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비서 7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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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9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의비서 77화
제1장 해후, 그리고…… (2)
“저 아가씨가 가주의 딸이지?”
“아, 서로 인사해요. 이쪽은 당효주고, 두 사람은 흑묘하고 이화 누이. 예전에 내가 신세를 졌던 사람들이야.”
“당효주라고 해요.”
“이화야.”
“흑묘예요.”
서로 인사가 오고 갔으나 그뿐이었다. 어색하니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이화는 내성적이었고, 흑묘는 이유 없이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 당효주 역시 이곳 별채에서만 지내다 보니 사람들과 어울리는 방법을 몰랐다.
“이쪽으로 앉아요. 마침 좋은 차가 있어서 마시는 중이었어요.”
“아니. 잠깐 걷자. 할 이야기가 있어.”
이화가 힐끗 당효주를 보며 조윤에게 말했다. 따로 할 말이 있다는 걸 눈치챈 조윤이 당효주에게 양해를 구하고 두 사람을 따라 나섰다.
이화와 흑묘는 당문을 나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대로를 걸었다. 두 사람과 함께 가니 자연히 사람들의 시선이 한 번씩 와 닿았다. 이화의 뚱뚱한 체구가 흑묘의 늘씬한 몸과 대비가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로 갈까?”
이화가 가리킨 곳은 외곽에 있는 허름한 찻집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한적하니 손님이 하나도 없었다.
이화는 이층으로 올라가서 자리를 잡았다. 잠시 후 점원이 차를 내놓고 갔다. 그러자 창밖을 내다보던 이화가 웃으면서 말했다.
“미행을 하는 사람은 없네.”
“네? 미행이요?”
“응. 당문에서 한 명 정도는 붙여 놓은 줄 알았는데.”
“당문에서 왜요?”
“당예상에게서 네 이야기를 들었어. 아주 위험한 짓을 했더라.”
이화는 흑묘와 함께 당문에 오자마자 당예상부터 만났었다. 그녀와는 함께 신의문까지 가서 고생을 했던 사이라 친분이 있었고, 덕분에 지금 조윤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전부 들을 수가 있었다.
당수백의 성격상 겉으로는 잘해줘도 조윤을 완전히 믿을 리가 없었다. 언제 도망을 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감시를 붙여 놓았을 가능성이 컸다.
“어쩔 수 없었어요.”
“아까 그 아가씨, 정말 치료가 가능한 거야? 난 여태까지 구음절맥이 치료되었단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
“반반이에요.”
“만약 네가 그 아가씨를 치료하지 못하면 당 가주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걸.”
“알고 있어요.”
“무슨 배짱인지 모르겠다.”
이화가 한숨을 푹 내쉬면서 차를 마셨다. 그러다 인상을 살짝 쓰면서 내려놓았다. 생각해보니 자신은 차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텁텁한 맛이 입에 맞지 않았다. 그런데도 여기로 온 것은 이층에서 내려다보면 미행이 있는지 없는지 쉽게 알아챌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공자님.”
“어?”
“사천에서는 당문의 영향력을 피할 수가 없어요. 아미파나 청성파가 있지만 자신들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한 당문과의 충돌은 피하려고 할 거예요. 더구나 지금은 마교 때문에 당문을 중심으로 뭉치고 있는 상황이에요.”
“맞아. 내가 나선다고 해도 당문을 상대하지는 못해.”
흑묘는 물론이고 이화도 걱정스럽게 이야기를 하자 조윤이 웃으면서 말했다.
“걱정하지 마. 효주를 잘 치료하면 되니까.”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그렇지도 않던데. 그 아가씨를 치료하면 혼인을 해야 한다면서?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는 건 아니지? 이후에 그 아가씨가 다시 아플까 걱정이 되어 너를 잡아두려는 거잖아. 그러다 혹여 죽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당 가주가 너를 가만히 놔두지 않을 걸.”
“그건 나도 알아요. 하지만 당장에는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아니, 방법이 있어.”
이화가 자신 있게 말했다. 당예상에게 조윤이 처한 상황을 듣고 이화는 흑묘와 머리를 맞대고 방법을 찾았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당수백에게 맞설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사천을 떠나자는 생각까지도 해봤지만 유일하게 당효주를 치료할 수 조윤을 당수백이 그냥 놔주지는 않을 것 같았다. 필시 어디에 숨어있던 찾아낼 것이다.
그렇게 며칠을 고민하던 와중에 흑묘가 묘안을 생각해냈다. 위험천만한 계획이었으나 그나마 가능성이 있기에 이화도 찬성을 했고, 지금 말하려는 게 그거였다.
* * *
갈증을 느끼며 자신도 모르게 차를 한 모금 마신 이화는 인상을 살짝 썼다. 그 모습을 보고 조윤이 웃으면서 물이 담긴 잔을 내밀자 단번에 쭉 들이켰다.
“내가 단목세가의 생존자들을 찾아다닌 건 알고 있지?”
“네. 서찰을 읽었어요.”
“생각보다 많이 살아남았더라.”
“혹시…….”
조윤이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이화를 봤다. 그러자 이화가 생긋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대화와 육예도 살아있어.”
“아! 하, 하하. 하하.”
조윤은 자신도 모르게 허탈하니 웃음을 터트리다가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가족이 다 죽고 그 아이들마저 죽은 줄 알고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던가?
당황학을 따라서 세외를 두루두루 여행하며 생명의 무상함과 귀함을 크게 깨달았었다. 그 때문에 복수 역시 덧없이 느껴졌고, 그래서 포기를 했었다.
하지만 미안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죽임을 당한 사람들에게 죄스러워서 때때로 자괴감이 들기도 했었다.
조윤이 울자 흑묘가 옆으로 와서 가만히 안아줬다. 조윤의 나이 열일곱이었다. 이곳에서는 열다섯 살이면 성인으로 인정을 한다. 그런데 눈물을 보이니 흉하게 여길 수도 있으련만 흑묘나 이화는 전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또 누가 살았죠?”
조금 마음이 진정된 조윤이 묻자 이화가 아는 바를 이야기했다.
“공소와 곽우도 살아있어.”
“이두 아저씨는요?”
이화는 대답대신 고개를 저었다. 죽었다는 뜻이었다. 조윤은 안타까운 마음에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 외에도 다섯 명이 더 살아있어. 전부 단목세가의 무사였던 사람들이야.”
“다들 어디에 있죠? 만나고 싶어요.”
“아직은 아니야.”
“당 가주님 때문인가요?”
“그래. 그는 우리가 너를 만나는 것도 좋게 생각하지 않을 거야.”
“아까 방법이 있다고 했죠?”
“응.”
“어떤 방법이죠?”
조윤이 묻자 이화가 흑묘를 봤다. 이건 흑묘가 생각해낸 계획이었다. 그러니 직접 듣는 것이 더 나았다.
“우선 복수를 하세요.”
흑묘의 입에서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이 나오자 조윤은 약간 당황했다. 복수는 이미 포기를 한 상태였다. 더 이상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아서 어렵게 결정을 했었다.
“혹시, 어머니 때문이야?”
흑묘는 어렸을 때부터 백모연의 손에 컸고, 이화는 그녀의 사매였다. 두 사람 다 복수를 하고 싶은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흑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꼭 그래서만은 아니에요. 당 가주가 공자님에게 위해를 가하지 못하게 하려면 그만큼 명성을 높이는 수밖에 없어요. 마침 마교 때문에 사천무림은 전부 당문을 주목하고 있어요. 공자님이 거기에서 명성을 높인다면 당 가주도 공자님을 함부로 대하지 못할 거예요.”
“나도 그걸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닌데, 무리야. 애초에 당 가주가 나를 죽이려고 했던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어.”
“알고 있어요. 자신의 아들을 내세워서 사천무림을 통합하려는데 공자님이 나서면 방해가 되겠죠. 그러니 이렇게 하세요. 우선 단목세가의 생존자들과 함께 다시 세가를 일으킨다고 하세요. 그리고 복수를 명목으로 당 가주가 만들려는 사천무림맹에 들어가는 거예요.”
흑묘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절대로 앞으로 나서면 안 돼요. 뭘 하든 당신우를 내세우면서 따르세요. 어차피 단목세가는 당문의 가신가문이니까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을 거예요.”
“그래서는 명성을 높일 수가 없잖아.”
“맞아요. 무공으로는 그럴 수가 없어요. 하지만 의술로는 가능하죠.”
“아!”
그제야 조윤은 흑묘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정확히 알 수가 있었다. 정파와 마교는 공존할 수가 없다. 당연히 전쟁이 날 것이고, 그 와중에 많은 사람이 다치고 죽을 것이다.
그들을 치료해주면 또 다른 의미로 명성을 얻을 수가 있었다. 무엇보다 조윤에게 목숨 빚을 지는 사람들이 생길 테니, 아무리 당수백이라고 해도 함부로 대할 수가 없게 된다.
“이해를 한 것 같군요.”
“응. 하지만 문제가 있어.”
“말해보세요.”
“당효주를 치료하려면 내공을 되찾아야해.”
“방법은 저희가 찾아볼게요.”
“아니, 내공을 되찾을 방법은 있어. 다만 그랬을 경우 당 가주가 가만히 있을지가 문제야.”
“당 가주가 항상 공자님의 상태를 확인하려고 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러니 일단 내공을 되찾은 후에 산공독을 적절히 활용하면 어떨까요?”
들어 보니 일리가 있었다. 이에 조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았어. 그렇게 할게.”
“그럼 저는 단목세가의 생존자들에게 공자님의 뜻을 전할 게요.”
“모두 언제쯤 볼 수 있을까?”
“수일 내로 자리를 마련할 겁니다.”
“응. 그럼 부탁할게.”
모두들 안전하게 잘 있다고 하니 굳이 급하게 만날 필요가 없었다. 지금은 무엇보다 안전이 우선이었다.
“그리고 듣자니 사부님에게서 무공을 배우셨다고요?”
“사부님?”
흑묘의 말뜻을 잠시 생각하던 조윤은 놀란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설마, 흑묘도 사부님에게 무공을 배운 거야?”
“맞아요. 정식제자는 아니었지만 가모님 덕택에 그분에게 조금씩 가르침을 받았었어요.”
“그랬구나.”
“수련이 꽤 엄했을 텐데 잘 버텨 내셨네요.”
“응? 어. 그랬지. 하하.”
사실 그리 엄하지 않았었다. 당황학은 다른 제자들과 달리 조윤에게만큼은 따뜻하게 대해줬었다. 다만 함께 새외를 다니다 보니 몇 번이나 죽을 뻔했을 뿐이다.
이후로도 조윤은 두 사람과 한참이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찻집에서 나와 헤어졌다. 그리고 당문으로 돌아가는데 당효령이 웬 사내와 함께 걷고 있는 것이 보였다. 미가장의 장남과 혼인을 했다더니 그 사람인 것 같았다.
잠시 서서 두 사람을 보던 조윤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당효령에게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었다. 당황학을 따라 여행을 하면서 간간히 그녀 생각을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자신의 잘못으로 그녀는 이미 혼인을 했다. 마음을 정리해야 했다.
씁쓸한 미소를 짓던 조윤은 곧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