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1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9,198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1화
무적호위(無敵護衛)
장담 作
序
여덟 살이 되던 생일날 아버지에게 물었다.
“왜 아버지는 삼류무사가 된 거예요?”
“야, 이놈아. 난들 삼류무사가 되고 싶어서 된 줄 아냐?”
“그럼 머리 안 돌아가고 체격이 남보다 못해서 삼류무사가 된 거예요?”
“이 자식이! 이 아버지의 머리도 똑똑해, 인마. 체격도 이만하면 준수한 편이고.”
“그런데 왜 계속 삼류무사죠? 함께 검화문에 들어간 석이네 아버지는 실력이 늘어서 조장이 되었다고 하던데.”
“그, 그거야 무공 익히는 걸 귀찮아하다 보니까…….”
“아하, 게을러서 무공을 제대로 익히지 않은 거군요.”
“험. 그래도 인마,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진 않아.”
“저는 아버지가 무시당하는 게 싫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허리를 굽실거리는 것도 싫고, 그저께처럼 맞는 것은 더 싫어요.”
“어? 그걸 봤냐?”
“예, 아버지. 이제 아버지도 열심히 수련해서 강해지세요. 조장이라도 되면 맞지 않을 거 아니에요?”
“음, 좋다! 우리 아들이 원한다면 그렇게 해야지. 이래 봬도 한때는 십 년에 하나 나올까말까 한 기재라고 칭찬이 자자했던 아버지니라. 조금만 부지런떨면 금방 실력이 늘 거다. 음하하하.”
아버지는 그날 이후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 덕분에 일 년 후에는 정말로 조장급인 소문주의 호위무사가 되었다.
나는 무척 기뻤다.
친구들에게 아버지가 검화문 소문주의 호위무사가 되었다고 자랑했다.
그런데 열 살이 되는 생일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어느 날, 아버지가 소문주를 호위하고 싸움터에 나가셨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으셨다.
함께 소문주를 호위했던 왕 아저씨의 말에 의하면, 소문주를 지키기 위해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검에 당했다고 했다.
아버지가 용감했다는 말은 나에게 아무런 위로도 되지 않았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무공을 발휘해서 적을 열 명이나 베었다는 말도.
나는 아버지에게 검화문의 조장이 되라고 한 말을 무척 후회했다.
차라리 삼류무사에 머물렀으면 돌아가시지 않았을 텐데. 아직도 나와 오손 도손 함께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나에게는 자랑스러운 아버지보다, 살아계신 아버지가 필요했다.
하지만 아무리 후회해도 아버지는 두 번 다시 내 곁으로 돌아오시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혼자서 살아야했다.
강가에서 죽어가던 무 노인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1장: 일 년 동안 이어진 꿈
안개 자욱한 절벽 위.
한 자루 삼 척 철검을 든 그는 이를 악문 채 광풍폭우와 같은 공격을 막아냈다.
인간의 능력을 벗어난 초절정고수 세 사람의 공격은 가공할 위력으로 그를 짓눌렀다.
화려한 금포를 입고, 이마에는 붉은 구슬이 박힌 금빛 건을 쓰고, 손에는 금색빛이 감도는 장검을 든 사십대 중반의 중년인.
하얀 수염이 가슴까지 늘어진 오십대 중후반의 나이에 쪽빛 청의를 입은, 세상을 달통한 것처럼 보이는 초로의 도사.
대나무처럼 빼빼 마른 몸에 완만하게 휘어진 칼을 들고, 보는 것만으로도 숨을 멈추게 만드는 살기를 전신에서 흘리고 있는 흑포노인.
믿기 힘들 정도로 강한 그들이 도검을 뻗고 장력을 떨칠 때마다 벼락이 광란하듯이 떨어졌다.
쩌저저적! 콰과과광!
집채만 한 바위와 단단한 고목이 진짜 벼락에 맞은 것처럼 쪼개지고 터져 나갔다.
절벽 위의 공터가 폐허로 변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대항했다.
하지만 그의 능력으로는 세 사람의 손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신의 경지를 코앞에 둔 고수들.
세상에 이토록 강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믿어지지 않았다.
‘씨발! 내가 왜 이런 인간 같지도 않은 자들과 싸워야 하는 거냐고오오!’
강렬한 분노에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싸우는 이유를 알 수가 없으니 더욱 더 답답했다.
자신은 저 세 사람을 모른다. 싸우기 전까지는 만난 적도, 본 적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왜 자신을 죽이려 하는 걸까?
원한?
생판 모르는데 원한은 무슨!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저들의 보물이라도 훔쳤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자신은 저들에게 공격 받을 이유가 없다.
그러니 미칠 일 아닌가!
남들이 들으면 어이없어 할 지 모르지만 사실이 그랬다.
그러나 지금은 불평불만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잠시 딴 생각을 하는 사이 세 사람은 더욱 더 강력하게 공격해 왔다. 어떻게 된 것이 저들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강해진다.
‘젠장! 정말 엿 같네!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 거야?’
얼마나 지났을까.
전력을 다해서 방어했음에도 금포중년인의 검에서 뻗어 나온 검강이 가슴을 관통했다.
“크헉!”
비명을 토하며 뒤로 주르륵 물러섰다.
그 순간, 흑포노인의 도강이 스치면서 팔 하나가 싹둑 잘려 나갔다.
뒤이어 청의인의 장력이 가슴에 적중했다.
쾅!
그의 몸이 붕 떠서 훌훌 날아갔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낭떠러지 쪽으로!
그리고 결국, 피를 철철 흘리는 몸뚱이가 지옥의 아가리처럼 입을 쩍 벌린 무저갱의 암흑 속으로 처박혔다.
“으아아아악!”
그의 입에서 공포에 질린 기다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아아아!”
장천운은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식은땀으로 젖은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빠르게 뛰었다.
겨우겨우 거친 숨결을 가다듬은 그는 소매로 이마의 땀을 훔쳐냈다.
“제길, 결국 오늘도 뒈졌네.”
마치 익숙한 일을 겪은 듯한 말투.
그런데 사실이 그랬다.
그가 말도 안 되는 악몽을 꾸기 시작한 것은 일 년 전부터였다.
일을 마치고 피곤에 지친 몸을 눕히면 눈이 감기면서 꿈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무공을 배우는 꿈을 꾸었다.
꿈이 꼭 진짜 같아서 깨어나면 실제로 수련을 한 것처럼 온몸이 땀에 젖어 있곤 했다.
그러잖아도 일을 마치고 나면 힘들어 죽겠는데 꿈속에서조차 개고생을 하다니.
환장할 일이었다.
더구나 그 꿈은 하루 이틀도 아니고 거의 매일 반복되었다.
마치 꿈속에서 자신이 성장하는 듯했다. 다만 꿈을 꿀 때는 자신이 정말 멋지게 무공을 펼치는데, 꿈에서 깨면 어떻게 했는지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천 근 바위를 공깃돌처럼 던지기는커녕 백 근 돌덩이도 들기 힘들었다.
그렇게 몇 달 동안의 수련과정이 지나자 다른 사람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전부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때로는 일대 일로 싸우기도 했고, 때로는 많은 자들과 싸울 때도 있었다.
싸우면서 죽음 직전에 이를 정도로 다친 적도 많았고, 때로는 처참하게 죽기도 했다.
꿈속에서는 현실인지 꿈인지조차 분간이 되지 않으니 살아남기 위해서 미친 듯이 싸웠다.
시간이 가면서 자신의 손에 죽어가는 자도 늘어났다. 세어보진 않았지만 아마 수백 명은 될 듯했다.
자신의 목과 팔다리도 수십 번은 떨어졌다가 붙었다. 배가 쩍 갈라지고 심장이 터져서 자기 몸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지는 광경을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물론 그것도 정확한 장면은 기억이 흐릿했다. 그저 흠씬 두들겨 맞았다는 것과 처참하게 죽었다는 것만 기억날 뿐.
가끔은 꿈이라는 것을 인지할 때도 있었다. 꿈속에서는 죽어도 진짜 죽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떠오를 때도 있었고.
그래도 죽는 것은 구역질날 만큼 더러운 기분이었다.
팔다리가 떨어져나가고 배가 갈라지는 것을 자신의 눈으로 봐야하는데, 그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그래서 정말 죽을힘을 다해 싸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강한 자들이 달려들었다.
상대를 이길 수 있을 때쯤 되면 더 강한 자들이 나타났다.
정말 미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지경이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그동안 싸운 자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무지막지한 고수들이 등장해서 그를 공격했다.
장소는 안개 낀 절벽 위. 항상 똑같았다.
상대는 세 명일 때도 있고, 네 명일 때도 있었다.
그들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강했다.
얼마나 강한지 손짓 한 번에도 몸이 휭 날아갔다.
검을 한 번 휘두르면 팔다리가 툭툭 떨어지고, 배가 쩍 갈라졌다.
그는 젖 먹던 힘까지 짜내서 미친놈처럼 악착같이 싸웠다.
하지만 실력 차이가 너무 컸다. 아무리 버텨 봐도 소용없었다.
결국은 가슴에 검이 꽂히고 팔다리가 잘린 채 절벽에서 떨어지면서 꿈이 끝났다.
벌써 일곱 번째.
오늘도 자신은 비참하게 죽었다.
“좌우간 정말 굉장한 자들이야. 사람이 어떻게 그토록 강할 수가 있지? 꿈이라서 그런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은 장천운은 방문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동이 터오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그자들을 이길 수 있지?’
그래도 오늘은 제법 버텼다. 조금만 더 버티면 이길 수도 있지 않을까?
더 이상은 죽고 싶지 않았다. 그 끔찍한 경험은 아무리 반복되어도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그자들을 이기면 일 년이나 이어온 기나긴 꿈도 막을 내릴지 모르는데…….
‘절벽에서 떨어진 후 기연을 만나서 그자들을 죽일 수 있는 힘을 얻으면 끝내주겠는데 말이야.’
왜 옛날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런 일이 많잖아?
“에이, 모르겠다. 씻고 일이나 나가자.”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고개를 돌려서 옆에 있는 나무침상을 바라보았다.
꾀죄죄한 노인 하나가 웅크린 채 잠들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무씨 영감과 만난 후부터 그 빌어먹을 꿈을 꾼 것 같군.’
강가의 갈대밭에서 반쯤 물에 잠겨 있는 무 노인을 발견한 것은 열다섯 살 때인 작년 봄, 매화가 필 무렵이었다.
처음에는 시체인 줄 알았다.
겨울이 지나는 동안 죽은 거지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그 노인 역시 죽은 거지인 줄 알고 그냥 지나가려 했다. 여기저기 찢어진 옷자락. 엉클어진 머리. 영락없이 상거지였으니까.
더구나 자신도 급한 일이 있던 터였다. 늦게 가면 성질이 개떡 같은 조장에게 두들겨 맞을지도 몰랐다.
그때 죽은 줄 알았던 노인이 눈을 떴다. 그리고 고개를 든 순간 눈이 마주쳤다.
제길!
정이 많아도 탈이었다. 시체라면 몰라도 살아 있는 사람을 그냥 두고 갈 순 없는 일 아닌가?
그는 일단 노인을 강에서 끌어냈다. 그 정도면 자신으로선 할 만큼 해준 셈이었다.
그런데 그가 돌아서려하자 노인이 손을 뻗었다. 달달 떨면서.
마음 약한 그는 차마 그 손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노인을 업고 집에 데려다 놓은 후 일을 나갔다.
그가 일하는 곳은 흑월루(黑月樓).
무창의 뒷골목 흑도패거리 중 나름대로 힘 좀 쓰는 흑월회(黑月會)의 본거지였다.
그날 조장 구대는 오랜만에 건수 잡았다는 듯 그를 물씬 두들겨 팼다.
건방진 새끼가 제 멋대로 군다면서.
‘개자식. 어린 내가 저보다 인정받는 게 그렇게 못마땅한가?’
속이 밴댕이소갈딱지만도 못한 놈.
장천운은 구대를 씹으며 방을 나갔다.
장천운이 나간 뒤, 돌아누워 있던 무 노인이 몸을 돌렸다.
방문을 바라보는 무 노인의 눈빛은 먹구름처럼 진한 회색빛이었다.
너무 흐려서 아무 것도 느낄 수 없는 눈빛.
‘저런 놈이 이런 시궁창에 처박혀 있었다니, 하늘이 내 가슴에 쌓인 한을 알아주신 건가?’
무 노인의 회색빛 눈빛이 더욱 깊어졌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