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19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4,03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19화
잠시 후, 방안에서 큰소리가 났다.
“네가 너무 방안에만 있으니 저들이 자꾸 설치는 것 아니냐?”
“성 안을 돌아다니시면서 이 사람, 저 사람과 만나시게. 그래야 수하들도 소성주를 진심으로 따르지 않겠는가?”
“성주께서도 그리하시길 바라고 있다네, 소성주.”
장천운은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 말이 맞아. 소성주는 솔직히 너무 방안에만 있어.’
소성주가 밖으로 나다니면 자신도 덜 지루할 텐데.
뭐, 순전히 그 이유 때문이었지만.
다행히 소성주는 장로들의 의견을 완전히 뿌리치지 않았다.
“알겠어요, 외숙부. 그럼 내일부터는 잠깐씩이라도 외부활동을 하겠어요.”
남조연과 가유덕, 육선기도 그제야 목소리를 누그러뜨렸다.
장천운도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내일부터는 좀 낫겠군.’
그때 남조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수혼대원들이 많이 바뀌었더구나.”
“예, 외숙부.”
“그놈들 교육을 단단히 시켜야겠더라. 글쎄, 이 외숙부도 몰라보고 신분을 몇 번이나 물어보지 뭐냐?”
‘저 영감탱이가!’
장천운은 방문을 째려보았다.
다행히 소성주가 그의 기분을 풀어주었다.
“그건 그 사람들의 임무예요. 너무 뭐라고 하지 마세요.”
“그건 그렇다만…….”
“요즘 분위기가 안 좋다는 것, 잘 아시잖아요. 혹시 모를 위험에 처했을 때 저를 지켜줄 사람이 누구겠어요?”
조금은 까칠하게 느껴지는 그녀의 말에 남조연도 더 강하게 나가지 못했다.
“험, 무슨 말인지 알겠다. 어쨌든 젊은 친구들이 예의를 모르는 것 같아서 한 말이니 너무 마음에 두지 마라.”
장천운은 소성주에 대한 점수를 조금 더 높게 쳐주었다.
‘그래도 철부지는 아니군.’
다음 날부터 소성주는 자신이 말한 대로 하루에 잠깐씩 성 안을 돌아다녔다.
때로는 이각이 걸릴 때도 있고, 때로는 반시진 넘게 돌아다닐 때도 있었다.
그러나 오전 시간에만 활동해서 장천운은 여전히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했다.
‘젠장, 오후에 돌아다니면 안 되나?’
9장: 소성주 외출(外出)하던 날
햇살이 따갑게 느껴지는 사월의 어느 봄날.
장천운의 불만이 귓속에서 메아리쳤는지 그날은 소성주가 오후에 외출했다.
화사한 사월의 날씨가 소성주의 나들이를 반겼다.
무화원을 나서자 관철양이 사마경의 좌측, 단봉선자가 우측에 섰다.
나머지 수혼대 삼조원들은 좌우와 후면을 호위했다.
장천운은 뒤로 처져서 느긋이 따라갔다.
소성주의 외출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언제 위험에 노출될지 모르는 상황. 아무리 성 안이라 해도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장천운은 안에만 있는 것보다는 밖으로 나가는 게 훨씬 좋았다.
무화원을 나선 소성주는 곧장 남쪽으로 내려가서 남문 쪽의 남쪽 대연무장을 지나 동문 쪽으로 향했다.
지나가던 무사들이 소성주를 보고 다급히 예를 취했다.
소성주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어깨를 펴고 영롱한 눈빛으로 무사들을 바라보는 그녀에게서 위엄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안에만 있을 때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모습.
장천운은 그 모습을 보고 눈빛을 반짝였다.
‘제법인데? 여자라 해도 소성주는 소성주다, 이건가?’
그때였다. 소성주의 어깨 너머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소성주 일행을 지켜보는 자가 눈에 들어왔다.
단순히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자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장천운만이 가진 특별한 감각이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그냥 바라보는 게 아니야. 감시하고 있어, 소성주의 움직임을.’
구천성 내에서 소성주를 감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자라면 한 부류 뿐.
총사가 말한 암중의 적.
그 자는 거리가 가까워지자 건물 뒤쪽으로 모습을 감췄다.
‘누군지 몰라도 재수 없는 놈이군. 이 귀호의 눈에 찍힌 이상 골치 좀 아플 거다.’
구천성 남쪽에는 제법 큰 연못이 있었다. 남천소(南天沼)라는 연못이었는데 면적이 족히 오백 평은 되었다.
소성주 일행이 수련이 가득한 남천소를 돌아갈 때, 정면에서 대여섯 명이 마주 걸어왔다.
청년 둘과 사십대 중년인 하나, 삼십대 장한 둘.
그들은 거리가 이 장으로 줄어들자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소성주를 뵈오!”
“그 동안 잘 지내셨소, 경매?”
소성주 사마경도 그들을 잘 아는 듯 마주 인사를 했다.
“오랜만이에요. 독고 공자.”
조금 싸늘한 목소리.
장천운은 그녀의 목소리에서 거부반응을 느끼고 독고 공자라 불린 청년을 주시했다.
소성주 사마경을 ‘경매’라 부른 자는 이십대 중반의 백의청년이었다.
“하하하하. 경매가 요즘 성 안을 시찰하고 다닌다는 말을 들었는데, 사실이었구려.”
“안에만 있으면 답답해서 바람을 쐬러 나오곤 했어요.”
“잘 생각했소. 날도 따뜻해졌으니 안에만 있는 것보다는 나을 거요.”
독고민. 경천단(驚天團) 단주 독고태의 아들. 마제 나극의 외손자.
그의 신분은 구천성의 수많은 청년 중 세 손가락 안에 들었다.
일명 구천삼공자(九天三公子)라 불리는 세 신성 중 하나.
그는 강한 무공과 활달한 성격으로 구천성의 수많은 청년과 여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신진고수였다.
하지만 장천운은 처음 보는 그가 싫었다.
먼저 거만한 표정이 백리우진에게 뒤지지 않았다.
게다가 겉으로는 웃으면서도, 소성주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비웃음이 가득했다.
‘이중성을 지닌 음험한 놈이군.’
그가 나름대로 판단을 내리고 있는데 독고민이 짐짓 환한 표정으로 말했다.
“경매가 이리 달라졌으니 성주님께서도 이제 마음이 놓이시겠구려.”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그럼 이만 가보겠어요.”
“하하하, 그러시오. 그런데 호위무사 중에 젊은 친구들이 몇 늘었구려. 저번에 강련곡에서 나왔다는 사람들이오?”
“그래요.”
독고민은 수혼대원들을 쓱 둘러보고는 앞쪽에 있는 진구를 묘한 눈빛으로 보며 말했다.
“수고가 많군, 진구. 소성주께선 구천성의 주인이 되실 분이니 잘 모시도록 해라.”
“독고 형이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 않아도 나는 내 임무에 충실할 거요.”
두 사람은 전부터 잘 아는 사이였다.
독고민이 두 살 많았는데, 진구는 그에게 그다지 좋은 감정이 아니었다.
“그 성격은 여전하군. 하긴 철저히 원칙대로 하는 너라면 잘 하겠지. 하지만 원칙대로만 살 수 없는 곳이 세상이라는 걸 알아야 할 거다.”
“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오.”
독고민은 진구를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뒤쪽에 서있는 장천운에게 시선을 고정시키고 냉소를 지었다.
“강련곡의 무진특조 중에 괴상한 친구가 있다는 말을 들었지. 동겸의 이를 뺐다는 친구가 자넨가?”
장천운은 그 말로 독고민이 수혼대원에 대해서 상당히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 아니라면 자신을 바로 알아볼 리가 없었다.
왜? 단순히 소성주의 호위무사라서? 동겸 때문에?
어쨌든 물어봤으니 대답은 해줘야 했다.
“그가 밥은 잘 먹는지 모르겠소. 앞니가 몇 개 없어서 고기를 씹으려면 힘들 텐데.”
그 대답을 듣고 독고민의 입술이 묘하게 틀어졌다.
“듣던 대로군.”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소만, 소성주께서 갈 길이 바쁘다 하시니 그만 비켜주시오.”
뻣뻣한 장천운의 말투에 독고민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그의 마음을 눈치 챈 듯 옆에 있던 청년이 눈을 부라렸다.
“호위무사 주제에 감히 어디서 독고 공자께 그따위 말버릇이냐?”
장천운이 그자를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호위무사라서 그리 말씀드린 거요. 아! 혹시 모를까봐 말씀드리는데, 수혼대원에게는 말이오, 상대가 누구라도, 소성주께 위해를 가하는 자의 목을 칠 권한이 있다는 것을 알아두시오.”
“뭐야?”
청년이 발끈하자, 결국 관철양이 나섰다.
“조금 과하긴 하지만 전혀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소, 서 공자. 소성주께서 조금 전에 그만 가보시겠다고 하셨소만, 계속 앞을 막고 계실 거요?”
청년은 입을 꾹 다문 채 한쪽으로 비켜섰다.
두 장한과 중년인도 두어 걸음씩 옆으로 이동해서 고개를 숙였다.
“그럼 다음에 뵙겠어요, 독고 공자.”
사마경은 독고민에게 작별을 고하고 걸음을 옮겼다.
독고민 일행은 그들이 지나갈 때까지 그 자리에서 쳐다보기만 했다.
그러다 장천운이 지나가자, 서 공자라 불린 청년이 이를 갈듯 나직이 말했다.
“동겸이 너를 무척 보고 싶어 하더군.”
장천운은 앞만 보고 걸으면서 중얼거렸다.
“보고 싶으면 직접 찾아오라고 하쇼. 근데 남은 이빨이 걱정되어서 올지 모르겠네.”
앞서 걷는 수혼대원들의 어깨가 미미하게 들썩였다.
그들도 장천운과 동겸의 일을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
구천성 내 어느 전각의 깊숙한 지하밀실 안.
흔들리는 등잔불 아래에서 두 사람이 찻잔을 놓고 마주 앉아 있었다.
중후한 인상을 지닌 오십대 중반의 초로인과 사십대로 보이는 중년인.
단 두 사람만이 앉아 있는데도 넓은 밀실 안의 분위기가 무겁게 느껴졌다.
“사마경이 최근 들어서 부쩍 나들이를 많이 하는군.”
“아무리 철저하게 키워졌다 해도 여자 아닙니까? 날씨가 좋아지니 돌아다니고 싶은 모양입니다.”
“저들이 우리의 계획을 눈치 챈 것은 아니겠지?”
“그랬다면 우문각이 가만있을 리 없지요.”
“하긴 그 귀신같은 놈이 조용한 걸 보면 아직 모른다고 봐야겠지.”
“놈이 비록 괴이한 사술로 사람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지만, 함부로 아무나 잡아다가 심문하지는 못할 겁니다. 그리하면 당장 일이 터질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을 테니까요. 게다가 그리한다고 해도 저들이 알아낼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분일 뿐입니다.”
“그래도 조심해야 한다. 정 안되겠다 싶으면 무리를 하더라도 자신의 사술을 이용할 거야.”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수혼대에 새로 합류한 호위무사들은 어떠냐?”
“아직 새파란 애송이들입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런 애들 때문에 천려일실(千慮一失)의 우를 범해선 안 된다. 만사 조심해도 모자란다는 건 네가 더 잘 알 터, 한 치의 빈틈도 없어야 할 것이야.”
“명심하겠습니다.”
초로인은 잠시 말을 멈추고 찻잔을 들어 입술을 축였다.
입술에 묻은 물기가 등잔불빛을 받아서 황금색으로 번들거렸다.
차를 천천히 한 모금 마신 그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나직한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동방 늙은이는 아직도 행방을 찾지 못했느냐?”
사십대 중년인이 조심스런 표정으로 대답했다.
“오 년 전에 무창에서 발견한 후로 행방이 오리무중인 상태입니다.”
“아쉽군. 그 늙은이가 숨겨놓은 것이 있을 줄 생각도 못했어.”
“저쪽도 얻지 못했으니 당장은 그것으로 위안을 삼아야지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추적을 게을리 하지 마라. 비령각과 사밀령의 움직임도 철저히 감시하고.”
“그야 물론이지요.”
“그럼 사흘 후 모임에서 보자.”
“편히 쉬십시오.”
중년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건네고 방을 나갔다.
혼자 남은 초로인은 잠시 흔들리는 등잔불을 바라보고는 냉소를 지었다.
‘굴욕을 참고 십오 년을 기다렸다, 사마중천. 이제 곧 너도 내 마음을 알게 될 거다.’
등잔불에서 눈을 뗀 그의 입가로 하얀 웃음이 번졌다.
“성학.”
그가 이름 하나를 부르자, 좌측 벽 안쪽에서 나직한 대답이 들렸다.
“예, 주군.”
“준비상황은?”
“명령만 떨어지면 하늘이 뒤바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