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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39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75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39화

장천운이 입술 끝을 씰룩였다.

독고민과 서궁, 동겸, 그리고 처음 보는 청년 둘과 백리우진이 그를 향해 정면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서쪽 정원으로 올 일이 거의 없는 자들이 무슨 일로 단체나들이를 나온 걸까?

아무래도 비령각에서 느꼈던 그 더러운 느낌이 저들 때문인 듯했다.

‘나를 기다린 건가?’

그럴지도 모른다. 잔뜩 벼르고 있는 놈이 수혼대에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으니 궁금해서라도 눈이 벌게지도록 주시했을 수 있다.

그러다 갑자기 수혼대를 나와서 비령각에 갔으니 더 참을 수 없었겠지.

“이게 누구야? 수혼대의 장 조장 아닌가?”

독고민이 먼저 반갑게 아는 척했다.

“어이구, 독고 공자께서 이곳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장천운이 맞장구치며 배는 더 반가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이 어찌나 그럴듯한지 독고민은 바로 대꾸하지 못했다.

‘뭐 이런 자식이 다 있어?’ 그런 표정으로 쳐다보기만 할 뿐.

대신 동겸이 눈빛을 번들거리며 말했다.

“어쩐 일이긴? 네놈에게 할 말이 있어서 왔지.”

장천운이 그를 쳐다보았다. 조금 전 독고민을 바라볼 때와는 전혀 다른 표정이었다.

북풍한설조차 기가 질릴 정도로 차가운 눈빛.

“당신은 좀 빠져. 말상대하고 싶지 않으니까.”

“이 개자식이!”

“말귀 드럽게 못 알아듣네. 대가리가 멍청하면 눈치라도 있어야지.”

동겸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손발이 덜덜 떨렸다. 분노가 극에 달해서 금방이라도 목을 잡고 쓰러질 것 같았다.

하지만 장천운의 눈빛과 마주친 그는 성치도 않은 이를 악물고 분노를 억눌렀다.

그러든 말든, 장천운은 눈을 돌려서 독고민을 바라보았다.

“정말 할 말이 있어서 나를 찾아 나선 거요?”

“그렇다고 해두지.”

“하고 싶은 말이 뭐요? 어디 해보쇼.”

“장천운, 충고 한마디 할 테니 귓구멍 후비고 잘 들어라. 오래 살고 싶으면 지금이라도 소성주 곁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살고 죽는 거야 독고 공자가 신경 쓸 일 없고. 그래야 할 다른 이유라도 있수?”

“흑도의 말단 건달 출신인 너 같은 놈이 소성주 곁에 있어봐야 본 성의 위신만 추락될 뿐이야. 좋은 말로 할 때 말 들어. 원한다면 괜찮은 자리 하나 추천해주지.”

“그 좋은 자리는 저 동씨에게나 소개해 주쇼. 나는 그냥 수혼대에 있을 테니까.”

“경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들겠다?”

피식, 장천운이 실소를 지었다.

“벌주는 무슨. 겨우 그 말을 하려고 여기까지 단체로 출동한 거요?”

“요즘 네 오만함이 하늘을 찌른다는 소문이 들리더군. 며칠 전에는 백리 전주님의 행사를 방해했다며?”

“방해한 것이 아니라 사실을 밝힌 것뿐이죠.”

“그게 그거라는 걸 아직도 모르겠나?”

“나는 방해라는 말과 사실이라는 말의 뜻이 다르다고 배워서 말이죠. 할 이야기 다 했으면 비켜주쇼.”

“말귀는 네가 못 알아듣는 것 같군.”

조용히 서있던 백리우진이 한마디 나섰다.

“너도 할 말 있어?”

“잔머리 잘 굴린다던데, 끼어야 할 자리, 안 끼어야할 자리도 분간 못하나?”

“언제부터 백리우진이 흑도의 건달 출신을 생각해 줬지?”

“그래도 강련곡에서 같이 수련한 정을 생각해서 말해주는 거다. 오래 살고 싶으면 독고 형의 말을 들어.”

“같이 수련한 정? 푸하하하. 살다보니까 별 개소리를 다 들어보는군.”

그 말에 백리우진의 무표정하던 얼굴에 냉기가 흘렀다.

“역시 흑도 놈은 어쩔 수가 없군.”

“이거 알아, 백리우진? 흑도 사람들에게도 지켜야 할 의리가 있다는 거.”

“그거야말로 개가 풀 뜯어먹는 소리지. 조금만 수틀리면 뒤통수 까는 흑도놈들이 의리는 무슨 의리?”

“그래도 주둥이로는 그럴싸하게 말하면서 배때기 속에 시커먼 구렁이를 담고 다니는 위선자들보단 나아.”

“세상 돌아가는 것도 모르는 풋내기가 말은 그럴싸하게 하는군. 너도 아마 조금 더 살아보면 세상살이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거다.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만.”

“세상살이?”

장천운이 반문하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너 따위가 지금 나에게 세상살이를 가르치겠다는 거야?’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겨우 참은 그는 독고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할 말 다했으면 가보겠수. 내가 요즘 부쩍 바빠서 말이오.”

장천운은 독고민을 향해 한마디 툭 던지고 몸을 틀었다.

그러나 독고민 등은 비켜줄 마음이 없는 듯 오히려 반원을 그리며 삼재의 방위를 둘러쌌다.

“뭐야, 정말 해보겠다는 거야?”

“소성주도 없는데 이제 어떡하지?”

독고민이 턱을 쳐들고 말하고 뒤로 물러섰다.

대신 처음 보는 청년 중 하나가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 나섰다.

“듣던 대로 건방진 친구군.”

“누구지? 처음 보는 낯짝이군.”

“나는 광혈단의 양호평이다. 단주이신 광혈검마께서 내 외숙부가 되시지.”

“양씨고 호박씨고, 길을 비켜줬으면 좋겠는데.”

“비키지 않겠다면?”

“후회할 거야.”

“후회 같은 소리하고 있네, 자식. 자신 있으면 뚫고 가봐라, 이놈.”

찰나였다.

일 장 가량 거리를 두고 있던 장천운의 신형이 죽 늘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흠칫한 양호평은 반사적으로 두 손을 들어서 장천운의 접근을 막았다.

그러나 장천운의 공격은 그가 생각한 것보다 배는 더 빠르고 강력했다.

그는 양호평의 손을 좌우로 쳐내고 배에 주먹을 날렸다. 양호평이 피하려 했을 때는 이미 장천운의 주먹이 손목까지 박힌 후였다.

퍽!

양호평이 풀쩍 허공으로 떠서 일 장을 날아가 나뒹굴었다.

“이 개자식이!”

“공격해!”

삼재 중 두 방위를 차지하고 서있던 서궁과 또 다른 청년이 검을 빼들고 장천운의 등 뒤를 공격했다.

화려한 검화가 허공에 피어나며 장천운을 뒤덮었다. 금방이라도 장천운을 난자할 것 같은 광경.

그럼에도 장천운은 눈빛 한 점 흔들리지 않고 몸을 돌리더니 상대의 검세 속으로 뛰어들었다.

어설픈 대응은 상대의 살심만 키워줄 뿐. 손을 쓰기로 한 이상 철저히 눌러놓아야 한다.

‘원한다면 확실하게 대해주마!’

그의 신형이 좌우로 흔들리자 서너 개의 환영이 생겨났다. 극성에 이른 귀운신법이었다.

순간적으로 서궁과 청년의 눈에 당황하는 눈빛이 떠올랐다.

장천운은 그 찰나의 틈을 놓치지 않고 거리를 좁혔다.

흠칫한 서궁이 물러서려는 순간, 쇠갈퀴 같은 장천운의 좌수가 서궁의 손목을 잡았다.

우두둑!

손목이 거꾸로 꺾이면서 서궁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 직후 장천운의 우수가 서궁의 가슴에 떨어졌다.

쾅!

“끄어억!”

비명을 내지른 서궁이 뒤로 날아가서 땅바닥에 처박혔다.

장천운은 그를 보지도 않고 허공으로 솟구쳐서 또 다른 청년의 공격을 피했다.

어찌나 빠른지 청년의 눈에는 장천운이 눈앞에서 사라진 듯했다.

“뒤를 조심해!”

동겸이 악을 쓰듯 외쳤다.

대경한 청년은 홱 몸을 돌리며 반사적으로 검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의 검은 애꿎은 허공만 갈랐다.

몸을 살짝 틀어서 검을 피한 장천운은 좌수로 청년의 팔꿈치 곡지혈을 점하고, 우수를 벼락처럼 뻗어서 청년의 목을 덥석 움켜쥐었다.

쨍그랑.

청년의 손에서 검이 떨어졌다.

안색이 흙빛으로 물든 청년은 눈을 부릅떴다.

이제 장천운이 손에 힘만 주면 자신의 목뼈가 서궁의 손목처럼 부러질 터. 굳어버린 그의 몸이 잘게 떨렸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 독고민과 백리우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어어? 하는 사이, 구천성에서도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청년 셋이 당해버렸다. 도와주고 자시고 할 틈도 없이.

설마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이야!

당황한 독고민이 장천운을 향해 소리쳤다.

“그 손을 놓아라!”

“공격한 것은 당신들이 먼저야. 이대로 목뼈를 부러뜨려도 나는 죄가 없어. 안 그래?”

차가운 목소리가 장천운의 입에서 나직이 흘러나왔다.

손가락이 목을 파고들자, 공포로 물든 청년의 눈빛이 거세게 흔들렸다.

그때 백리우진이 말했다.

“장천운, 은 형은 은창현 장로님의 아들이다. 후회할 짓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은창현 장로의 아들? 그럼 이 자가 은홍석?”

“그렇다. 지금이라도 목을 놓고 물러서라. 그럼 오늘 일을 문제 삼지 않으마.”

장천운도 일이 조용히 무마되는 걸 원했다. 시끄러워져서 좋을 건 없으니까.

그러나 은홍석을 풀어준다고 해서 해결될 상황이 아니었다.

독고민과 백리우진은 절정경지에 오른 고수다. 다른 네 사람과는 차원이 다른 절정고수.

아마 처음부터 방심하지 않고 함께 공격했다면 곤란해졌을 사람은 자신이었을 것이다.

지금 은홍석을 풀어준다면 독고민과 백리우진이 전력을 다해서 공격해올 터. 위험을 자초할 이유가 없었다.

“훗, 장로의 아들이니까 없던 일로 하자? 백리우진이 언제부터 그렇게 약해졌지? 전이었다면 죽든 말든 신경 쓰지도 않았을 텐데 말이야.”

백리우진의 눈빛이 새파랗게 번뜩였다.

“너는 이미 서 형의 팔을 부러뜨렸다. 상황이 조용히 무마되는 게 너에게도 나을 텐데?”

“그게 왜 내 잘못이야? 서궁의 자업자득이지.”

“글쎄,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사람들은 네 말보다 우리들의 말을 더 믿어줄 걸?”

백리우진이 조소 띤 표정으로 말하면서 걸음을 옆으로 옮겼다.

독고민도 살기를 풀풀 날리며 반대쪽으로 이동했다.

여차하면 공격하겠다는 듯.

“허튼 짓 마시지. 이자의 목뼈가 부러지는 꼴을 보고 싶나?”

장천운이 냉랭히 경고를 보냈다.

그러나 백리우진과 독고민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백리우진은 더욱 짙어진 조소를 지으며 검을 뽑았다.

“그래봐야 네 죄만 커질 뿐이다. 은 형을 잡고 있는 사람은 너니까.”

‘제기랄, 정말 교활한 놈이군.’

장천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백리우진의 말이 옳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서 물러설 수도 없는 일. 그는 오히려 은홍석의 목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누가 옳은지는 나중에 가려지겠지. 할 테면 해봐!”

“정말 어리석은 놈이군.”

백리우진과 독고민이 금방이라도 공격할 것처럼 공력을 끌어올렸다.

그들도 여기까지 온 이상 물러설 길이 없었다.

이제는 자존심을 건 오기싸움만 남았을 뿐.

힘껏 당긴 활시위처럼 팽팽해진 긴장감에 서궁은 신음조차 삼켰다.

그때였다. 낭랑한 목소리와 함께 한 사람이 휘적휘적 걸어서 정원으로 들어왔다.

“나는 생각이 좀 다른데?”

장대한 체구, 훤칠한 외모, 이제 이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청년이었다.

그를 본 독고민이 눈을 치켜떴다.

“혁련기, 네가 끼어들 일이 아니다.”

청년은 천경전주 혁련광의 아들 혁련기였다. 독고민, 백리우진과 더불어 구천삼공자로 불리는 자.

그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조소를 짓듯 피식 웃었다.

“왜 나는 끼어들면 안 되지? 그 말을 들으니 더 끼어들고 싶어지는군.”

그 말에 백리우진이 나섰다.

“오늘 일은 장천운의 오만함 때문에 벌어졌습니다. 혁련 형은 참견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백리우진, 너에게 말한 것 아니다. 네가 뭔데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냐? 건방진 자식.”

혁련기의 냉랭한 말투에 모욕감을 느낀 듯 백리우진의 표정이 굳어졌다.

혁련기는 가소롭다는 듯 백리우진을 상대하지 않고 장천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봐, 은홍석을 놓고 이야기하면 어때? 그러다 숨 막혀서 죽으면 자네만 손해야.”

장천운은 오히려 손에 힘을 더 주었다. 손가락이 은홍석의 목덜미 속으로 깊게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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