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10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4,712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10화
구산을 비롯한 일조 수련생들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장천운을 바라보았다.
양태악과 나머지 세 명의 교관들도 이마를 찌푸렸다.
전에는 유진생이 장난처럼 상대해서 큰 사고 없이 끝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유진생도 작정하고 공격을 펼칠 것이 뻔했다.
그러나 누구도 장천운을 말리지 못했다.
그들이 장천운의 심정을 어찌 모를까. 지금은 그저 장천운이 무사히 비무를 마치기만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퍼벅!
삼초식 만에 유진생의 주먹이 장천운의 몸을 두들겼다.
장천운은 극렬한 고통을 느꼈지만, 이를 악물고 참으며 급히 수비자세를 취했다.
“제법이군! 하지만 이제부터는 더 조심해야 할 거다!”
냉랭히 소리친 유진생은 더욱 강하고 빠르게 몰아붙였다.
이전처럼 장난스런 비무가 아니었다. 그는 강적을 대한 사람처럼 최선을 다해서 공격했다.
공력이 실리지 않았을 뿐 절정고수가 펼치는 권법이었다.
넉 달 이상 수련에 매진해서 실력이 일취월장(日就月將)한 장천운이지만 유진생의 공격을 막기에는 아직 터무니없이 부족한 실력이었다.
퍽!
오초식에서 다시 왼쪽 옆구리를 얻어맞았고, 칠초식에서 가슴과 오른쪽 옆구리를 연속으로 맞은 후 나뒹굴었다.
‘크읍.’
장천운은 숨이 턱턱 막히고 온몸이 부서지는 듯했다.
그래도 악착같이 일어났다. 몸이 자신도 모르게 부르르 떨렸다.
그 모습을 본 유진생이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
“아직 삼초 남았다. 더 할래?”
“하겠습니다.”
장천운은 신음처럼 나직이 대답하고는 자세를 취했다.
유진생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사라졌다.
“좋아, 네가 원한 것이니 나중에 나를 원망하지 마라.”
장천운은 팔초 째 공격을 겨우 막아냈다.
그러나 번개처럼 날아든 구초 째의 공격은 막지 못하고 결국 다시 쓰러졌다.
장천운은 바닥을 두 손으로 짚고 몸을 일으켰다.
갈비뼈가 어떻게 되었는지 찡한 고통이 느껴졌다. 게다가 유진생의 철퇴와 같은 공격을 막다보니 양팔도 충격을 받아서 후들후들 떨렸다.
유진생은 그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장천운은 눈앞이 흐릿하게 보이자 눈을 두어 번 깜박였다. 사물이 두 개 세 개로 겹쳐 보였다.
그는 고개를 흔들고 입술을 깨물어서 정신을 차렸다. 짜릿한 고통과 함께 입안에서 짙은 피비린내가 느껴졌다.
“이제…… 마지막입니다.”
“그래, 마지막이지.”
차갑게 일갈을 내지른 유진생이 앞으로 한발 내딛으면서 두 손을 연속으로 뻗었다.
“헛! 파양권(波陽拳)!”
양태악이 놀라 소리쳤다.
장천운의 눈에는 주먹이 흔들리면서 날아드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파도가 밀려드는 듯했다.
어떤 것을 막아야할지 암담한 상황.
그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지만, 그에게는 억겁의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순간, 유진생의 주먹이 장천운이 뻗은 두 팔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장천운은 무의식중에 몸을 뒤로 젖혔다. 그러고는 두 팔을 교묘하게 교차시키면서, 손가락을 갈퀴처럼 구부리고 좌우로 쳐냈다.
파바박! 퍼벅!
유진생의 주먹은 장천운의 어깨와 귀 뒷부분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충격만으로도 뒤로 나뒹군 장천운은 혼신의 힘을 다해서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괴이하게도 맞은 사람보다 때린 사람이 더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유진생은 이마를 찡그리고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장천운을 바라보았다.
“그건 무슨 수법이냐?”
“헉헉, 저, 저도 잘 모릅니다. 그냥 교관님의 공격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펼쳤을 뿐…….”
유진생이 곤혹해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다.
저번에는 방심하는 사이에 당했다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달랐다.
장천운이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자신이 펼친 마지막 공격은 허공을 쳤을지 모른다. 장천운이 연속된 충격으로 손에 힘을 싣지 못해서 제대로 쳐내지 못했을 뿐 완벽한 방어였다.
게다가 방어를 하고도 힘이 남았다면 반격까지 가할 수 있었다.
자칫했으면 전과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 점을 누구보다 잘 아는 유진생은 어이가 없었다.
‘정말 알 수 없는 놈이군.’
그는 눈매를 몇 번 씰룩거린 후 몸을 돌렸다.
“시험은 통과한 것으로 하겠다.”
“감사합니다.”
장천운은 두 손을 맞잡고 포권을 취했다.
그제야 유진생의 주먹이 스쳐간 뒷머리 부분이 먹먹해졌다. 그 직후 눈앞이 하얗게 변하면서 그 자세 그대로 쓰러졌다.
***
구산과 진구가 쓰러진 장천운을 통나무집으로 옮겼다.
그날 밤.
장천운은 밤새도록 신음하고 몸을 들썩거렸다. 어떤 때는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었고, 어떤 때는 마치 누가 들었다 놓은 것처럼 심하게 들썩거렸다.
일조 수련생들은 고통 때문에 그런가 보다 생각하며 안쓰러운 눈으로 장천운을 바라보았다.
“그러게 왜 유 마두의 성질을 건드려?”
사명학은 장천운을 탓하면서도 물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아주었다.
그는 장천운이 마음에 안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상황을 모를 정도로 우둔하지도 않았다.
아마 장천운이 화를 못 이기고 반발했다면 일조 수련생 전체가 힘든 꼴을 당했을지 몰랐다.
그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장천운의 격렬한 몸짓은 고통 때문이 아니었다.
장천운은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몇 번 깜박인 그는 한참 동안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랬던 건가?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지?’
마침내 그는 자신이 유진생과 싸울 때 썼던 수법을 어디에서 배운 것인지 기억해냈다.
어이없게도 그 수법은 그가 꿈속에서 배웠던 것이었다.
남들이 들으면 헛소리한다며 미친놈 취급할지 모르지만, 사실이 그랬다.
아직 생각나는 것은 일부분에 불과했다. 그 수법의 변화도 아직 다 기억할 수 없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 수법을 꿈속에서 배웠으며, 그 수법 외에도 많은 무공을 꿈속에서 배웠다는 것이다.
그가 배운 무공 중에는 자신을 숱하게 죽인 엄청난 고수들과 싸울 때 썼던 신공도 있었다.
꿈속이었기 때문에 펼칠 수 있었을 거라 생각했던 그 무시무시한 무공이!
강호의 까마득히 높은 곳에 있는 고수들이나 펼칠 수 있는 바로 그 무공이!
어떻게 자신이 그런 무공들을 알게 된 걸까?
어떻게 자신에게 이런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난 걸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던 그의 뇌리에 문득 자신이 꿈을 더 이상 꾸지 않게 된 때가 떠올랐다.
무 노인이 사라진 후였다. 그가 꿈을 꾸지 않게 된 것은.
그리고 그가 꿈을 꾸기 시작한 것도 무 노인을 만난 후였다.
‘설마 할아버지가……?’
꿈과 무 노인 사이에 연관이 있다면, 자신이 꿈속에서 무공을 배운 것도 무 노인 때문이라고 봐야 했다.
무 노인이 꿈을 이용해서 자신을 가르쳤다는 말.
그게 가능한 일일까?
남이 그런 말을 했다면 미친놈이 미친 소리를 한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미친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총사는 자신의 정신을 마음대로 조종하지 않았던가.
무 노인이 정말 대단한 고수라면 못할 것 없었다.
장천운은 눈을 감고 무 노인을 떠올려봤다.
무 노인은 가끔 깊이를 알 수 없는 회색빛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곤 했다.
그때만 해도 ‘저 노인네가 이제 죽을 때가 되었나보다.’라고 생각했는데,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나보다.
갑자기 눈물이 흘러나왔다.
‘말이라도 해주시지. 그랬으면 내가 그렇게 구박하지 않았을 텐데…….’
장천운은 소매로 슥슥 눈물을 닦고 몸을 일으켰다.
이상했다. 온몸이 부서질 것처럼 고통스러울 거라 생각했는데 큰 이상이 없는 듯 느껴졌다.
그리고 실제로 고통이라 할 수도 없는 미약한 통증만 있을 뿐이었다.
그는 가부좌를 틀고 운기를 해보았다.
지난 몇 달 동안 익힌 내공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강한 기운이 움직였다.
단전 저 깊숙한 곳에 자신이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뭔가가 똬리를 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것도 할아버지가 남긴 건가?’
아직 정확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자신이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현실인지조차 분간되지 않았다.
‘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모든 것을 알게 되겠지.’
꿈속의 일이 기억난 것처럼.
‘근데 이거, 유 마두에게 고마워해야하는 거야, 뭐야?’
5장: 악마(惡魔)의 권법(拳法)
장천운은 교관들이 하루 쉬라고 했지만 다음 날부터 수련에 참가했다.
유진생은 약속한 대로 더 이상 장천운을 괴롭히지 않았다.
장천운은 매일 시달리다가 정상적인 수련만 하자 왠지 허전했다.
그는 허전함도 달랠 겸 꿈속의 무공, 일명 몽중무(夢中武)를 익히기 위해서 남들이 쉴 때도 수련에 매진했다.
그런 생활이 닷새를 넘어가자, 교관과 수련생들이 질렸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저놈이 이제 알아서 고생을 하는군.”
“내 저럴 줄 알았다니까.”
“정말 독한 놈이야.”
유진생은 수련에 열중인 장천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돌아섰다.
‘저놈이라면 그걸 익힐 수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갑자기 든 생각에 실소가 나왔다.
사문의 최대비밀을 아무에게나 떠넘길 생각을 하다니.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입가에 떠올랐던 실소가 흐려지고 미간에 주름이 졌다.
무심코 한 생각이긴 한데, 무시해버리기에는 장천운이라는 소년의 뛰어남이 자꾸만 마음을 파고들었다.
힘든 수련을 마다하지 않는 성실함. 뛰어난 신체조건과 반사신경은 말할 것도 없고, 냉철함과 독기까지 갖추고 있었다.
최고의 조건.
‘한 번 말해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 동안 자신이 워낙 괴롭혀서 가슴에 악감정이 쌓여 있을 것이 뻔했다.
‘제기랄, 좀 살살 다룰 걸 그랬나?’
그런 생각이 들자 이제는 백리우진이 원망스러웠다.
‘빌어먹을, 괜히 백리우진이라는 놈 부탁을 들어줘서…….’
유진생은 며칠을 망설였다.
그가 결심을 한 것은 열흘째 되던 날이었다.
수련이 끝나고 밤이 되자 유진생은 장천운을 한쪽으로 불러냈다.
교관들이 그 사실을 알고는 펄쩍 뛰면서 그의 앞을 막아섰다.
“이보쇼, 유 교관. 정말 그러실 겁니까?”
“이번에는 아예 죽일 생각입니까?”
“사람이 그러는 거 아닙니다. 그러다 총사께 날벼락이 떨어지면 유 교관이 책임지실 겁니까?”
유진생은 세 교관이 벌떼처럼 달려들며 항의하자 어안이 벙벙했다.
“내가 뭘 어쨌다고……?”
“몰라서 묻습니까? 정말 실망입니다.”
“계속 그러시면 상부에 보고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체 그 애한테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그러시는 겁니까? 예?”
지은 잘못이 있으니 유진생도 강하게는 대응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는 일.
그는 별 수 없이 자존심을 접고 거짓말을 했다.
“만나서 사과하려고 그러네. 됐나?”
“…….”
“사과…… 요?”
“험, 난 또…….”
“그럼 가보겠네.”
“예? 예. 그러시죠 뭐.”
정면을 막아섰던 양태악이 재빨리 비켜섰다.
유진생은 얼굴이 붉어지기 전에 재빨리 방을 나섰다.
***
장천운은 단단히 각오를 하고 나갔다.
수련생들이 나가지 말고 버텨보라고 했지만, 그는 정면으로 부딪힐 작정이었다.
유진생은 통나무집에서 이십 장 가량 떨어진 냇가 바위 옆에 서있었다.
“부르셨습니다, 교관님?”
굳은 표정으로 그의 옆까지 다가간 장천운이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