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3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628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3화
장천운은 부딪치는 순간 몸을 뒤로 빼서 땅바닥을 굴렀다.
그 덕에 부딪친 충격 자체는 크지 않았다. 상대가 보기에는 맥없이 나가떨어진 것처럼 보였겠지만.
“어이구! 죄송합니다, 나리.”
장천운은 땅바닥에 바싹 엎드려서 아파죽는 시늉을 했다.
그래야 상대가 자신을 우습게 볼 테니까.
“조심해서 다녀, 인마! 그러다 굶어죽기 전에 맞아죽으니까.”
“그만 가자고. 방주의 명령을 빨리 당주께 전해야지.”
“제기랄, 대체 무슨 일인데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데도 못 본 척하라는 거야?”
“난들 알아? 듣기로는 누굴 찾는 것 같다고 하던데…….”
“어떤 놈을 찾는데 이렇게 사람을 죽여? 우리 애들 말고도 사방에서 죽었다며?”
“조용히 해, 인마. 입 함부로 놀리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으니까.”
“조또. 겁나서 살겠나, 이거?”
두 사람은 투덜거리며 장천운에게서 멀어졌다.
장천운은 그들의 말을 듣고 몇 가지를 추측할 수 있었다.
-사람이 죽은 것은 흑월회와 단혈방만이 아니다.
-단혈방주는 범인을 알고 있고, 겁에 질려서 함구령을 내렸다.
-범인은 누군가를 찾고 있는데, 무진장 강하고 살벌한 놈들이다.
사실이 그렇다면 단혈방에 접근해봐야 중요한 정보는 얻지 못할 것 같다.
그들 역시 자신이 들은 것 이상은 알지 못할 테니까.
더 깊이 들어가 봐야 위험만 가중 될 뿐. 그러잖아도 불길한 예감 때문에 마음이 찝찝했던 장천운은 그쯤에서 돌아섰다.
그리고 고통스런 표정으로 발을 절룩거리며 그 자리를 벗어났다.
‘아무래도 이상해.’
***
추소철은 장천운의 보고를 듣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사실이냐?”
“예, 대주님.”
“정말 이상한 일이군. 사혈객이 누굴 겁내는 거지?”
사혈객(死血客)은 단혈방 방주의 별호다.
“귀룡문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맞아. 귀룡문이라면 굳이 함구령을 내릴 것까지는 없다고 봐야겠지.”
함구령은커녕 공을 세우기 위해서 자신들이 앞장섰을 것이다.
게다가 체면이 있지, 귀룡문이라면 소리 소문 없이 흑도의 건달들을 죽일 일도 없었다.
대놓고 죽여 버리지.
그들에게 흑도의 건달은 싹 쓸어버려도 괜찮은 존재에 불과했다.
“돌아가 있어라. 오늘 공을 세운 것에 대해서는 나중에 상을 내리마.”
“감사합니다.”
“아! 그보다 아예 내 밑으로 데려와야겠군. 나중에 명령이 떨어지면 즉시 달려와라.”
“옙!”
장천운이 속한 흑풍대 사조는 별 일이 없는 한 흑월루 뒤쪽의 구석진 곳에 있는 방에서 지냈다.
구대는 점심시간이 지나서 나타난 장천운을 보고 독사눈을 번들거렸다.
“추 대주가 일을 시켰다며?”
“예, 조장.”
“그럼 새끼야, 임무를 떠나기 전에 와서 말을 해야 할 것 아냐?”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발길질이 옆구리로 날아왔다.
장천운은 피할 수 있는데도 피하지 않았다.
퍽!
뒤로 주르륵 물러선 그는 아픈 듯 옆구리를 움켜쥐고 말했다.
“추 대주님이 워낙 급하게 내린 명령이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제가 조장에게 말하고 떠나려 했더니 추 대주님이 그냥 가라고 하지 뭡니까.”
구대는 눈자위만 씰룩거렸다. 추소철이 그렇게 말했다면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개자식. 오늘은 용케 빠져나갔다만, 제대로 걸리면 뼈 부러질 줄 알아라.’
장천운은 구대의 속마음을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그런데 조장, 회의 형제들이 많이 죽었다면서요? 이유가 뭐랍니까?”
“내가 어떻게 알아, 인마? 잔소리 말고 비상대기 해. 언제 명령이 떨어질지 모르니까, 개인 행동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조장.”
장천운은 슬쩍 고개를 숙이고는 한쪽으로 갔다.
그가 가는 곳에는 세 사람이 앉아 있었다. 빼빼 마른 자와 눈이 실처럼 가느다란 자는 장천운보다 두어 살 많아 보였고, 뚱뚱한 자는 스무 살쯤 될 것 같았다.
아홉 명의 조원 중 장천운과 가깝게 지내는 자들.
그들은 장천운이 다가가자 슬쩍 눈웃음을 지었다.
장천운도 한쪽 눈을 찡긋해보였다.
구대는 구역을 한 바퀴 돌아본다며 좌우에 졸개들을 거느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제야 세 사람이 장천운 옆으로 모여들었다.
몸이 빼빼한 자의 이름은 한명후, 눈이 가느다란 자는 이한, 뚱뚱한 자는 저두심이었다.
한명후와 이한은 장천운보다 세 살이 많았고, 저두심은 네 살이 많은 스무 살이었다. 그런데도 세 사람은 마치 장천운의 부하처럼 행동했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장천운이 구대에게 맞고 지내는 것은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걸. 정식으로 싸운다면 구대가 박살날 거라는 걸.
그들도 그랬으니까.
장천운은 어린 나이임에도 몸이 잘 발달되어 있었다.
게다가 동작은 그들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빨랐고, 주먹은 한방 맞으면 기절할 정도로 강력했다. 마치 체계적으로 무술을 수련한 사람처럼.
그리고 머리가 귀신 뺨칠 정도로 영리했다.
그들이 이제 겨우 열여섯 살짜리에게 귀호(鬼狐)라는 별명을 붙여줄 정도로.
“귀신은 뭐하나 몰라? 구대 자식이나 잡아가지.”
한명후가 투덜댔다.
이한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동안 워낙 개만도 못한 짓을 많이 해서 잡아가도 그냥 잡아가지 않을 걸?”
“저 새끼, 언제 제대로 걸리면 확 목을 그어버리겠어.”
저두심은 손톱을 손질하던 손칼로 허공을 그었다. 송곳처럼 뾰족한 칼은 날 길이가 한 뼘도 되지 않았는데, 체구와 어울리지 않게 저두심의 무기였다.
하지만 장천운은 그들처럼 편안할 수가 없었다.
아직도 불길한 예감이 떨쳐지지 않고 있었다. 아니, 떨쳐지기는커녕 점점 더 짙어졌다.
큰 비가 오기 전 시커먼 먹구름이 서서히 몰려오는 것처럼.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형들도 조심해. 이상하다 싶으면 즉시 쥐구멍으로 숨어.”
눈치 빠른 이한이 먼저 정색했다.
“사람들 죽은 것 때문에 그러냐?”
“응. 우리만 죽은 게 아냐. 단혈방도 많이 죽었어. 혈수문 놈들도 열 명이 넘게 죽었고.”
“씨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아주 무서운 자들이 무창에 들어온 것 같아.”
“그놈들이 왜 사람을 개잡듯이 죽이는 거지?”
이번에는 한명후가 물었다.
장천운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나도 정확히는 모르는데, 누군가를 찾고 있는 것 같아.”
“그런데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여?”
“그래서 그들이 무섭다는 거야. 그들은 사람 죽이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있어. 목적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많은 사람을 죽여도 상관없다는 거지.”
“살 떨리는구만.”
“관은 우리 같은 흑도 사람 몇 죽는 것은 신경도 안 써. 그러니 자신의 목숨은 자신이 지키는 수밖에 없어.”
“그럼 나는 귀호 옆에만 딱 붙어 있어야지.”
저두심이 별 걱정 다한다는 듯 말했다.
“나도.”
“그게 제일 좋은 방법이지 뭐.”
한명후와 이한도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으로선 그것이 최선이었다.
***
장천운과 흑풍대 사조는 흑월루 내에서 대기하며 한나절을 보냈다.
다행히 그날은 더 이상 살인이 벌어지지 않았다. 명령도 떨어지지 않았고, 구대도 들어오지 않았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죽은 사람이 오십 명도 넘는다고 했는데, 범인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장천운은 석양이 질 무렵 세 사람과 함께 흑월루를 나섰다.
“귀호, 오늘 기분도 그렇고 해서 술 한 잔 하려는데, 너도 같이 갈래?”
한명후가 은근슬쩍 장천운을 꼬셨다.
장천운은 고개를 저었다.
“형들도 오늘은 그냥 들어가. 밤에 나다니지 말고.”
“오늘 밤 또 살인이 일어날 것 같아?”
이한이 넌지시 물었다.
장천운이 미미하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만약 그들이 찾으려는 사람을 찾지 못했다면 어제보다 더할지도 몰라.”
저두심은 순순히 그의 말에 따랐다.
“그래, 오늘은 귀호 말대로 그냥 들어가자. 술을 마셔도 어디 목구멍으로 넘어가겠어?”
한명후와 이한도 장천운의 판단을 무시할 배짱이 없었다.
지금까지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가 혼난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더구나 이번에는 여차하면 목숨이 달아날 판이었다.
세 사람과 헤어진 장천운은 집으로 향했다.
홍구로를 벗어난 그가 향이네 집이 보이는 나무다리에 올라섰을 때였다.
나무다리 건너편에 한 사람이 서있는 게 보였다.
그자는 짙은 갈색 경장을 입고 머리에는 대나무로 만든 챙을 쓰고 있었다.
나이는 삼십대 중반 쯤?
바짝 마른 얼굴에 광대뼈가 툭 튀어나와서 날카롭게 뻗은 눈매가 더 싸늘하게 느껴지는 자였는데, 등에 한 자루 칼을 메고 있었다.
장천운은 그를 본 순간 어깨를 늘어뜨리고 힘이 쭉 빠진 자세로 걸음을 옮겼다.
그 직후 그자도 고개를 돌리더니 장천운을 주시했다.
장천운은 갑자기 살이 떨렸다. 살짝 말아 쥔 손 안에 땀이 차는 듯했다.
그는 자신이 긴장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 다리 밑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왜 이렇게 비가 안 오는 거야? 이러다 물이 다 말라버리겠네.”
그런 한편으로는 털레털레 걸으며 최대한 그자를 신경 쓰지 않고 다리를 건넜다.
“여기 사느냐?”
장천운이 다리를 다 건넜을 때 그가 물었다.
장천운은 풀어진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손을 들어서 먼 곳을 가리켰다.
“아뇨. 저 위에 삽니다.”
순간적으로 독사 같은 눈빛이 장천운의 몸을 훑었다.
독사 앞의 개구리가 이런 심정일까?
장천운은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살모사가 자신의 몸을 칭칭 감은 채 눈앞에서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듯했다.
그나마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어이없게도 꿈 때문이었다.
그는 꿈속에서 무시무시한 눈빛을 많이 접해보았다. 어제는 훨씬 더 무서운 눈빛을 가진 자들도 만나보았고.
다만 꿈과 현실은 그 느낌이 달라서 감각이 더 예민하게 반응했다.
“저 앞의 강가 위쪽 말이냐?”
“강가와는 많이 떨어진 곳이죠.”
아니다. 거짓말이다. 그의 집은 강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반사적으로 거짓말이 튀어나왔다. 왠지 몰라도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독사눈의 장한은 장천운을 지그시 바라보고는 시선을 돌렸다.
장천운은 머리를 긁적이며 장한의 옆을 지나갔다.
“잠깐.”
장천운은 불에 덴 것처럼 흠칫했다.
“왜 그러십니까?”
“몇 살이지?”
“열여섯 살입니다.”
“이름이 뭐냐?”
“장운입니다.”
가명을 댔다. 그 역시 순간적으로 생각나서 그리한 것이다.
장한은 더 이상 묻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장천운도 다시 걸음을 옮겼다.
발바닥에 쇳덩이가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골목으로 꺾어지는 데까지 십여 장에 불과했는데, 마치 십리는 되는 듯했다.
그는 골목으로 꺾어진 후에도 똑같은 걸음걸이로 걸었다. 그렇게 이십여 보를 걸었을 때 뒤통수가 싸늘하게 느껴졌다.
‘그놈이다!’
볼 수는 없었다. 그저 육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을 뿐.
그런데 정말로 독사눈의 장한은 골목까지 따라와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 느낌은 십여 보를 걷는 사이 사라졌다.
장천운은 다시 골목을 꺾어진 후에야 걸음을 빨리했다.
‘시 사람들을 죽인 놈들 중 하나가 아닐까?
그렇다면 자신의 예감대로 아직 살인은 끝난 것이 아니다.
아무래도 길고 긴 밤이 될 것 같다.
‘지미, 왜 저런 놈들이 설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