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비서 187화
무료소설 신의비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6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의비서 187화
제5장 편중옥 (1)
당문에 도착한 조윤은 바쁘게 시간을 보냈다. 단목세가를 재건하려니 할 일이 보통 많은 것이 아니었다. 여러 사람들이 돕고는 있었으나 최종적인 결정은 전적으로 조윤의 몫이었다. 이에 하나에서 열까지 일일이 확인을 하고 지시를 내려야 했다.
오늘도 조윤은 공소가 봐둔 장원에 와 있었다. 조윤이 아미파에 갔다 오는 동안 공소는 덕양(德陽)현에 단목세가를 재건할 장원을 몇 군데 봐두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다.
“장원이 크기는 한데 구조가 좋지 않은 것 같아요.”
“제가 보기에도 그렇기는 한데 몇 군데만 좀 손을 보면 되지 않겠습니까?”
공소의 말에 조윤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하자면 못할 것도 없었지만 그럴 만큼 마음에 들지가 않았다. 장원의 구조뿐만이 아니라 지리적으로도 좋지 않았다.
“다른 곳을 보지요.”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장원을 나와 다른 곳으로 가고 있을 때였다. 멀리서 이화가 조윤을 부르며 다가왔다.
“조윤!”
“어? 무슨 일이야? 여기까지.”
어차피 오후가 되면 당문으로 돌아간다. 한데도 이화가 여기까지 왔다는 건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었다.
“다 둘러봤어?”
“아니. 몇 군데 더 봐야 할 것 같아.”
“그럼 아직 결정한 건 아니네.”
“응.”
“다행이다. 일단 돌아가자. 어머님이 찾으셔.”
“무슨 일인데?”
“너를 찾기에 장원을 보러 갔다고 하니까 급히 불러오라고 하시더라.”
“흐음.”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조윤은 곧장 당문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기다리고 있던 당이주가 반기며 자리를 권했다.
“앉거라.”
“네.”
“단목세가를 재건할 장원을 보러 다닌다고 들었다.”
“네. 덕양현에 알아보고 있어요.”
“좋지 않구나.”
“이유가 있습니까?”
“북천현으로 가면 될 것을 왜 굳이 다른 장소를 알아보려는 게냐?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요.”
조윤이 시선을 피하면서 말하자 당이주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짐작 가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 나 때문인 거냐?”
“아니요. 꼭 그렇지는 않아요.”
“단목세가는 대대로 북천현에 자리했었다. 세가가 무너졌으나 예전에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은 여전히 그곳에 있다. 세가를 재건하면 그들이 도움을 줄게다. 하니 당문의 도움이 있다고는 하나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시작하는 것보다는 그리로 가는 것이 훨씬 나을 게다.”
“그렇기는 하지만 어디에서든 잘해 나갈 자신이 있어요.”
조윤이 여전히 다른 곳으로 갈 의사를 보이자 당이주가 가만히 다가와 어깨를 잡았다.
“조윤아.”
“네. 어머니.”
“솔직히 말하마. 나는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구나. 물론 그곳에 가면 나쁜 일들이 생각나겠지만 좋은 추억도 많단다. 이 어미의 욕심인 게냐?”
애잔하니 말하는 당이주를 보면서 조윤은 자신이 뭐를 간과하고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부정적으로 보자면 그곳은 단목태성을 비롯한 많은 이들의 죽음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긍정적으로는 그들과 함께했던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렇잖아도 당이주는 옛일을 추억하거나 조윤을 보는 낙으로만 살고 있었다. 단목세가는 그런 당이주에게 아픈 기억보다는 즐거운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생각이 짧았음이다.
“괜찮으시겠어요?”
당이주는 잔잔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너와 함께 그곳에서 다시 살고 싶구나.”
“죄송해요, 어머니. 제 생각이 짧았어요. 그럼 그리로 갈게요.”
“잘 생각했다. 이 어미가 괜한 말을 하는 것 같아 약간 걱정을 했었단다.”
“아니에요. 어머니가 무슨 말을 하시든 저는 항상 마음에 새길 겁니다.”
“그래. 착하구나.”
방을 나온 조윤은 공소를 불러 북천현으로 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자 의외로 공소 역시 흔쾌히 동의를 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사실 저도 그리로 가고 싶었으나 가주님이 처음으로 결정을 내린 일이라 차마 말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랬었군요.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하하. 어쨌든 다행입니다. 하면 완전히 결정을 하신 겁니까?”
“네. 그래서 지금 북천현으로 가볼 생각입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아닙니다. 혼자 갔다 오겠습니다. 새로운 장소를 보는 것이 아니니 혼작 가도 됩니다. 대신에 예상 누이의 일을 좀 도와주십시오.”
당예상은 단목세가가 재건되면 들여놓을 약재를 알아보러 다니고 있었다. 그 때문에 약재상들을 전부 돌아다니는 한편 약초꾼들까지 만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부탁합니다.”
이야기를 마친 조윤은 마구간으로 가서 말을 한 필 끌고 나왔다. 그리고 당문을 떠나 북천현으로 향했다. 급히 갈 이유가 없어 느긋하게 이동했더니 생각보다 이틀이나 늦게 도착했다.
* * *
단목세가의 정문 앞에 도착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편액은 보이지 않았고 문은 망가져 있었다. 안은 더 엉망이었다.
불에 타거나 무너진 건물이 몇 채나 되었다. 또한 그동안 관리를 하지 않아 수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그렇게 주위를 둘러보고 있으니 어렸을 때 지냈던 일이 생생하니 떠올랐다. 그때는 이곳이 얼마나 낯설고 무서웠던가?
한데 지금은 이리 여유를 가지고 다시 돌아왔다. 그것도 가주가 되어서 말이다.
조윤은 조금 더 둘러보다가 연못의 바위에 걸터앉았다. 세월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낯선 세계에 와서 적응하며 살아온 시간이 무려 팔 년이다. 이제 이 년만 더 있으면 십 년이다.
맑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이 물결치듯이 흘러가고 있었다. 한낮의 여유로움을 만끽하던 조윤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해가 지기 전에 머물 곳을 찾아야 했다.
말을 끌고 거리로 나가자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을 지나쳐 가까이 보이는 객잔으로 가니 어느새 주위가 어두워지고 있었다.
점소이에게 말을 건네고 객잔 안으로 들어갔다. 손님이 많지 않아 한적했다.
“어서 오십시오.”
인상이 좋은 뚱뚱한 체구의 주인이 반겼다.
“하루 묵을 겁니다.”
“마침 방이 있습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주인이 그렇게 말하면서 방으로 안내했다. 계단을 올라 이 층으로 올라가니 복도 양쪽으로 방이 여러 개 있었다. 주인은 그중 좌측에 있는 방으로 갔다.
“이곳입니다.”
방은 그리 크지 않았으나 관리가 잘되어 있어 깔끔했다. 이에 조윤은 바로 결정을 했다.
“좋군요. 얼마죠?”
“스무 냥입니다. 식사나 술은 따로 계산하셔야 합니다.”
조윤은 품에서 돈을 꺼내서 건넸다. 방으로 들어가 창문을 여니 후원의 별채가 보였다. 불이 켜져 있는 것으로 봐서 누군가 묵고 있는 것 같았다.
저녁을 간단히 먹고 일찍 잠을 자기 위해 자리에 누웠다. 그렇게 잠이 들려는데 지붕에서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기척이 느껴졌다. 방향이 후원의 별채 쪽이었다.
모른 척하고 싶었으나 궁금증이 일었다. 조윤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살짝 열고 밖을 살폈다.
찰나에 그림자 하나가 빠르게 지나쳐 갔다. 지붕에 있던 사람이 후원으로 뛰어내린 것이다. 한데도 발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 경공술이 굉장히 뛰어났다.
그런 것으로 봐서 암살자나 밤손님 같았다. 조윤은 잠시 망설이다가 창문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그리고 빠르게 별채로 다가가 근처에 있는 나무 위로 올라갔다.
“오셨군요.”
젊은 여인의 목소리가 별채에서 들려왔다. 암살자나 도둑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아는 사람이었나 보다.
“보고 싶었소, 연.”
“나도 보고 싶었어요.”
두 사람의 목소리에는 애절함이 담겨 있었다. 나무 위에 몸을 숨기고 있어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으나 조윤은 두 사람의 대화를 똑똑히 들을 수가 있었다.
‘연인이로군.’
조윤은 괜히 왔다는 생각에 방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때 갑옷을 입은 건장한 체구의 사내 두 명이 빠르게 별채로 다가왔다. 다급한 걸음걸이로 봐서 방금 들어간 사내를 잡으려는 것 같았다.
잠시 생각하던 조윤은 나뭇잎을 하나 따서 창문으로 날렸다. 그러자 나뭇잎이 창문을 뚫고 들어가 탁자에 있던 찻잔을 깼다.
챙!
“헉!”
화들짝 놀란 사내가 여인을 봤다. 그러자 여인이 고개를 저었다. 그녀 역시 갑자기 왜 찻잔이 깨졌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내는 찻잔을 살피다가 탁자에 박힌 나뭇잎을 발견하고는 기겁을 했다.
‘고수다!’
나뭇잎을 날려 탁자에 박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는지를 생각하던 사내는 곧 왜 그랬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다 뭔가 짚이는 것이 있어 창문을 열어 밖을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갑옷을 입은 사내 두 명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무장들이 오고 있소. 가봐야겠소.”
“어서 가세요.”
“나중에 다시 오리다.”
사내가 창문으로 튀어나가자마자 방문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 갑옷을 입은 사내 두 명이 방으로 들어와 혹여 사람이 있지 않나 살폈다.
“무슨 일이죠?”
“이곳에 있던 자를 찾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숨기려고 하지 마십시오. 이미 알고 왔습니다.”
“그럼 직접 찾아보세요. 보다시피 여기에는 아무도 없어요.”
여인의 말에도 두 명의 사내들은 아랑곳하지 안고 방을 둘러봤다. 그러나 이미 빠져나간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이미 도망갔군.”
“밖이다.”
두 사람이 빠르게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낯선 사내가 세 명의 무장과 대치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바로 조윤이었다.
* * *
조윤은 별채에 있던 사내가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나무에서 내려왔는데 하필 그때 세 명의 무장이 이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누구냐?”
조윤은 한순간이나마 방심했던 것을 후회했다. 계속 숨어있거나 아니면 좀 더 주위를 살핀 후에 이동했었어야 했다. 별채에 있던 사내를 잡으러 간 무장들에게 일행이 더 있을 거란 걸 생각지 못했다.
“그러는 당신들은 누구요?”
조윤은 침착하게 되물었다. 그러자 무장들이 살짝 인상을 쓰면서 다가왔다. 혹여 조윤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제야 잡았구나. 편중옥.”
“나는 편중옥이 아니오.”
“흥! 잡아떼도 소용없다. 순순히 잡혀라. 하면 목숨은 부지할 수가 있을 것이다.”
“사람을 잘못 봤소.”
조윤이 아니라고 했지만 저들은 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때 별채에서 두 명의 무장이 나왔다.
“잡았군.”
“때마침 빠져나가려고 하더군.”
다섯 명의 무장이 검을 빼들었다. 무림인들은 보통 한손검을 쓴다. 특히 명문정파의 제자들은 검신의 폭이 두촌 정도 되는 얇은 검을 선호한다.
한데 저들의 검은 전부 양손검이었다. 그만큼 길고 폭이 넓었다. 더구나 경갑이지만 갑옷을 입고 있었다. 무림인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혹시 황궁 사람들이오?”
“끝까지 모르는 척하는군.”
“일단 잡는다.”
무장들은 더 이상 대화를 나눌 의사가 없어 보였다. 이에 조윤도 검을 뽑았다.
다섯 명의 무장들이 포위를 조금씩 좁혀왔다. 조윤은 침착하게 검을 늘어트리고 그들이 좀 더 가까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찰나에 중앙에 있던 무장이 크게 검을 휘둘러왔다. 동작이 커서 검의 움직임이 훤히 보였으나 기세가 굉장했다.
조윤은 옆으로 한 발자국을 이동했다. 그러자 검이 코앞을 지나쳐갔다. 동시에 좌우측에 있던 무장들이 덤벼들었다.
후웅!
칼바람이 이는 소리가 아찔했다. 아마 무공이 약했다면 그러한 강맹한 기세에 어느 정도는 겁을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조윤은 그들의 공격 역시 가볍게 피했다. 세 명의 무장이 치고 빠지면서 검을 휘둘렀다. 앞에서 공격하고 빠지면 그 틈을 옆에서 메운다. 옆에서 오는 공격을 피하면 반대쪽에서 공격이 들어왔다.
그들은 마치 한 사람이 여러 곳에서 공격을 하는 것처럼 합격에 능했다.
“제법이군.”
지켜보고 있던 두 명의 무장 중 한 명이 합세했다. 그러자 합격진의 위력이 더 강해졌다. 강맹한 기세가 아까보다 더 조윤을 압박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