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4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654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4화
“후우우우.”
장천운은 집에 들어와서야 겨우 숨을 크게 내쉬었다.
집으로 오는 길도 똑바로 오지 않고 빙 돌았다. 한참을 돌아서 서너 번이나 뒤를 확인하고 집으로 향했다.
다행히 수상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어린놈이 왜 세상 다 산 늙은이처럼 한숨을 쉬는 게냐?”
무 노인이 주름 가득한 눈꺼풀 사이로 장천운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럴 일이 있어요. 할아버지는 모르셔도 돼요.”
평상시라면 무 노인도 더 묻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본래 말이 거의 없기도 했고, 세상사에 아무런 관심도 없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고집 센 어린놈과 말다툼하는 것도 즐기지 않았고.
무 노인(無 老人).
정말 그 이름과 어울렸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거냐?”
“모르셔도 된다니까요.”
“말해 봐. 혹시 이 늙은이가 아는 일일지도 모르니까.”
“아, 정말! 안 그래도 지금 마음이 뒤죽박죽인데 할아버지까지 왜 그러세요?”
“꼭 귀신이라도 만난 놈처럼 보여서 그런다.”
짜증을 내던 장천운은 그 말에 멈칫했다.
“제가 정말 그렇게 보여요?”
“사람은 굳이 말로 안 해도 감정이 드러나는 법이지. 네놈 눈에 다 쓰여 있어.”
장천운은 어깨를 으쓱하고 일단 탁자에 있는 주전자에서 물을 한 잔 따라 마셨다.
그러고는 투박한 의자에 털썩 앉아서 무 노인을 바라보았다.
“사람이 많이 죽었어요. 그러니 할아버지도 며칠 동안은 밖에 나가지 마세요.”
“사람이 죽어? 왜? 뒷골목 양아치들끼리 싸우기라도 한 거냐?”
“참나! 그렇게 말하면 저도 양아치라는 말이 되잖아요.”
“그럼 아니냐?”
“에이, 그래도 ‘흑도무사’ 뭐 그렇게 말해도 되잖아요.”
“그래봐야 그놈이 그놈이지.”
“듣기 싫으면 마세요!”
장천운이 빽 소리를 지르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무 노인이 고집을 굽혔다.
“알았다. 앞으로는 가려서 부르마. 다른 놈들은 양아치, 너는 흑도무사.”
“쳇. 하여간 노인네가 고집은…….”
“근데 양아치들이 왜 싸운 거냐, 흑도무사?”
무 노인의 괴상한 호칭에 장천운은 피식 실소를 지었다.
“정말 못 말린다니까.”
고개를 설레설레 저은 그는 나직한 목소리로 오늘 일을 말해주었다.
“양아치들끼리 싸운 게 아니에요.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죽은 거죠. 아마 어젯밤 늦게부터…….”
장천운의 이야기를 듣던 무 노인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번뜩였다.
‘혹시……?’
장천운은 무 노인의 눈빛 변화를 눈치 채지 못하고 말을 이었다.
“그런데 집으로 오다가 수상한 자를 만났어요. 진짜 독사 같은 눈빛을 지닌 자였는데…….”
장천운은 독사눈을 한 장한에 대해서 세세히 표현했다. 무 노인에게라도 이야기를 하면서 당시의 오싹했던 마음을 풀고 싶었다.
무 노인은 묵묵히 듣기만 했다. 기광이 번뜩였던 그의 눈빛은 깊게 가라앉아서 깊이를 알 수 없는 진흙구덩이 같았다.
“……후우, 정말 무서운 자였어요. 사람을 죽이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자 같았다니까요. 그래서 할아버지에게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한 거예요. 아셨죠?”
무 노인은 느릿하니 고개만 끄덕였다.
‘어쩐지 어젯밤 이상한 느낌이 든다 했더니…….’
그날 밤, 자시 무렵.
나무침상 위에서 인영 하나가 스르르 몸을 일으켰다.
무 노인이었다.
무 노인은 바로 옆 침상의 장천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코앞의 손가락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인데도 마치 모든 사물을 다 보는 것처럼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침상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무 노인은 장천운을 향해 두 손을 뻗었다.
어둠이 물결처럼 출렁거리는가 싶더니, 어둠보다 더 짙은 기이한 뭔가가 장심(掌心)에서 흘러나왔다.
그 기운은 곧 넓게 퍼지면서 장천운을 뒤덮었다.
무척 피곤한 듯 장천운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 줄도 모르고 코를 골았다.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는 것을 아쉬워하지 마라, 운아야. 아는 순간 너는 죽음의 문턱에 한발 디딘 셈이 되느니라. 그들은 네 의식 속의 모든 것을 빼낼 수 있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나로선 말해주고 싶어도 해줄 수가 없구나.’
하지만 장천운도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다.
그의 의식 저 너머에 무엇이 잠들어 있는지.
언젠가 그것의 봉인이 풀리는 날, 세상은 자신이 덧없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리라!
2장: 진짜 무 노인이야
“으아아아아악!”
장천운은 비명을 내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헉헉헉, 제기랄! 또 죽었군.”
오늘도 어제와 비슷하게 엄청난 격전을 벌였다.
어제보다는 조금 더 오래 버텼지만, 결국은 심장에 일장을 얻어맞고 절벽 밑으로 떨어졌다.
그래도 팔이 잘리거나 심장에 구멍은 나지 않아서 어제보다는 기분이 훨씬 나았다.
“지미, 다음에는 나 혼자 죽을 게 아니라, 한 놈 정도는 물귀신처럼 물고 늘어져야겠어.”
각오를 다지며 소매로 이마의 땀을 닦아내던 그는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당연히 침상 위에서 자고 있어야 할 무 노인이 보이지 않았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침부터 어딜 가신 거야? 할아버지! 밖에 계세요?”
무 노인을 불러보았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
‘혹시 밤에 밖으로 나간 거 아냐?’
후다닥 침상에서 내려온 그는 집을 박차고 나갔다.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어서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날씨였다.
한참 동안 돌아다니며 인근을 살펴봤지만 무 노인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뭐, 뭐야? 어딜 가신 거야?”
도대체 몸도 성치 않은 노인네가 어딜 가신 걸까? 지금까지 이런 적이 없었는데.
문득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장천운은 세차게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가서 무 노인의 침상 주위를 살펴보았다.
두 달 전에 사준 신발이 보이지 않았다.
신발이 떨어져서 발가락이 나온 걸 보고는 큰 맘 먹고 새 신발을 사주었다. 그랬더니 집근처만 오가는데 무슨 새 신발이 필요하냐며 헌신발만 신고 다니던 무 노인이었다.
그런데 헌 신발도, 새 신발도 없었다.
“서, 설마 떠난 것은 아니지? 그렇지? 할아버지, 진짜로 떠난 것은 아니지?”
다시 밖으로 나간 그는 손을 입에 대고 큰 소리로 불러보았다.
“할아버지! 어디 계세요! 할아버지이이이!”
좌우를 향해 불러보았지만, 바람소리만이 휭 하니 그의 곁을 스쳐갔다.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졌다.
털썩.
문 앞에 주저앉은 그는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그 동안 정말 귀찮았다.
밥해줘야지, 가끔 빨래도 해줘야지…….
대체 이게 무슨 짓인가 싶었다.
어쩌다 구해줘서 애물단지를 떠맡은 것인지, 매몰차게 대하지 못한 자신이 한심하기만 했다.
그런데 막상 사라졌다는 생각이 들자, 오래 전 아버지를 떠나보낼 때처럼 가슴이 먹먹해서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지미, 다시는 울지 않겠다고 맹세했는데…….’
눈물을 소매로 쓱쓱 닦아낸 그는 다시 고개를 무릎에 처박았다.
‘돌아오면 잘해줄 수도 있는데……. 바보같이 왜 가?’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온몸의 솜털이 곤두서는 섬뜩한 느낌이 다가오는가 싶더니 싸늘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제 그 꼬마군.”
장천운은 침을 꿀꺽 삼키고 천천히 고개를 쳐들었다.
독사 같은 눈을 가진 장한이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눈빛이 얼마나 싸늘한지 무 노인으로 인한 슬픔조차 잠시 잊을 정도였다.
“무, 무슨 일인가요?”
“이름 장천운. 맞지?”
가명을 댔는데 어느새 자신의 이름을 알아낸 것 같다.
“예, 맞는데요.”
“집이 강가에서 멀지 않군.”
“이 정도면 먼 편이죠. 저기 있는 집은 강 바로 옆에 있잖아요.”
강에서 장천운의 집까지는 이십여 장밖에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집이 없었다. 일대에서는 가장 강과 가까웠다.
“나는 말장난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봐도 그럴 것 같아. 아마 말보다 등 뒤의 칼을 많이 쓰겠지.’
장천운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일어났다. 일어나면서 작은 자갈을 손안에 쥐었는데, 보이지 않도록 뒤쪽으로 숨겼다.
그래도 한번 봐서 그런지 몰라도 어제보다는 덜 떨렸다.
“저를 왜 찾아오신 거죠?”
“어제부터 느꼈지만 간이 큰 놈이군. 제법이야.”
장한이 독사 같은 눈을 가늘게 좁히며 웃었다.
장천운이 지금까지 본 웃음 중 가장 섬뜩한 웃음이었다.
“남들이 그렇게 말하긴 하죠. 근데 어린 나이에 혼자 살려면 어쩔 수 없어요.”
“흑월루에 소속되어 있다더군.”
“소속이라기보다 잡일을 하고 밥을 얻어먹죠.”
“작년 여름, 저 강에서 노인 하나를 구해주지 않았느냐?”
“노인요? 구해드렸죠. 그런데 왜요? 노인을 구해드리면 안 되는 건가요?”
“그 노인에 대해서 말해봐라.”
장천운은 어깨를 으쓱하고 사실대로 말했다.
“그 노인의 성은 무씨예요. 빼빼하고 힘도 없어서 일도 못했어요. 그래서 제가 먹여 살렸죠.”
장한은 티끌 하나만큼의 거짓말만 있어도 잡아내겠다는 듯 눈 한 번 깜박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장천운에게서 아무 것도 찾아낼 수 없었다.
“노인의 성이 무씨라고?”
“예, 맞아요. 그 노인이 그랬거든요.”
“안에 없는 것 같던데, 어디 갔지?”
자신이 느끼기로 장한은 방금 도착했다. 그런데 집안에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눈치다.
그래서 더 두려운 자였다.
‘귀신같네, 정말.’
“어제 떠나셨어요. 그 동안 기억을 잃어버려서 집이 어딘지 모르신다고 그랬는데, 며칠 전부터 기억이 조금씩 돌아왔나 봐요.”
“거짓말이면 처참하게 죽을 거다. 그러니 사실대로 말해라.”
“저는 아저씨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어요.”
장한의 독사 같은 눈빛에 살기가 돌았다.
정말 뻔뻔한 놈이었다. 어제도 이름과 집의 위치를 거짓으로 알려주지 않았던가.
“네가 지금 나를 놀리겠다는 거냐?”
“저는 아저씨를 놀릴 이유가 없어요. 혹시 어제 제가 말해준 이름 때문에 그러신가요? 그렇다면 오해예요. 제 본래 이름은 장운이죠. 그런데 이름 가운데에 천자가 들어가면 멋있을 것 같아서 바꾼 것뿐이에요.”
너무나 태연한 장천운의 말에 장한도 헷갈렸다.
어지간한 고수도 자신과 눈빛이 마주치면 두려움을 느낀다. 게다가 자신의 눈을 속이고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자는 이 세상에 많지 않다.
하물며 열여섯 어린 아이가 자신의 눈을 속인다?
그거야말로 자신의 능력에 대한 모욕이었다.
어쨌든 앞에 있는 꼬마는 지금까지 사실을 말했든, 아니면 거짓말의 천재든 둘 중 하나였다.
“더 이상 대화는 필요 없겠군.”
대화를 한 것은 좀 더 편하고 빠르게 알아내려고 한 것뿐. 말로써 진실을 알아내는 것은 그 정도면 되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알고 있으면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기억을 최대한 되살려서 내가 알고자 하는 것을 말하도록 해라.”
고저 없는 싸늘한 목소리와 함께 장한의 몸이 바닥을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아갔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순식간에 줄어들자, 장한이 손가락을 구부려서 장천운을 향해 뻗었다.
그때 장천운이 피하려는 것처럼 몸을 뒤틀었다.
그 직후 홱 몸을 돌리면서 팔을 휘둘렀다.
장한은 장천운이 주먹을 휘두르는 거라 생각했다.
흑월루에서 똘마니 짓을 한다더니 주먹 좀 쓰는 모양이었다.
참으로 가소로운 짓이다.
일개 흑도의 꼬마가 자신에게 주먹을 휘두르다니.
바로 그 순간, 그는 뭔가가 날아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손을 들어 막았다.
팍!
오리알만 한 조약돌이 왼쪽 눈으로 날아오다가 그야말로 간발의 차이로 손바닥에 막혔다.
하지만 날아든 돌은 하나가 아니었다.
또 다른 돌 하나가 오른쪽 눈두덩에 정통으로 꽂혔다.
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