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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16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4,41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16화

그때였다.

“강마우! 제 자리에 가만히 안 있어!”

간수가 고개를 쑥 내밀고 소리쳤다.

장천운의 몸을 붙잡으려던 강마우가 손길을 멈추고 돌아섰다.

“내가 무슨 짓을 했다고 그러슈? 난 그냥 이 친구를 도와주려고 한 것뿐인데.”

임사유가 입술 끝을 비틀며 한마디 했다.

“그 새끼, 지가 언제부터 남 생각해줬다고…….”

“네 자리로 돌아가!”

간수가 재차 다그치자, 임사유를 째려본 강마우가 자신의 자리로 가서 털썩 주저앉았다.

“지미, 도와주는 것도 못하게 지랄이야.”

“뭐? 강마우, 너 뭐라고 했어?”

“내가 뭘 뭐라고 합니까? 그냥 좋을 일 하려다 욕만 먹었다고 했죠.”

“너 같은 놈이 좋은 일은 개뿔이나. 한번만 더 엉뚱한 짓하면 알아서 해.”

간수가 경고를 보내고 돌아갔다.

장천운은 겨우 붙잡고 있던 흐름을 악착같이 되살려냈다.

 

얼마나 지났을까.

“후우우우.”

몸을 바로 하고 숨을 길게 내쉰 장천운은 천천히 눈을 떴다.

시간이 상당히 흐른 듯 강마우와 임사유는 잠들어 있었다.

‘하마터면 겨우 잡은 걸 놓칠 뻔했네.’

어쨌든 자신을 도와주려 했던 행동이어서 강마우에게 악감정은 없었다.

‘계속 노력하면 생각보다 많은 걸 얻을 수 있겠어.’

다시 한 번 두 사람이 잠든 것을 확인한 그는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오랫동안의 도립운기로 경직된 팔다리를 풀기 위해서 혼천수라권을 펼쳤다.

괴이하게도 허공을 가르는 바람소리, 옷자락 스치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기척이 없다는 것.

그것이 바로 혼천수라권의 무서운 점 중 하나였다.

무사는 눈으로 보지 않고도 기척과 느낌만으로 상대의 공격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아무런 기척도, 심지어 느낌마저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만큼 상대하기가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혼천수라권 십삼초식을 모두 풀어낸 그는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겨우 삼성 정도의 수준이지만 이곳에 들어오기 전과 비교하면 무척 빠른 진전을 보이고 있었다.

‘흠, 내가 생각해도 제법이라니까.’

장천운은 자화자찬을 하고는 한쪽에 놓아둔 대나무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대나무젓가락의 길이는 한 자 정도. 그는 그 젓가락을 잡고 눈을 감았다.

그의 손에 쥐어진 이상 대나무젓가락은 이제 젓가락이 아니라 검이었다.

잠시 후, 눈을 감고 있던 그의 손이 움직였다.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허공에 젓가락이 무려 아홉 개나 나타난 것이다.

그것은 허상이되 허상이 아니었다. 만약 젓가락이 검이고 앞에 누군가가 있었다면, 그의 몸에는 아홉 개의 구멍이 뚫렸을 것이다.

장천운은 그 초식에 구전관천(九電貫天)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아홉 줄기 번개가 하늘을 뚫는다는 뜻.

그가 초식명을 붙이기 시작한 것은 몽중무를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지금까지 얻은 몽중무는 세 가지였다.

구륜심법(九輪心法), 천뢰구검(天雷九劍), 그리고 뇌정무극수(雷霆無極手).

심법이야 진즉부터 삼원심법을 대신해서 익히는 중이고, 이제는 아홉 초식으로 된 천뢰검법에 집중하고 있었다.

‘나갈 때까지 초식의 형(形)만이라도 완성하자.’

 

***

 

강마우와 임사유의 투옥 기간이 모두 지나갔다.

간수가 와서 철창을 열어주었다. 이제 문만 나서면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서운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장천운과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우리만 나가서 미안하군.”

“잘 지내게. 나중에 보자고.”

그 동안 그들도 장천운에게 자극을 받아서 열심히 수련했다. 오죽하면 간수가 ‘이제 철들었군.’이라고 할 정도였다.

덕분에 그들은 들어오기 전과 다름없는 몸 상태를 유지했고, 어떤 면으로는 더 나아져 있었다.

장천운과 무공에 대해 이런저런 논의를 하면서 나름대로 많은 것을 배웠으니까.

그런데 막상 장천운과 헤어진다는 생각을 하자, 옆구리에 매달렸던 뭔가가 떨어져나간 것 같았다.

“나가면 싸우지 마쇼.”

“에이, 우리가 어린앤가? 걱정 마. 저놈이 건들지만 않으면 싸울 일이 없으니까.”

“저 자식에게 신경 끄기로 했네.”

둘은 그 와중에도 서로를 한번 째려보았다. 하지만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는 않았다.

확실히 두 사람의 관계가 전보다 나아진 듯했다.

“뭐해, 이놈들아. 나가기 싫어?”

간수가 두 사람을 재촉했다.

그제야 강마우와 임사유가 옥방을 나섰다.

철컹.

옥문이 닫히자 장천운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서 벽에 기대고 앉았다.

강마우와 임사유가 있던 자리는 이제 텅 비어 있었다.

뇌옥도 조용해져서 적막감만 감돌았다.

이제 자신 곁에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들자 오래 전의 쓰라린 추억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떠났을 때도 그랬지.’

문득 아버지 생각이 떠오르자, 그 동안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던 의문이 갑작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어머니는 정말 병 때문에 돌아가신 걸까?’

아버지는 어머니가 역병에 걸려서 돌아가셨다고 했다. 어릴 때는 그 말을 무조건 믿었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자신의 기억 어디에서도 어머니가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꿈속을 더듬기 시작한 후 머릿속이 더 맑아져서 걷기 전의 기억조차 어슴푸레 떠오르거늘, 그때도 곁에는 아버지뿐이었다.

“에이, 내가 괜한 생각을 하네.”

장천운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일어났다.

지금 의문을 가진다고 해서 무슨 소용인가. 아버지도 돌아가셨는데.

그는 휙 몸을 뒤집고 물구나무를 섰다.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을까?’

 

***

 

장천운은 봄바람이 불 때쯤 석방되었다.

뇌옥을 나온 그는 전이나 다름없이 행동했다. 게으른 것도 여전했고, 조는 것도 여전했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그를 건들지 않았다. 우연이든 실력이든, 동겸을 박살내서 쫓아낸 사람이 아닌가 말이다.

이제 장천운의 유일한 고민은 내공이었다.

꿈속에서 얻은 심법의 본 이름은 그도 알지 못했다. 구륜심법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도 진기를 아홉 번 휘돌리는 심법의 특성 그대로 만든 이름일 뿐이다.

분명한 것은, 구륜심법이 삼원심법보다 내공을 키우는 속도가 배 이상 빠르다는 것이다.

구천성에서 주는 약물의 기운도 훨씬 더 효과적으로 흡수해서 남들이 아는 것보다 강한, 이십 년 수련에 해당하는 내공을 지닐 수 있었다.

그럼에도 장천운은 만족하지 못했다.

그 정도 내공으로는 몽중무를 제대로 펼칠 수 없었다.

혼천수라권 역시. 환귀자의 술법 같은 신법은 말할 것도 없고.

‘어디 바위 틈바구니에서 영물 같은 거 안 기어 나오나?’

 

이차 수련 이년 차부터는 온갖 잡다한 기술을 배워야 했다.

사람을 죽이는 기술, 살리는 기술은 물론이고, 비상시 생존을 위해서 필요한 물품을 만드는 기술도 배웠다.

‘잘 배워놓으면 어디가도 굶어죽지는 않을 거다.’라는 교관의 말대로 유용한 기술들이었다.

장천운은 뇌옥에 들어가 있어서 다른 수련생에 비해 삼 개월 늦게 시작한 만큼 남들이 쉴 때도 열심히 해서 그들과의 간격을 따라잡았다.

그렇게 수련과 공부로 세월을 보내는 사이 또 다시 한 해가 갔다.

그런데 마지막 한 해를 남겨두고 뜻밖의 일이 생겼다.

삼조 조장 백리우진. 그가 수련기간을 다 채우지 않고 강련곡을 떠나게 된 것이다.

“천혼전주(天魂殿主) 백리호가 불러들였다는군.”

“그래?”

“아무래도 성의 분위기가 이상해.”

구산의 말에 장천운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총사가 소성주의 호위무사에 신경 쓰는 것도 뭔가 이유가 있으니 그런 거겠지.’

“좌우간 그 자식이 나간다니까 삼조 놈들 완전히 풀이 죽었어. 천운, 언제 한번 날 잡을까?”

구산의 말뜻을 짐작한 장천운은 고개를 저었다.

아마 그들에게 당한 것에 대해서 분풀이할 기회를 주겠다는 뜻일 것이다.

“그럴 필요 없어, 조장. 그 친구들도 시켜서 그런 것인데 뭐.”

이제 강련곡에서 나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말썽을 일으켜봐야 좋을 것 없었다.

장천운은 그들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을 갈고닦는 일에만 전념했다.

시간이 살같이 흐르고 있었다. 그들과 다투는 시간조차 아까웠다.

‘호위무사로 살아남으려면 하나라도 더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해!’

무공뿐만이 아니다. 강련곡의 모든 배움이 언젠가는 자신의 목숨과 직결될 때가 있을 것이다.

강호의 지리, 강호고수의 이름과 특징, 세력의 구조, 심지어 산속의 열매 중 어떤 것이 식용가능한가 하는 사소한 것 역시도.

장천운은 마지막 일 년을 그렇게 자신과 싸우고, 배우며 보냈다.

 

그렇게 봄이 되었을 때였다.

봄바람이 유난히 세차게 불던 날,

“집하아아압!”

교관 양태악이 유난히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무진특조 수련생들이 통나무집을 나와서 공터로 모여들었다.

그날은 모두 새로 배급받은 빳빳한 무복을 입고 있었다. 남녀 할 것 없이 오 년 만에 입은 새 옷이 어색한지 모두들 새 옷을 입은 촌닭처럼 뻘쭘한 표정들이었다.

일호 교관 유진생이 그 촌닭들을 둘러보며 소리치듯 말했다.

“그 동안 수고했다! 오늘 부로 너희들은 구천성의 정식 무사가 되었다!”

그제야 수련생들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마침내 지긋지긋한 강련곡 수련이 끝나고 밖으로 나갈 시간이 온 것이다.

“나에게 원한 품은 놈 있으면 언제든 찾아와라!”

모두가 장천운을 바라보았다.

 

 

8장: 무화원(武和院)

 

 

구천성 서남쪽에 있는 무화원(武和院)은 말이 별원이지 그 자체로 하나의 장원이라 할 만큼 규모가 컸다.

수련이 가득한 연못에서는 팔뚝만한 잉어들이 노닐었고, 연못가에는 수십 그루의 매화나무와 향나무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심어져 있었다.

햇살을 잘 받게끔 남향으로 지어진 세 채의 전각은 고풍스러우면서도 화려했는데, 그 중 제일 큰 중앙의 전각이 바로 구천성 소성주인 사마경의 거처였다.

사마경의 나이는 이제 열여덟. 그녀는 평상시 외출을 거의 하지 않고 별원에서만 지냈다.

한 달에 별원을 나서는 횟수는 기껏해야 대여섯 번. 그나마도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나섰다.

매화가 만발했던 그날도 사마경은 별원의 거처에서 오전 내내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점심시간이 지나 미시가 되었을 때였다. 조용한 별원의 뒷문으로 무사복장을 한 십여 명이 들어섰다.

모두 열한 명. 한 명만 사십대 중반의 나이고, 나머지는 잘 봐준다 해도 이십대 초중반에 불과했다.

그들은 무화원 뒤편에 있는 길쭉한 건물로 향했다.

무화원에는 전면의 전각 세 채 외에도 다섯 채의 건물이 더 있었다.

뒤쪽 담장 쪽에 붙어 있는 그 건물들은 무화원에 상주하는 경비무사와 소성주 직속의 호위무사, 잡일을 도맡아서 하는 하인들이 생활하는 곳이었다.

그 중 길쭉한 건물에는 호위무사들이 기거했다.

젊은 무사들은 사십대 무사를 따라서 그 안으로 들어갔다.

 

“여덟 명 이상은 안 된다는 걸 겨우 우겨서 두 명 더 빼냈소, 냉 대주.”

사십대 중년인은 자신의 공을 알아달라는 듯 힘을 주어 말하며 서류를 내밀었다.

그의 앞에는 그와 나이가 비슷한 자가 앉아 있었다.

무뚝뚝한 표정이 차갑게 느껴지는 그는 소성주의 호위를 책임지고 있는 수혼대(守魂隊) 대주 냉원상이었다.

“수고했소, 강 형.”

“하하하, 별 말씀을.”

냉원상은 짧게 고마움을 표하고 서류를 받았다. 그리고 서류를 한 장 한 장 천천히 들춰보았다.

서류에는 열 명의 신상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는 서류를 꼼꼼하게 다 읽은 다음에야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의 앞에 서있는 열 명의 젊은 무사는 남자가 일곱, 여자가 셋이었다.

냉원상은 그들을 하나하나 천천히 살펴보았다.

‘흠, 특별히 골라 뽑았다더니 빈말은 아니었군.’

오년 전에 뽑은 수련생들이 비록 나이는 어려도 뛰어난 자질을 지니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듣고도 그러려니 했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너희들은 앞으로 사흘 동안 간단한 교육을 받은 후 소성주를 모시게 될 것이다. 천하의 주인이 되실 분을 모시는 것인 만큼 영광으로 생각하고 각별히 신경 써야 할 것이다.”

남자 일곱과 여자 셋으로 이루어진 열 명의 젊은 무사.

그중에는 장천운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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