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34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60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34화
“장례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 성의 무사들 마음이 결집되지 않았다. 그런 놈들 때문에 분위기가 흐트러지면 이익 될 것 없다. 어차피 당장 위협될 놈들도 아니니 조금 더 두고 보자.”
백리호가 그렇게 말하자 백리우진도 더 고집을 피우지 못했다.
“알겠습니다.”
“그보다 앞으로 사형의 잔심부름을 도와주도록 해라. 사형도 너를 잘 본 모양이니, 이 기회에 완전히 마음을 얻도록 해.”
“예, 숙부.”
“잊지 마라. 사형은 무서운 사람이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잊는 순간, 너에게 주어진 기회도 달아나버릴 거다.”
“명심하겠습니다.”
백리우진이 깊어진 눈빛으로 대답했다.
공손백의 심부름을 한다는 것. 그 의미를 그가 왜 모를까.
‘숙부께서 모르고 계시는 것이 있습니다. 이 백리우진, 숙부님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더 독합니다. 제 앞길을 막는 사람은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겁니다. 그게 누구든.’
***
그날 밤, 우문각이 사마경을 찾아왔다.
꺼칠해진 얼굴에는 주름이 전보다 배 이상 늘어나 있고, 안색도 병이 든 것처럼 창백했다.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눈빛만으로도 사람들을 떨게 만들었던 우문각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어서 오세요, 우문 숙부.”
“좀 더 일찍 찾아와야 하는데, 늦었소, 소성주.”
“아니에요. 우문 숙부가 함부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쯤은 저도 잘 알아요.”
“미안하오. 내 판단의 실수로 대백과 백리 전주에게 전권이 넘어가버렸구려.”
“그게 어찌 숙부의 실수 때문이겠어요.”
“조금만 더 빨리 대처했으면 주도권을 넘겨주지 않았을 텐데…… 입이 열 개여도 할 말이 없소.”
“어차피 백부는 백부고 저는 저예요. 백부께서도 저를 함부로 다루진 못할 거예요.”
“그거야 그렇소만……."
“우문 숙부께서 암중세력에 대해 나름대로 조사하던 것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어디까지 조사했는지 알려주세요.”
우문각이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사마중천의 죽음으로 인해서 모든 일이 원 위치로 돌아갔다.
자칫하면 오히려 사마경이 다칠 수도 있는 일. 망설여지지 않을 수 없었다.
“먼저 한 가지 약속을 해주시오.”
“말씀해 보세요.”
“내가 하는 말에 어떤 추측이나 예상을 가미하지 말고, 밝혀진 사실만을 바라봐야 하오.”
자신이 추측을 가미해서 엉뚱한 일을 벌일까 걱정되나보다.
사마경은 두 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그제야 우문각이 입을 열었다.
“들었는지 모르겠소만, 본 성에는 성주께 불충한 마음을 지닌 암중세력이 있었소. 최근에 생긴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독버섯처럼 본 성 안에 자리 잡고 있었소.”
그는 그 동안 자신이 양호와 곽채응, 용평 등을 조사한 일을 말해주었다.
“그렇게 해서 겨우 그들의 꼬리를 잡기 직전이었는데, 그만 성주께서…….”
성주가 죽는 바람에 모든 일이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암중세력의 태두로 의심했던 자들이 모두 모습을 드러내버렸으니까.
“그래도 그 덕분에 누구를 조심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잖아요?”
그건 그렇다.
하지만 우문각은 이익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 정도 이익을 얻기 위해서 치른 대가치고는 너무나 큰 희생이 뒤따랐다.
‘미안하오, 소성주. 차마 그 이야기는 지금 할 수가 없구려. 나중에 모든 것을 밝히겠소.’
그때였다. 사마경이 가슴 속 깊숙한 곳에 묻어두었던 의문을 불쑥 던졌다.
“숙부, 아버지는 정말 병 때문에 돌아가셨을까요?”
멈칫한 우문각이 눈을 들었다.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요?”
“상황이 너무 절묘하게 맞아 떨어져서 그래요.”
“나 역시 그 일에 대해서 의문을 품고 암암리에 조사해 보았소. 하지만 아쉽게도 의심할 만한 증거를 아무 것도 찾아내지 못했소.”
“하긴 숙부께서 오죽 철저하게 조사를 하셨겠어요. 답답해서 물어본 것뿐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내 어찌 소성주의 마음을 모르겠소? 확실한 답을 못줘서 미안할 뿐이오.”
“숙부께 하나만 더 묻겠어요.”
“말해보시오.”
“아직도 아버지께서 살아계실 때의 마음과 같은가요?”
“이 우문각은 성주께 소성주를 지켜주겠다고 맹세를 한 적이 있소. 목이 달아나는 한이 있어도 그 맹세는 지켜질 거요.”
“고마워요, 숙부. 그 말씀을 들으니 이제 좀 힘이 나는군요. 또 다른 말씀 하실 것은 없나요? 앞으로 제가 주의해야할 것이라든가, 하는 거요.”
우문각의 눈에서 이채 띤 눈빛이 반짝였다.
최근 들어서 사마경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끼긴 했다. 그런데 막상 대하고 보니 달라져도 너무 많이 달라진 듯했다.
전이었다면 그런 식으로 묻지 않았을 것이다.
남들의 의견에 상관없이 자기 마음대로 행하거나, 아니면 구천성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나 몰라라 외면하거나.
그게 바로 사마경이었다.
몇 달 전까지는. 장천운이 호위를 맡기 전까지는.
‘그 녀석, 정말 묘한 놈이란 말이야.’
장천운을 사령주의 손에서 살려준 일이야말로 자신이 몇 년 사이 가장 잘한 일 같았다.
그래서 다음 말을 꺼내기도 더 편했다.
“맹세를 하던 그날 성주께서 하신 말씀이 있소.”
“뭔가요?”
“장천운에게 선물을 주신다고 하셨소. 소성주를 잘 보필한 상이라며.”
“그래요? 뭘 주신다고 말씀하시진 않았나요?”
“성주께서 십여 년 전에 얻은 물건이 하나 있소. 얻을 당시 함께 있어서 나도 잘 아는 물건이오. 그걸 장천운에게 상으로 내릴 생각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소.”
“그게 뭔가요?”
“천하제일의가인 성수곡(聖手谷)의 보물, 대보신단(大保神丹)이오. 당시 성주께서는 대보신단 두 알을 받는 조건으로 성수곡에 대한 공격을 철회했었소. 그 중 한 알은 소성주에게 복용시켰는데, 한 알이 아직까지 남아 있었던 것 같소.”
***
사마경은 우문각이 돌아가고 반 시진쯤 지난 후 소연추와 함께 방을 나서서 구천무원으로 갔다.
원세명이 이끄는 구천호령이 주인 없는 구천무원을 지키고 있었다.
원세명은 뜬금없이 찾아온 사마경을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맞이했다.
“어쩐 일이십니까, 소성주?”
“아버지 방에서 뭐 좀 찾아볼 게 있어요. 유모, 내가 나올 때까지 아무도 방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해.”
원세명은 그녀를 막지 않았다. 이유도 묻지 않았다.
아직 정식 성주가 되지 못해서 구천무원을 사용할 수는 없지만, 그 안의 물건은 사마경의 소유나 마찬가지였다.
선친의 방으로 들어간 사마경은 침상 앞에 섰다.
침상 옆에는 오행과 연관된, 색이 각기 다른 다섯 개의 줄이 매달려 있었다.
녹색(목), 빨간색(화), 노란색(토), 흰색(금), 검은색(수).
그 줄을 바라보는 사마경의 눈꼬리가 가늘게 떨렸다.
열 살 때였던가? 아버지는 그 줄을 가리키며 오행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다.
단순히 오행에 대해서 가르치고자 함이 아니었다. 비고(祕庫)를 여는 방법이 오행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일찍, 혼자서 이 자리에 설 줄 누가 알았으랴.
-어서 열어봐라. 순서는 잊지 않았지?
마치 어디선가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사마경은 손을 뻗어서 줄을 잡았다. 손끝이 잘게 떨렸다.
‘예, 잊지 않았어요.’
이를 악다문 그녀는 과거 선친이 알려주었던 방식대로 오행상생의 배열에 따라서 줄을 두 개씩 잡고 천천히 당겼다.
목생화(木生火), 화생토(火生土) 토생금(土生金), 금생수(金生水), 수생목(水生木).
줄을 한 번씩 잡아당길 때마다 벽 안쪽에서 철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다섯 번에 걸쳐서 줄을 당기고는 옆에 있는 커다란 장식장을 밀었다.
장식장이 거의 소리를 내지 않고 천천히 돌면서 시커먼 통로가 나타났다.
선친의 비밀 무공수련장과 비고로 가는 통로였다.
그녀는 한쪽에 있는 초롱에 불을 붙이고 통로의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계단을 하나하나 밟으며 내려갈 때마다 가슴에 두텁게 쌓였던 해묵은 앙금이 한 꺼풀, 한 꺼풀 떨어져나가면서 그 자리로 먹먹한 감정이 밀려들었다.
좀 더 일찍 올 수 있었는데도 이제야 왔다.
아버지가 있을 때 왔으면 더 나았을 텐데…….
***
사마경이 작은 함을 불쑥 내밀었다.
“받아.”
장천운은 의아한 표정으로 함과 사마경을 번갈아보았다.
“뭡니까?”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주려고 했었대. 습격에서 공을 세웠다고.”
작은 함에 코를 바짝 댄 채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아본 장천운이 눈빛을 반짝였다.
“약입니까?”
“그래. 이건 아버지가 주려고 한 거니까 천운이 복용해. 조원들 것은 따로 줄 테니까.”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소성주.”
“그리고 이건 내가 주는 선물이야.”
사마경이 요대처럼 생긴 물건을 내밀었다.
“그건 뭡니까?”
“연검이야.”
웬 연검?
장천운은 일단 받아서 살펴보았다.
일반 검보다 작은 검병에는 흑룡이 새겨져 있었고, 검신에서는 은은한 청광이 흘렀다.
검집은 뭔지 모를 거무스름한 가죽으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무척 부드러웠다.
무게가 검치고는 가벼워서 허리띠처럼 두르면 괜찮을 듯했다.
검집의 입구부분에 달려 있는 고리를 겉면에 촘촘히 달려 있는 둥근 고리와 연결해서 허리에 맞게끔 길이를 조절하게 되어 있었다.
검병과 검신 사이에 있는 검격도 크지 않아서 거치적거리지는 않을 듯했다.
“비상시에 사용할 무기 하나쯤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주는 거야. 겉옷 안에 차면 괜찮을 것 같아.”
장천운도 연검이 마음에 들었다.
“감사합니다, 소성주.”
다음 날 아침.
장천운은 흑룡조원들에게 누런 물을 한 사발씩 돌렸다.
“이게 뭐야, 조장?”
“어, 몸에 좋은 거야. 한 방울도 남기지 말고 다 마셔.”
추소철을 비롯한 조원들은 의아해하면서도 일단 마시고 봤다.
약 냄새가 나는 걸 보니 어디서 몸에 좋은 약이라도 구해왔나 보다 했다.
게다가 조장의 저 아까워하는 표정 좀 봐.
마셔서 절대 손해 볼 일은 없을 듯했다.
장천운은 약을 마시는 조원들을 보면서 입맛을 다셨다.
혼자 복용하는 것은 아무래도 양심에 찔렸다. 밤새 이런저런 고민을 한 그는 눈 딱 감고 신단을 반으로 쪼갠 다음 단지에 물을 끓여서 풀었다.
운공조식을 해보니 절반만으로도 약효가 상당히 강했다.
비록 열로 나누긴 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될 듯했다.
“다 마셨으면 운공조식을 해서 약의 기운을 받아들여.”
***
강호에서 변화가 일기 시작한 것은, 사마중천이 죽고 한 달 보름쯤 지난 칠월 말이었다.
제일 먼저 장강팔련이 장강에서 금선장(金船莊)의 배를 공격했다.
안경의 금선장은 구천성 십이지부 중 하나로 구천성의 중요한 자금 창구였다.
장강팔련이 그들의 배를 몰라봤을 리는 없을 터. 그렇다면 알고도 공격했다는 뜻이었다.
다시 말해서 장강팔련이 구천성을 우습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공손백은 보고를 받은 즉시 안경으로 무사 삼백을 파견했다.
하지만 구천성의 권역을 침범하기 시작한 자들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서 숙주 일대를 장악하고 있는 선풍문과 십이지부 중 하나인 부양의 철한방이 큰 싸움을 벌였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공손백은 이번에도 이백여 명의 무사대를 파견했다.
그런데 금선장과 철한방으로 지원 나간 무사대는 대부분 소성주를 따르던 사람들이었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흐르자 구천대전에서 대회의가 소집되었다.
간부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각자의 의견을 내놓으며 웅성거렸다.
“시간이 갈수록 다른 곳에서도 본 성에 대한 공격이 시작될 겁니다. 그 이전에 본때를 보여줘야 합니다.”
“본 성의 가장 큰 문제는 성주의 자리가 공석이라는 겁니다. 대백께선 어찌 생각하십니까?”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대백, 이대로는 안 됩니다. 특단의 조치를 내려주시지요.”
공손백은 간부들의 뜻을 알면서도 모른 척 말했다.
“본인 역시 모르는 바는 아니오. 그러나 소성주는 아직 본 성을 이끌기에 경험도 부족하고 나이 역시 어리오.”
그때 광혈단 단주인 광혈검마 탕추강이 넌지시 말했다.
“대백, 소성주가 부족하다면 대백께서 잠시 성주직을 대행해도 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