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비서 15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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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5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의비서 158화
제4장 다시 가다 (1)
정신을 차린 조윤은 어깨가 끊어질 듯이 아팠다. 이에 자신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으…….”
“움직이지 마.”
낙소문이 조윤을 잡아 눌렀다. 조윤은 고통을 참느라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된 거야?”
“기억 안 나? 무당파에 오기 전에 정신을 잃었었잖아.”
“그랬나?”
조윤은 자신의 어깨를 봤다. 깨끗한 천이 감겨져 있었다. 가만히 눈을 감고 몸을 살폈다. 흑마장의 독기가 잡히지 않았다. 치료가 된 것이다.
“누가 날 치료했어?”
“방소교라는 여자야.”
“방소교?”
“응.”
조윤은 설핏 미간을 좁혔다. 그녀가 여기에 와 있었나? 동명이인은 아니었다. 세상에 같은 이름을 가지고 그렇게 의술이 뛰어난 여자가 또 있을 리가 없었다. 서역도호부에서 만났던 방소교가 분명했다.
“그녀는 어디에 있어?”
“떠났어.”
“내가 얼마나 정신을 잃고 있었지?”
“사흘.”
“그럼 사흘 전에 떠났겠군.”
조윤의 말대로 방소교는 치료를 끝낸 그날 바로 떠났다. 옥승진인이 뒤늦게 그녀를 찾았지만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너를 치료한 건 고마운 일인데 자소단을 가지고 갔어.”
“자소단?”
“응. 너를 치료하는 데 필요하다고 해서 옥승진인이 줬는데, 그냥 가져간 것 같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처음부터 이야기해줘.”
낙소문은 조윤이 정신을 잃은 후의 일을 간략히 이야기를 했다. 그걸 가만히 듣고 있던 조윤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다. 흑마장의 독기는 치료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을 놓고 여유를 부린 것이 실수였다.
그 때문에 옥승진인에게 폐를 끼쳤다. 자소단은 무당파의 지산지보였다. 그런 걸 자신을 위해 내주다니 고마운 생각보다도 미안한 마음이 더 앞섰다.
“사 대협과 방 대협은?”
“처소에서 머물고 있어.”
“내가 사부님의 제자라는 것을 다 알았겠네.”
“조금 화가 난 것 같았는데 별말은 안 했어.”
그랬을 거다. 아파서 정신이 없는 사람에게 어떻게 화를 낼까?
나중에 가서 이야기 안 한 것을 사과해야 할 것 같았다.
“어깨는 어때? 움직일 수 있겠어?”
“독기는 전부 빠졌는데 어떤지는 모르겠어. 조금 더 지나봐야지.”
“잠시 누워있어. 먹을 걸 좀 가져올게.”
“응.”
낙소문이 방을 나가자 조윤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내공을 끌어올려 어깨로 보내봤다. 흐름이 조금 늦어지기는 했으나 막히지는 않았다.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어깨를 쓸 수가 있었다.
조윤은 크게 안도하며 임맥과 독맥을 따라 천천히 기운을 돌렸다. 그러자 고통이 한층 줄어들며 편안해졌다. 잠시 후 낙소문이 돌아왔다. 혼자가 아니라 옥승진인과 함께였다.
“깨어났느냐?”
“상태가 좋지 않아 누워서 인사드립니다.”
“괜찮다.”
옥승진인이 그렇게 말하면서 옆에 앉았다. 낙소문은 가지고 온 탕을 후후 불면서 조윤에게 떠먹였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던 옥승진인이 불쑥 입을 열었다.
“몸은 좀 어떠냐?”
“견딜 만합니다.”
“금공과 싸웠다던데.”
“네.”
“이야기는 들었다만 자초지종이 궁금하구나.”
낙소문은 조윤과 금공이 싸우는 중간에 빠져나왔다. 그래서 이후의 일은 알지 못했다. 옥승진인에게 이야기를 한 것도 거기까지였다.
조윤은 차분하게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당예상이 걱정되었다. 금가장에 갔을 때는 워낙에 경황이 없어서 그녀를 만날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권왕 맹추삼을 만났다고?”
“네. 수중뇌옥에 십 년 동안 갇혀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곳을 빠져나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그분을 사부님으로 모셨습니다. 죄송합니다. 사부님.”
“아니다. 아니야. 허, 그가 살아있었단 말인가?”
맹추삼과는 아주 예전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마교와 싸웠었다. 서로 나이도 비슷했고 무공도 강해서 친구이며 경쟁자였다. 한데 어느 날 갑자기 맹추삼의 종적이 묘연해졌다. 몇 번이나 찾아봤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잊혀졌다. 그런데 이렇게 소식을 들을 줄은 몰랐다. 십 년을 수중뇌옥에 갇혀 있었다니, 그 고초가 얼마나 심했을까?
심히 안타까웠다. 그래서 조윤이 고마웠다. 오랜 친우의 소식을 전해주고 구해주기까지 했다.
옥승진인은 자신이 제자 하나는 정말 잘 뒀다는 생각이 들었다.
“맹추삼 그 사람과 나는 한때 막역지우였다. 갑자기 사라져서 이상하게 여겼었는데, 그런 일을 겪고 있었구나.”
“맹 사부님에게 파열신권을 전부 전수받아서 그곳을 빠져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파열신권을 벌써 배웠단 말이냐?”
“네. 감옥에서 다 배웠습니다.”
“성취는 얼마나 되느냐?”
“배운 시간이 워낙에 짧아 정확하지는 않지만 팔성 정도는 이룬 것 같습니다.”
“뭐라? 팔성을 이뤘다고?”
조윤의 말을 듣고 옥승진인은 적지 않게 놀랐다. 파열신권은 무림의 절기 중의 하나였다. 맹추삼은 파열신권 하나로 권왕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한데 겨우 며칠 만에 팔성까지 성취를 이뤘다고 한다.
옥승진인은 새삼 조윤의 재능이 놀랍게 느껴졌다. 뛰어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느냐?”
조윤은 이후의 일도 전부 이야기를 했다. 그걸 담담히 듣고 있던 옥승진인은 금공과 싸워서 이겼다는 말을 듣고 또 한 번 놀랐다.
“그러니까 네가 그를 이긴 것이냐?”
“온전히 이긴 것은 아닙니다.”
“금공이 스스로 패배를 시인했다고 하지 않았느냐?”
“네. 하지만 계속 싸웠다면 제가 졌을 겁니다. 흑마장의 독기를 억누를 수가 없었을 테니까요.”
“그렇다 해도 대단하구나. 대단해.”
옥승진인은 진심을 담아 이야기했다. 조윤의 나이 이제 약관이었다. 한데 마교의 장로 중 한 명인 금공을 상대로 이겼다. 비록 어깨를 다쳤다지만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약관의 나이에 금공을 이길 수 있는 후기지수가 누가 있을까?
옥승진인이 알기로는 없었다. 조윤이 유일했다. 그렇기에 진정 감탄을 한 것이다.
하긴, 파열신권을 며칠 만에 팔성을 이룰 정도의 재능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사부님.”
“왜 그러느냐?”
“맹 사부님이 말하기를 무당파는 마교와 싸우지 않을 거라 했습니다. 정말 그러합니까?”
“음…… 그건 아직 알 수가 없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금가장에는 무당파와 맞서기 위한 마교도들이 많이 모여 있었습니다. 무당파도 그들과 싸우기 위해 명문정파의 무인들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 하지만 그들과 싸우면 많은 사람들이 죽을 게다. 그들도 그걸 알고 있지.”
“그럼 맹 사부님 말대로 서로 위협만 하고 끝나겠군요.”
“말했듯이 그건 알 수 없다. 작은 불씨 하나가 크게 번지는 경우가 있으니까. 예전에도 그랬었다. 그 때문에 마교와 무림의 명문정파가 부딪쳤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들은 그때의 일을 잊지 않고 있다. 우리도 그렇고.”
맹추삼이 수중뇌옥에 있을 때 했던 이야기였다. 그때는 건성으로 들어서 와 닿는 것이 없었는데, 이제는 이해가 되었다. 한마디로 서로 목숨을 걸고 싸울 명분도 이득도 없었다. 그러니 적당히 위협만 하다가 끝내는 것이 서로에게 좋았다.
* * *
며칠 동안 조윤은 몸을 회복하는 것만 신경 썼다. 그사이에 무경을 비롯한 무당칠성이 왔다 갔고, 장문인인 심허진인도 병문안을 왔다.
그는 옥승진인에게 조윤이 금공을 이겼다는 것을 듣고 크게 기뻐했다. 혹여 마교와 싸우게 되면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기선을 꺾을 수가 있었다.
“장문사형께 부탁이 있습니다.”
“뭔가?”
“금가장에 당예상이라는 의원이 있을 겁니다. 그녀를 이곳으로 데리고 올 방법이 있을까요?”
“너와는 무슨 관계냐?”
“당문에서부터 함께 있었던 누이입니다.”
“흠, 알았다. 한 번 알아보마.”
“부탁드립니다.”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심허진인은 사흘 만에 소식을 가지고 왔다.
“흥산현에서 조금 떨어진 마을에 당씨 성을 가진 여인이 머물고 있다는구나. 인근 사람들에게 의술을 베풀고 있다 하니 아마 네가 찾는 여인이 맞을 게다.”
“고맙습니다. 장문사형.”
“그녀를 데려올 거라면 서찰을 적어주어라. 그럼 사람을 보내마.”
심허진인의 말을 듣고 조윤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금가장에 갔을 때 만나서 데리고 왔어야 했었다. 한데 그러지 못했다. 사람을 보내는 것보다는 직접 가서 데리고 오고 싶었다.
“아닙니다. 제가 직접 가는 게 좋겠습니다.”
“아직 상처가 다 낫지 않았잖느냐?”
“움직일 정도는 됩니다.”
“오른팔은 어떠냐?”
“아예 못 쓸 정도는 아닙니다. 조금은 움직일 수 있습니다. 소문하고 함께 갈 생각입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음…….”
심허진인은 조윤을 이대로 보내려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무공이 대단해서 마교의 장로인 금공을 이겼다지만 그의 눈에는 그저 약관의 어린 사제로만 보였다.
“심보 사제와 함께 가거라.”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내가 괜찮지 않다. 사백께서도 그래야 걱정을 안 하실 게다.”
사실 생각 같아서는 무경을 함께 보내고 싶었다. 그러나 무경은 요즘 무당파에 찾아온 후기지수들을 상대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다른 무당칠성의 일원들도 바쁘기는 마찬가지였으나 그나마 심보가 가장 한가했기에 그를 보내려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언제 출발할 생각이냐?”
“이틀 내로 준비를 하고 떠나겠습니다.”
“혹여 모르니 조심하고.”
“네. 아, 맞다. 잠시 상의드릴 일이 있습니다.”
“나한테 말이냐?”
“네.”
“말해보아라.”
심허진인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는 조윤의 모든 점이 마냥 좋게만 보였다. 자신의 제자로 삼지 못한 것이 아쉬웠으나 사제가 된 것만도 어딘가?
이번에 금공을 이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역시 자신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조윤은 앞으로 무궁무진한 발전 가능성이 있었다. 그럼 천하에 이름을 크게 떨칠 테고, 당연히 무당파의 이름도 함께 올라간다.
“금가장에서 이리로 오면서 역병이 도는 걸 봤습니다.”
“역병이라고?”
“네.”
심허진인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역병은 재앙과 같았다. 무공이 아무리 강해도 피해갈 수가 없었다.
“어느 정도더냐?”
“심각했습니다. 마을 두 개를 이미 휩쓸었습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전부 죽어있었습니다. 문제는 거기서 살던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병을 옮기고 있다는 겁니다. 방현의 객잔에서 발병한 사람을 봤습니다.”
“방현에서?”
방현은 무당파가 있는 균현과 가까웠다. 그렇다는 건 이곳도 안전하지 않다는 뜻이었다.
“현감을 만나 이야기를 했지만 심각성을 모릅니다.”
“그보다는 자신의 관할에서 역병이 돈다는 사실이 두려운 걸게다. 그 사실이 알려지면 관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심한 경우 목이 날아갈 수도 있다.”
“지금 돌고 있는 역병은 호열자입니다. 곧 일파만파로 퍼질 겁니다. 대비를 해야 합니다.”
“음…….”
때가 좋지 않았다. 지금 무당파에는 호북 각지에서 몰려든 무인들이 잔뜩 와 있었다. 그들에게 역병이 돈다는 사실을 알리면 큰 혼란이 생긴다. 그 틈을 노려 마교가 치고 들어올 수도 있었다.
“지금 무당파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이럴 때 누구 한 사람이 병에 걸리면 전염되는 건 순식간입니다.”
“그렇다 해도 선뜻 결정을 내릴 수가 없구나. 지금 사람들이 흩어지면 마교가 기회라고 여겨 공격을 할 것이다. 그럼 무당파는 끝이다.”
“그들 역시 역병에는 안전하지 않습니다.”
“일단 사람들과 의논을 해 보겠다. 그동안 너는 쉬고 있어라. 그 소저를 데려오면서 역병이 어느 정도까지 돌고 있는지 좀 더 자세하게 알아오고. 그런 후에 다시 이야기를 하자꾸나.”
“네.”
심허진인이 방을 나가자 조윤은 곧바로 낙소문에게 갔다. 그리고 당예상을 데려오기 위해 흥산현으로 함께 가자고 했다.
낙소문은 흔쾌히 승낙했다. 하지만 심보와 함께 간다고 하니까 내켜하지 않았다. 늘 무표정해서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조윤은 감으로 알 수가 있었다.
“이번에 가면서 역병에 대한 조사도 해야 해. 그래서 함께 가는 거야.”
“알았어. 팔은 좀 어때?”
“손가락은 조금 움직일 수 있어. 예전처럼 움직이려면 시간이 걸릴 거야.”
“다행이야.”
낙소문이 그렇게 말하면서 조윤을 안았다.
조윤은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약간 당황했으나 곧 팔을 둘러 마주 안았다. 순간 코로 확 흡입되는 낙소문의 체향이 조윤의 피를 끓게 했으나 꾹 눌러 참았다. 조윤은 팔이 나을 때까지는 무리하면 안 된다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스스로를 납득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