순하게 검법만 가르친 것이 아니었다. 어떤 상황에서든 싸울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친 것이다. 다시 말해 비연팔식의 초식이 핵심이 아니었다. 비연팔식은 그저 검을 쓰는 기본에 불과했다. 정작 중요한 건 거품을 물도록 몰아붙였던 실전 같은 대련이었다.
비연팔식의 초식이 그렇게 단순한데도 조윤의 실력이 뛰어난 이유도 그래서였다.
단검술을 익히면 맨손 격투는 물론이고 장검술에도 활용이 가능하다. 그걸 토대로 비연팔식을 만들고, 싸움에 필요한 감각을 대련을 통해 길러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