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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37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87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37화

전에는 숟가락으로 죽 떠먹기보다 쉬웠다.

그러나 지금은 발가락으로 젓가락질 하는 것만큼이나 힘들 듯했다.

제혼대법(制魂大法)을 쓰려면 상대가 동의하던가, 아니면 육신을 제압해야 한다.

문제는 장천운이 동의할 리도 없고, 무공 역시 알려진 것보다 더 강하다는 것이다.

단봉선자 소연추보다 강한 고수와 싸우고도 살아난 놈 아닌가 말이다.

호위무사 서넛이 달려들어도 잡을 가능성은 절반 정도. 자칫 도망치기라도 하면 골치 아픈 적만 하나 늘어날 뿐이다.

“왜 그런 표정으로 보십니까?”

“음? 하, 하하. 그냥 네가 대견해 보여서 그런다.”

우문각이 그런 어색한 표정을 지은 것은 십 년 내에 처음이었다.

“설마 이상한 생각하신 건 아니겠죠?”

우문각은 속이 뜨끔했지만 모른 척 대답했다.

“무, 무슨 말이냐?”

“아니면 다행이고요. 좌우간 엉뚱한 생각 마시고, 제가 부탁드린 것이나 알아봐 주십시오.”

“그러잖아도 사람을 붙여 놓았다. 그런데 정말 그들 중에 범인이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없으면 그만큼 용의자가 줄어들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어차피 전체적으로는 조사할 수가 없으니 한쪽부터 차근차근 파고드는 수밖에 없습니다.”

우문각은 장천운을 빤히 바라보았다.

“지금 몇 살이지?”

“저요? 스물 하납니다. 갑자기 나이는 왜 물어보십니까?”

“그냥. 궁금해서.”

자신은 스물한 살 때 어땠더라?

생각해 보니 여자 뒤꽁무니 따라다니기 바빴던 것 같다.

다른 남자에게 시집 가버리는 바람에 눈물을 머금고 돌아서야 했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랑했던 여인이 자신을 외면한 건 순전히 머리카락 때문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남과 달랐던 머리카락 색 때문에.

사실 그때만큼 자신의 머리 색깔을 원망해본 적은 없었다.

그리고 그 후론 더 이상 원망하지 않았다. 원망한다고 달라질 것도 아니었으니까.

“오늘은 어째 이상하시네요.”

“내가?”

“예. 꼭 여자에게 차인 사람 같은 표정이거든요.”

‘윽!’

귀신같은 놈!

“험, 쓸데없는 소리 말고 조심해. 놈들이 주시하고 있으니까.”

“어제오늘 일도 아닌데요 뭐. 저보다는 총사께서 더 조심하셔야 할 겁니다. 다음 차례가 될지 누가 압니까?”

“이놈이……!”

“농담입니다. 사실 저들은 어지간한 일만 아니면 총사를 해치려하지 않을 겁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쓸모가 많거든요.”

우문각은 장천운에게 그 말을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칭찬이야, 놀리는 거야?

그때 밖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총사, 정유입니다.”

“들어와라.”

안으로 들어온 정유는 장천운을 일견한 후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구천대령주가 육선기 호법에 대한 체포명령을 내렸습니다.”

“뭐야? 이유는?”

“육 호법이 남 장로님을 살해한 증거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

 

우문각이 급히 비령각을 나설 즈음, 공손백이 보낸 장로 둘과 철혈단 정예무사들이 육선기의 혈도를 제압해서 구천대전으로 끌고 왔다.

한바탕 싸움을 벌였는지 육선기의 몸은 이곳저곳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다리의 상처는 제법 심한 듯 걸음을 옮길 때마다 비틀거렸다.

철혈단 무사가 육선기의 팔을 놓고 뒤로 물러서자, 백리호가 노한 표정으로 소리쳐 물었다.

“육선기, 왜 남 장로를 죽였느냐?”

“나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왜 남 형을 죽인단 말이냐?”

“흥! 이 옷이 네 방 구석진 곳에서 나왔다.”

백리호가 구겨진 옷을 바닥에 던졌다. 옷에는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육선기가 툴툴거리며 백리호를 노려보았다.

“백리호. 나를 죽이고 싶거든, 좀 더 확실한 증거를 가져와라. 나는 피 묻은 옷을 침상 밑에 넣어둔 적이 없으니까.”

“끝까지 발뺌을 하겠다는 거냐?”

“그런 옷이 있으면 가루를 내든가 태워서 없애버리지, 왜 옷을 침상 밑에 넣어둔단 말이냐?”

잠깐 사이에 수십 명에 달하는 무사들이 구천대전의 앞마당에 모여들었다.

개중에는 간부급 인물도 상당수였다.

그리고 우문각도 있었다.

“잠깐만 기다리시오, 백리 전주.”

“총사, 육선기를 편들어주려거든 헛수고하지 마시오. 이 옷은 율검당의 무사들이 육선기의 침대 밑에서 찾아낸 거요. 그리고 하녀들도 이 옷의 주인이 육선기라고 증언했소.”

“뭔가 오해가 있을 수도 있지 않소? 백리 전주도 육 호법과 남 장로가 매우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다는 걸 잘 아시잖소?”

“그래서 더 괘씸한 거요. 친한 사이여서 방심한 사이 남 장로를 해친 것 아니겠소?”

그 말을 듣고 육선기가 대소를 터트렸다.

“와하하하! 백리호, 나와 남 형 사이는 네가 아무렇게나 말할 수 있는 것처럼 가벼운 사이가 아니니라. 남 형을 모욕하지 마라!”

“가증스러운 놈! 네가 정녕 죄를 뉘우치지 못하는구나!”

“지은 죄가 있어야 뉘우칠 것이 아니냐? 오히려 나보다는 네가 더 수상하구나! 그게 아니라면 왜 죄 없는 나에게 누명을 씌우는 것이냐?”

그때 장로인 노현이 말했다.

“육 호법. 정말 그대가 범인이 아니라면, 남 장로가 죽은 그 시간에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는가?”

둘러서 있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조연이 죽던 그 시간, 육선기가 청송림이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는 사실만 확인이 된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었다.

그런데 육선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말해보게, 그때 어디에 있었는가?”

또 다른 장로인 섬혼수(閃魂手) 정이청이 다그치듯 물었다.

육선기는 눈꺼풀을 파르르 떨며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그 당시 그는 분명히 청송림에 없었다. 은밀한 장소에서 세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으니까.

그들과 헤어진 시간은 자시 무렵. 하지만 어디에서 누구와 무엇 때문에 함께 있었는지 말할 수가 없었다.

“나는…… 혼자 있었소. 그러니 아쉽게도 증인을 세울 사람이 없소이다.”

그 말이 나오자마자 백리호가 몰아붙였다.

“흥! 경비무사의 말에 의하면 너는 남 장로가 살해당한 시간에 네 방에 없었다. 그렇다면 그 늦은 시간, 혼자서 어디에 있었단 말이냐?”

“생각할 것이 있어서 산책을 했다.”

“산책? 그래, 산책을 했겠지. 청송림에서 말이야. 그 안에서 남 장로를 만났을 것이고.”

“나는 청송림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그냥 산책을 했을 뿐이다.”

“성 안에서 한 시진이 넘도록 산책을 하는 동안 아무도 너를 못 봤단 말이지? 그걸 지금 믿으라고 하는 소리냐?”

육선기는 더 이상의 대항을 포기했다.

공손백 쪽에서 자신을 제거하기로 작정한 것 같다. 피하기 어렵다면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도 나쁠 것 없었다.

‘그래, 차라리 나 혼자 죽자.’

목숨을 포기하자 마음이 편해졌다.

“백리호, 죽이고 싶으면 죽여라. 아니, 원한다면 내 스스로 죽어주마. 하지만 이것만큼은 분명히 알아두어라. 나 육선기는, 탐욕을 위해서 신의를 헌신짝처럼 내던지는 어떤 개잡놈들과 다르니라.”

백리호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잘게 떨렸다.

육선기가 자신을 욕하고 있다는 걸 어찌 모를까.

그러나 곧 언제 그랬냐는 듯 안정을 되찾고 조소를 지었다.

“네가 아무리 떠들어봐야 소용없다, 육선기. 증거가 확실한데 누가 네 헛소리를 믿는단 말이냐?”

“잠깐만 기다리시오, 백리 전주!”

우렁우렁한 목소리와 함께 한 사람이 나섰다.

덩치가 곰처럼 큰 쉰 살가량의 중년인. 다름 아닌 거경당 당주 일검붕산(一劍崩山) 황대광이었다.

“옷이 육 호법의 방에서 발견되었다는 것만으로는 증거가 불충분하오. 옷이야 다른 사람이 넣어놓았을 수도 있지 않소?”

“육선기는 자신이 그 시간에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도 정확히 밝히지 못하고 있소이다.”

“나 역시 그 점은 의심스럽소. 하나 그 역시도 정말 혼자 산택하고 있었을 수도 있는 일이외다.”

백리호의 눈빛이 싸늘하게 번뜩였다.

“남 장로는 등을 찔렸소이다. 그것도 가까이서. 그 말인 즉, 등을 맡겨도 될 정도로 매우 가까운 사이란 뜻이 아니겠소이까? 저 육선기처럼.”

황대광도 더 이상 반박하지 못하고 얼굴만 붉어졌다.

그때였다.

“어? 이상한데요?”

장천운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백리호가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노려보았다.

우문각도 염려가 가득한 눈빛으로 장천운을 바라보았다.

‘천운이 왜 나서는 거지? 아는 것이라도 있나?

그 사이 장천운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피 묻은 옷을 집어 들었다.

백리호가 장천운을 향해 다그치듯 물었다.

“뭐가 이상하단 말이냐?”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날 옷에 피가 묻었을 거라고 말한 사람은 접니다.”

“나도 안다. 그런데 그게 어쨌다는 거냐?”

장천운이 손을 허리춤에 올리더니 앞으로 빠르게 내밀었다. 마치 칼로 누군가를 찌르듯이.

“이렇게 심장을 찔렀다면 피가 앞으로 확 튀었겠죠?”

사람들이 홀린 듯이 모두 그를 바라보았다.

“상흔을 조사했을 때, 범인이 심장을 뚫은 칼날을 비틀어서 뺀 것처럼 보였다고 하더군요. 그럼 여기 가슴이나 아래쪽, 그리고 칼을 잡고 있는 소매 쪽으로 많은 피가 튀었을 겁니다.”

장천운이 들고 있던 옷을 펼쳤다.

“그런데 이 옷에는 피가 등에도 묻었군요. 그것도 제법 많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뿜어진 피가 몸을 돌렸을 때 묻었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아니면 옷을 벗어서 뭉쳤을 때 묻었든지.”

노현이 반발하듯이 소리쳤다.

장천운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랬을지도 모르죠. 그런데 장로께서는 심장이 뚫려서 피가 튀는 것을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무창에서 흑도 건달 생활할 때 두어 번 봤습니다만.”

노현이 대답을 머뭇거리자, 황대광이 장천운을 재촉했다.

“하고 싶은 말이 뭔가? 어서 말해보게.”

“예, 당주. 심장이 뚫려서 피가 뿜어질 때 가까이 있으면 당연히 많은 피가 옷에 묻죠. 서있는 상태라면 주르륵 흐르기도 하고요. 게다가 그 주위로는 핏방울이 점점이 흩뿌려집니다. 그런데…….”

장천운이 옷의 이곳저곳을 펼쳐서 보여주며 말했다.

“이 옷을 보면, 묻은 피는 많은데 흐른 흔적은 많지 않습니다. 흩뿌려진 핏방울도 별로 없고요.”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옷으로 향했다.

“그리고 등 쪽 핏자국은, 그냥 묻었어요. 가슴 쪽에 뿌려진 피와는 전혀 상관없이. 옷이 겹쳐져서 묻었다면 어느 부분인가는 비슷한 흔적이 남게 마련인데, 보다시피 가슴과 등 쪽의 핏자국 모양은 일치하는 부분이 없잖습니까? 게다가 소매는 오히려 깨끗하군요.”

몇 사람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이상하군.”

“그러게 말이야.”

“뭐, 그렇다고 해서 이 옷이 범인의 옷이다, 아니다, 라고 제가 확실하게 판단할 자격은 없습니다만, 어쨌든 이 옷만으로 육 호법을 범인으로 단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어깨를 으쓱한 그가 백리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저 역시 범인을 잡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드린 말씀이니, 행여나 제가 끼어들어서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전주님.”

백리호는 장천운을 잡아먹을 것처럼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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