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비서 1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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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8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의비서 115화
제6장 후회 (2)
“음…… 약선신의. 무경의 말이 조금 험해도 이해를 해주시오. 장로들이 잘못될까 봐 그러는 것뿐이오.”
“험. 그 마음을 모르는 것이 아니오. 다만 경우가 좀 없구려.”
“내 생각에는 이대로 약선신의가 물러나면 세간에 좋게 보이지가 않을 것이오. 하니 소청신의와 함께 의견을 나누는 것이 어떻겠소?”
“저자와 말이오?”
“그렇소.”
반양은 선뜻 내키지가 않았으나 무경의 눈치가 보여 거절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어차피 저들의 치료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치료가 안 된다고 말을 할 수가 없어서 전전긍긍하던 차였다. 한데 조윤이 함께 치료를 하라고 하니 잘하면 전부 그의 탓으로 돌릴 수가 있을 것 같았다.
“좋소. 썩 내키지는 않지만 두 분의 뜻이 그러니 그렇게 하겠소. 하지만 치료가 잘못되어도 나는 모르오.”
“그 점은 염려 마십시오. 설사 치료가 안 된다 해도 당신을 탓하지는 않을 거요. 그건 소청신의, 그대에게도 해당이 되는 말이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치료를 해보죠.”
“좋아. 그럼 일단 내 말부터…….”
“무슨 독인지는 알아낸 거죠? 제 생각에는 극음소사(極陰小蛇)의 독 같습니다만 어제 피를 뽑지 못해 확인을 하지 못했었죠. 반 의원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극음소사라고? 그러한 독도 있단 말이냐?”
“극음소사를 모릅니까? 그럼 반 의원님은 무슨 독이라고 생각한 겁니까?”
“무슨 독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독이 심장으로 침투하지 않고 머리로 흘러가는 것을 보고 우선 구지천엽탕으로 억제를 하려고 했다.”
구지천엽탕은 스물네 가지의 약재를 조합해서 만드는 약탕이었는데, 혈관을 깨끗하게 해주는 기능이 있었다. 하지만 그 양을 조절하기가 쉽지 않아서 흔하게 쓰지는 않았다. 조금만 양이 많아도 혈관이 쓸려버리고, 양이 적으면 전혀 효과가 없었다.
그런 구지천엽탕을 먹였다는 것은 그만큼 약에 자신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또 무슨 약을 쓰셨습니까?”
“그 전에 극음소사가 무슨 독인지부터 말해봐라.”
“극음소사는 운남의 습지에서 서식하는 뱀입니다. 평소에는 잠을 자다가 보름달이 뜰 때만 음지에서 활동을 하기 때문에 음기가 매우 강합니다.”
“그런 뱀이 있다니 신기하군.”
“더 신기한 건 극음소사는 평생에 독을 딱 한 번만 쓴다는 겁니다. 독이 너무 지독해서 쓰고 나면 자신도 죽기 때문입니다.”
“허…….”
반양은 조윤이 하는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런 뱀이 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 그래서 혹여 조윤이 지어낸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런 뱀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군.”
“저도 직접 본 적은 없습니다.”
“그럼 뭐를 근거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건가?”
“남독신의 기라가 쓴 책에 나와 있습니다.”
“기라가 책을 썼다고?”
“그렇습니다.”
“네 이야기를 들어보니 독에 대해서 쓴 것 같은데…….”
“맞습니다. 기라가 말하기를 그간 연구한 모든 성과를 적었다고 했습니다.”
“믿을 수 없다. 기라가 그런 책을 왜 너에게…… 혹시 기라의 제자인 거냐?”
“아닙니다.”
거침없이 묻던 반양이 잠시 숨을 고르면서 조윤을 쳐다봤다. 조윤은 담담히 그의 시선을 받으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치료가 급하니 구지선엽탕 말고 무슨 약을 썼는지 알려주십시오.”
“음…… 나는 총 열두 가지 탕을 썼다.”
“어떤 약을 썼습니까?”
반양은 말하기를 꺼려하는 듯했으나 결국 전부 알려줬다. 그걸 듣고 있던 조윤은 머리가 복잡했다. 그런 식으로 약을 혼합해서 쓴다는 것은 지금까지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몇 개까지는 그래도 결과를 짐작할 수가 있었지만 나머지는 어떤 식으로 어떻게 효능을 보이고 작용을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 같은 기색을 눈치챈 반양이 조윤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그러더니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내가 한 처방을 전부 말했다. 이제 어떻게 할 건지를 한번 말해봐라.”
“솔직히 말해서 잘 모르겠습니다. 약을 그런 식으로 조합해서 쓴다는 건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극음소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짐작이 되지 않습니다.”
“치료를 못하겠다는 뜻이냐?”
“그건 아닙니다.”
조윤은 그렇게 말하면서 장로들 중 한 명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잠시 진맥을 한 후에 침을 꺼내서 꽂기 시작했다. 손의 움직임이 워낙에 빠르고 망설임이 없어서 반양은 적지 않게 놀랐다. 보아하니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침을 모두 꽂은 조윤은 장로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내공을 끌어올려 무지막지하게 쏟아 넣기 시작했다.
그걸 보고 심허의 인상이 살짝 굳었다. 조윤이 뭐를 하려는지 그제야 알아챈 것이다.
“사부님. 저건…….”
무경 역시 뒤늦게 알아차리고 심허를 쳐다봤다. 그러자 심허가 손을 들어 더 이상 말을 못하게 했다.
이미 시작되었다. 하니 일단은 지켜봐야 했다. 저런 상태에서 조금이라도 충격을 받으면 장로는 물론이고 조윤도 크게 내상을 입는다.
“저게 도대체 뭐를 하려는 건지…….”
“쉿!”
반양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투덜대려고 하자 심허가 그를 보고 기세를 드러내며 조용히 시켰다. 이에 반양이 움찔하며 입을 닫았다.
* * *
극음소사의 독은 해독이 어렵다. 자칫 잘못하면 중독된 사람이 죽는다. 그럼에도 조윤이 치료를 자신했던 것은 기라독해가 있었기 때문이다.
기라독해에는 극음소사의 독을 해독하는 방법에 대해서 자세히 나와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반양이 해독을 한다고 약을 써서 극음소사의 성질을 바꿔놓은 것이다.
약의 조합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서 독의 성질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당연히 치료도 어려웠다.
그러나 조윤은 생각을 달리했다. 이곳에서 의술을 배우면서 느낀 것 중 하나가 편견을 버려야 한다는 거다.
독을 꼭 의술로만 치료할 이유는 없었다. 무인들만의 방법이 있었다. 바로 내공으로 독을 밀어내는 것이다.
조윤은 시간이 갈수록 내공이 쭉쭉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먼저 침을 꽂아서 내공이 다른 곳으로 새지 않게 해놓았는데도 그랬다. 이대로라면 독을 밀어내기는커녕 애꿎은 내공만 소모하고 만다.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하던 조윤은 문득 금태희와 무경이 해줬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지금 독을 밀어내지 못하는 이유는 내공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한 번에 쓸 수 있는 내공의 양이 한계가 있어서 독을 밀어내기에는 힘이 약했다.
하지만 만약 검강을 쓰듯이 내공을 한 번에 쏟아낼 수 있다면 독을 싹 밀어낼 수가 있었다. 이에 조윤은 극도로 집중을 하며 내공을 더욱이 빠르게 돌렸다.
그러던 어느 순간, 머릿속이 환해지면서 배에서 깨달았던 검강이 떠올랐다.
‘이렇게 했었나?’
그런 생각을 하며 내공을 쓰자 한순간에 확 밀려가면서 장로의 몸에 있는 독을 마구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 같은 반응에 장로가 놀란 듯 몸이 움찔했다. 그러다 몸이 버티지 못하고 코피를 쏟았다.
“헛! 장로님이…….”
“기다려라.”
무경이 놀라서 가까이 다가가려 했으나 심허가 말렸다. 그가 보기에는 아직 끝이 난 것이 아니었다. 조윤은 여전히 손을 장로의 백회에 붙이고 있었다.
그때였다. 조윤 역시 장로처럼 코피를 쏟기 시작했다. 이제는 말려야 했다. 저러다가 자칫 두 사람 다 죽을 수도 있었다.
이에 심허와 무경이 동시에 조윤과 장로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두 사람이 손을 쓰려는 순간 조윤이 비틀거리면서 뒤로 물러났다.
“괜찮소?”
무경이 부축을 하면서 묻자 조윤이 괜찮다는 뜻으로 고개를 흔들면서 손을 저었다. 현기증이 심하게 나서 몸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었지만 정신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조윤은 장로에게 다가가서 단검을 꺼냈다. 그러자 가까이 있던 심허가 흠칫했으나 제지를 하지는 않았다. 이제 와서 조윤이 장로를 헤칠 이유가 없었다.
조윤은 단검으로 장로의 손바닥을 그었다. 그러자 시커먼 피가 뚝뚝 떨어져 내렸다. 냄새가 지독해서 심허와 무경이 자신들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그렇게 피를 계속 빼자 장로가 비틀거리며 쓰러지려고 했다. 장로는 그동안 계속 내공을 써서 독에 대항하느라 몸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상태였다. 한데 갑자기 피를 빼니 정신이 혼미해져 버틸 수가 없었다.
심허가 장로를 부축하면서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그러자 조윤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직입니다. 조금 더 피를 빼야 합니다.”
“믿겠네.”
조윤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장로의 손에서 빠지는 피를 계속 지켜봤다. 그러다 시커먼 색의 피가 다 빠지고 붉은색의 피가 보이자 재빨리 지혈을 하고 침을 꽂았다.
장로의 상태를 보니 완전히 정신을 잃고 맥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하지만 얼굴은 평안해 보였다. 독이 제거되었기 때문이다.
조윤은 현기증이 계속 나고 속이 매슥거려서 구역질이 나려고 했지만 꾹 눌러 참으면서 장로의 상태를 살폈다. 예상대로 더 이상 독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독은 다 빼냈습니다. 당분간 잘 요양을 한다면 곧 건강해질 겁니다.”
“고맙습니다. 소청신의.”
“고맙네. 하지만 다른 이들은…….”
심허의 눈이 남은 두 장로에게 향했다. 이에 조윤 역시 자연스럽게 시선이 그들에게 갔다.
“죄송합니다. 극음소사의 독은 해독이 굉장히 까다롭습니다. 그래서 치료 도중에 열에 아홉은 죽습니다. 한데 지금은 독의 성질까지 변질되었습니다. 제 의술로는 저들을 치료할 방법이 없습니다. 내공이 회복되면 방금 했던 방법을 다시 써볼 수도 있지만 그때까지 저분들이 버틸지 모르겠군요.”
“음…….”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심허는 자신의 판단이 틀렸음을 알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조윤을 내치는 것이 아니었다. 반양이 뭐라고 하던 함께 치료를 해달라고 부탁했어야 했다. 아니면 조윤이 아니라 반양을 보냈어야 했다. 만약 그랬다면 이런 상황까지는 안 왔을 것이다.
심허는 반양을 원망하지 않고 전부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무경은 아니었다. 그는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반양을 보며 거칠게 입을 열었다.
“실력이 없다고 당신이 그렇게 무시하던 소청신의가 이런 상태가 되면서까지 장로님 한 분을 치료했습니다. 당신이 보기에는 어떻습니까?”
“방금 그건…… 의술이 아니지 않소?”
“의술이 아니라고요? 방금 봤잖습니까? 침을 놓고, 내공을 이용해 독을 밀어낸 후에, 일부러 상처를 내서 밖으로 빼냈습니다. 이게 의술이 아니면 뭡니까? 천하오대신의 중 한 명의 고견을 듣고 싶군요.”
한껏 비틀린 말이라 반양은 듣기에 거북했으나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는 조윤이 저런 식으로 치료를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함께 치료를 하다가 잘되면 좋은 거고 잘못되면 조윤에게 전부 뒤집어씌우려고 했었다. 그런데 조윤이 저렇게 치료를 함으로써 계획이 완전히 어그러져버렸다.
“무경아. 말을 함부로 하지 말거라. 약선신의도 최선을 다했다.”
“알고 있습니다. 다만 실력이 모자랐을 뿐이죠. 그럼에도 그는 오만합니다. 자신이 최고인 줄 압니다. 신의문에서 쫓겨난 것도 그래서라던데, 제 생각에는…….”
“그만!”
무경이 아픈 과거를 들추자 반양이 참지 못하고 한마디 하려는데 갑자기 심허가 크게 소리쳤다. 그 기세에 눌려 무경이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이놈! 내가 너를 그렇게 가르쳤더냐?”
“아닙니다. 사부님.”
“사람 일이 어디 뜻대로 되더냐? 네 마음이 심란한 이유를 어째서 다른 사람에게서 찾으려는 것이냐?”
“죄송합니다. 깊이 새기겠습니다.”
“알면 어서 사과를 하거라.”
“네.”
무경이 축 늘어진 모습으로 반양에게 갔다. 그리고 반장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미안합니다. 그간 신경 써주신 것을 알고 있는데도 제가 실례를 했습니다. 아둔해서 그런 것이니 너그러이 용서해주십시오.”
반양은 무경이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을 보자 마음이 좀 풀렸다. 그러나 금방 그걸 드러내기가 겸연쩍어서 괜히 헛기침을 하며 안 그런 척했다.
“험. 됐소. 그런 걸 마음에 담아둘 정도로 속이 좁지는 않소.”
“거듭 사과드립니다.”
“괜찮소.”
그때 지금까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당자휘가 입을 열었다.
“저 두 분을 치료할 방법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