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비서 7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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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8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의비서 78화
제1장 해후, 그리고…… (3)
방으로 돌아온 조윤은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 자조신단을 먹었다. 처음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으나 곧 단전에서 뜨거운 기운이 확 일어나기 시작했다.
조윤은 재빨리 가부좌를 하고 앉아서 그 기운을 다스렸다. 그러나 온몸을 따라 돌며 요동을 치는 기운은 점점 힘이 강해져서 이내 통제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갑자기 그렇게 무지막지한 기운이 전신의 혈도를 따라 돌자 코피가 터지면서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 조윤은 자신이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이대로라면 전신의 혈맥이 터져서 죽을 수도 있었다.
원래 산공독은 단전의 기운을 흩어 버리는 작용만 한다. 그래서 중독이 되었어도 몸 안에는 여전히 내공이 남아있다.
다만 단전에 기운을 모으지 못하기 때문에 그걸 느낄 수가 없어서 내공이 없어졌다고 생각할 뿐이다. 차후에 해독을 하지 않으면 기운이 서서히 몸 밖으로 빠져나가서 그때는 정말 내공을 완전히 잃게 된다.
조윤도 마찬가지였다. 산공독을 먹었으나 몸 밖으로 빠져나간 기운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독에 중독된 후 꽤 시일이 지났음에도 그랬다. 조기신단을 먹고 얻은 내공이 워낙에 대단해서 우물가에서 바가지로 물로 퍼서 버린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자조신단을 먹자 몸에 흩어져 있던 내공이 단전으로 모여들기 시작했으나 약효가 너무 강한 것이 문제였다. 서서히 약효가 나타났다면 조윤이 충분히 기운을 다스릴 수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갑자기 온몸의 기운이 살아나니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마치 사나운 용이 비구름을 뚫고 마구 날아오르는 것처럼 강맹한 기운이 혈도를 치고 달렸다. 그로 인해 막혀있던 혈들이 뚫리고 있었으나 그 역시 과하게 이뤄지고 있어서 결국 피를 한 움큼 쏟아내야 했다.
‘저게 무슨…….’
창밖에서 조윤을 지켜보고 있던 사내가 눈을 부릅떴다. 그는 당가십이비 중 한 명인 적엽이었다. 당수백에게 지시를 받고 최근 조윤을 감시하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당연히 낮에 이화와 흑묘를 만난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의 무공과 잠행술이 워낙에 뛰어나서 이화가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적엽은 마음이 급해졌다. 당수백이 말하기를 조윤만이 당효주를 치료할 수 있다고 했다. 만약 저대로 죽으면 엄중한 문책을 피할 수가 없었다.
‘제길!’
창문으로 통해 방안으로 뛰어든 적엽은 재빨리 조윤의 몸을 살폈다. 그러나 손을 대는 순간 엄청난 반탄강기에 의해 뒤로 튕겨져 나왔다. 내공을 운용하자 더 강하게 튕겨지는 바람에 하마터면 벽에 부딪칠 뻔했다.
적엽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조윤은 산공독을 먹고 내공을 잃은 상태였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반탄강기가 나올 수가 있단 말인가?
이 정도의 내공이라면 자신이 전력을 다한다 해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잠시 망설이던 적엽은 당수백을 불러오기로 마음먹고 창문으로 몸을 날렸다.
집무실에서 곧 있을 무림대회에 참가할 사람들의 명단을 확인하던 당수백은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자 그쪽을 봤다.
“누구냐?”
“적엽입니다.”
“무슨 일이냐?”
“조윤에게 일이 생겼습니다.”
적엽의 말에는 다급함이 묻어 있었다. 그러나 당수백은 눈치 채지 못하고 다시 물었다.
“한데 왜 이리로 온 것이냐?”
“함께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당수백은 그제야 적엽이 다급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기다리고 있던 적엽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예를 갖췄다.
“무슨 일이기에 그러는 것이냐?”
“시간이 급합니다. 가면서 보고하겠습니다.”
“흠, 알았다.”
당수백이 훌쩍 몸을 날리자 적엽에 옆으로 따라붙었다. 그리고 조윤의 상태에 대해서 짧게 보고를 했다.
“주화입마에 빠진 것 같군.”
“제가 보기에도 그렇습니다.”
당수백은 마음이 급해졌다. 조윤이 몰래 내공을 되찾기 위해서 무리를 하다가 주화입마에 빠진 것 같았다. 상태를 들어 보니 이미 죽었을 수도 있었다.
“그가 누구와 만났더냐?”
“이화와 흑묘가 낮에 왔다갔습니다.”
당수백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담을 훌쩍 넘었다. 평소라면 아무리 급해도 문으로 가지 그렇게 담을 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조윤이 머물고 있는 별채에 도착하니 이상하게 고요했다.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다 죽어간다던 조윤이 의아한 눈으로 쳐다봤다.
“어? 가주님.”
“음…….”
당수백은 뒤에 서 있는 적엽을 쳐다봤다. 그러나 적엽 역시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밤이 늦었는데 무슨 일이시죠?”
“효주 때문에 왔다.”
“그러시군요. 그렇잖아도 내일은 제가 찾아가려던 참이었습니다.”
“나를 말이냐?”
“네. 일단 앉으시죠.”
조윤이 자리를 권하자 당수백이 적엽에게 물러가라 눈짓을 한 후에 의자에 앉았다.
“사흘 뒤에 효주를 치료하려고 합니다.”
“준비가 다 된 것이냐?”
“네. 수술 도구도 다 만들어졌고, 낮에 이화 누이와 흑묘가 왔다 갔습니다. 두 사람 다 신의문에 있었던 터라 예상 누이와 함께 치료를 도와달라고 부탁을 해놓았습니다.”
“그녀들로 되겠느냐? 내 생각에는 당가십이비가 더 나을 것 같다. 그들은 무공도 뛰어나고 의술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전에 이야기했듯이 혈관을 잘라서 연결해야 하기 때문에 치료를 하려면 효주의 옷을 전부 벗기고 해야 합니다. 그 모습을 사내들에게 보일 생각이십니까?”
“그건…….”
당수백은 거기까지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저 옆에서 거들어주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었다.
“그동안 제가 계속 치료를 미뤄왔던 것도 그래서였습니다. 때마침 두 사람이 와서 다행이죠. 낮에 효주하고 얼굴도 익혔으니 큰 거부감은 없을 겁니다.”
“알았다. 그렇게 해라.”
“치료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잘될 겁니다.”
“그래야지.”
당수백이 그렇게 말하면서 조윤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면서 바로 손을 떼지 않고 기운을 흘려보내 조윤이 내공을 되찾았는지를 살폈다.
조윤도 그걸 알고 있었으나 모르는 척 가만히 있었다. 잠시 후 단전에 내공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당수백은 그제야 손을 뗐다.
“쉬어라.”
“네. 가십시오.”
방을 나온 당수백이 별채를 벗어나자 적엽이 나타났다. 당수백은 그를 향해 심각한 어조로 물었다.
“어찌된 일이냐?”
“모르겠습니다. 분명 주화입마에 빠진 듯, 피를 쏟아내면서 몸을 떨었었습니다.”
“잘못 본 것은 아니겠지?”
“제 목을 걸겠습니다.”
“그럼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건데…….”
당수백은 그게 뭔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주화입마에 빠진 증상을 보인다기에 내공을 되찾으려 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확인을 해보니 여전히 그대로였다. 조윤의 단전에는 내공이 한 톨도 없었다.
“당분간 그에게서 눈을 떼지 말거라.”
“알겠습니다.”
뭘 숨기고 있는지는 몰라도 기다리다 보면 스스로 드러낼 것이다. 당수백은 그리 생각했다.
* * *
당수백과 적엽이 가고 나자 조윤은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는 정말 위험했었다. 자조신단의 약효가 그렇게 강할 줄은 몰랐다.
몸 안에 흩어져 있던 내공이 한순간에 단전으로 모여들면서 전신의 혈이 뚫리자 통제가 되지 않았다. 안간 힘을 쓰면서 그걸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으나 무리였다. 미친 듯이 날뛰는 기운을 다스릴 수가 없었다.
그때 새외에서 얻었던 깨달음이 생각났다. 대자연에 비하면 자신은 얼마나 미천한 존재였던가? 그래서 아등바등 살지 말고 모든 것을 놓자고 마음먹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몸속에서 날뛰는 기운을 통제하려고 하면 할수록 힘만 들뿐이다. 맞서봐야 부서진다. 그러느니 그대로 놔두는 것이 좋았다.
흐르면 흐르는 대로, 부수면 부수는 대로, 그저 지켜만 볼 뿐, 어차피 통제할 수 없다면 놔두고 지켜봐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자 잠시간은 괴로웠지만 곧 평온이 찾아왔다. 온몸에 활력이 솟고 눈에는 정광이 가득했다. 미간이 간질간질하다가 확 열리는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주위의 사물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신기했다. 늘 보는 벽장이 이리 생겼던가? 창문이 저런 모양이었던가?
모든 것이 새롭게 보였고, 신기하게 다가왔다. 그 놀라운 느낌에 취해있을 때, 두 사람이 빠르게 다가오는 기척이 잡혔다.
한 사람은 당수백이었고, 또 한 명은 자신을 감시하던 자였다. 분명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다. 평소 같으면 절대로 알아낼 수 없는 거리였다. 그런데도 굉장히 가깝게 느껴졌다.
조윤은 그 선명한 감각에 놀랐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몰라도 새로운 경지에 올라선 것만은 확실했다.
두 사람이 더 가까이 오자 조윤은 단전에 있던 내공을 흩었다. 산공독에 중독되었을 때와 비슷했으나 다른 점이 있었다.
그때는 흩어진 기운이 몸에 정체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온몸 구석구석까지 흐르고 있었다. 내공을 되찾았는지 당수백이 손을 대고 확인을 했음에도 알아차리지 못한 이유가 그래서였다.
조윤은 내공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수가 있었다. 단전에서 흩어 버리는 것은 물론이고 아주 세심하게 다루는 것도 가능했다.
‘아직도 있군.’
적엽의 존재가 느껴졌다. 전에는 있는 줄도 몰랐는데 이제는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확연하게 알 수가 있었다.
조윤은 그가 있는 방향을 등지고 앉았다. 그리고 수술할 때 쓰는 단검을 꺼냈다.
잠시 집중을 해서 기를 흘려보내자 검기가 발출되었다.
팍!
작은 소음과 함께 벽에 약간의 흠집이 생겼다. 조윤은 다시 집중을 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실패였다. 검기가 발출되었다.
지금 조윤이 하려는 건 바느질 할 때 쓰는 실보다 얇게 기를 뽑아내는 일이었다. 만약 그게 가능해진다면 당효주의 수술이 훨씬 쉬워진다.
현대의 수술방식은 직접적이다. 문제가 있는 부분을 아예 도려내버리거나 봉합을 해버리고 이후에 약으로 치료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 정교함이 필요했다.
조윤은 확대경을 구한 덕에 몇 배나 더 자세히 환부를 볼 수가 있었고, 당문의 공방에서 만든 도구들을 이용해서 어느 정도 정교한 수술이 가능했다.
하지만 만약 기를 활용할 수만 있다면 현대에서 했던 것만큼 정교한 수술이 가능할지도 몰랐다. 보는 대신 느끼고, 검기를 바늘보다 얇게 뽑아서 다룰 수만 있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