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비서 154화
무료소설 신의비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8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의비서 154화
제2장 출발 (2)
“볼일은 다 봤나?”
“네.”
조윤이 낙소문과 함께 자리에 앉으면서 대답했다. 그러자 사일해가 한잔하라는 뜻으로 술병을 살짝 들어 올렸다. 어깨의 상처가 낫지 않은 상태에서 술을 먹으면 상처가 곪을 수도 있었다. 이에 웃으면서 고개를 젓고는 방태덕을 봤다.
“아직 술을 먹으면 안 됩니다.”
“응? 아. 그렇군.”
방태덕은 아쉬운 눈으로 술잔을 내려놓았다. 조금 더 마시고 싶었지만 제 목숨이 위태로운 걸 감수하면서 치료를 해준 조윤 앞에서 그럴 수가 없었다.
“오면서 보니까 무림인들이 많더군요.”
“그렇겠지. 균현에 가면 아마 더 많을 거야.”
“무당파에 도착하면…….”
말을 하던 조윤이 입을 다물었다. 좌측에서 갑자기 소란이 일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그쪽으로 고개를 돌린 조윤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그쪽 탁자에 앉아있는 사내가 괴로운 얼굴로 구토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 물러나세요!”
조윤이 다급하게 소리치면서 그리로 다가갔다. 그렇잖아도 사람들은 더러워서 가까이 갈 생각이 없었다. 그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조윤은 탁자에 있던 술병으로 손을 씻고 사내의 상태를 살폈다.
“괜찮으세요?”
“끄으…… 흐으…….”
사내는 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쓰러졌다. 그러면서도 계속 구토를 했고, 심지어 설사까지 했다. 그 난리를 피우니 사람들이 인상을 쓰면서 물러났고 객잔주인이 왔다.
하지만 그도 더러워서 가까이 오지는 못하고 소리만 질렀다.
“이게 무슨 일이야? 객잔에서 이러면 어쩌자는 거요? 어서 나가시오!”
객잔주인은 조윤이 구토를 하는 사내의 일행인 줄 알고 재차 윽박을 질렀다. 객잔 안에서 저런 꼴을 보이면 있는 손님도 다 나간다.
“내 말이 안 들리는가?”
객잔주인이 참다못해 조윤을 붙잡으려고 할 때였다. 거대한 손이 그의 어깨를 잡아채자 그는 저항 한 번 못해보고 뒤로 휙 딸려갔다. 그리고 상대를 확인한 순간 자신도 모르게 눈을 크게 뜨며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어이, 주인장. 한 번만 더 입을 놀리면 가만두지 않겠다.”
사일해가 코앞에서 나직이 중얼거리는 소리에 객잔주인은 잔뜩 겁을 먹고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그러자 사일해가 코웃음을 치면서 그를 놔줬다.
“조윤. 뭐가 어떻게 된 거냐?”
“모두 물러나세요. 호열자예요.”
“뭐, 뭐?”
호열자라는 말에 사일해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근처에서 뭔 일인가 싶어 구경하던 사람들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역병은 재앙과 같았다.
“히이이익! 역병이다!”
“살려줘!”
“으아아아아!”
객잔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너 나 할 것 없이 전부 비명을 지르면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 와중에 자빠져서 이마가 깨지는 사람도 있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밟힌 사람도 있었으나 아픈 줄도 모르고 금방 일어나서 달렸다.
잠깐 사이에 객잔 안에는 조윤과 낙소문, 사일해, 방태덕 만이 남게 되었다.
조윤은 호열자에 걸린 사내를 가만히 살피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늦었다. 살릴 방도가 없었다. 잠시 망설이던 조윤은 그의 사혈을 짚었다. 이게 최선이었다.
* * *
조윤은 시신을 처리하고 곧장 관청으로 향했다. 그러나 이곳의 현감은 아예 만나주지도 않았다. 무당파의 제자라고 이야기를 하자 그제야 만나줬으나 역시나 말이 통하지 않았다.
“뭐라고? 역병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런 헛소리를 하려거든 썩 꺼져!”
자신의 관할구역에서 역병이 창궐하면 그 책임을 지고 관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심한 경우 목이 잘리기도 했다.
더구나 지금껏 조용했건만 난데없이 찾아와서 역병이 돌고 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무당파의 제자만 아니었다면 그 목을 쳤을 것이다!”
현감은 조윤에게 으름장을 놓으며 쫓아냈다. 그렇게 관청을 나오자 사일해와 방태덕, 그리고 낙소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됐어?”
조윤이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낙소문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무당파로 가. 여기에서 해결될 일이 아니야.”
“응.”
마차에 탄 조윤은 한마디도 않고 심각한 얼굴로 창밖만 바라봤다. 하도 분위기가 무거워서 방태덕은 물론이고 낙소문조차도 쉽게 말을 걸 수가 없었다.
이틀을 움직이자 무당산이 있는 균현에 도착했다. 원래는 하루가 더 걸려야 정상이었으나 이번에도 방태덕이 지름길을 알려준 덕에 빨리 올 수가 있었다.
사일해가 마차를 처분하고 오는 동안 일행은 객잔에서 식사를 했다. 조윤은 어깨의 통증이 점점 심해지는 것을 느끼고 자신도 모르게 얕게 신음소리를 냈다. 그러자 낙소문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괜찮아?”
“응. 아직은 참을 만 해.”
“사 형이 오면 곧바로 산을 올라야겠군.”
때마침 사일해가 왔다. 일행은 곧바로 무당산으로 향했다. 산을 오르는 동안 조윤은 굉장히 힘들었다. 몸이 천근같이 무거웠다. 식은땀이 흐르고 으슬으슬 몸에서 한기가 느껴졌다.
“조윤.”
조윤의 상태가 안 좋은 것을 보고 낙소문이 옆으로 와서 부축을 했다.
“괜찮아.”
“얼굴이 창백해.”
낙소문이 조윤의 얼굴을 만지다가 흠칫 놀랐다. 열이 굉장했다.
“너…….”
“내게 업혀라.”
보다 못한 사일해가 등을 내밀었다. 조윤은 마다할 여유가 없었다. 몸 상태가 안 좋아서 이제는 정신마저 혼미해지고 있었다.
조윤이 업히자 사일해가 낙소문과 방태덕을 향해 말했다.
“경공술로 갑시다.”
“알았어요.”
사일해가 앞장서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낙소문과 방태덕이 뒤따라 경공술을 펼쳤다.
산을 오를수록 무당파로 향하는 무인들이 많아졌다. 그들은 세 사람이 빠르게 경공술을 펼쳐서 지나가자 의아한 눈으로 쳐다봤다.
그렇게 무당파에 도착하자 사일해는 숨이 턱까지 찼다. 사람을 업고 전속력으로 산을 탔으니 그럴 만도 했다.
방태덕 역시 상태가 좋지 않았다. 충수염 수술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체력이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낙소문만이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걸 알아차린 사일해와 방태덕은 낙소문의 내공이 생각보다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문 앞은 인산인해(人山人海)였다. 그들 모두 무당파를 돕기 위해서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온 사람들이었다.
사일해는 그들을 밀치면서 앞으로 갔다. 그러자 사람들이 좋지 않은 시선으로 쳐다봤다.
“이봐! 우리도 반시진이나 기다렸다고.”
“새치기하지 마라.”
무당파에 들어가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던 사내들 중 몇 명이 사일해를 비난했다.
“젠장! 나는 강철비권 사일해라고 한다! 할 말이 있으면 나중에 따로 찾아와라!”
사일해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내공을 실어서 외친 것도 아닌데 그랬다. 그는 그만큼 목소리가 컸다.
“흥! 소림사에서 쫓겨난 걸로 아는데,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뒤로 가서 줄을 서라!”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나름대로 한가락 한다는 이들이었다. 사일해가 낭인들 사이에서는 제법 유명했으나 그뿐이었다. 여기에는 그보다 더 이름이 높은 사람들이 많았다.
“비켜라!”
사일해가 앞으로 가려고 하자 몇 사람이 아예 앞을 막았다. 이에 화가 치밀었으나 여기에서 싸우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조윤을 안으로 데리고 가야 했다.
“쳇!”
방태덕이 낮게 혀를 차며 나서려고 했다. 무당파에서 자신을 알아볼까 봐 섣불리 나서지 않으려고 했으나 어쩔 수가 없었다.
그때 낙소문이 조용히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쓰고 있던 죽립을 벗고 면사를 벗었다.
갑자기 눈이 환해지는 미인이 나타나자 사람들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낙소문은 그들을 향해 포권을 하며 말했다.
“저는 아미파에서 온 낙소문이라고 해요. 보다시피 동료가 마교도에게 부상을 당했어요. 여기에서 지체하다가는 목숨을 잃을 거예요. 양보를 해주시면 그 은혜는 잊지 않겠어요.”
“아, 이런. 아미파의 여협이었군요.”
“음…… 그런 사정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머, 먼저 가시지요.”
방금까지만 해도 개미새끼 한 마리 못 지나가게 할 것 같이 굴더니 다들 급작스럽게 다른 태도를 보였다. 심지어 앞 사람들을 밀어내며 길을 터주기까지 했다.
“고마워요.”
낙소문은 거듭 인사를 하며 정문까지 갔다. 그러자 정문에서 조금 피곤한 표정을 짓고 있던 젊은 도사가 반장을 하며 말했다.
“여기에 문파와 이름을 기재하십시오.”
낙소문이 자신에 대한 것을 쓰고, 방태덕을 봤다. 그러자 그가 붓을 들고 좌검일선 방태덕이라고 썼다. 사일해도 자신의 별호와 이름을 적었다.
“아미파에서 오셨군요. 안쪽으로 가면 자리를 안내하는 분이 있을 겁니다.”
“환자가 있어요. 치료를 받고 싶은데 어디로 가야 하죠?”
낙소문의 말에 젊은 도사가 힐끗 사일해의 등에 업힌 조윤을 봤다. 얼굴이 창백하니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였다.
“안에 계신 분에게 물어보면 알려줄 겁니다.”
젊은 도사가 시큰둥하게 말하고는 반장을 했다. 그 모습이 상당히 눈에 거슬렸으나 그러려니 했다.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면 없던 짜증도 생기는 법이다.
곧바로 안으로 들어가자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호북은 물론이고 인근의 지역에서도 수많은 무인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에 그 수가 무려 이천 명이 넘었다.
그들을 수용하기 위해 곳곳에 천막이 쳐져있고, 무당파의 도사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