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비서 16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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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1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의비서 167화
제8장 해소 (1)
이틀 동안 조윤은 의원들을 상대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들이 묻는 말에 일일이 대답을 해주고, 잘 모르는 부분은 몇 번이고 다시 설명을 했다. 또한 수액을 만드는 법과 사용법, 등도 알려줬다.
그들이 가고 나자 옥승진인이 조윤을 불렀다.
“원래는 내가 나서려고 했다. 그러나 네가 훌륭하게 일을 처리해서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구나. 정말 장하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닙니다.”
“알고 있다. 관은 걱정하지 말거라. 내가 황궁에 연락을 했으니 곧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자가 파견될 것이다.”
“황궁에 아는 사람이 있었습니까?”
조윤이 의외라는 듯이 물었다.
관과 무림은 웬만해서는 서로 관여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알게 모르게 다 연결이 되어 있었다. 무공이 뛰어난 무림의 협사들을 황궁에서 데려가 중하게 쓰는 일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하북팽가만 해도 무림세가이지만 나라의 군벌가문이기도 했다. 그러니 옥승진인도 황궁과 어느 정도 끈이 닿아있었다.
“이 사부를 너무 낮게 보는구나.”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제자가 실언을 했습니다.”
“클클. 괜찮다. 곧 떠난다지?”
“네. 이곳은 이제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으니 중부와 남부를 둘러볼 생각입니다.”
“네 의지가 가상하구나. 내가 달리 도울 일은 없겠느냐?”
“없습니다.”
“그렇구나. 하면 잠시 따라오너라.”
옥승진인이 그렇게 말하면서 조윤을 아무도 없는 한적한 공터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나뭇가지 하나를 꺾어서 손에 들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너는 내 제자가 되어서 그리 무당파의 이름을 빛냈는데, 나는 네게 전해준 것이 아무것도 없구나. 해서 검법을 하나 알려주마.”
“검법…… 말입니까?”
“왜? 내키지 않느냐?”
“아닙니다.”
“하면 보아라.”
옥승진인이 편안하게 자세를 잡고 나뭇가지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이 마치 물 흐르듯이 끊이지가 않고 유려했다. 조윤은 그런 옥승진인의 검법에 점점 빠져들었다.
‘물? 아니다. 물이 아니야. 좀 더 자유스럽다. 바람. 그래, 바람이다.’
옥승진인이 보여준 검법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그랬다. 살랑이면서 부는 바람과 같았다.
“어떠냐?”
“바람이 느껴졌습니다.”
“허, 그랬더냐? 하나 바람이 아니다.”
“그렇습니까?”
“그래. 다시 한 번 보아라.”
옥승진인이 방금 보인 검법을 다시 펼쳤다.
조윤은 집중해서 보다가 문득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랬다. 물도 아니었고, 바람도 아니었다. 그저 아무것도 없었다.
‘없다.’
조윤의 눈이 커졌다. 만약 자신이 저런 검법을 상대로 싸운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길 자신이 없었다. 아무것도 없기에 모든 공격을 다 받을 수가 있고, 되돌려 줄 수도 있었다.
“뭔가 얻은 것이 있느냐?”
“무(無)입니까?”
“반만 맞췄다. 좀 더 생각해보아라.”
조윤은 그 자리에 털썩 앉아서 팔짱을 꼈다. 그리고 한참을 생각하자 짚이는 것이 있었다.
“무위(無爲)입니까?”
옥승진인이 미소를 지었다. 기특한 녀석이었다. 보기만 해도 다 안다. 어디에서 또 저런 녀석을 만날 수 있을지, 말년에 참 복이 많다.
“맞다. 할 수 있겠느냐?”
조윤이 자리에서 일어나 근처에 있는 나무에서 가지를 꺾어왔다. 그리고 방금 본 옥승진인의 동작을 흉내 내기 시작했다.
두 사람 다 초식을 논하는 경지를 훨씬 넘어서 있었다. 그러니 동작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 안에 담긴 의의를 알아야 했다.
조윤의 검이 물처럼 흘렀다. 마구 움직이고 있었으나 끊어짐이 없었다. 그러다 곧 바람이 되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무위는 되지 못했다.
무위란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움이었다. 그저 있는 것, 그저 존재하는 것, 가면 가고 오면 온다. 그게 자연스러워야 했다.
무위란 그런 것이었다. 머리로는 알지만 그것이 구현되는 것은 달랐다. 조윤은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서 계속 나뭇가지를 움직였다.
누가 보면 장난을 치고 있는 줄 알 것이다. 아니면 미쳐서 춤을 추고 있거나.
한데도 옥승진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조윤은 이미 무위를 보았다. 뭔지 알고 있었다. 하니 곧 체득할 것이다.
무당파에서 저 경지에 오른 사람들은 열 명도 되지 않았다. 그만큼 높은 경지건만 조윤은 한순간에 오르려 하고 있었다.
옥승진인은 그게 마음에 들어 조금 더 도와주기로 했다. 이에 들고 있던 나뭇가지로 조윤을 공격해갔다.
갑자기 나뭇가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놀랄 만도 하련만 당연하다는 듯이 조윤의 나뭇가지가 거기에 와 있었다.
옥승진인의 나뭇가지가 다시 움직였다. 조윤에게 닿을 듯 말 듯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 그 안에서 조윤은 이리저리 춤을 췄다. 이상한 건 옥승진인의 움직임에 반응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제멋대로라는 것이다.
거길 지나가다가 우연찮게 두 사람을 본 무경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게 도대체 뭐를 하는 거란 말인가?
무공을 전수하는 것 같기는 한데 그런 것치고는 두 사람이 너무 따로 놀고 있었다. 그래도 혹여 뭔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집중해서 봤지만 알 수가 없었다.
“거참…….”
“허, 벌써 저런 경지란 말인가?”
“아, 사부님.”
언제 왔는지 심허진인이 옆에 와 있었다. 무경은 옥승진인과 조윤의 요상한 움직임에 집중하느라 그가 오는 것을 전혀 몰랐다.
“사백님과 사제의 움직임을 보고 뭔가 느끼는 것이 있느냐?”
“제자가 아둔하여 잘 모르겠습니다.”
무경이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그러나 사실 이건 무경이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었다. 심허진인조차도 저 경지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오랜 세월이 걸렸었다. 하니 젊은 나이에 그걸 얻어가려는 조윤이 이상한 것이다.
“잘 봐두어라. 평생에 한 번 보기 힘든 경지니라.”
“보기는 아까부터 봤지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때 심보와 심양이 나는 듯이 달려와서 그들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러더니 감탄을 하며 말했다.
“잘하는구나.”
“역시 사제로군.”
“사백님이 정말 제자 하나는 잘 거뒀지.”
심양과 심보가 주거니 받거니 하는 말을 들으면서 무경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조윤의 경지가 높은 것은 알고 있었다. 한데 자신이 전혀 짐작도 하지 못할 정도라니.
도대체 언제쯤 저런 경지에 오를 수 있단 말인가?
* * *
조윤은 짐을 챙겨서 방을 나왔다. 낙소문과 당예상에게는 서찰을 남겨 두었다. 함께 가기에는 위험했다. 게다가 그동안 고생을 했으니 이제는 조금 쉬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말에 올라탄 조윤은 어깨를 몇 번 움직여봤다. 완전히 나은 것은 아니지만 움직일 정도는 되었다.
“가자.”
말에 박차를 가하자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조윤은 잠시 무당파를 돌아봤다. 짧은 기간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이렇게 깊은 인연을 맺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방현에 도착하니 예전과 달리 거리에 사람이 많지 않았다. 조윤은 가까운 객잔에 들어갔다. 점소이가 달려 나와 말고삐를 잡았다.
“여물을 잘 먹여라.”
“네. 걱정 마십시오.”
객잔 안은 한산했다. 정오니 평소 같으면 사람들이 많아야 정상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이쪽입니다.”
객잔주인이 안내하는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간단한 요깃거리와 술을 시켰다. 잠시 후 점소이가 음식을 내왔다.
“어째 이리 사람이 없지?”
“그…… 아직 소문을 못 들으셨군요.”
“무슨 소문?”
조윤이 묻자 점소이가 힐끗 객잔주인이 있는 쪽을 보더니 목소리를 낮춰서 이야기했다.
“여기에 역병이 돌고 있습니다요. 하루에 사람이 수십 명씩 죽어나간다고 합니다. 저도 며칠 전에 죽어나자빠진 사람을 봤습죠.”
“의원들이 치료를 하지 않나?”
“아이고, 저희같이 없는 사람들은 꿈도 못 꿀 일입니다.”
“돈을 많이 받나?”
“어마어마하게 받는다고 합니다.”
점소이가 진저리를 치면서 하는 말을 듣고 조윤은 씁쓸하게 웃었다. 사람들을 치료하라고 방법을 알려줬더니 그걸로 장사를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다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심정이 답답했다.
“무림세가에서 무료로 치료를 해주지 않더냐?”
“그렇기는 한데 문턱이 높습죠. 그런 데는 기가 죽어 저희 같은 사람들은 쳐다보지도 못합니다.”
조윤은 조금이라도 사람들을 더 구하기 위해서 무림세가에서 온 의원에게 혹여 환자가 있으면 무료로 치료를 해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한데 상황이 이러니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고맙네.”
조윤은 점소이에게 약간의 돈을 줬다. 생각지도 않은 수입이 생기자 점소이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식사를 마친 조윤은 객잔을 나왔다. 그리고 말을 타고 계속 남하했다. 가면서 예전에 들렀던 마을에 가봤다. 역시나 사람이 한 명도 살지 않았다.
하긴, 역병이 휩쓸고 지나간 곳에 누가 살겠는가?
조윤은 혹시 몰라 곳곳에 불을 질렀다. 이렇게 하면 병이 옮을 일이 없었다. 진즉 했었어야 했는데 그때는 경황이 없어서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불이 활활 타오르는 것을 지켜보다가 다시 말을 타고 관도를 따라갔다. 그렇게 며칠을 가자 곧 흥산현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거기도 거리는 한산했다. 객잔에 들러 이것저것 물어보니 상황이 방현과 똑같았다. 돈을 막대하게 받으면서 장사를 하는 의원들이 있었고, 무림세가는 함부로 갈 수가 없었다. 그나마 관에서 어느 정도 통제를 하고는 있었는데 적극적이지는 않다고 한다.
객잔을 나온 조윤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고삐를 잡고 걸었다. 자신이 과연 잘한 일인지 약간 후회가 들었으나 뭐가 어찌 되었든 역병의 확산이 줄어든 건 확실하니 다행이었다.
천천히 걸어가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여인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쪽을 보니 낯익은 여인이 네 명의 장한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누구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