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비서 14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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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1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의비서 144화
제8장 회담 (1)
약교연의 제안은 파격적이었으나 조윤은 그다지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이에 조윤은 일단 시간을 벌기로 했다.
“생각해볼게요.”
“그럼 하루를 주마. 그동안 잘 생각해봐. 뭐가 이득인지.”
“만약 제가 거절하면 어떻게 할 거죠?”
“당연히 죽여야지. 지금 상황이 어떤지는 알지? 옥승의 제자를 죽이면 우리로서는 무당파의 기세를 조금 꺾고 시작하는 셈이지.”
“시시는 어때요?”
“그건 왜 묻는 거냐?”
역시나 약교연이었다. 총명한 그녀는 조윤이 묻는 말에 뭔가 이유가 있다는 것을 금방 알아챘다.
“시시가 정말 다 나았다고 생각하세요?”
순간 약교연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그러나 곧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얕은 수를 부리는구나. 이미 몇 명의 의원들이 왔다 갔다.”
“글쎄요. 그 사람들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지만 구음절맥을 치료할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요.”
“네 말은 시시가 아직 치료가 되지 않았다는 거냐?”
“제가 왜 여기까지 왔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약교연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녀도 사실 그게 궁금했었다. 단순히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온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무당파의 사주를 받고 뭔가 수작을 부리려는 것 같지도 않았다.
“저는 의원입니다. 의원으로서 자긍심이 있습니다. 굳이 안 가도 되는데 당문까지 목숨을 걸고 간 이유도 그래서입니다. 덕분에 효주는 완치가 되었습니다. 시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손을 안 댔다면 모를까 치료를 하기로 한 이상 완치를 시킬 생각입니다.”
“그럼 시시를 치료하기 위해서 온 거란 말이냐?”
“약속을 지키려고 한 것도 있습니다. 의원은 신용이 생명이죠. 어떤 상황에서도 ‘이 사람이 내 병을 고쳐주겠구나’하는 믿음을 환자에게 줘야 합니다. 그럼 못 고칠 병도 고쳐지죠. 가십시오. 가서 시시에게 가슴이 조금 따끔거리면서 아프지 않은지 물어보세요. 그리고 옆구리에도 약간 통증이 있을 겁니다.”
약교연은 조윤이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그러나 조윤의 말은 타당성이 있었다. 그동안 조윤은 무림인으로서 행동을 하기보다는 의원으로서의 모습을 더 많이 보여줬었다.
“기다려라.”
약교연이 그 한마디를 남기고 사라지자 조윤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네. 정말 대단하군.”
“뭐가요?”
맹추삼은 진정으로 조윤에게 감탄을 한 상태였다.
“저 여우를 그렇게 다루는 사람은 처음 봤네.”
“그래봤자 이런 신세인걸요.”
“자네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해보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도저히 일개 의원 같지가 않군.”
“의원이 맞습니다.”
“무당파의 제자인가? 아까 옥승의 제자라고 한 것 같은데.”
“맞습니다.”
“허. 그랬군. 그랬어. 그러니까 여기에 갇혔지.”
“여기가 어디기에 그러는 겁니까? 금가장의 뇌옥이 아닙니까?”
“허, 무슨 소리! 여기는 악명이 자자한 수중뇌옥(水中牢獄)일세.”
“수중뇌옥이요?”
“그래.”
맹추삼의 대답을 듣는 순간 조윤은 머릿속이 멍해졌다.
* * *
“제가 여기에 온 지 얼마나 지났습니까?”
“자네는 이틀 전에 실려 왔네. 숨은 붙어 있는 것 같은데 꼼짝도 안 하기에 곧 죽을 거라 여겼지.”
“금가장에서 여기가 먼 가요?”
“하루거리일세.”
맹추삼의 말대로라면 금가장에서 당한 이후로 삼 일이 지났다는 뜻이다. 그럼 낙소문이 자신을 찾기 위해 금가장으로 갔을지도 모른다.
조윤은 마음이 급해졌다. 어떻게든 오늘 내로 이곳을 나가야만 했다. 잠시 안절부절못하다가 우선은 내상부터 치료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가부좌를 하고 정신을 집중했다. 호흡이 가늘고, 깊고, 천천히, 단전을 드나들다가 이내 사라졌다. 몸 안에서 임맥과 독맥을 따라 기운이 돌기 시작하면서 뒤틀린 혈도가 제자리를 찾아갔다.
한참을 그렇게 운기조식을 하자 완전히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기운을 되찾을 수가 있었다. 예전에 비하면 오 할 정도였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도 감지덕지였다.
만약 약교연이 산공독을 썼더라면 시간이 더 걸렸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왜 산공독을 쓰지 않은 걸까?
아마도 이 만년한철로 된 쇠고랑을 믿고 그런 것 같았다.
“후우…….”
길게 숨을 뱉어낸 조윤이 눈을 떴다. 그러자 맹추삼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걸어왔다.
“혹시 운기조식을 했느냐? 그들이 너에게는 금제를 가하지 않은 모양이구나.”
“금제라니요?”
“이곳에 멀쩡하게 들어오는 사람은 없다. 대부분 단전이 망가져서 온다. 나 역시도 그랬지.”
“손을 줘보세요.”
“손을?”
“진맥 좀 해볼게요.”
조윤의 말에 맹추삼이 얼결에 손을 내밀다가 쇠고랑에 걸린 쇠사슬이 걸려 멈칫했다. 조윤도 손을 뻗었으나 마찬가지였다. 쇠사슬이 짧아서 두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았다.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멋쩍어하다가 똑같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조윤은 문득 좋은 생각이 났다. 입고 있던 상의를 찢어서 길게 이은 후에 맹추삼을 향해 던졌다.
“그걸 손목에 감으세요.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해보죠.”
이건 귀족들을 상대하던 의원들, 특히 황궁의 어의들이 주로 쓰는 진맥 방법이었다. 남녀가 유별한지라 함부로 여인의 몸에 손을 댈 수가 없어, 실을 손목에 묶어 진맥을 하곤 했다.
조윤은 그런 걸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고, 지금 있는 게 실도 아니었으나 생각난 것이 이 방법밖에 없었다.
맹추삼도 의원들이 그렇게 진맥하는 것을 본 적이 있어 조윤이 시키는 대로 천을 손목에 묶었다.
“맥을 느낄 수 있게 팽팽하게 해야 합니다.”
“알았다.”
맹추삼이 묶은 것을 확인하자 조윤이 줄을 당겨 너무 느슨하지도 않고 팽팽하지도 않게 했다. 그리고 정신을 집중했다. 하지만 천을 통해서 약하게 뛰는 맥의 진동을 읽는다는 것은 무리였다. 아무리 집중을 해도 맹추삼의 맥이 잡히지가 않았다.
잠시 다시 방법을 생각하던 조윤은 천을 통해 기를 실어 보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격하는 검기는 물론이고 검강까지 쓸 수 있는 조윤이었다. 더구나 그 얇은 종이 사이를 뚫을 정도로 기운을 세밀하게 다룰 수가 있었다.
비록 천 쪼가리였으나 그걸 통해서 기를 흘려보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손목에 묶은 천을 통해 기가 전해져 오자 맹추삼이 놀란 눈을 했다.
“너…….”
“조용히 하십시오. 집중이 흐트러집니다.”
뭐라고 말을 하려던 맹추삼이 입을 다물자 조윤은 다시 집중했다. 천을 타고 맹추삼의 완맥까지 전해진 기운을 통해 조윤은 맥박을 읽을 수가 있었다.
‘어디 이것도 한번 해 볼까?’
조윤이 조금 더 집중해서 기를 흘려보내자 맹추삼의 몸 안으로 기가 흘러들어갔다. 조윤은 지금 맹추삼과 이어진 천을 통해 기맥을 하려는 것이다.
혹시나 해서 해 본 것이었는데 결과가 좋았다. 흘려보낸 기를 통해서 맹추삼의 몸 상태가 세세하게 읽혔다.
“다 되었습니다. 정말 단전이 망가졌군요.”
“그렇지.”
맹추삼이 씁쓸하게 말했다. 단전이 망가졌다는 것은 무인으로서 생명이 끝났다는 뜻이었다. 내공을 쓰지 못하면 저잣거리의 삼류수준을 넘어설 수가 없었다.
“하지만 되살릴 방법이 있습니다.”
“알고 있네. 몇천 년 된 하수오나 공청석유 같은 희귀한 영약을 먹으면 되겠지.”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럼 뭔가 다른 방법이 있는 거냐?”
“물론입니다. 치료방법이 있습니다.”
조윤은 이번에 당효주를 치료하면서 크게 깨달은 것이 있었다. 현대에서는 도저히 꿈도 꿀 수 없는 치료를 이곳에서는 할 수가 있었다. 사람이 가진 내기를 활용한 치료 말이다.
당효주의 막힌 혈을 뚫는 방법이라면 맹추삼의 단전을 되살리는 것도 가능했다.
“그게 정말이냐?”
“그렇습니다.”
맹추삼이 놀라서 눈을 크게 뜨며 조윤에게 다가오려고 했다. 그러나 쇠사슬 때문에 얼마 움직이지 못하고 멈춰야 했다.
“무슨, 무슨 방법이냐?”
“제가 치료하면 됩니다.”
조윤의 말을 듣고 맹추삼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잠시지만 그는 이곳에서 내공을 되찾아서 탈출을 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서로 이렇게 묶여 있는 처지인데 어떻게 치료를 한단 말인가?
“이런 상태에선 치료가 불가능하겠구나.”
“가능합니다.”
“가능하다고?”
맹추삼이 다시 조윤에게 다가오려다가 쇠사슬에 걸려 멈춰 섰다.
“방법이 뭐냐?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치료는 제가 할 거니까요. 다만 묶여 있는 천을 통해서 기를 전달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가장 큰 문제는 그렇게 치료를 했을 경우 저는 내공이 바닥이 납니다. 다시 말해 제가 이곳을 빠져나갈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나를 치료해준다면 내가 너를 데리고 나가겠다.”
“저는 오늘 내로 나가야 합니다.”
“그 만년한철을 끊을 수 있겠느냐? 너는 안 되겠지만 내가 내공만 되찾는다면 가능하다.”
조윤은 가만히 맹추삼을 보다가 쇠사슬을 봤다. 두텁고 만년한철이라는 특수한 철로 만들어진 것이었지만 그가 끊을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자신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잠시 생각을 하던 조윤은 천을 짧게 찢어서 잡았다. 그리고 기를 주입하자 마치 검처럼 꼿꼿하게 섰다.
‘이걸로는 안 되겠지?’
조윤은 들고 있던 천에 내공을 더 흘려 넣었다. 그러자 검강이 형성되려고 했으나 천이 버티지 못하고 터져버렸다.
팡!
“헛! 지, 지금 뭘 한 거냐?”
“쇠사슬을 끊기 위해 천으로 검강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검강이라고? 네가 검강을 쓸 수 있단 말이냐?”
“약간요.”
조윤은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 천을 찢어서 내기를 주입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검강을 버티지 못하고 터졌다. 몇 번을 더 해봤으나 검기까지는 어떻게 될 것 같아도 검강은 무리였다.
그걸 보고 맹추삼이 혀를 차며 말했다.
“그런 천 조각은 검강을 버티지 못한다.”
“아쉽군요. 검강이면 이 쇠사슬을 끊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다. 충분히 끊을 수 있다.”
“정말입니까?”
“검강이 아닌 수강을 쓰면 되지.”
“수강이요?”
* * *
조윤의 되묻는 말에 맹추삼은 담담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그래. 강기를 꼭 검을 통해서만 만들 필요는 없지 않느냐? 손을 통해서 만드는 거다. 물론 그게 검강보다 더 어렵다. 검이라는 매개체가 없으니까.”
“수강은 어떻게 하는 겁니까?”
“나를 여기에서 풀어주고 망가진 단전을 치료해준다고 약속해라. 그럼 방법을 알려주마.”
“그럼 됐어요. 혼자 조금 더 연구해보죠.”
“흥! 그게 혼자 생각한다고 될 것 같으냐? 시간 낭비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해라.”
조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에 어떻게 강기를 손에 맺히게 할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면서 몇 번 해보기도 했으나 맹추삼의 말대로 쉽지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종이에 기를 투과해서 보내듯이 쇠사슬에도 그렇게 해서 끊으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에 쇠사슬에 기를 흘려보냈으나 어떻게 끊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후우…… 좋아요. 방법을 알려주세요. 그럼 이곳에서 나갈 때 데리고 갈게요. 단전도 치료해주고요.”
조윤이 포기를 하고 말하자 맹추삼이 눈을 빛냈다.
“약속할 수 있느냐?”
“네.”
“하늘에 대고 맹세해라.”
“나 조윤은 어르신과…….”
“맹추삼이다.”
“네. 맹추삼 어르신과의 약속을 절대로 어기지 않을 것을 맹세합니다.”
“좋다. 그럼 이제 나한테 절을 세 번 해라.”
“왜요?”
“지금부터 나 권왕의 독문절기인 파열신권(破裂神拳)을 네게 전수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사부로 모시라는 뜻이었다.
“전 사부님이 있는데요.”
“흥! 내가 네 스승이 된 걸 알면 옥승이 오히려 반기면 반겼지 반대하지는 않을 게다.”
“음…… 그래도 그건 아닌 거 같은데…….”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조윤을 보자 맹추삼은 애가 탔다. 십 년 전만 해도 자신의 제자가 되지 못해서 안달을 하던 이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심지어 마교의 장로인 노웅조차도 자신의 파열신권을 탐내 아직까지 자신을 살려놓고 있었다. 그런 걸 가르쳐준다는데 저런 반응이라니, 맹추삼은 자존심이 상했으나 꾹 눌러 참았다. 지금은 어떻게든 저 어린놈의 비위를 맞춰서 이곳을 나가야 했다.
“파열신권은 마교의 장로인 노웅도 탐을 내는 무공이다. 옥승이 검법은 뛰어날지 몰라도 권법은 아니다. 내가 훨씬 더 뛰어나다.”
“그럼 나중에 사부님에게 이야기를 잘 해주세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요.”
“걱정 말아라. 내가 한마디만 하면 옥승도 감히 뭐라 못 할 거다.”
맹추삼이 호언장담을 하자 그제야 조윤은 그를 향해 절을 세 번했다.
“사부님.”
“그래. 이제부터 너는 나 권왕의 제자다. 시간이 없으니 바로 시작하자.”
“네.”
맹추삼은 그때부터 파열신권을 전수하기 시작했다. 단전이 파괴되어 내공도 없고, 손목과 발목에 쇠고랑을 차고 있었으나 동작을 보여줄 수는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