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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36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96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36화

동시에 비수가 벼락처럼 그의 등을 파고들었다.

“크윽! 네가……!”

“그냥 조용히 지내면 목숨은 건졌을 텐데, 왜 자꾸 나서나, 나서긴.”

상대는 콧등을 씰룩이며 나직이 말하고는 비수를 비틀어서 빼냈다.

구멍이 뚫린 곳에서 핏줄기가 뿜어졌다.

 

***

 

자정 무렵.

청송림을 가로질러 가던 벽호당 순찰조가 피구덩이에 누워 있는 시신을 발견했다.

그들은 시신의 신분을 확인하고 다급히 상부에 보고했다.

“뭐야? 남 장로가? 이런 빌어먹을!”

벽호당주 서호가 쌍소리를 내뱉으며 잠자리에서 뛰쳐나왔다.

그로부터 일각 후, 어둡던 청송림에 횃불이 밝혀지면서 대낮처럼 환해졌다.

서호는 살해현장을 그대로 놔둔 채 장로전과 호법전을 비롯해서 이곳저곳에 소식을 전했다.

성주가 죽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장로이자 소성주의 외숙부인 남조연이 살해당했다.

순찰과 경비를 책임진 그로선 죽을 맛이었다.

잠시 후, 벽호당 무사들이 둘러싼 가운데 소식을 들은 장로와 호법들이 모여들었다.

 

사마경도 소식을 듣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송하, 빨리 가서 장천운을 데려와.”

“예, 아가씨.”

연송하는 수혼대로 달려가던 도중에 장천운과 만났다.

수혼대도 소식이 전해지면서 비상이 걸린 상태였다.

“어? 잘 됐네. 소성주님이 데려오라고 해서 찾아가던 중인데.”

“어떻게 된 일이야?”

“청송림에서 남 장로님의 시신을 발견했데. 아무래도 살해당하신 것 같아.”

“범인은?”

“아직 모르나 봐.”

“가보자.”

장천운과 연송하가 소천전 앞에 도착했을 때 사마경이 소연추와 함께 구천호령의 호위를 받으며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차갑게 굳은 표정으로 장천운을 향해 슬쩍 고개만 끄덕이고 곧장 청송림으로 향했다.

 

장로와 호법 등 이십여 명이 사마경보다 먼저 와 있었다.

그들은 벽호당의 통제 하에 오 장 정도 떨어진 곳에서 상황을 지켜보았다.

사마경 일행이 도착하자 둘러섰던 사람들이 옆으로 비켜섰다. 벽호당 무사도 그녀의 앞은 막지 못했다.

사건의 중심지를 향해 걸어가는 사마경의 눈빛이 거세게 흔들렸다.

남조연은 여전히 시뻘건 피구덩이에 엎어져있었고, 율검당의 조사원들이 남조연의 주위를 세세히 살펴보고 있었다.

우문각은 그들 뒤에서 남조연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녀가 사람들을 뚫고 다가가자 몸을 돌렸다.

“오셨소, 소성주.”

그는 그 말만 하고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사마경의 등 뒤에서 장로와 호법 등이 웅성거렸다.

“장로가 성 안에서 살해당했다는 게 말이 되는 이야기입니까?”

“허어! 이거 참!”

“도대체 벽호당은 순찰을 어떻게 하고 있는 거요?”

사마경은 이를 악문 채 남조연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분노보다 슬픔과 절망감이 먼저 엄습했다.

사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보다 더 가까이서 자신을 돌봐주었던 사람이 외숙부였다.

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안아주고 장난치며 자신의 마음을 달래주었던 분. 그런 외숙부가 살해당해서 피구덩이에 쓰러져 있는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와는 또 다른 슬픔이 밀려들었다.

이를 악물고 참아보지만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이제 저 혼자만 남았군요.’

외숙부는 혼인도 하지 않았으니 이제 자신의 핏줄은 구천성 안에 아무도 없었다.

외숙부를 죽인 자는 그걸 노린 걸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죽으면 나이 어린 소녀가 어찌 견디겠는가.

 

한편, 장천운은 사마경이 안간힘을 다해서 버티고 서있는 동안 시신을 살펴보았다.

등에 핏덩이가 뭉쳐 있었다. 뒤에서 찔렸다는 뜻.

또한 남조연 같은 고수가 반항한 흔적도 없는 걸 보니 단숨에 절명한 듯했다.

‘아는 사람에게 당했어.’

그것도 매우 가까운 사람에게. 믿을 만한 사람에게.

그렇지 않다면 이 캄캄한 밤중에 청송림을 함께 걸었을 리가 없다.

‘남 장로가 당했으니 소성주를 따르던 사람들도 동요할 수밖에 없겠군.’

죽은 사람은 하나지만 그 파급효과는 엄청났다.

그러잖아도 소성주를 따르던 사람들이 이탈하던 중이었다. 오늘 사건으로 인해서 이탈이 가속화될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많이 놀랐겠구나.”

공손백이 백리호와 함께 그녀 곁으로 다가왔다.

“정말 어이없는 일이다. 장로가 살해를 당하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단 말이냐?”

공손백이 이마를 잔뜩 찌푸리며 말하자, 백리호가 차가운 어조로 거들었다.

“아무래도 무사들의 규율이 너무 흐트러진 것 같습니다, 사형.”

“그 일은 일단 이 상황부터 정리된 뒤에 얘기하는 게 좋겠다.”

그때 사마경이 물었다.

“범인에 대한 단서는 발견했나요?”

“조사가 끝나봐야 알겠다만, 아직은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한 것 같다.”

“외숙부는 저에게 아버지와 같은 분이셨어요. 반드시 범인을 잡아내야 해요.”

“그래야지. 꼭 잡아낼 거다.”

‘누구든 이 일과 관련된 자는 용서치 않을 거예요. 절대로.’

사마경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씹어 삼켰다.

구천성 안에는 남조연을 죽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당장 이곳에도 있고.

그들의 감정을 자극해봐야 좋을 게 없었다. 힘이 생길 때까지는 참고, 참고, 또 참는 수밖에.

“마음이야 많이 아프겠지만 어쩌겠느냐? 이미 벌어진 일인데. 이곳 일은 율검당과 벽호당에 맡기고 들어가 쉬어라.”

“외숙부께서 피구덩이에 누워 있는데 제가 어떻게 편히 쉴 수 있겠어요. 제 걱정은 마세요.”

그 사이 조사가 끝났는지 율검당의 조사원들이 몸을 일으켰다.

율검당주 강극효가 굳은 표정으로 공손백을 보며 말했다.

“사망 시간이 술시(戌時:오후7시~9시) 말(末) 전후라는 것. 길이 한 자 정도의 비수에 등을 찔려서 심장이 뚫렸다는 것. 현재로선 그 외의 사실을 알아낼 수 있는 단서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대백.”

“그런 정도로는 범인을 알아낼 수 없네.”

“술시 말쯤 청송림 주위를 오간 자에 대해서 탐문을 실시할 생각입니다. 운이 좋으면 누군가는 범인이 청송림에 들어간 것을 봤을 겁니다.”

“좀 더 노력해서 반드시 범인을 찾아내게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때였다.

“피 묻은 옷을 입은 자나, 그와 관계된 일을 본 사람에 대해서도 탐문을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자면, 범인이 옷을 파묻거나 태워 없앴을 수도 있으니까요.”

장천운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자, 백리호가 이마를 좁히고 물었다.

“범인의 옷에 피가 묻었을 거라 보는 것이냐?”

“심장이 뚫렸으니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을 겁니다. 범인은 남 장로님을 살해하는 일에 정신을 집중하느라 순간적으로 뿜어진 피를 피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더구나 청송림 안은 바깥보다 훨씬 더 캄캄해서 핏방울이 튀어도 잘 보이지 않았을 겁니다.”

우문각이 그의 말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 말도 일리가 있군. 강 당주, 저 친구 말대로 탐문할 때 그 일도 알아보시구려.”

“알겠습니다, 총사.”

“젊은 친구가 똑똑하군. 멋진 생각이야.”

공손백이 장천운을 칭찬했다.

장천운은 그의 칭찬이 조금도 반갑지 않았다.

자신의 능력으로 알아볼 수 있는 일이었다면 말할 이유가 없었다. 공연히 관심만 끌 테니까.

그러나 빠른 시간 안에 이천 명이 넘는 구천성의 무사들 조사하려면 율검당과 벽호당의 힘을 빌릴 수밖에 수 없었다.

‘제길, 앞으로 귀찮아질지 모르겠군.’

 

***

 

사마경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후에야 눈물을 흘렸다.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는 그녀를 보고 장천운은 마음이 착잡해졌다.

‘너도 참 안 됐다. 구천성의 소성주면 뭐해?’

“아가씨, 마음을 진정시키세요.”

소연추가 안쓰러운 눈빛으로 사마경을 보며 달랬다.

남조연이 사마경에게 어떤 존재인지 누구보다 그녀가 잘 알았다.

하늘이 무너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땅이 꺼진 셈이었다.

감정이 나락까지 떨어졌을 터. 무슨 말로 그녀를 달랠 수 있을까.

“천운.”

사마경이 눈물이 흐르는 눈으로 장천운을 바라보았다.

“예, 소성주.”

“율검당과 벽호당이 범인을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들은 못 잡을 겁니다.”

“안 잡는 것은 아니고?”

“그럴지도 모르죠.”

“만약 천운이 책임자라면? 천운이 그들을 지휘하면 잡을 수 있겠어?”

“허락하지 않을 겁니다.”

“몰래 조사한다면?”

“저희가 조사하면 당장 저들이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몰래 하려면 시간도 너무 오래 걸리고요.”

“시간은 상관없어. 방법을 생각해 봐. 난 외숙부를 살해한 놈을 꼭 잡고 말 거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설령 살해범의 정체를 알아낸다 해도, 범인이 저쪽 사람이라면 쉽게 내주지 않을 겁니다.”

“나도 알아.”

“그렇다고 해서 실망하실 것까지는 없습니다. 이 요지경 세상에서는 가끔씩 대낮에도 벼락이 치죠. 그 벼락이 범인의 머리 위로 떨어지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사마경이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천운 말이 맞아. 등 뒤에서 칼로 찌른 비겁한 놈은 하늘도 용서치 않을 거야.”

 

***

 

남조연의 살해범을 잡는 일은 지지부진하게 시간만 끌었다.

사마경은 외출을 거의 하지 않았다.

전에도 그랬지만 남조연이 살해당한 후로는 더더욱 소천전에서만 틀어박혀 지냈다.

사람들은 그런 사마경을 보고 수군거렸다.

 

“소성주가 겁을 먹었나 보군.”

“겁을 먹을 만도 하지. 남 장로가 등에 칼을 맞고 죽었는데.”

“겁 많은 소성주가 성주직을 수행할 수 있을까?”

“구천성을 이끌만한 사람은 구천대령주밖에 없다니까.”

“어쩌면 자진해서 성주직을 포기할지도 모르겠군.”

“구천성을 위해서는 차라리 그게 낫지 뭐.”

 

사마경은 귀도 닫고 입도 막고, 슬픔과 절망감을 이겨내기 위해서 수련에만 매달렸다.

그녀를 따르던 많은 사람들이 그런 사마경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상황을 반전시킬 마땅한 방법이 없으니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 동안 장천운은 흑월조의 수련을 도와주면서 비령각에 자주 놀러 다녔다.

할일 없어서 빈둥거리는 건달처럼 무기도 없이 털레털레 걸어서.

그가 총사 우문각의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수상하게 쳐다보긴 해도 그 이상 생각하진 않았다.

독고민 무리도. 심지어 백리우진조차도.

“장천운이 최근 들어서 부쩍 총사를 찾아가는군요.”

“그 자식은 원래부터 총사의 똥개잖아.”

“곧 끈 떨어진 신세가 될 사마경보다는 총사가 낫다고 판단한 거겠지요.”

“흑도 출신답게 잔머리를 굴리는군. 교활한 놈.”

“독고 형, 그놈을 언제까지 그냥 놔둘 겁니까?”

동겸이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독고민은 조소를 지으며 동겸을 바라보았다.

“걱정 말게. 그 동안은 지부가 공격당한 일과 남 장로의 죽음 때문에 손을 댈 수 없었을 뿐이야. 이제 조용해지고 있으니 슬슬 시작해보자고.”

“그 개자식의 머리를 박살낼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겁니다. 때가 되면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그 시각.

장천운은 자신의 머리가 남의 손에서 박살나는 줄도 모르고 우문각과 마주앉아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율검당과 벽호당은 조사하는 시늉만 하고 있다.”

“그래도 얻은 것이 없지는 않군요.”

“무슨 뜻이냐?”

“적어도 율검당과 벽호당이 대백의 사람이라는 것은 확인되지 않았습니까?”

“그런가?”

우문각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찻잔을 들었다.

반 년 전만 해도 강련곡을 막 나온 신출내기에 불과했던 장천운이 어느새 자신과 마주앉아서 구천성의 중대사를 논하고 있지 않은가.

봄비에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고사리라 해도 이렇게 빨리 클까 싶었다.

그런데도 구천성을 움직이는 자들은 아직 장천운의 위험성을 모르고 있었다.

그저 동겸을 박살낸 놈. 무공이 제법 뛰어난 놈. 소성주가 신임해서 호위를 맡긴 놈.

그 정도로만 알고 있을 뿐.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적당히 자신을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 점이 더 무서운지도 몰랐다.

이제 겨우 스물을 갓 넘은 놈이 천년 묵은 여우 찜 쪄먹게 행동하다니.

‘아냐, 어쩌면 나조차도 이놈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을지도…….’

문득 그 생각이 들자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한번 머릿속을 뒤져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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