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비서 151화
무료소설 신의비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3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의비서 151화
제1장 방태덕 (1)
마차를 타고 가는 내내 조윤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오다가 들른 마을에서 본 전염병 때문이었다. 경황이 없어서 자세히 살펴보지는 못했으나 사람들이 죽어있는 모습이 전염병의 한 종류인 호열자(虎列刺)가 틀림없었다.
호열자는 호랑이가 살점을 찢어내는 것과 같은 고통을 준다는 뜻이다. 비브리오 콜레라균 때문에 발병하기 때문에 콜레라라고도 부른다.
신체적인 접촉 외에 물이나 음식물을 통해 확산된다. 제때에 치료를 받지 못하면 어른들은 둘 중 한 명이 죽고, 아이들이나 노인들은 열에 아홉은 죽는다.
“표정이 안 좋아.”
낙소문이 힐끗 돌아보면서 말했다. 전염병이 도는 마을을 벗어난 것이 벌써 한 식경이 넘었다. 한데도 조윤은 한마디 말도 없이 심각한 얼굴로 계속 생각에 잠겨 있었다.
“아까 본 전염병 때문에 그런 거야?”
“응. 어쩌면 그 마을만 그런 것이 아닐 수도 있어. 우선 가까운 관청으로 가자. 가서 알려야 병이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어.”
“관청은 현까지 가야 있어. 여기에서 한참 더 가야 돼.”
“난 괜찮으니까 속도를 높여.”
조윤이 그렇게 말했으나 낙소문은 마차의 속도를 그대로 유지했다. 빨리 가나 늦게 가나 어차피 큰 차이가 없었다. 관청에 들러서 이야기를 해도 그들이 나와서 조사하고 처리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더구나 가까운 곳에 마을이 없으니 전염병이 그리 쉽게 번지지는 않을 것 같았다.
“앞에 마을이 있는 것 같은데.”
조윤이 갑자기 옆으로 고개를 쏙 내밀자 낙소문이 흠칫하며 얼굴을 살짝 붉혔다. 그런 낙소문이 귀여워서 조윤은 그녀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주면서 볼에 살짝 입을 맞췄다. 그러자 그렇잖아도 붉었던 얼굴이 더욱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너…….”
“저기 저거 마을 맞지?”
조윤의 능청스러운 모습에 낙소문은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앞을 보니 정말 마을이 있었다. 근처에 다다르자 조윤이 마차를 세웠다.
“여기에서 기다려.”
“왜?”
“혹시 여기에도 전염병이 돌았을 수도 있어. 내가 먼저 가서 보고 올게.”
“그럼 돌아서 가.”
“아니. 확인해야 돼. 잠깐이면 되니까 걱정 마.”
조윤이 그렇게 말하며 옷을 찢어서 코와 입을 가렸다. 그리고 경공술을 펼쳐서 마을로 들어갔다. 그리 큰 마을은 아니었으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여기에도 전염병이 돈 건가?’
그런 생각을 하던 조윤은 문이 열려 있는 집을 발견하고 그리로 들어갔다. 안쪽에 있는 방을 슬쩍 들여다보니 역시나 시체가 있었다. 여인과 아이였는데 구토와 설사를 한 흔적 때문에 냄새가 역겨웠다.
호열자가 확실했다. 호열자에 걸리면 상당히 심한 구토와 설사를 일으킨다. 치료를 하지 않으면 설사가 점점 더 심해지다가 결국 ‘쌀뜨물’ 같은 변을 보게 되며 이때 잿빛 점액 같은 게 둥둥 떠 있는 것도 볼 수 있다. 내장의 상피 조직이 조각조각 떨어져 배설된 것이다.
설사로 많은 수분을 잃게 되면 혈관이 비정상적으로 두꺼워진다. 구토나 설사를 하는 단계가 지나면 수분 상실로 혈압과 체온이 급히 떨어지게 된다.
그럼 차갑고 끈적거리는 땀이 분비되면서 피부는 늘어지고 주름도 많이 생긴다. 몸은 널빤지처럼 뻣뻣하게 수축되고 눈과 볼은 움푹 파인다. 또한 코와 턱은 뾰족해지며 눈빛은 초점을 잃는다. 그리고 죽기 전까지도 의식은 남아 있지만 판단능력은 없다.
조윤은 예전에 배운 호열자에 대한 것을 상기하면서 곧바로 그곳을 나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가까운 곳에 객잔이 있었다. 그리로 가니 거기에도 시체가 여러 구 있었다.
빠르게 안을 훑어보던 조윤은 한쪽에 쌓아둔 술 단지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찾던 것이 그거였다. 허리까지 올 만큼 단지가 컸으나 조윤은 내공을 이용해서 번쩍 들어올렸다. 어깨가 다 낫지 않아서 한 손만으로 들어 올리고 있었으나 그 역시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마을을 벗어나자 걱정하며 기다리던 낙소문이 다가왔다. 그걸 보고 조윤이 크게 소리쳤다.
“멈춰!”
“왜?”
“거기서 기다려.”
조윤은 그렇게 말하고 들고 있던 술 단지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옷을 전부 다 벗자 낙소문이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휙 돌아섰다.
‘갑자기 옷은 왜 벗는 거야?’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얼굴에 열이 나는 걸 식히던 낙소문은 힐끗 뒤를 봤다. 조윤이 뭘 하나 궁금했던 것이다.
조윤은 벗어놓은 옷을 멀리 던져놓고, 술로 손은 물론이고 온몸을 씻고 있었다. 그러더니 마차로 가서 따로 챙겨왔던 옷을 입었다.
“혹시 모르니까 여기에 손 닦아.”
조윤이 다가오자 술 냄새가 확 풍겨왔다. 이에 낙소문이 자신도 모르게 살짝 미간을 좁혔다. 그녀는 그다지 술을 즐기는 편이 아니라 냄새가 좋지 않았다.
조윤은 그녀의 손을 잡고 거기에 술을 부었다.
“이러면 전염병에 안 걸려?”
“응. 호열자는 환자와 접촉을 하거나 물, 또는 음식으로 전염이 돼. 혹시 몰라서 소독을 하는 거야.”
낙소문은 조윤이 손을 주무르면서 씻기는 걸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생긋 미소를 지었다. 남녀가 유별하거늘 조윤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입을 맞춘 이후부터 스스럼이 없었다. 그게 자연스러우면서도 선을 넘지는 않았기 때문에 낙소문은 기분이 좋았다.
사내와 이렇게 많은 접촉을 한 적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없었다. 생경한 느낌이 약간 두렵기도 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따뜻했다.
“왜?”
낙소문의 시선을 느낀 조윤이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 그러자 낙소문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아무것도. 마을은 어때? 거기도 전염병이 돈 거야?”
“응. 다 죽었어. 상황이 심각해.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지만 벌써 두 번째야. 거기에 살던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가서 병을 옮기고 있을 거야.”
“그럼 곧바로 관청으로 가야겠네.”
“그래야 할 것 같아.”
두 사람은 그곳을 떠나 곧장 가까운 현으로 갔다.
* * *
흥산(興山)현에 도착하니 전염병에 대한 건 전혀 모르는 듯, 평화롭기만 했다. 오가는 사람들을 그대로 지나쳐가며 조윤은 관청으로 향했다.
“무슨 일인가?”
정문을 지키고 있던 병사가 조윤과 낙소문의 앞을 막아서며 물었다. 그러다 낙소문을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눈이 훤해지는 미모에 넋이 나간 것이다.
“현감님을 뵈러 왔습니다.”
“응? 누구를 본다고?”
“현감님을 뵈러 왔습니다.”
조윤이 다시 말하자 그제야 병사가 낙소문에게서 시선을 뗐다. 그리고 살짝 인상을 쓰면서 조윤을 아래위로 훑어봤다. 검을 차고 있는 것을 보니 무림인인 것 같았으나 옷차림이 평범했다.
“그분을 왜 만나러 왔는가?”
“중요한 일입니다.”
“혹시 약속이 되어 있나?”
“아닙니다.”
“음…… 그분은 아무나 만날 수가 없는데.”
“그럼 어떻게 해야 만날 수가 있습니까?”
“신분을 밝히고 용건을 이야기하면 나중에 연락을 주겠네.”
말하는 투를 보니 언제 만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이곳의 현감이 직무에 충실한 자라면 기회가 있을지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아예 못 만날 것 같았다. 이에 조윤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다시 말했다.
“무당파에서 왔다고 전해주십시오.”
“무당파라고?”
병사가 조금 의외라는 듯이 쳐다봤다. 나이가 어려 보였지만 무림인인 것 같기에 마구 대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무당파라고 한다. 병사는 그러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물었다.
“중요한 일로 왔으니 현감님을 만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잠시만 기다리게.”
병사가 그렇게 말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호북에서 무당파를 무시할 수 있는 곳은 어디도 없었다. 관청 역시 무당파라면 무조건 한 수 접어줬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관청에서 일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한두 다리만 건너면 전부 무당파와 연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곳에서는 무당파의 영향력이 지대했다.
“이쪽으로 오시게.”
잠시 후 돌아온 병사는 조윤과 낙소문을 객청으로 안내했다. 거기에서 기다리고 있자 곧 뚱뚱한 체구의 중년인이 나왔다. 이곳의 현감인 왕경록이었다.
“무당파에서 왔다고 했는가?”
“네. 조윤이라고 합니다.”
“내가 이곳의 현감일세. 반갑군.”
서로 인사가 오가는데 현감이 낙소문을 보더니 쉽게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한 노골적인 시선에 낙소문이 살기를 드러내자 현감이 흠칫하며 무안함에 헛기침을 했다.
“험! 그래 무슨 일로 나를 보자고 했는가?”
“여기로 오면서 전염병이 도는 것을 봤습니다.”
“전염병?”
“그렇습니다. 오다가 마을을 두 군데나 거쳤는데 사람들이 전부 죽어있었습니다.”
“그게 전염병이라고?”
“네. 호열자가 분명합니다.”
“자네가 그걸 어떻게 아는가?”
“저는 의원입니다.”
“그럼 혹시 무당파에 속해 있는 의원인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면 몇 대 제자인가?”
전염병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몇 대 제자인 것을 묻자 조윤은 약간 어이가 없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건가?
“마을에서 나간 사람들 때문에 곧 호열자가 돌 겁니다.”
“응? 아, 그도 그렇군. 걱정 말게. 곧 사람을 보내서 처리할 테니까.”
현감이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전염병은 이 시대에서는 재앙과 같았다. 당장 대비를 하지 않으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죽을 테고, 이곳까지 번져올 것이다. 한데도 저런 태도를 보이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쩌면 이곳에도 벌써 감염자가 들어왔을 수도 있습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한다고 하지 않았나?”
현감의 목소리가 살짝 높아졌다. 그 모습을 보고 조윤은 더 이야기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현감 입장에서 보면 조윤은 그저 평민일 뿐이었다. 무당파의 이름을 대지 않았다면 아마 만나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상황을 전했으니 어떻게 처리를 하던 그건 현감이 알아서 할 일이었다. 거기에 대고 조윤이 감 놔라 대추 봐라 할 수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조윤은 현감에게 포권을 하고 그 자리를 나왔다. 현감이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것 같아서 답답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옥승진인의 제자인 것을 밝혔더라면 조금 더 능동적인 모습을 보였을 수도 있었으나 앞에서만 그러고 뒤에서는 모르는 척할 수도 있었다.
결국 뭔가를 하려면 직접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려면 무당파의 힘을 빌려야만 하는데, 마교와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라 쉽지가 않았다.
조윤이 크게 한숨을 내쉬자 낙소문이 옆으로 다가와 손을 꼭 잡았다. 말없이 응원해주는 모습에 조윤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뭐가 어찌 되었던 일단은 무당파로 가야 했다.
* * *
현을 나와 북쪽으로 계속 향했다. 가면서 작은 마을을 몇 개 지나자 수풀이 우거진 산이 나왔다. 밤에 산을 넘기가 망설여져서 인근에 있는 객잔으로 향했다.
하지만 조윤과 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로 인해 방이 딱 하나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이에 조윤이 다른 곳으로 가려는데 객잔주인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근에 객잔이라고는 여기 말고 한평(限平)객잔밖에 없는데 거기도 사람이 꽉 차 있을 겁니다.”
조윤은 난처한 표정으로 낙소문을 봤다. 그러자 낙소문이 대뜸 돈을 꺼내 객잔주인에게 내밀었다.
“방을 빌릴게요.”
“하하. 잘 생각하셨습니다.”
객잔주인이 웃으면서 재빨리 돈을 챙기고는 객방으로 안내를 했다. 방은 작고 지저분했다. 더구나 침대도 하나밖에 없었다. 조윤이 어색하게 낙소문을 봤으나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방으로 먼저 들어갔다.
“침대에서 자. 나는 바닥에서 잘게.”
“그러지 않아도 돼.”
“어?”
“함께 자.”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일까?
조윤이 당황하며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자 낙소문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이상한 생각 하지 마. 침대가 하나밖에 없잖아. 날이 추워 바닥에서 잘 수도 없고. 그래서 그런 것뿐이야.”
“아.”
얼결에 대답을 한 조윤은 잠시 나갔다 오겠다고 하고 방을 나왔다.
‘같이 잔다고?’
조윤이 아무리 둔해도 그 의미는 안다. 여자가 같이 자자고 하는 것이 무슨 뜻인지 말이다.
하지만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 정말 상황이 그러니까 순수하게 같이 잠만 자자는 뜻일 수도 있었다.
복잡한 머릿속을 비울 생각으로 객잔 밖으로 나가려고 했는데, 사람들이 잔뜩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보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다가가보니 넉살 좋게 생긴 젊은 사내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