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28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80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28화
머리가 터질 것 같은 통증.
눈앞이 흐릿해지고 머릿속에서 별빛이 반짝이는 듯했다.
그는 앉은 자세에서 태사의의 손잡이를 움켜쥐고 움직이지 않았다.
손잡이를 움켜쥔 손이 바르르 떨렸다.
그로부터 천천히 스물을 셀 시간이 지나자 통증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릿했던 눈앞도 서서히 밝아지면서 사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흐으으읍, 후우우우우.
소리 없이 숨을 길게 들이쉬고 내쉰 그는 이를 악물었다.
‘점점 더 심해지는군.’
이번과 같은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이 년 전 어느 겨울날이었다.
처음에만 해도 단순한 두통인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통증이 심해졌다.
육 개월쯤 지났을 때 결국 의약당 당주인 황사중을 은밀히 불러들여서 진맥을 청했다.
그제야 자신의 몸에 이상이 있다는 걸 알았다. 치료하기 힘들다는 것도.
‘우문각. 그대는 서운해 할지 몰라도 나는 그대조차도 믿지 않는다네.’
자신의 몸에 생긴 이상이 자연적으로 생긴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서 고의적으로 심어진 것인지 아직 확실치 않았다.
판단이 애매해서, 천하를 통틀어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명의 황사중조차 확실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래서 더 후자를 의심했다.
황사중이 원인을 밝혀내지 못한다는 것은 정상적인 병이 아니라는 뜻 아닌가.
사실이라면 누가 감히 자신의 몸에 손을 쓴 걸까?
‘언제?’ ‘왜?’라는 고민은 할 것도 없었다.
이유야 하나밖에 없으니까.
억지로 범인을 찾겠다며 부산을 떨 생각도 없었다.
어차피 모두를 의심하고 조심하면 되지 않겠는가.
그 와중에 서운한 마음을 가질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그 정도는 감수할 작정이었다.
‘경아가 어른이 될 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군. 오 년만 버텨주면 좋겠는데.’
철무가 돌아오면 방법이 있을지도…….
사마중천은 의자의 팔걸이를 움켜쥐고 몸을 일으켰다.
지금 상태로는 오 년이 아니라 이삼 년을 버티는 것도 자신할 수가 없었다.
아니,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검은 그림자가 그때까지 기다리지 않을 듯했다.
‘하늘이 피바람을 원하는가?’
한때 천하를 떨게 한 천궁마신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는 피바람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오년을 살 수만 있다면, 사마경이 안정적으로 성을 이어받을 수 있는 상황만 된다면.
그러나 성안에서 흐르는 격류는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더욱 빠르고 거칠게 흘렀다. 언제 어느 때 덮칠지 예측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경아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피바람도 마다하지 않겠다. 구천성이 혈해가 되더라도.’
그때 시비인 월선이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쟁반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사발이 놓여 있었다.
“성주님, 약을 드실 시간이옵니다.”
“탁자 위에 놓아라.”
월선은 쟁반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한쪽으로 섰다.
사마중천은 탁자로 다가가서 약사발을 잡았다.
황사중이 지은 약으로 벌써 일 년 이상 마시고 있었다. 무척 쓰긴 해도 마시면 고통이 줄어들기 때문에 그는 마다하지 않고 바닥까지 마셨다.
약이 그날따라 유난히 더 썼다.
13장: 별이 떨어진 그날
옷을 다 입고 머리를 마저 손 본 양호는 칼을 집어 들었다.
‘후후후, 이제 곧 그 꼴 보기 싫은 당주의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겠군.’
귀도당(鬼刀堂) 부당주 양호는 오랫동안 꿈꿔 왔던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마냥 즐겁기만 했다.
그날이 오면 제일 먼저, 자신을 똥개처럼 막 대하던 당주의 목에 칼을 들이댈 생각이었다.
그때도 과연 자신에게 함부로 말할 수 있을까?
그 인간 성격이라면 욕을 할지도 모른다. 욕을 한다면 혀를 잡아 빼서 잘라낼 작정이었다.
그럼 조용해지겠지?
기분 좋게 방을 나선 양호는 한 걸음을 내딛기도 전에 흠칫하며 멈춰 섰다.
좌우에서 무사 넷이 다가오고 있었다. 구천성의 무인이라면 누구나 만나기를 꺼려하는 사밀령의 살귀들이.
게다가 그들 중 하나는 사밀령의 사대령주 중 이령주였다.
“사밀령에서 여기는 무슨 일로 왔소?”
네 사람 중 얼굴이 거무스름한 삼십대 중반의 무사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가 바로 이령주 전이산이었다.
“양 부당주, 잠깐 우리를 따라가야겠소.”
“무슨 말을 하는 거요? 내가 왜 그대들을 따라간단 말이오?”
“지금쯤 사령주가 절검당의 곽채응 부당주를 만나고 있을 거요. 할 말이 있으면 가서 하시오.”
양호는 침착하려 했지만 곽채응이라는 이름이 나온 순간 눈빛이 흔들렸다.
“곽 부당주를? 과, 곽 부당주와 내가 무슨 상관이란 말이오?”
“반항하면 우리도 손을 쓸 수밖에 없소. 강제로 연행당하기 싫으면 순순히 따라오시오.”
양호는 재빨리 사밀령 무사들을 둘러보았다.
숫자는 넷밖에 안 되지만 하나하나가 고수들이었다.
빠져나갈 수 있을까?
설령 빠져나간다 해도 그 다음이 문제다.
사밀령의 동행을 거부한다는 것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셈.
성을 빠져나가기도 쉽지 않겠지만, 설령 빠져나간다 해도 평생을 쫓기다 죽게 될 것이다.
그는 결국 저항을 포기하고 다른 방법을 택했다. 시간과의 싸움을.
‘며칠만 버티면 돼.’
마음을 진정시킨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모르겠군. 가자면 가긴 하겠지만, 나에게 아무 잘못도 없다는 게 밝혀지면 사밀령에 책임을 물을 거요.”
“그러시든가.”
전이산이 비릿한 조소를 지었다.
그 시각. 사밀령 사령주는 한 사람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었다.
목에 살이 뒤룩뒤룩 찐 중년인. 그가 절검당의 부당주인 곽채응이었다.
“대항하는 것도 나쁘진 않아. 오랜만에 피를 볼 수 있으니까.”
“네가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당신은 당신 걱정이나 해. 사밀령의 동행요구 거부는 곧 성주의 명을 거역한 것. 더 심하게 해도 나를 뭐라고 할 사람은 없으니까.”
“바쁘니까 나중에 간다고 하지 않았느냐?”
“바쁜 건 당신 사정이지. 나는 지금 당장 당신을 데려오라는 명령을 받았어. 당신 발로 가기 싫다면 우리가 도와주지.”
사령주의 독사처럼 차가운 눈빛은 한 점 흔들림이 없었다.
‘빌어먹을. 걸려도 하필 사대령주 중 가장 독하다는 사령주에게 걸리다니.’
곽채응은 입술을 씹었다.
가지 않겠다고 하면 망설이지 않고 칼을 휘두를 놈이 사령주였다.
“좋다. 앞장서라. 가서 아무런 잘못도 없다는 걸 증명하겠다.”
***
사밀령의 움직임을 보고 받은 백리호는 즉시 공손백을 찾아갔다.
“사밀령이 양호와 곽채응을 잡아갔습니다.”
공손백의 이마에 깊은 골이 파였다.
“놈들이 눈치 채고 잡아간 것처럼 보이느냐?”
“소성주 습격에 성주가 크게 분노한 걸 보고 불안해졌는지 어젯밤 둘이 만났다고 합니다. 그 모습이 저들 눈에 띈 것 같습니다.”
“멍청한 놈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양호와 곽채응이 어느 선까지 알고 있지?”
“그들이 아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기껏해야 신호가 올라가면 수하들 단속을 철저히 하라는 정도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계획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크게 우려할 일은 없겠군.”
“문제는 두 사람을 지휘하는 추 장로입니다. 총사가 대법을 써서 두 사람의 입을 열게 한다면 추 장로가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대책은?”
“오면서 추 장로를 만나, 무슨 이유를 대고서라도 즉시 성을 벗어나라고 했습니다. 추 장로만 사라지면 선이 끊어지기 때문에 저들은 닭 쫓던 개꼴이 될 겁니다.”
“잘 처리했다.”
“다만 총사가 과연 아무런 후속대책도 세우지 않고 두 사람을 잡아갔을까 하는 점이 마음에 걸립니다.”
“두 사람을 잡아간 일 자체가 미끼일 수도 있단 말이지?”
“현재로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아야 합니다.”
“네 말도 일리가 있다. 그렇다면 더 지체할 이유가 없겠군.”
백리호가 흠칫하며 눈을 들었다.
“하오면……?”
“결국은 시간 싸움이 될 거다. 늦게 움직이는 사람이 지는 싸움이지. 손해가 커지더라도 머뭇거리면 지게 된다. 어쩌면 시간을 앞당겨야할지 모르니 철저히 준비하고 대기하라고 전해라.”
***
우문각의 두 눈에서 색이 다른 머리카락처럼 괴이한 빛이 일렁거렸다.
그의 앞에는 혈도를 제압당한 양호가 손을 뒤로 묶인 채 앉아 있었다.
초점 없이 몽롱한 눈빛, 반쯤 벌어진 입에서 침이 흘러나오는 모습은 마치 정신이 어디론가 빠져나간 듯했다.
“가서 위곤에게 장로 추원교를 잡아오라고 해라.”
“예, 총사.”
정유가 대답하고 방을 나갔다.
“양호를 뇌옥에 집어넣어라.”
묵묵히 서있던 비령위(秘靈衛) 하나가 양호에게 다가가서 묶인 팔을 잡고 일으켰다.
우문각은 양호가 끌려나가는 모습에서 시선을 돌려 곽채응을 바라보았다.
곽채응은 양호와 일 장 가량 거리를 두고 앉혀져 있었다.
그 역시 양호처럼 혈도를 제압당하고 손이 묶인 상태였다.
파랗게 질린 표정. 쉴 새 없이 흔들리는 눈빛.
그는 말로만 들었던 우문각의 사법을 대하고 입안이 바짝 말랐다.
양호는 저대로 정신병자가 되는 것 아닐까?
덜컥 겁이 났다.
싸우다 죽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고문을 버티다 죽으면 자존심이라도 지킬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할 말 못할 말 전부 뱉어내고 정신이상이 된다는 것. 그거야말로 자존심이 뭉개진 죽음이었다.
절대 원하지 않는 죽음.
“이제 곽 부당주가 말해줄 차례군. 기왕이면 양호가 말한 것 외의 내용을 알고 있으면 좋겠어.”
“초, 총사. 저는 아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모른다? 아무 것도 모르면서 성주께 반기를 들기로 한 건가?”
“저는 설마 그들이 성주께 반기를 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 좋아. 그럼 조사해보면 알겠지. 조금 전에 봤다시피 자넨 자네 입으로 모든 걸 말하게 될 거야. 다 듣고 나서 판단해보겠네.”
“총사…….”
“물론 양호에게 그랬듯이 자네에게도 마지막 기회를 주겠네. 뭐든 말해보게.”
“그, 그게 저…….”
안색이 하얗게 질린 곽채응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정확하게 알든 모르든 상관없네. 뭔가 미심쩍은 일이 있다면 어떤 사안이든 말해 봐. 예를 들자면, 누구누구가 수상하더라, 하는 것도 좋아.”
“저는 아는 게 많지 않아서…….”
“배신이 아니야. 자네가 충성을 맹세한 분은 성주님이시지. 그렇지 않은가?”
“무, 물론입니다.”
“그걸 안다니 다행이군. 다른 사람에게 또 충성을 맹세했다 해도 본래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은 신의를 저버리는 일이 아니네. 그저 말 그대로 돌아가는 것뿐이야.”
두려움과 최소한의 신의 사이에서 갈등하던 곽채응은 더 견디지 못했다.
“언젠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작년 이맘 때였는데…….”
곽채응은 기억을 짜내서 자신이 보고 들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대부분 아직 증명되지 않은 이야기들이었다.
개중에는 뜬소문에 불과한 이야기도 있었고, 제법 그럴 듯해서 믿는 사람이 많은 이야기도 있었다.
우문각은 조용히 들으면서 가끔 송곳으로 찌르듯이 질문을 던졌다.
그 말을 했던 사람이 누군가? 왜 그가 그런 말을 했다고 생각하나? 그자와 어떤 관계지?
곽채응은 땀을 삐질 삐질 흘리면서 자신이 아는 대로 말했다.
우문각은 곽채응이 사실을 말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곽채응의 눈빛은 이미 탁하고 힘없는 체념의 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렇게 이각쯤 지났을 때였다. 정유가 굳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총사, 추원교 장로가 사시에 성을 나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합니다.”