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31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77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31화
공손백은 단순하게 구천성의 성주가 되기 위해서 일을 벌인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그런 생각이었다면 전쟁을 생각했겠지.
그가 자칫 실수하면 패할 수도 있는 지루한 싸움을 계획한 이유는 하나뿐이다.
거대한 구천성을 통째로 삼키겠다는 뜻. 상처 하나 없이!
그럼으로써 자신의 길고긴 복수를 마무리 하겠다는 뜻 아니겠는가.
십오 년 전의 치욕에 대한 완벽한 복수!
‘그렇군. 내가 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어. 그는 장로전에 들어간 십이 년 전부터 복수를 꿈꿔왔던 거야. 천천히. 완벽하게. 그리고 나극을 내세웠던 거지.’
패배를 인정한 우문각은 완벽을 추구하려는 상대로 인해서 하나의 희망을 보았다.
공손백은 한창 젊었을 때 완벽을 추구하는 걸 즐겼다. 이번 일 역시 그다운 진행이었다.
‘아마 앞으로도 모든 일을 완벽하게 마무리 지으려 하겠지.’
그러나 공손백은 완벽할지 몰라도, 그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은 완벽할 수가 없다.
둘 사이에 틈이 생기면 다른 때보다 간극이 더욱 큰 법.
뚫고 들어갈 방법도 있으리라.
‘내일은 내가 직접 황사중을 조사해봐야겠어.’
공손백과 나극이 연관되어 있다면 그들의 수족들이 하는 조사는 믿을 수가 없었다.
마음을 정리한 우문각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대백. 그럼 지금 즉시 소성주께 전령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새벽녘, 우문각은 자신이 공손백을 잘못 판단했다는 걸 또 한 번 절감했다.
동이 트기도 전에 득달같이 달려온 정유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각주, 조사를 마치고 거처로 돌아갔던 황 당주가 유서를 남기고 자결했다 합니다.”
벌떡 일어선 우문각은 눈을 부릅떴다.
“뭐야? 황사중이 자결을 해?”
“황사중의 제자인 안효산이 새벽에 마실 차를 들고 방에 들어갔다가 발견했는데, 성주의 죽음에 자신의 책임이 크다는 유서를 써놓고 스스로 심맥을 끊었다고 합니다.”
우문각의 부릅뜬 눈매가 잘게 떨렸다.
누군가가 그의 입을 막기 위해서 죽인 걸까?
그럴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공손백이나 나극일 것이고.
‘빌어먹을! 무리를 해서라도 황사중을 먼저 만났어야 했어!’
14장: 흑월조(黑月組)를 만들다
동이 트기 직전에 전해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은 대운사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사마경은 사마중천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듣고 몸이 떨렸다.
슬픔이라는 생경한 감정이 밀물처럼 밀려들면서 눈물이 고였다.
아버지 때문에 이런 감정에 휩싸일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원망만 남았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버지에 대해서는 모든 감정이 말라붙었을 거라 여겼는데…….
아니었나보다. 가슴 저 깊은 곳에 잠들어 있었을 뿐.
장천운과의 대화 때문에 잠들어 있던 감정이 깨어난 걸까?
“유모, 돌아갈 거야. 최대한 빨리 준비하라고 해.”
“예, 아가씨.”
사마경은 즉시 대운사를 출발했다.
오백여 명에 이르는 무사들이 그녀의 마차를 호위하고 구천성으로 향했다.
장천운은 마차에 바짝 붙어서 따라갔다.
‘젠장! 결국 그것 때문이었어.’
불안했던 예감의 정체. 그것은 성주의 죽음이었다.
구천성에 들어온 지 몇 달 되지도 않아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정말 빌어먹을 일이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일이 벌어질 것인가.
소성주를 노리는 자들도 많겠지? 성주직을 노리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고.
개나 소나 소성주 위에 군림하려고 목에 힘을 줄 것이 뻔하다.
저 겉만 만년빙처럼 강하게 보일 뿐, 속은 살얼음처럼 여린 소녀를 향해.
‘약속하마, 사마경. 어떤 새끼든 너를 못 건드리게 해주겠어.’
이 귀호 오빠만 믿어라!
갈 때 이틀 걸렸던 길을 한나절 만에 주파했다.
석양이 질 무렵, 사마경이 탄 마차는 구천성 정문을 통과했다.
일천이 넘는 무사들이 대연무장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차가 들어서자 무사들이 일제히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또각, 또각, 또각. 쿠르르르르.
말발굽 소리와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청석이 깔린 대연무장에 규칙적으로 울렸다.
마차는 대연무장을 가로질러서 천경전을 앞두고 멈춰 섰다.
곧 사마경이 소연추, 남조연, 육선기와 함께 마차에서 내렸다.
공손백과 백리호, 나극, 여철숭, 우문각 등 최고위급 간부 수십 명이 그녀를 맞이했다.
모두가 굳은 표정이었다.
“아버지는 어디에 모셔져 있죠?”
사마경이 차갑게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바람에 날리는 마른 풀잎 같은 음색, 황량한 들판에 서있는 석상의 눈처럼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눈빛.
그녀의 성격을 익히 알고 있던 사람들마저 사마경의 태도에 순간적으로 표정이 굳었다.
“구천대전에 모셨다. 내일부터 보름 동안 정식 장례를 치를 예정이다.”
공손백이 침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마경이 그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백부님을 뵈어요. 사정이 사정인 만큼 이 이상 예를 취할 수 없으니 이해해 주세요.”
“내 어찌 모르겠느냐? 안으로 들어가자.”
사마경은 최고위급 간부들 사이로 걸음을 옮겼다.
장천운도 바늘 가는데 실 가듯이 바짝 뒤따라갔다.
“너는 따라오지 않아도 된다.”
장로 중 하나가 장천운을 막았다.
사마경이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놔두세요. 그 사람은 앞으로 언제 어느 때든 제 옆에서 저를 지킬 거예요.”
***
사마경은 아버지의 주검이 든 관 앞에서 한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움켜쥔 주먹 안에서 손가락이 손바닥을 뚫을 것처럼 깊숙이 파고들었다.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이를 악문 채 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하면서 참아냈다.
얼굴을 가린 면사 덕분에 그녀의 표정에서 속마음을 엿본 자는 거의 없었다.
‘아버지가 정말 미워요. 저에게 아무런 기회도 주지 않고 이렇게 가시는 법이 어디 있어요. 왜 또 저를 혼자로 만들어요!’
“황 당주 말에 의하면, 몇 년 전부터 몸에 이상이 있었나 보더라.”
공손백이 한 걸음 뒤에서 말했다.
이미 긴급 전령을 통해 들었던 이야기다.
자신도 아버지가 약을 복용하고 있다는 말을 듣긴 했었다. 평소 표를 내지 않아서 그저 그런가보다 했을 뿐.
설마 절대고수의 반열에 오른 아버지가 병 때문에 이리 될 줄 어찌 알았으랴.
“황 당주님은 어디 계신가요? 아버님의 병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어요.”
“후우, 그게…… 성주의 죽음을 자신의 탓이라 생각하고 그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황사중이 자결했다고?
평소라면 의문을 품었을 일이었다. 그러나 부친의 죽음 때문에 슬픔에 잠겨 있던 사마경은 더 깊게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장례에 대해서는 백부님과 숙부님께서 주관해 주세요.”
“알았다. 너무 상심하지 말고 마음부터 다스려라. 너는 개인으로서의 한 사람이기 이전에 구천성의 차기 성주니라.”
차기 성주.
사마경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나올 뻔했다.
말만 들어도 어깨가 짓눌렸다.
부녀간의 사이보다 구천성이 우선이란 건가?
백부가 그런 생각이라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
아버지는 그 동안 이 무게를 어떻게 견뎠을까?
병을 감춘 것도 이해가 되었다. 밝혔다면 당장 이리 떼들이 이빨을 드러냈을 것이다.
그리고 기회만 되면 물어뜯기 위해서 달려들었겠지.
밖에서든, 안에서든.
아버지는 당신이 쓰러졌을 때 딸이 어떤 일을 당할지 몰라서, 가슴에 들어찬 커다란 바위의 무게를 홀로 견디며 살아오셨을 것이다.
‘아버지는 바보예요. 그리고 저도 바보고요.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아셨으면 해요. 제가 비록 바보긴 하지만 아버지의, 천궁마신의 딸이라는 걸요. 그러니 걱정 마시고 이제 편히 쉬세요.’
사마경은 관속의 아버지를 보면서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기다란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참았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
사마중천에 대한 장례는 보름에 걸쳐서 성대하게 치러졌다.
반경 이천 리 이내에 있는 강호 각 문파의 주인과 명숙들이 모두 몰려왔다.
정사마가 따로 없었다.
원수지간인 자들이 마주치기도 했지만 구천성 내에서는 감히 싸울 수가 없었다.
공손백은 장례를 주관하면서 자신의 등장을 만천하에 알렸다.
천하는 공손백의 섭정(攝政)을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였다.
공손백과 사마경이 나란히 서있으면 사마경에게는 공경을, 공손백에게는 복종의 뜻을 밝혔다.
호북의 패자인 천은방 방주 은왕(銀王) 호경담이 도착한 것은 장례 칠 일째 되던 날이었다.
“성주의 죽음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오. 소성주께서도 얼마나 상심이 크시겠소?”
호경담이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나이 육십이 다 된 그는 닳고 닳은 노호(老虎)였다. 안타까움이 잔뜩 배어 있는 말투였지만, 눈빛은 철없는 손녀를 보는 듯했다.
사마경은 모른 척하고 의연한 자세로 대했다.
“먼 길을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나이 어린 소성주께서 어떻게 구천성을 이끄실지 걱정이 많았는데, 공손 대협이 계신 걸 보니 마음이 놓입니다.”
공손백은 담담한 표정으로 그 말에 답했다.
“저는 그저 소성주가 커나가는 것을 지켜볼 뿐이지요.”
사마경은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
그 후 장강팔련의 여덟 련주 중 다섯이 사흘에 걸쳐 도착했다.
그들은 사마경에게 간단히 인사한 후 공손백, 백리호, 나극 등과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백검문 문주 태산검제(泰山劍帝) 설태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삼혈방(三血幇), 마곡(魔谷), 귀마궁(鬼魔宮) 등 마도문파의 주인들조차 사마경보다는 공손백에게 더 신경 썼다.
한편, 장천운은 사마경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오른쪽은 소연추가, 왼쪽은 장천운이.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그를 사마경의 그림자라고 불렀다. 일부는 ‘소성주의 똥개’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물론 소성주의 똥개라고 부르는 사람은 대부분 청년들이었다.
독고민과 서궁, 그리고 동겸 같은 자들.
장천운은 그들의 말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은 똥개가 싼 똥만도 못한 자들이었으니까.
사실 그들에게 신경 쓸 정신도 없었다.
구천성의 차기 성주가 될 사마경이다. 언제 누가 그녀를 향해 검을 들이댈지 아무도 몰랐다.
장천운은 사마경을 호위하면서 머리도 열심히 굴렸다.
오랜 기간의 장례는 지루했지만 나름대로 얻은 것도 많았다. 많은 사람들을 머릿속에 담을 수 있었으니까.
그것도 강호에서 이름만 대면 존경의 눈빛을 짓는 사람들이거나, 두려움에 질린 표정을 짓게끔 하는 자들을.
그들이야 사마경 곁에서 어슬렁거리는 새파란 호위무사에 대해서 별 다른 생각을 하진 않았지만.
어쨌든 많은 사람을 보고 그들의 속마음을 관찰한 장천운은 십 년 걸려서 얻을 경험을 단 십여 일 만에 얻었다.
귀호가 진정한 귀호답게 큰 시간치고는 무척 짧았다.
“백부가 어떻게 나올 거라고 생각해?”
장례 마지막 날 밤, 사마경이 물었다. 목소리에 힘은 없었지만 그래도 많이 안정된 모습이었다.
장천운은 나름대로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