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3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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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84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32화
“갖고 놀려고 하겠죠.”
“음, 그건 너무 직설적인 표현인데?”
“멋 부린 대답을 원한다면 해드리죠.”
“아냐, 됐어. 후우, 천운 말이 옳아. 분명 그러겠지.”
사마경은 장천운의 말뜻을 잘 알았다. 너무나 잘 알아서 탈일 정도로.
그래서 겁도 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지금처럼만 하시면 됩니다.”
소연추가 애틋한 눈빛으로 사마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장천운은 몇 마디 보태려다가 그냥 입을 다물었다. 아직 그 말을 하기에는 일렀다.
“솔직히 겁이 나. 아마 백부는 내가 순순히 성주가 되는 걸 바라지 않을 거야.”
“그러니 더 당당하게 대해야 합니다, 아가씨.”
“백리 숙부는 물론이고 대장로도 백부 사람이야. 구천성 간부 중 반에 가까운 사람이 백부를 따르고 있어. 그리고 나머지도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어. 실제로 우리 쪽 사람은 많이 쳐줘도 반의반밖에 안 된단 소리야.”
“공손 장로께서도 소성주를 힘으로 밀어낼 순 없습니다.”
“그건 나도 알아. 아니었다면 아버지 장례도 치를 수 없었을 걸?”
사마경은 상황을 정확히 꿰고 있었다.
장천운으로선 다행이었다. 알지도 못하고 설치면 골치깨나 아팠을 텐데.
“일단 두고 보죠.”
“그런 말 누가 못해?”
사마경이 장천운을 째려보고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내일 우문 숙부를 만나서 상의해봐야겠어. 그분이라면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그건 안 됩니다.”
“왜? 우문 숙부가 싫어? 천운은 그분이 추천한 사람이잖아?”
“총사께서 왜 지금까지 소성주를 개인적으로 만나러 오지 않고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사마경이 티 하나 없는 이마를 찌푸렸다. 그런 모습은 오랜만이었다.
아니, 처음인가?
“의심을 사서 좋을 것 없습니다. 서두르는 것도.”
“좋아, 인정. 그럼 언제까지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아?”
“때가 되면 총사께서 알아서 다가올 겁니다.”
“너무 오래 걸리면 안 돼. 무작정 기다리는 건 싫어.”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열흘. 그 안에 아무 연락도 없으면 천운이 가봐.”
“제가요?”
“왜, 싫어?”
“가라면 가죠. 대신 제 부탁하나만 들어주십시오.”
“뭔데?”
“아는 사람 몇을 수혼대로 데려올까 합니다.”
“혹시 옛날 친구들?”
눈치가 제법이다.
혼자 소천전에 꿍하니 있으면서 눈치만 늘었나?
어쨌든 그 정도 눈치면 공손백과 백리호의 압박에 무작정 대들진 않을 것 같다.
그 점도 다행이었다.
“예, 소성주.”
“호위 때문이라면 걱정할 것 없어. 이제부터는 구천호령이 나를 지킬 거니까.”
“저도 압니다. 하지만 만약의 상황에 대비하는 것도 나쁘진 않죠. 구천호령이 항상 소성주의 곁에 있을 수는 없잖습니까?”
“그건 그러네. 좋아, 그 일은 천운이 알아서 해. 냉 대주에게는 말해둘 테니까.”
“감사합니다.”
“아! 차라리 믿을 만한 사람들로 조를 하나 따로 만들면 어때? 어차피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쳐서 수혼대도 정리를 해야 할 텐데. 조장은 천운이 하고.”
소연추가 먼저 찬성했다.
“좋은 생각입니다.”
장천운으로선 바라던 바였다. 조장이 되면 정말 똥개처럼 하루 종일 졸졸 따라다니지 않아도 될 테니까.
“명대로 하죠.”
그때 방문 밖에서 오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성주, 천혼전의 전주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방안의 공기가 한빙진(寒氷陣)이라도 펼쳐진 것처럼 갑자기 싸늘하게 식었다.
“안으로 모셔요.”
사마경의 목소리에서도 한기가 풀풀 날렸다.
곧 문이 열리고 천혼전주 백리호가 안으로 들어왔다.
***
드디어 길고 긴 장례가 끝났다.
찾아온 손님이 수만 명이나 되었다. 구천성을 구경하기 위해서 찾아온 어중이떠중이도 많았지만, 강호에서 내로라하는 고수들 수만 해도 천 명이 넘었다.
그야말로 강호의 전 고수들 중 반은 찾아온 듯했다.
그날 석양 무렵.
구천대전에 구천성의 고위간부들이 모두 모였다.
스물여덟 명의 장로, 열여덟 명의 호법, 이령 이각 이대 사전 오단 팔당의 주인들, 그리고 십이지부의 지부장들까지.
“장례 기간 동안 수고들이 많으셨소. 이제 내일부터는 새롭게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정신을 가다듬고 각자의 임무에 충실해주길 바라겠소.”
공손백의 목소리가 대전에 울려 퍼졌다.
목소리는 잔잔해도 힘이 실린데다 기이한 울림이 있어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소성주께서는 당분간 업무를 파악해야하는 만큼 직접적인 명령을 내릴 수 없을 거요. 특별한 일이 아니면 장로와 호법들이 상의하여 처리하도록 하겠소.”
몇 사람이 마음에 안 드는 표정이었지만 대놓고 말은 못했다.
공손백이 마저 말을 이어 갔다.
“그리고 내후년 정월, 소성주의 나이 스무 살이 되면 정식으로 성주의 위(位)에 올라 본 성의 모든 업무를 총괄하시게 될 거요.”
간부 중 상당수가 웅성거렸다.
결국 성주의 자리를 일 년 반가량 비워둔단 말이 아닌가.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성주의 자리에 오른 후 업무를 파악해도 될 일 아닌가?
일부는 그런 의문에 찬 표정이었다.
반면 그들과 다른 마음을 가진 자들도 있었다.
일 년 육 개월 후라 해도 겨우 스무 살이다.
그것도 여자.
이 험한 강호에서 스무 살 여성주를 모시고 무슨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차라리 공손백이 성주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 백번 나았다.
하지만 아무도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다.
자칫하면 찍혀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테니까. 어차피 일 년 육 개월 후에 주인이 바뀔 거라는 걸 아니까.
어쩌면 그 안에 바뀔 수도 있고.
사마경도 이미 백리호에게 들은 터라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공손백과 백리호가 정말로 일 년 육 개월 후에 자신을 성주의 자리에 앉힐 것인지가 더 궁금했다.
‘내기를 하라면 내 모든 것을 걸 수 있어. 당신들은 절대 나를 성주의 자리에 앉히고 싶지 않을 거야.’
마음 같아서는 이 자리에서 포기를 선언하고 싶었다.
모든 것을 순순히 공손백에게 다 넘겨줘버리고 마음 편히 살고 싶었다.
구천성이 자신에게 무슨 소용이람? 골치만 아플 뿐이지.
그런데 저승에 가있는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공손백이 그녀를 돌아다보았다.
“한마디 하지 않겠느냐?”
명령에 가까운 말투. 그녀는 내기에서 자신이 이길 확률이 십 중 십에 가깝다는 걸 확신했다.
목에 힘을 준 그녀가 말했다. 약간의 오기가 섞인 목소리로.
“제가 여러분 마음에 들지 않을 거라는 점, 저도 잘 알아요. 하지만 최소한 삼 년 안에 여러분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어요. 기대해도 좋아요!”
***
방으로 돌아간 후 장천운이 물었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좀 화가 났거든. 나는 꼭두각시처럼 살기는 싫어.”
“저들이 더욱 독기어린 눈빛으로 지켜볼 겁니다.”
“나도 알아. 솔직히, 말을 하고나서 조금 후회도 되었어. 하지만 모래에 물을 쏟은 이상 주워 담을 수도 없잖아?”
“그래도 아주 나쁘진 않았습니다.”
“정말?”
“간부들 중 몇은 눈빛이 달라지더군요. 그 정도면 안 좋아진 점과 상쇄되기에 충분합니다.”
“다행이네.”
“대신 앞으로는 그러지 마십시오. 미리부터 괜한 적을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요.”
“알았어. 내가 다른 것은 몰라도 참는 데는 선수야.”
그 점은 장천운도 인정했다. 자신의 감정을 십 년 동안이나 억눌러온 사마경이 아닌가.
“내일부터는 무공수련도 더 열심히 하셔야 합니다, 아가씨.”
이번에는 소연추가 말했다.
사마경은 전과 달리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럴 생각이야. 성주가 되어서 남보다 약하면 안 되잖아.”
***
다음 날 아침.
성주의 호위를 담당하는 구천호령의 두 령주가 정식으로 사마경에게 인사를 올렸다.
구천호령의 총 인원은 열여덟. 그 중 반은 절정고수였고 나머지도 그에 근접한 고수들이었다.
아홉 명씩 둘로 나뉘었으며 두 명의 령주가 여덟 명씩 지휘했다.
“일령주 영호관이 삼가 소성주께 인사 올립니다.”
“이령주 원세명이 소성주께 인사 올립니다.
영호관은 마른 듯 보이는 사십대 초반의 중년인이었다. 정확한 나이는 마흔둘. 그는 지난 십 년 동안 사마중천을 최측근에서 호위한 절정고수였다.
각진 얼굴, 강인한 인상을 지닌 원세명은 마흔한 살이었는데, 오 년 전부터 이령주를 맡고 있었다.
사마경도 그들을 어릴 때부터 봤던 터라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성주님께서 그리 되신 것에는 저희들의 책임도 없다할 수 없을 것입니다. 참으로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소성주.”
영호관이 비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마경은 쓴웃음을 지으며 짐짓 냉랭한 투로 답했다.
“저도 알아요. 하지만 아버지는 병으로 돌아가셨어요. 신의라 불리는 황 당주조차 치료하지 못하셨지요. 구천호령에게는 책임이 없으니 자책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저 죄송할 뿐입니다.”
“어차피 아버지는 돌아가셨어요. 이제는 앞으로가 더 중요해요. 무슨 말인지는 두 분이 더 잘 아실 거예요.”
“목숨을 바쳐 소성주를 지키겠습니다.”
사마경은 면사 위의 눈으로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공손백과 백리호, 나극이 장악하다시피 한 구천성에서 믿을 만한 사람을 꼽으라면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눈앞의 두 사람이었다.
‘나도 당신들이 나를 지켜주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당신들의 힘으로는 힘들 거예요.’
더구나 그들은 아직 모두가 나서서 그녀를 호위할 수 없었다. 성주의 위에 오르기 전까지는.
“일단 저희 일령만이 소성주를 호위할 것입니다. 구천무원에 대한 경비를 다른 자들에게 맡길 수 없음이니 이해해 주십시오.”
“나도 알아요. 그런데 구천무령은 왜 안 보이는 거죠?”
“저희도 모릅니다. 성주께서 돌아가시기 전부터 보이지 않았습니다.”
구천무령(九天武靈) 철무. 사마중천의 그림자.
그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극소수다. 그나마도 이제 사마중천이 죽었으니 그를 아는 사람은 구천호령과 사마경 외에 두어 명뿐.
‘철무 아저씨는 명령이 없으면 자리를 비우지 않는 분이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뭔지 모를 명령을 내렸다는 말인데…….’
도대체 무슨 명령이기에 아직도 나타나지 않는 걸까? 아버지가 돌아가신 걸 모를 리 없을 텐데.
사마경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어쩌면 철무 아저씨가 중요한 열쇠를 갖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
사마경은 정말 열심히 무공을 익혔다.
사실 그녀는 나이에 비해서 무척 높은 공력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머리도 좋았고, 체격적인 자질도 뛰어났다. 그 동안 수련을 게을리 해서 뛰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였을 뿐.
장천운은 그녀가 무공과 업무를 익히는 동안 자신의 일을 처리했다.
제일 먼저 한 일은 사람을 모으는 일이었다.
그 일을 위해 풍혼단을 찾아간 그는 단주인 엽가승을 직접 만났다.
풍령도(風靈刀) 엽가승. 마흔다섯 살의 그는 고집이 셌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옳다고 말할 수 있는 자.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확실한 성주파 중 하나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누구도 자신들의 편이라고 할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장천운을 대하는 말투가 왠지 삐딱했다.
“소성주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네가 여긴 어쩐 일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