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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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4,473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15화
그랬다. 두 사람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수련을 받던 도중 대판 싸웠다. 그 바람에 삼 개월 동안 뇌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장천운은 터벅터벅 걸어서 입구의 맞은편 벽에 기대고 앉았다. 어쩌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그가 낀 형국이었다.
두 청년도 장천운에 대해서 조금은 알고 있었다.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교관의 목줄을 쳤다는 놈. 그 바람에 미움을 받아서 죽지 않을 만큼 힘들게 수련을 했다는 놈. 최근 들어서는 머리와 몸에 이상이 생겨서 잠보가 되었다는 놈.
그것이 그들이 아는 장천운이었다.
“나는 강마우다. 무진특조 십팔호에 대해선 나도 많이 들었지.”
성격 깨나 급하게 생긴 청년이 먼저 말을 붙였다.
무진특조(戊辰特組). 그 단어는 일반 수련생들이 무진년 이차 수련생들을 부를 때 쓰는 말이었다.
뒤질세라 독사눈의 청년이 말했다.
“나는 임사유다. 듣던 것보다는 독하지 않게 생겼군.”
장천운이 어느 한쪽 편을 들어주면 균형이 깨진다. 두 청년은 장천운이 반대편에 설까봐 잔뜩 신경을 곤두세웠다.
“십팔호요. 웬만하면 조용하게 지내죠.”
“나도 조용히 지낼 생각이다. 저놈만 건드리지 않는다면.”
“흥! 누가 할 소리.”
두 사람의 눈빛이 장천운 앞에서 마주치면서 불꽃이 튀었다.
‘왜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지?’
장천운이 그 이유를 알게 된 것은 그날 밤이었다.
장천운이 은근슬쩍 싸운 이유를 묻자, 강마우가 임사유를 째려보면서 말했다.
“원래 저 새끼하고는 같은 동네에서 자랐지.”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그럼 동네 친구란 말이잖아?
“그런데 내가 먼저 구천성에 들어와서 자기보다 일찍 출세할 것 같으니까 질투가 나서 욕하지 뭔가. 친구라는 놈이 친구의 출세를 축하해주지는 못할망정……. 에라이, 나쁜 자식.”
즉시 임사유가 반격을 가했다.
“입 뚫렸으면 말 똑바로 해, 인마. 네가 나를 속였잖아? 함께 들어가자고 해놓고, 잠깐 숙부집에 간다면서 혼자 들어왔잖아? 사기꾼 같은 자식. 퉤!”
“내가 혼자 들어오고 싶어서 들어왔냐? 숙부님이 강제로 집어넣어서 어쩔 수 없이 들어온 거지! 친구란 놈이 그것도 이해 못해? 에라이, 속 좁은 놈!”
“흥! 웃기고 있네. 내가 네 숙부님께 안 물어본 줄 알아? 네가 먼저 들어가겠다고 했다면서? 그래놓고 숙부님 핑계를 대? 어디서 친구에게 사기를 쳐!”
“내가 언제 사기를 쳐, 인마”
“야, 이 너구리 같은 놈아. 그게 사기 아니면 뭐냐?”
“뭐? 너구리? 이 썩은 독사눈깔이 어디서!”
강마우의 눈 가장자리에는 멍처럼 생긴 반점이 있었다. 그 반점 때문에 어릴 때부터 너구리라며 놀림을 받아서 그 말을 무척 싫어했다.
임사유도 탁한 회색빛에 뱀처럼 치켜 올라간 눈 때문에 숱한 고생을 했다. 그래서 누구든 눈을 가지고 욕하면 분노부터 끓어올랐다.
“이 씨발놈이!”
“네가 먼저 건드렸잖아, 개자식아!”
결국 두 사람은 참지 못하고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곧 다섯 평 남짓한 옥방에서 주먹과 발길질이 난무했다. 물론 욕설은 양념처럼 빠지지 않았고.
어이없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던 장천운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싸웠다는 이유가 고작 그거야?
‘정말 굉장한 이유로 싸웠군.’
소란이 일자, 간수가 달려와서 철창을 몽둥이로 두들기며 소리쳤다.
탕탕탕!
“동작 그만! 이 자식들이 한 동안 조용하다 했더니 또 싸우네!”
그제야 강마우와 임사유가 떨어져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분기가 가라앉지 않는지 씩씩거리며 서로를 노려보았다.
“물구나무를 서라, 실시!”
간수가 소리쳤다.
경험이 많은 듯 두 사람은 말없이 벽에 기대어서 물구나무를 섰다.
“너는 왜 안 해?”
간수가 장천운을 향해 턱을 치켜들고 말했다.
“저 말입니까?”
“그럼 너 말고 누가 있어? 빨리 안 해?”
“싸운 것은 제가 아닙니다만.”
“한방에 있으면 공동책임이다. 네가 말렸으면 안 싸웠을 수도 있잖아?”
간수의 말도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었다. 그렇지만 무작정 따르기도 싫어서 한번 튕겨봤다.
“아무리 그래도, 저까지 벌을 받는 것은…….”
그때 물구나무선 강마우가 나직이 말했다.
“그냥 해. 안 하면 식사를 안 주니까.”
‘지미.’
장천운은 결국 ‘식사’에 고집을 꺾었다.
“하라면 하죠 뭐.”
그마저 물구나무를 서자 간수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마치 세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 즐거운 듯했다.
“똑바로 해. 어영부영하면 내일 아침은 없을 줄 알아.”
‘제기랄. 옆방으로 갈 걸.’
물구나무를 선 지 일각이 지나도록 원위치로 회복하라는 명령이 떨어지지 않았다.
슬슬 피가 아래로 쏠렸다.
“언제까지 해야 합니까?”
장천운이 강마우에게 물었다. 강마우가 벌게진 얼굴로 대답했다.
“내일 아침까지.”
“…….”
일반 사람이라면 두어 시진만 물구나무서도 머리 혈관이 터져 죽을지 모른다. 그러나 내공을 익힌 사람은 그보다 훨씬 오래 견딜 수 있다.
그래도 한나절 동안 물구나무서기를 한다는 것은 무척 위험한 일이었다.
‘재수 더럽게 없군.’
한 시진이 지나자 이제는 운기를 하지 않고는 견디기가 힘들어졌다. 심장의 피가 머리로 모두 몰려드는 듯 멍한 기분마저 들었다.
장천운은 운기를 해서 진기를 사지백해로 돌렸다. 그리고 머리로만 쏠리는 혈류가 골고루 퍼지도록 힘썼다.
그제야 몸이 조금 편해졌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문득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 환귀자의 말도 안 되는 환술법의 구결을 떠올려봤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몸이 더 편해진 듯했다.
부풍비. 몸을 깃털처럼 가볍게 해서 바람을 타고 이동하는 술법.
그 술법의 구결 중 몸을 깃털처럼 가볍게 하는 구결이 지금 상황에서 도움이 되는 듯했다.
그것도 구결의 뜻을 해석한 것이 아니라, 단지 구결을 떠올리기만 했는데도 말이다.
어이가 없었다.
‘설마 진짜로 그 일이 가능한 것은 아니겠지?’
그때였다.
묵묵히 물구나무서서 서로를 노려보고 있던 강마우와 임사유가 또 다투기 시작했다.
“너 때문에 이게 무슨 꼴이야, 인마?”
“지랄하네. 이게 왜 나 때문이냐? 네놈 때문이지.”
“네가 엉뚱한 트집만 잡지 않았어도 이런 일이 왜 벌어져?”
“이 자식이 어디서 너구리처럼 얼렁뚱땅 나를 걸고넘어지려고 해?”
“이 썩은 독사눈깔이 또!”
“네가 먼저 건드렸잖아, 너구리새끼야!”
두 사람은 물구나무선 채로 기대고 있던 발로 벽을 밀면서 서로를 향해 달려갔다. 두 손을 발처럼 사용해서.
그러고는 발을 손처럼 사용해서 서로를 쳤다.
어찌 보면 웃기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장천운은 짜증이 확 치밀었다.
‘아, 진짜!’
이미 팔에서 힘이 빠진 사람들이다. 몇 번 투덕거리다 보면 누군가는 쓰러질 터. 그럼 아침을 굶어야 한다.
아니나 다를까, 두 사람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간수가 머리를 철창 쪽으로 쏙 내밀고는 하얗게 웃었다.
“이 자식들 봐라? 쓰러지면 밥 못 먹는다는 거 알지?”
찰나였다. 장천운이 벽에서 떨어지며 물구나무선 채 날듯이 달려갔다.
그러고는 두 발을 현란하게 엇갈려 쳐내서, 옆으로 기울어진 두 사람의 다리를 세웠다.
곡예를 부리듯 기가 막히게 멋진 동작.
막 쓰러지려던 두 사람의 몸이 겨우 중심을 잡았다.
“굶으려면 당신들이나 굶으쇼. 나는 굶고 싶지 않으니까.”
싸늘하게 몇 마디 내뱉은 장천운은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강마우와 임사유도 서로를 노려본 후 제자리로 향했다.
“호오, 굉장한데?”
간수가 감탄한 표정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장천운을 바라보았다.
“동겸의 입에서 콩알을 몇 알 뽑고 갈비뼈를 토막내주었다고 해서 설마 했는데, 사실이었나 보군. 좋아, 멋진 구경을 시켜주었으니 오늘은 이쯤에서 용서하마. 모두 원위치.”
세 사람은 간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후다닥 자세를 바로 했다.
한참 만에 강마우가 머뭇거리며 물었다.
“정말 네가 동겸을 두들겨 팼냐?”
“그래서 여기 들어온 거요.”
강마우와 임사유는 진짜로 놀란 듯 장천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들도 동겸의 행실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그가 강하다는 것도 모르지 않았고.
동겸을 이겼다면 그들보다 강하다는 뜻이었다.
“속이 다 시원하군. 그 새끼, 정말 밥맛이었는데.”
임사유의 독사눈에서 칼날 같은 눈빛이 번뜩였다.
동겸은 기사년 수련생들을 무척 괴롭혔던 자였다. 선배라는 이유로.
그런데 그 악랄한 놈의 이빨이 우수수 빠지고 갈비뼈가 작살났다지 않은가.
강마우도 기분이 좋은 듯했다.
“정말 잘했네. 그런 놈은 더 맞아도 돼.”
“앞으로는 싸우지 마쇼. 무슨 일인지는 알겠는데, 두 분 때문에 나까지 벌을 받긴 싫으니까.”
장천운이 딱딱한 어조로 말하자, 강마우와 임사유가 서로를 노려보더니 홱 고개를 돌렸다.
“뭐 나도 사실 싸우고 싶지 않네.”
“누군 싸우고 싶어서 싸운 줄 알아?”
“그런 놈이 왜 갑자기 달려들어?”
“네놈이 내 상황이 되었어 봐라. 아마 끝장을 보려고 했을 걸?”
“그만!”
장천운이 손을 들어서 두 사람의 말싸움을 막았다.
말하는 와중에 또 ‘너구리’와 ‘썩은 독사눈깔’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싸움이 벌어질 게 뻔했다.
“정 싸우고 싶으면 나하고 싸웁시다. 대신 다쳐도 책임 묻지 않기요.”
강마우와 임사유가 움찔하며 대충 얼버무렸다.
“내가 왜 자네하고 싸워?”
“나도 더 이상 저놈하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
장천운이 뇌옥에 들어온 지 한 달째.
강마우와 임사유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장천운을 바라보았다.
장천운이 시도 때도 없이 물구나무를 섰다. 벌을 받는 것이 아닌데도.
게다가 눈까지 감고서 아주 편안한 표정이었다.
‘정말 괴팍한 놈이군.’
‘이런 놈은 건드리지 않는 게 상책이지.’
그러나 장천운은 그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몽중무가 현란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머리로 피가 쏠리면서 뇌를 자극했기 때문이지 몰라도, 그 동안 잠들어 있던 기억이 전보다 더 확실하게 떠올랐다.
게다가 물구나무를 선 채로 운기를 하면 내공 역시 빠른 진전을 보였다.
물론 그도 물구나무서서 운기하는 도립운기(倒立運氣)가 위험하다는 것을 모르진 않았다.
잘못될 경우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빠질 수도 있으니까.
그럼에도 그가 도립운기를 계속 시도하는 것은, 나름대로 주화입마에 빠지지 않을 자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체질이 다른 사람도 환술무공을 익힐 수 있도록 환귀자가 연구했다는 방법. 그 중에 도립운기와 비슷한 운기법이 있었다.
그 운기법대로 하면 진기가 지나치게 머리 쪽으로 쏠리거나 강하게 역류하지 않았다.
그런데 물구나무서서 운기한 지 한 시진쯤 흘렀을 때였다. 장천운의 안색이 서서히 붉어졌다.
강마우가 슬그머니 일어나서 장천운에게 다가갔다.
“이봐, 괜찮아? 너무 오래 그러고 있으면 대가리 속에서 핏대가 터질 수 있어.”
운기법에 따라 진기를 움직이고 있던 장천운은 대답할 수가 없었다.
하필이면 그때 머릿속에서 몽중무의 한줄기 흐름이 이어지고 있었다. 안색이 붉어진 것도 그에 대한 희열 때문이었다.
“내 말 들려? 설마 그대로 잠든 건 아니지?”
강마우가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를 신경 쓰자 몽중무의 흐름이 흩어지려고 한다.
‘오지 마!’
장천운은 흩어지려는 몽중무의 흐름을 결사적으로 붙잡았다. 마음이 급해지니 얼굴도 더욱 붉어졌다.
속도 모르는 강마우가 손을 뻗었다.
“내가 도와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