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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비서 76화

무료소설 신의비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4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신의비서 76화

제1장 해후, 그리고…… (1)

 

 

조윤은 며칠 동안 당문의 공방에서 살다시피 하며 수술에 필요한 도구들을 만들었다. 확대경을 활용하려면 그만큼 정교한 도구들이 필요했다.

 

다행히 당문의 공방에 있는 장인들은 기술이 굉장히 뛰어났다. 물론 현대의 기술력에 비하면 한참이나 떨어지지만 이 시대에서만큼은 최고라고 할 수가 있었다.

 

머리카락만큼이나 얇은 암기를 만들기도 하고, 그걸 대나무 굵기의 통에 넣어서 날리는 무기를 만들기도 하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더구나 조윤이 그림까지 그려가면서 설명을 하고 몇 번이나 확인을 하는 과정을 거치니, 본 적도 없는 걸 만드는 데도 그다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거기에는 당수백이 항상 공방에 함께 있었던 것도 하나의 이유로 작용했다. 자신들이 만든 도구가 당수백이 그리 아끼는 당효주의 목숨을 살리는데 쓰일 거라고 하니, 어설프게 작업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조윤은 오히려 시간에 쫓겨야 했다. 수술도구가 하나씩 만들어질 때마다 당수백이 언제 치료할 건지를 계속 물어 왔기 때문이다.

 

“이제 필요한 것들은 다 만든 것이냐?”

 

“아니요. 세 개 정도가 더 필요해요.”

 

“흠.”

 

조윤의 대답에 작게 한숨을 내쉰 당수백이 장인들을 봤다. 빨리 만들라는 무언의 압력이 느껴지자 장인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밤잠을 줄여서라도 만들어 내겠습니다.”

 

“그럼 부탁하겠네.”

 

“네!”

 

장인들이 일하는 것을 잠시 지켜보던 조윤은 당수백과 함께 공방을 나왔다. 그러자 당수백이 조윤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고생이 많겠지만 계속 수고해라.”

 

“네.”

 

멀어지는 당수백을 보며 조윤은 생각에 잠겼다. 수술 도구가 모두 만들어진다고 해도 아직 문제가 있었다. 바로 내공이었다.

 

처음에는 호언장담을 했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내공이 없는 상태에서는 무리였다. 막힌 혈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할 수도 없었고, 유사시에 대한 대비도 할 수가 없었다.

 

물론 내공을 되찾으려고 한다면 방법은 있었다. 조윤은 예전에 신수신의 이자림이 준 자조신단을 가지고 있었다. 자조신단은 어떤 독이든지 해독할 수 있는 해독제였다. 당시에 이자림이 남독신의 기라가 쓴 기라독해를 보고 만든 만큼 효과는 확실했다.

 

하지만 내공을 되찾으면 당수백에게 붙잡혀서 당문에 완전히 발이 묶여 버리게 된다. 그렇지 않더라도 치료가 끝나면 마음이 돌변해서 다시 죽이려들지도 몰랐다.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별채에 도착하니 당효주가 기다리고 있었던 듯 반갑게 맞았다.

 

“어서 오세요.”

 

“나와 있었구나.”

 

“네. 공자님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렇게 부르지 말래도 그러네. 말도 편하게 하라고 했잖아.”

 

조윤의 말에 당효주가 얼굴을 살짝 붉혔다. 당효주는 오랫동안 병을 앓아왔기 때문에 보기에는 열두 살? 정말 많이 잡아봐야 열다섯 살로 보였다. 그래서 조윤도 처음에는 당효주를 어리게 봤었는데, 알고 보니 오히려 한 살이 더 많았다.

 

잘 모르고 한 일이지만 이미 말을 놓고 편하게 대하던 터라 이제 와서 누이라고 부르기가 껄끄러웠다. 이에 서로 말을 놓자고 했건만 당효주는 그럴 수가 없다며 여전히 존대를 하고 있었다.

 

그녀의 성격이 조신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후에 조윤과 혼인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유도 컸다. 나이가 많건 적건 남편에게는 존대를 하는 것은 아내로서 지켜야 할 도리였다.

 

“저는 이게 편해요.”

 

“그럼 공자님이라고 부르는 것만 하지 말아줘.”

 

“하지만…….”

 

“그냥 이름을 불러.”

 

“그, 그래도 될까요?”

 

당효주를 보니 왠지 기뻐하는 눈치다. 전에 그렇게 하라고 했건만.

 

“당연히 되지. 한 번 불러봐.”

 

“조윤 님.”

 

“님 자도 빼고.”

 

“그…… 노력해 볼게요.

 

조윤은 더 이상 강요하지 않고 그저 웃기만 했다. 그러자 당효주가 힐끗 거리면서 쳐다보다가 생긋 미소를 지었다.

 

“아까 어머님이 철관음을 주고 가셨어요. 그래서 함께 마시려고 기다리던 중이었어요.”

 

“그래?”

 

조윤이 자리에 앉자 당효주가 차를 끓이기 시작했다. 은은하니 차향이 올라오자 조윤은 마음이 시원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 때문에 잠시 고민을 잊을 수가 있었으나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지 않은 모양이다. 당효주가 걱정스레 물었다.

 

“뭘 그렇게 생각하세요?”

 

“어? 아니야. 아무것도.”

 

“혹시 제 치료방법을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치료는 걱정하지 마. 잘될 거야.”

 

“여기요.”

 

곱게 눈을 휘면서 차를 내미는 모습이 예전에 죽은 하연이와 너무나 닮아서 조윤은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그때는 방법이 없어서 손을 놓고 있어야 했기에 더욱이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조윤에게는 당효주를 치료할 능력이 있었다.

 

“차 맛이 좋은데.”

 

“저기, 조윤.”

 

“응?”

 

“전 조윤이 저를 치료해줄 거라 믿어요.”

 

그렇게 말하는 당효주의 손이 미미하게 떨렸다. 일곱 살 때였나?

 

당효주는 자신이 구음절맥이라는 희귀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이후 수많은 의원들이 진맥을 하고 갔으나 단 한 명도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그저 죽는 날만 기다렸었다.

 

하지만 아버지인 당수백과 어머니인 제갈지인의 정성어린 보살핌 때문에 뭐든 해보고자 마음먹었고, 이에 의술에 관심을 가졌다. 스스로 자신의 병을 고쳐 보고자 한 것이다.

 

당가는 독을 쓰기 때문에 다들 어느 정도의 의술은 알고 있었다. 덕분에 의술을 배우기는 쉬웠으나 공부를 하면 할수록, 구음절맥에 대해 알아갈수록,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사실만 확인할 뿐이었다.

 

당연히 처음에는 조윤에 대한 믿음도 없었다. 당수백의 말을 듣고 약간의 희망은 품었으나 정말 치료가 가능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한데 조윤과 며칠 지내면서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당효주는 정말 구음절맥이 치료가 가능한지 궁금해서 조윤을 몇 번 시험해봤었다. 의술서적에 나와 있는 치료가 어려운 병에 대해서 묻고 반응을 살폈었다.

 

놀랍게도 조윤은 그때마다 당효주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답을 내놓았다. 너무나 황당한 치료 방법을 이야기할 때에는 그게 정말 가능한지 의문이 들기도 있었다.

 

그러나 조윤은 늘 확신에 차 있었다. 마치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이후 제갈지인에게서 조윤이 소청신의라 불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가 기적을 일으킨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한다. 유일한 또래 친구인 막요요도 조윤이 병을 치료해줄 거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무엇보다 함께 생활을 하다 보니 마음이 끌리고 있었다. 조윤이 남자로 느껴져서 편하지가 않으면서도 함께 있고 싶었고, 그렇기에 믿음이 갔다.

 

“조만간 치료를 할 거니까 조금만 더 기다리고 있어.”

 

“전 괜찮아요. 지금까지 참아왔는걸요.”

 

당효주가 웃으면서 말하자 조윤이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하연이가 생각나서 그런 것이었지만 당효주 입장에서는 충분히 오해를 하고도 남을 행동이었다.

 

그때였다.

 

“조윤!”

 

누군가가 크게 부르는 소리에 그쪽을 보니 젊은 여인 두 명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한 명은 뚱뚱한 체구의 여인이었고, 또 한 명은 늘씬한 미인이었다.

 

조윤은 두 사람을 보자 돌이 되어 버린 듯, 잠시 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 * *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얼마나 만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런 두 사람이 눈앞에 있었다.

 

잠시 멍하니 두 사람을 보고만 있던 조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마주 달려 나갔다.

 

“흑묘! 이화 누이!”

 

이화는 여전히 뚱뚱했으나 아주 약간 살이 빠진 것 같았다. 예전에는 얼굴의 살 때문에 눈이 잘 보이지 않았었는데, 이제는 동그란 눈이 드러나 있었다.

 

“네가 조윤이구나. 하하. 정말 많이 컸어.”

 

이화가 조윤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리면서 웃었다. 다른 사람이 그랬으면 기분이 나빴을 테지만 상대는 이화였다. 조윤은 한껏 웃으면서 그녀의 거친 손길을 즐겼다. 그러다 흑묘를 보고는 멈칫하며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흑묘…….”

 

“공자님을 뵈어요.”

 

흑묘가 웃었다. 그 모습 위로 예전에 알고 있던 흑묘의 모습이 겹쳐졌다. 그때도 흑묘는 종종 저런 미소를 지었었다. 뭔가 안타깝고, 씁쓸해하는, 그런 미소 말이다.

 

조윤은 말없이 다가가서 흑묘를 품에 안았다. 이게 도대체 몇 년 만이던가?

 

흑묘를 처음 만났을 때는 자신이 품에 푹 안길 정도로 작았었다. 그런데 이제는 흑묘를 품에 안을 수가 있을 정도로 컸다. 흑묘도 그걸 느끼고는 담담히 미소를 띠었다.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다시는 이렇게 못 보는 줄 알았어.”

 

“공자님 덕분이에요. 공자님이 저를 치료하기 위해서 얼마나 애를 쓰셨는지 당 의원님에게 들었어요. 정말 고마워요.”

 

“나 때문에 그렇게 되었잖아.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어.”

 

조윤은 그렇게 말하면서 흑묘를 품에서 떼어 냈다. 그리고 요리조리 살펴보다가 손목을 잡고 진맥을 했다.

 

일반인들보다 맥이 조금 약했으나 그밖에 특별한 이상은 없었다. 부상이 완전히 완치가 된 것이다. 다만 단전에 있어야 할 내공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무인에게 있어서 내공은 생명과 같았다. 삼류를 벗어나는 기준도 내공을 쓸 수 있는지, 없는지 그것으로 구분을 한다.

 

흑묘 역시 무인이었다. 한데 내공이 없어졌으니, 심적이 괴로움이 컸을 것이다.

 

“내공이 없구나.”

 

“네.”

 

“어떻게 된 거야?”

 

“다 죽어가는 와중이었어요. 이렇게 살아난 것만 해도 기적인 걸요.”

 

“다른 데는? 다른 이상은 없는 거야?”

 

“아이를 갖지 못한대요. 저하고는 상관없는 이야기니까 괜찮아요.”

 

조윤은 별다른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흑묘의 말대로 살아있는 것만도 기적이었다. 내공을 잃으면 어떻고, 아이를 못 낳으면 어떤가?

 

살아있으면, 그걸로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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